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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침묵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792 추천수:2 218.147.218.173
2024-08-25 13:06:12

하나님의 침묵

엔도 슈사쿠<침묵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17세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일본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무참하게 고문과 순교를 당합니다. 바다에 십자가를 세워 그곳에 신앙인을 달아 놓고 밀물과 썰물로 고문을 당하다가 무참하게 죽게 합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로드리고 선교사는 왜 이 순간에 하나님은 침묵하고 있느냐고 원망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고, 질병에 걸려 죽고, 사업이 잘 되지 않고, 취업이 안되고, 사고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면 신앙인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신앙적 회의를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거나 충격적으로 다가오면 신앙에서 떠나 무신론자가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진화론을 쓴 다윈도 어릴 때는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40년 동안 심장이 과도하게 뛰는 심계항진, 설사, 각종 피부 질환, 불면증 등에 시달렸답니다. 8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답니다. 지극히 사랑했던 첫째 딸 애니가 10살의 나이로 죽었답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왜 이런 일을 당하느냐고 신앙적 회의를 하고 하나님을 떠나거나 영적 침체에 빠집니다. 무신론자가 되던, 회의론자가 되던, 불가지론자가 되어 버립니다.

무신론자 데이비드 흄도 어릴 때는 교회에 다녔습니다. 부조리한 세상을 보고 10대에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악을 막아내기 원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던가? 그랬다면 하나님은 무력한 자이다. 막아낼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기 원하지 않았는가? 그랬다면 하나님은 악한 자이다. 하나님이 막아내기 원했다고 막아낼 수 있었는가? 그렇다면 악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존재하는데 악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무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존재하는데 악이 횡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선하지 않은 악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고 선하신 데도 악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의인이 고난받는 현장에서 마치 하나님이 침묵하고 악이 횡행하여 하나님이 역사 속에 개입하지 않는 것 같이 보여도 고난에도 다 뜻이 있습니다.

침묵이라는 소설에서 로드리고 신부도 잡혀 취조를 받게 되는데 교활한 일본인들은 '후미에'라는, 예수님상이 새겨진 동판을 나무판에 붙여 그것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은 살려 주는 고문을 했습니다. 로드리고 신부는 차마 그 '후미에'를 밟고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저주저하는 로드리고 신부에게 예수님이 말했습니다. "나를 밟아라. 나는 본래 밟히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냐? 나를 밟을 때 네 마음이 아플 것이다. 마음으로 아파해 주는 그 사랑만으로 충분하다." 그러자 로드리고 신부는 통분합니다. "주여,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있는 것을 나는 원망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침묵한 것이 아니다. 너와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순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 왜 침묵합니까를 되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통당할 때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현장에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긴 침묵>이라는 연극이 있습니다. 마지막 대심판의 날에 수많은 사람이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 고개를 수그리고 있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이 심판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유대인 여자는 나치의 집단 수용소에서 지옥같은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냐는 것입니다. 어느 흑인 남자는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매 맞고 고통을 당할 때 어디 계셨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통과 아픔과 배고픔과 전쟁과 질병이 없는 저 높은 천국에 홀로 계시니 자신들의 고통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하는 모든 어려움, 고통, 절망, 죽음을 당하지 않으시니 얼마나 편안하고 좋겠는가?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유대인 대표, 흑인 대표, 관절염 환자 대표, 암 환자 대표, 기형아 대표, 심지어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휴유증 환자 대표를 선출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할 자격을 가지시기 전에 하나님도 우리가 겪은 고통을 한번 맛보아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입이 불거진 사람들은 하나님도 자신들처럼 고통과 아픔, 배고픔, 환란, 절망을 맛보아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긴 침묵 속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것을 이미 다 겪으셨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에게 억울한 판결을 받고 십자가에 처형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침묵을 깨달은 바울은 한평생 긴 고난 앞에서 침묵의 강을 건너며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1:24)”라고 고백합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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