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 탈출
뉴스위크지에 "돈은 죽음보다 강하다?"라는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돈은 피보다 진하고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아마 영원히 그럴 것이다고 합니다. 돈에 대해 이런 정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솔직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위선자라는 것입니다. 권력과 폭력, 즉 모든 정치의 진앙지가 돈이고 전쟁은 늘 돈 때문에 일어나고 언제나 돈으로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돈은 모든 것이고 돈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핏발 선 한탕 심리가 대낮에도 허황된 일확천금의 욕망이 되어 춤을 추고 거리를 활보합니다. 백만장자 앤드류 카네기는 "세상에 돈이라는 우상보다 사람을 더 타락시키는 우상은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6:10)”가 된다고 했습니다. 탐심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말입니다.
십계명을 범하게 만드는 기본적인 죄가 탐욕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는 탐욕이 하나님만을 섬기지 못하게 하고 우상을 섬기게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게 합니다. 탐욕이 부모를 바로 공경하지 못하게 하고, 살인하게 하고, 간음하게 하고, 도적질하게 하고, 거짓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탐심은 결국 우리가 사는 가정과 사회를 무덤처럼 만들어 버리게 합니다. 자신의 건강과 인격을 파괴해 버리고, 행복을 빼앗아가게 합니다. 유명한 문호 단테에 의하면 탐욕이란 '꺾을 수 없는 원수'라고 지적했습니다. 돈에 탐심을 갖기 시작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타락하고, 어떤 권력이라도 부패하며, 어떤 나라라도 멸망으로 치닫게 되어 있습니다.
청교도 에스겔 홉킨스는 이 탐욕이 어떻게 인간을 포로로 만드는가를 4단계로 설명을 하였습니다. 첫째 단계는 죄가 우리 안에 형태를 갖추기 전에 악한 생각 또는 죄의 싹이 움트는 단계라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이러한 악한 생각을 채워줄 대상이 나타날 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셋째 단계는 부패한 육욕적인 세력과 죄악으로 눈이 멀고 마지막 단계는 탐욕의 포로가 되어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멸망의 단계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탐욕에서 해방되는 길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첫째, 돈을 하늘에 쌓아 놓는데 초점을 맞출 때 탐욕의 포로에서 해방됩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마6:19).” 누구나 돈을 땅에 쌓는데 초점을 두면 탐욕의 포로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돈으로 눈이 흐려지면 고칠 약이 없습니다. 돈이 모든 것을 가려 사람을 왜곡되게 보고, 세상을 흐리게 보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둘째, 돈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섬겨야 탐욕의 포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돈을 섬기면 탐욕의 포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돈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탐욕이라는 호르몬으로 움직이는 제도요 체제입니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존 화이트는 "공산주의 유물론은 돈만이 유일한 존재라고 주장을 하고 한편 자본주의 유물론은 돈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고 했습니다. 돈은 절대 군림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탐욕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탐욕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셋째, 먹을 것 입을 것만 구하지 않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야 탐욕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라고 말씀합니다. 에릭 프롬은 인간을 소유형의 인간(having mode)과 존재형의 인간(being mode)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소유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더 많은 것을 소유(to have)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존재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인간답게 존재(to be)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지 않고 늘 먹고 마시는 것에만 집착하면 탐욕의 포로가 됩니다. 마음은 평안치 않고 스스로 염려와 근심을 불러일으키며 여러 가지 유혹과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구원을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집을 지을 수는 있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고,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살 수는 있지만 돈으로 식욕까지 살 수는 없으며, 돈으로 좋은 침대는 살 수 있지만 돈으로 달콤한 잠까지 살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하시면서, "사람의 사는 것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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