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쾌락과 긴 추락
이솝 우화에 나오는 <파리와 부나비>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배고픈 파리가 맛있고 향기로운 꿀단지를 발견했습니다. 처음에 꿀단지의 변두리를 돌면서 조심스레 꿀을 먹던 파리는 나중에는 아예 꿀단지 속으로 들어가서 먹다가 날개까지 젖고 말았습니다. 빠져 나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파리를 보고 부나비가 말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놈아, 네가 돼지처럼 먹기를 좋아하니까 그렇게 빠져서 죽지 않니?” 이에 파리는 아무런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었습니다. 부나비는 촛불을 보자 그 주변을 빙빙 돌면서 불빛의 아름다움에 취해 점점 더 가까이 나갔습니다. 그러다 결국 부나비는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그 때 파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보고 바보라고 하더니 저는 훨씬 더 바보구먼!”
요즈음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미투(Me Too)”로 추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파리와 부나비처럼 보입니다. 노벨상에 매년마다 거론되던 시인도 순간의 쾌락으로 하루아침에 긴 추락하였습니다. 한국 연극계의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감독도 “미투 운동”의 직격탄을 맞아 긴 그림자로 쓰러졌고, 차기 대권 주자로 알려진 정치인도 한 순간에 길게 무너졌습니다. 순간의 쾌락이 기나긴 추락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미투’로 추락한 사회적 지위를 얻은 사람들은 대부분 열정 있는 사람들입니다. 열정은 사회적 성공을 동반하지만 그 열정이 성욕으로 향하면 경계선을 넘어 자신을 자폭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은 오감각을 통해 만족을 주는 스트레스 해소와 쾌락의 최상의 도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탈선된 성은 부와 권력을 누린 사람들의 명예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명예자살의 종착역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술이나 스트레스 등으로 이성이 약화되면 힘 있는 사람일수록 쉽게 위험한 성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신경학자 올즈(Olds)와 밀너(Milner)는 뇌의 전기자극 실험을 하던 중 우연히 '쾌락중추'라고 하는 부위가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쥐의 쾌락중추에 미세전극을 연결하여 레버로 누르도록 하면, 쥐는 식음을 잊은 채 26기간 동안 무려 5만 번 이상 그 쾌락중추를 자극할 정도록 쾌락에 몰입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결국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운동도 부족하여 일찍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마약이나 섹스 그리고 많은 중독성 약물로 쾌락 중추를 직접 자극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심리학 교수 소냐 류보머스키(Sonja Lyubomirsky)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쾌락적응’ 능력이 있어 더 짜릿하고 더 격렬한 자극으로 황홀경과 전율, 희열을 요구하며 중독으로 발전합니다. 결국 순간의 쾌락은 길지 않고 쾌락의 끝은 죄의식과 허무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타고르는 쾌락을 두고 “이슬방울처럼 덧없다고 했고 또 그것은 웃는 동안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0년간 왕으로 있었던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은 권태와 부담을 덜기 위해 수많은 여인을 통해 쾌락을 추구했지만 쾌락이 권태의 치료제도 재미의 도구도 되지 못하고 비눗방울이 터지고 나면 남는 것이 없듯 헛되다고 고백했습니다. 탈선된 성을 통한 쾌락은 마침내 인간관계를 깨지게 하고, 쾌락은 갈수록 약해지고 쾌락 욕구는 갈수록 강해져 충족감보다 만족 없는 갈망과 공허를 만들 뿐입니다. 가수 마이클 잭슨은 온갖 쾌락을 누리면서 만족하지 못해서 어린아이들까지 건드려 보았지만 끝없이 추락했고, 미루지 말고 순간의 쾌락을 즐기라고 외쳤던 마광수는 자살로 그의 허무를 마무리했습니다. 20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뒤 승승장구했던 타이슨은 1991년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한순간에 몰락했고,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혼외정사로 조강지처에게 1000억원 가량의 위자료를 지급하고 추락하였으며, 성경에 나오는 능력의 사람 삼손도 들릴라의 무릎에서 쾌락을 찾다가 눈이 뽑혔습니다.
성경은 쾌락중추를 자극받아 탈선된 순간적 쾌락을 누리려는 사람들의 종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느니라(잠언5:3-5).”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통해서 얻게 되는 쾌락은 좀 더 시간이 길게 갑니다. 그 보다 더 오래가는 쾌락은 인류의 보편적 미덕과 가치를 자기의 삶 속에 실현함으로 누리는 즐거움입니다. 순간의 쾌락이 아니라 영원한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영원한 쾌락은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55:2-3)” 순간적 쾌락을 위해 영원한 기쁨을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없는 쾌락은 헌 누더기에 불과하며 타인에게 상처를 남기는 자기 파괴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긴 기쁨과 긴 만족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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