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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교회와 열린관계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057 추천수:1 112.168.96.71
1998-01-11 11:13:43

열린교회와 열린관계


[제일교회]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K시에 역사가 오래되고 큰 건물을 자랑하며 많은 헌금과 재력과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제일 교회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누더기를 입은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안내를 보고 있던 집사
님은 퉁명스럽게 "여보시오 어딜 올라오는 거요, 내려가 있어요" 하고 돈을 줍니다. 그러자 거지는 돈을 받지 않고 예배를 보러 왔다고 안내위원과 실강이를 벌였습니다. 뒤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부목사가 어디서 오셨느냐고 정중하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거지는 "예배보는데 어디서 온게 무슨 상관이요, 나 집없는 줄 뻔히 알지 않소"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럼 성함은" "나 김부자요" "누구의 소개로 왔습니까" "거리에서 예수 믿으라는 소리를 듣고 왔소" 그 날 거지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다 끝나자 부목사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거지는 "그게 정말이요"라고 말하고 다음 일요일에는 더 많은 친구를 데려 오겠다며 살아졌습니다. 다음 주였습니다. 어른 거지 아이 거지 10여명이 깡통을 차고 교회에 들어 왔습니다. 거지들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습니다. 헌금 주머니도 그들 앞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거지들의 문제로 제직회가 열렸습니다. 제직회에서는 의견이 나누어졌습니다. 거지가 오는 것을 막자는 측에서는 거지 떼가 오면 교인이 떨어지니 청년들을 동원하여 거지가 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다가는 대한 민국 거지가 다 온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거지가 오는 것을 막는 것은 부당하니 구제부에서 옷을 입혀 같이 예배를 드리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장로는 거지들은 보통 거지가 아니라 교회를 분열시키려 온 것같다며 거지의 출입을 금하게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거지들은 그 교회에 출입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
난 후 아이 거지가 부목사를 만나러 왔습니다. 왕초 거지가 보자는 것입니다. 아이들 따라 부목사는 다리 밑에 누워있는 왕초거지를 만났습니다. 그는 폐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부목사를 보자 그는 반가운 듯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부목사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구겨진 1000원짜리 지폐였습니다. 헌금을 하고 싶었지만 헌금 바구니가 자신에게는 오지 않아 드리지 못한 헌금이었습니다. 그는 부목사에게 무슨 말인가 가늘게 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현대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말구유에 나시고,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대학도 다니지 않았고 우등상 한번도 받지 못했으며 고급 승용차 한번 타보지 않았고 20평짜리 아파트에서 교향곡 한번 들어보지 못한 예수께서 더벅머리에 수염도 깍지 않고 귀신들린 자, 간음한 자, 세리, 굶주린 자, 소외된 자와 함께 들어오신다면 그 주위에 누가 앉겠습니까? 외적 요인으로 계층화되고 차별화된 도시 화려한 교회들, 그리고 그 교회에 다님으로 자신을 차별된 교인으로 대리 만족을 누리며 사는 교인들, 숫적 팽창이 능력으
로 착각하는 종교적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종교지도자들, 그런 교회에 헤어진 샌들을 신고 병든 자를 돌보느니라 한 달 동안 빨지 못한 너털거리는 옷을 입은 예수께서 들어오신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대할까요? 교회는 열려 있어야 합니다. 단지 수위를 두고 문을 열어 놓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도 교회에 들어와 영적인 한 식구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돈있고, 권력있고, 학력있는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혹은 "가난하고 실력 없는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지 않았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저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어지는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부의 유
무, 권력의 유무, 경륜의 유무, 지식의 유무에 상관없이 함께 한 지역 사회에서 어우러져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결코 외적 요인에 의하여 판단되고 계층화되는 곳이 되어서도 아니 되고 동류 그룹들의 사교 단체가 되어서도 안되며 세상 물욕에 사로잡힌 문어발식 기업이 되어서도 아니 되며 예수로 사업하는 종교사업체가 되어서도 아니 됩니다. 먼저 한 가족처럼 풍성한 교제, 정상적이고 친밀한 인간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 개인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열린 인간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초보적인 인간 관계에서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너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소냐?" 하며 그저 예배만 드리고 나갈 때는 극장 구경하고 나가는 사람들처럼 만남의 의미 없이 뿔뿔이 흩어지는 관계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저 한 주일에 한 번 만나 마음 없이 근육으로만 미소를 지으며 스쳐 가는 만남이 되어서도 아니 됩니다. 더욱이 예배를 마치고 서로 먼저 차를 빼려고 다툼을 하는 만남은 차라리 갖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들을 나누는 단계에서 멈추어서도 안됩니다. 의견이나 생각을 나누는 단계에서 멈추어서도 안됩니다.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는 단계에까지 발전해야 합니다.
서로의 어려움과 고통, 기쁨과 환희를 함께 나누며 서로간에 신뢰심을 더욱 깊게하고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삶을 나누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끼리끼리의 관계가 아니라 교회에서 한 식구된 성도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열린 가슴이 있어야 합니다. 외적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예수님을 영접한 한 인간으로서 존경과 사랑이 깃든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함께 어려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자체로 관심을 가지고 삶의 공유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로마서 2장 11절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였고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는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이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 목사/199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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