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불안에서 해방되는 길
얼마 전, 가슴 아픈 소식이 우리 사회를 울렸습니다. 멋진 테니스 선수를 꿈꾸던 한 10대 소녀가 어머니와 함께 가던 중, 건물 옥상에서 추락한 다른 10대와 부딪혀 목숨을 잃었습니다. 병원에 긴급 후송된 그의 어머니마저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비극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묻게 됩니다. ‘왜 하필 나에게’, ‘왜 이렇게 허무하게’라는 질문과 함께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통감하며 깊은 불안에 휩싸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처럼 인간이 마주하는 근원적인 불안을 그의 저서 『존재의 용기(The Courage to Be)』에서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바로 ‘죽음과 운명의 불안’, ‘공허와 무의미의 불안’, ‘죄책감과 정죄의 불안’입니다. 이 세 가지 불안의 강을 건너게 할 믿음의 다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첫째, 우리는 ‘죽음’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파도 앞에 서 있습니다.
피붙이 같았던 소녀의 죽음이 보여주듯, 우리는 단 한 순간 앞의 내 존재조차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죽음은 단순히 숨이 멎는 사건이 아닙니다. ‘나’라는 이 우주가 통째로 ‘무(無)’가 될 수 있다는, 존재의 근간을 뒤흔드는 공포입니다. 틸리히는 이 불안을 애써 외면하거나 술이나 쾌락으로 잠시 잊는 것은 미봉책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는 죽음의 가능성을 정직하게 끌어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존재하겠다”고 결단하는 ‘존재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하지만 이 용기는 한 줌의 의지만으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폭풍우 속에서 내 손으로 돛대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견고한 존재가 배 자체를 붙들고 있음을 믿을 때 비로소 가능한 용기입니다. 나의 존재를 나보다 더 확실하게 붙드시는 존재의 근원, 즉 하나님 안에서만 우리는 유한함의 불안을 넘어설 진정한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공허’의 파도가 우리를 덮칩니다.
“어차피 한순간에 사라질 인생이라면, 이토록 아등바등 사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허무함은 현대인의 영혼을 소리 없이 잠식하는 깊은 병입니다. 과거에는 종교, 국가, 공동체가 ‘당신은 이런 의미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길을 제시했지만, 이제 우리는 각자 망망대해 위에서 스스로의 등대를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틸리히는 진정한 의미란 내 안에서 쥐어짜 내거나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나를 지으신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너는 존재 자체로 의미 있다”는 음성을 들을 때, 그 부르심에 응답할 때 비로소 주어진다고 설명합니다. 내가 나의 쓸모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나는 실패작이야’라고 속삭이는 순간조차, 하나님께서는 이미 나를 의미 있는 존재로 기쁘게 받으셨다는 ‘은혜’의 체험. 이것이야말로 공허의 바다를 건너게 하는 유일한 구명정입니다.
셋째, 과거의 후회가 발목을 잡는 ‘죄책감’의 파도가 밀려옵니다.
우리는 누구나 과거의 실수, 잘못된 선택, 타인에게 남긴 상처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 죄책감은 “내가 그때 나쁜 행동을 했어”에서 그치지 않고,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야”라는 깊은 자기 거절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스스로를 용서하려는 노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번번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용서받았음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틸리히는 이를 ‘받아들여짐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조금 어려운 말로 표현했습니다. 나의 모든 실패와 허물, 도저히 사랑스럽지 않은 내 모습 그대로가 이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무조건적으로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입니다.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용서하시고 품에 안으셨다는 믿음만이 우리를 스스로 만든 정죄의 감옥에서 해방시킵니다. 죽음, 무의미, 죄책감이라는 세 가지 거대한 불안의 파도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결코 잠재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파도 아래, 더 깊은 곳에 우리의 존재를 붙드는 영원한 닻이 있음을 믿을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 안길 때 죽음 앞에서 존재의 용기를, 공허함 속에서도 나의 의미를 발견할 용기를, 그리고 죄책감 속에서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있음을 받아들일 용기를 얻게 됩니다. 죽음의 그림자, 의미 상실의 허무, 그리고 깊은 죄책감. 이 세 가지 불안은 인간의 본질을 흔들지만, 그 무엇도 우리를 영원한 나라에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이 약속이야말로, 인생의 어떤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줄 가장 확실하고 최종적인 해답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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