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있는 신앙인
언젠가 어느 목사님을 만나 중매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 청년을 소개하면서 “공부도 잘하고 잘났지만 싸가지가 없다”고 말하며 “싸가지 없는 사람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요즈음 일부 기독교인들을 보면 조직 폭력배 수준의 의리도 없다. 신앙인도 의리가 없으면 별 볼일 없다”고 말하며 의리 있는 신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요즈음은 참 된 의리가 살아진 시대처럼 보입니다.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배신을 밥먹듯이 합니다. 교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배신, 21세기를 사는 지혜/김용철 외]라는 책이 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는 배신이 창궐하다고 합니다. 널리고 널려 있는 게 배신이고 수시로 겪는 것이 배신감이라고 합니다. 배신을 터부시하면서 배신자에게 혜택을 줌으로 '배신'을 권하는 사회를 장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신이 인간의 본성적 기질이고, 치열한 생존 경쟁 사회에서 성공과 출세를 위해 배신은 필연적인 필수품이라고 해도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남을 속이는 배신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배신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소한 이익을 위한 배신자가 대접받고 배신을 위대한 것인 양 포장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욕심 주인이 착한 머슴과 함께 겨울나기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갔답니다. 주인은 몰래 머슴이 얼마나 일을 잘하나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곰이 주인에게 덮쳤답니다. 주인은 도망가다 그만 돌 뿌리에 걸려 넘어졌고 곰은 주인을 덮쳤답니다. 그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곰이 피흘리며 쓰러졌는데 머슴이 주인의 소리를 듣고 곰의 몸통을 도끼로 후려쳤답니다. 다음 날 주인은 곰가죽을 시장에 내다 팔았답니다. 그런데 돌아온 주인은 머슴에게 "이놈아, 네가 친 도끼자국 때문에 가죽을 비싸게 팔지 못했다"라며 야단을 쳤다고 합니다.
의리 없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의리(義理)란 의로울 의(義)에 다스릴 이(理)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의로움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는 것은 그만큼 정의롭고, 윤리적이며, 선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인망우폐(人亡牛斃)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이 뜻은 ‘주인이 죽으니 소도 죽었다’는 의리를 지킨 소의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 문수 마을에 김기년이라는 농부가 암소 한 마리를 길렀답니다. 1575년 여름, 소와 함께 밭을 갈고 있을 때 갑자기 숲 속에서 호랑이가 튀어나와 소에게 달려들었답니다. 농부가 괭이를 들고 고함을 지르며 호랑이를 쫒으려 했으나 호랑이에게 목숨이 경각에 달리게 되었답니다. 그러자 소가 크게 울부짖으며 달려들어 호랑이를 몇 번 받았답니다. 소에게 허리와 등을 바쳐 피를 흘리던 호랑이는 기진맥진하여 농부를 버리고 달아나다 죽고 말았답니다. 죽음에서 구원받은 농부는 소를 몰고 집에 돌아 왔지만 호랑이에게 물린 상처로 이십일 만에 죽게 됐었답니다. 그 때 농부는 유언을 남겼답니다. "내가 호랑이 밥이 되지 않은 것은 소 때문이다. 내가 죽어도 이 소를 절대로 팔지 말아라. 비록 소가 늙어 죽어도 그 고기를 먹지 말고, 반드시 내 무덤 옆에 묻도록 해라" 소는 농부가 상처로 누워 있을 때도 평소처럼 논밭을 갈고 잘 먹었답니다. 그런데 주인인 농부가 죽자, 소는 큰 소리로 울며 미친 듯이 날뛰더니 먹이를 끊고 삼일 후에 죽었답니다. 사람들이 그 소를 묻고 의우총(義牛塚:의로운 소의 무덤)이라 했답니다. 그 무덤은 지금까지 경북 구미시 산동면에 현존한다고 합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라는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정신은 왕조시대의 핵심적 가치였습니다.
선죽교에서 철퇴를 맞고 세상을 떠나면서도 일백 번 고쳐죽어도 님 향한 일편단심은 변치 않겠다고 절개를 지킨 정몽주는 고려의 대표적인 충신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단테는 '신곡(神曲)'에서 배신자를 지옥 맨 밑바닥에 두었습니다. 배신자로 자기의 스승인 예수를 판 가룟 유다와 로마황제 줄리어스 시저를 암살한 그의 친구이던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넣어 놓았습니다. 단테는 배신은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죄악 중에서 가장 밉고, 더럽고, 비열한 최대의 죄악으로 본 것입니다. 의리보다 살아남는 것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는 세상이지만 의리는 박물관의 유물만은 아닙니다. 폴리갑이 화형을 당하기 전 로마의 권위자가 그에게 물었답니다. "어떠냐? 이제라도 네가 섬기는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번만 부인하는 것이. 그러면 너는 살아 나갈 수 있다." 천천히 그 로마인을 바라보던 폴리갑이 고개를 흔들었답니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강인하게 말했답니다. "아니오. 나를 저 불 속에 던지시오. 어떻게 내가 그 분을 부인할 수 있겠소. 오늘까지 그 분은 나를 한 번도 외면한 적이 없는데!" 성경은 말씀합니다. “진노의 날에 재물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의리는 죽을 사람을 구해 낸다.(잠11:4)우리말성경”
섬김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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