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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교(Data-ism)의 시대와 신앙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7818 추천수:1 218.147.218.173
2025-11-23 14:01:35

데이터 교(Data-ism)의 시대와 신앙

먼 옛날, '확실성의 나라'에 한 나그네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의심이 많아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지 않는 성격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지만,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습니다. "이 길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지? 저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져 내 머리를 치지 않을 거라는 증거는?" 그는 하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제가 안전하다는 명확한 표적을 보여주십시오." 잠시 후, 정말로 눈앞에 장미꽃 한 송이가 피어났습니다. 나그네는 안도했지만, 다섯 걸음을 채 걷기도 전에 다시 멈춰 섰습니다. "이건 우연일 수도 있어. 이번에는 하늘에서 번개를 쳐주십시오." 그는 평생 길 위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며 표적을 구하다가, 결국 단 하나의 목적지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 화석이 되고 말았습니다.

현대 사회는 '데이터''검증'이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식당 하나를 골라도 수백 개의리뷰를 확인하고, 물건을 살 때도 온갖 스펙을 비교하며 확실한 증거를 찾습니다. 이러한 습관은 영적인 영역으로까지 전이됩니다. "내 사업을 성공시켜 주시면 믿겠습니다.", "내 병을 지금 당장 고쳐주시면 헌신하겠습니다."라고 일종의 거래를 제안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불확실성에 대한 편협성'에서 기인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표적을 일종의 '심리적 보험증서'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 표적을 구하는 행위의 본질은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내 불안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의 발현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기적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또다시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깊이 탄식하시며 그들에게 표적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심리학의 '확증 편향' 이론은 이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은 증거만 수집합니다. 마음이 닫힌 사람에게 기적은 믿음을 낳는 도구가 되지 못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늘에서 불을 내리셨다면, 그들은 "마귀의 힘을 빌렸다"며 또 다른 핑계를 대고 거부했을 것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 의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에서 16세기 스페인에 재림한 예수님을 종교재판장(대심문관)이 체포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심문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했소. 인간은 자유를 원하지 않아. 인간이 원하는 것은 '기적''신비''권위'. 당신이 광야에서 돌로 떡을 만들었다면,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왔다면 온 인류가 당신을 따랐을 텐데, 왜 그냥 침묵했소? 인간은 기적 없이는 믿지 못하는 약한 존재란 말이오!"

대심문관의 말은 오늘날 바리새인들의 요구와 같습니다. "우리 눈을 현혹해 달라. 압도적인 힘으로 우리를 굴복시켜 달라. 그러면 고민할 필요 없이 복종하겠다." 예수님은 우리를 기적에 홀린 노예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자녀로 대우하기 원하셨기에 그토록 표적 보여주기를 거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참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증거가 차고 넘쳐서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지적 동의'가 아닙니다. 도리어 증거가 부재한 상황, 하나님의 부재가 느껴지는 침묵 속에서도 그분의 성품을 신뢰하고 걸음을 내디디는 '관계적 신뢰'입니다.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은 유효기간이 짧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고 춤을 췄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과 3일 뒤 마실 물이 없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감각적인 체험에 의존한 신앙은 더 강한 자극이 오지 않으면 금세 식어버리는 마약과 같습니다. 반면,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은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오늘날 끊임없이 묻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시다면 보여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대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곧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우리는 내 삶의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되는 '작은 표적'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아들을 내어주신 '가장 큰 표적'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주보다 크신 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그 사실보다 더 확실한 사랑의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을지라도, 이미 주어진 말씀과 십자가의 사랑을 붙들고 오늘을 살아내는 것.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을 내디디는 것. 그것이 신앙인에게 필요한 진정한 영성입니다. 지금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눈을 현혹할 기적인가, 아니면 영혼을 구원할 믿음입니까? 예수님은 의심 많은 도마에게, 그리고 표적을 구걸하는 현대인에게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한복음 20:29)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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