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과 도적적 면허 효과
프린스톤 대학의 심리학자 베누아 모린(Benoit Morin)과 델 밀러(Dell Miller)는 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 ‘왜 대부분의 여성이 실제로 똑똑하지 않은가?’와 ‘왜 대부분의 여성은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더 적절한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절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성차별적 질문에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두 번째 그룹 학생들에게는 ‘왜 다른 여성은 실제로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가?’와 ‘왜 다른 여성은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더 적절한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대부분의 여성”을 “다른 여성”으로 바꾸어 비교적 모호하게 하니까 거세게 반대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연구진은 이 학생들을 직장에서 고위직이 되게 하여 남성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업종에 남여가 함께 응시하도록 하고 그들로 하여금 채용하도록 하였습니다. 결과는 성차별에 강력히 반대했던 학생이 남성을 채용했습니다. 성차별을 심하게 반대했는데 실제에서는 성차별을 하여 채용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도덕적 면허 효과(moral licensing effect)’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흑인인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백인을 찬양하는 말을 더욱 쉽게 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운동을 자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운동을 한 후에 건강하지 않은 식품을 자주 먹는다고 합니다. 유기농식품을 구매한 적이 있는 환경보호자가 사람들을 속이는 일을 더 쉽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친환경 제품을 구매한 참가자들은 그 후에 좀 더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합니다. 공익활동을 하겠다고 밝히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값비싼 물건을 살 가능성이 두 배 이상이라고 합니다. 도덕적 선을 통해 자기 이미지가 강해진 직장 상사들이 갑질을 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부하직원에게 갑질을 한다고 합니다.
도덕적 면허를 얻은 사람일수록 사이버공간에서 도덕적 이탈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런던정경대학 마거릿 올미스톤과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엘라니 왕이『포천』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무책임 사이의 관계를 살펴본 결과 놀랍게도 사회적 책임에 투자를 많이 했던 기업들이 나중에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부의 대물림과 과다한 상속과 증여가 근로 의욕을 꺾는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실상 청문회에 나오면 자녀에게 수억을 상속해 준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부의 분배를 강조하고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청문회에 나오면 위장 전입을 하고, 군대도 가지 않고, 고가의 집을 몇 채씩 보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가 옳은 일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 때 역설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이미 착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라는 도덕적 우월감이, 이 정도 나쁜 일은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우월감을 가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도덕적 자신감'이나 '도덕적 우월감'을 갖는 신앙인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입니다. 청소년 리더로 성적 순결을 강조하던 목회자가 성추행으로 넘어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마치 한국 교회를 향해 정의의 사자인양 부르짖는 대형교회 설교자의 삶의 실제를 보면 정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정의를 부르짖는 신앙인일수록 힘을 가지면 쉽게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구별짓기를 통해 정의롭게 보이는 것과 실제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은 다릅니다. 정의롭게 보이기 위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것은 정의로운 행동은 아닙니다. “정의 마케팅”이 곧 그 사람이 정의롭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간혹 보면 교회 생활 오래도록 하면서 각종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마치 “도덕적 면허”를 받은 사람마냥 다른 성도를 정죄하고 깔보며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을 봅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는 한 가지 이유로 “당신 같은 사람은 성가대원이 될 수 없고, 당신 같은 사람은 안내 위원이 될 수 없고, 당신 같은 사람은 장로가 될 수 없다”고 구별 짓기를 시도합니다. 신앙생활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20:16)”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실제 기도하는 것은 다릅니다. 예배 생활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실제 예배 생활을 잘하는 것은 다릅니다. 도덕적 우월감을 가졌다고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바르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도덕적 우월감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부도덕해지기 쉬운 경향이 있고 도덕적 우월감 때문에 쉽게 도덕적이지 못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하고 사실과 증거를 무시한다고 자신이 옳은 것이 아닙니다.
값없이 의롭게 되었다고 도덕적 면허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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