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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영원한 생명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143 추천수:2 112.168.96.71
2017-02-26 07:29:03

생명, 영원한 생명

생명처럼 고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될수록 점점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13살 여중생이 자기 집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고, 흉기로 살해한 뒤 상자에 넣어 버렸다고 합니다. 인터넷 채팅에서 알게된 10대 남성과 수차례 성관계를 가진 뒤 임신하자 영아살해를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낙태로 죽어가는 생명은 34만 건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거문도에서는 술을 마시다가 상대가 욕한다고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살인과 강도, 강간·강제추행, 절도, 폭력 등 5대 범죄가 54초마다 발생한다고 합니다. 너무 생명을 경시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기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다른 생명을 대수롭지 않게 보거나 업신여깁니다. 인간의 생명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폭력으로 짓밟습니다.

이 시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심각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세리와 죄인들의 인권이나 생명의 존엄성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비도덕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 불명예스런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세금을 거두는 세무서 직원들, 바람피우며 몸 팔아 돈 버는 창녀들, 귀신들려 헛소리하며 돌아다니는 미치광이들, 문둥병 걸려 고름을 질질 흘리며 추방되어 집단 생활하는 문둥이들, 그리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병들었다고 생각하는 각종 병자들, 앉은뱅이, 눈먼 자. 혈루증, 중풍병자, 귀머거리 등의 장애자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을 돈의 많고 적음을 통해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권력이 있고 없고, 외모가 좋고 나쁘고, 명예가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 식사를 같이 하였습니다. 5명의 남편을 둔 여인을 인간답게 다정하게 대하여 주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용서하였으며 살려 주었습니다. 귀신들린 자의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문둥이를 고쳐 주었고 혈루증 앓는 자, 눈먼 자, 귀먹은 자, 앉은뱅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 고쳐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몸값에 대하여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생명이라도 생명 그 자체로 생명은 귀중한 것입니다.

호주의 저널리스트 토마스 케넬 리가 쓴 소설을 영화화한 「쉰들러 리스트」가 있습니다. 실존 인물이었던 오스카 쉰들러(Oscar Shindler)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독일 나치 당원으로 폴란드에 가서 무기 공장을 하여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비록 젊은 시절 술과 돈에 심취되어 살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유대인들이 개 취급을 받으면서 아무데서나 아무렇게 대량 학살되는 것을 보고는 점점 인간애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고 막대한 돈을 들여서 독일 군인들과 흥정을 하여 유대인들을 사서 자기 공장에서 일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1,100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을 구해 준 것입니다. 그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생명을 살려내지 못한 것을 참으로 가슴아파합니다. 친구가 사준 자기의 승용차를 보면서 그것을 팔았더라면 유대인 열 명은 더 구할 수 있었을 것이고, 자기 가슴의 금배지를 팔았더라면 유대인 두 명, 아니 세 명은 더 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안타까워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유태인들이 쉰들러에게 감사의 표시로 반지를 만들어 주면서, 탈무드의 글귀를 새겨 주는데 거기에 적힌 말이 이렇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는 자가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것만큼 숭고한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말씀합니다. 죽음 후에는 지옥이라는 영벌과 천국이라는 영생이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 공상만화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시 원자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졌습니다. 갑자기 하늘에 나타난 비행기 편대는 "히로시마에게 경고한다! 모든 시민은 8월 6일 아침 8시까지 50리 밖으로 대피하라! 투하되는 폭탄은 신형 원자폭탄이다!"라는 경고문을 뿌렸습니다. 사람들은 3일 간의 경고를 믿지 않고 상상도 못할 대 폭음과 함께 살아졌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도, 소돔과 고모라 때도 그랬습니다. 언제가 인생은 끝이 오고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예수님은 초청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6).”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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