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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게임과 정치 훌리건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569 추천수:5 112.168.96.71
2017-02-12 08:34:46

탄핵 게임과 정치 훌리건

혹한인데도 탄핵정국에서 열혈 지지자들은 더욱 과격해지고 있습니다. 토요일이면 촛불과 태극기로 편을 나누어 한 쪽에서는 “즉각 퇴진”을, 한 쪽에서는 “탄핵 기각”을 외치고 있습니다. '탄핵 가결 헌재 무효'라고 쓰인 태극기를 들고 아파트에서 투신한 사람도 있고, "박근혜는 내란 사범"이라고 적은 유서를 남긴 채 분신한 극단적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법적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탄핵 찬반을 둘러싼 구호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극단적 이기심으로 무장된 이들은 이념적 가치로 이기심을 포장하여 극단적 양상으로 혐오 전투 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면 이들은 축구장의 난동패 훌리건(Hooligan.폭력배)처럼 광기를 가지고 정치 경기장 폭동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훌리건은 경기장에서 뿐만 아니라 거리의 술집에서 소란을 피우고 가게의 유리창을 깨부수는 등 온갖 행패를 다 부립니다. 1946년 훌리건의 난동으로 영국 볼턴-스토크전에서 33명이 숨지고 5백여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1964년 리마에서 열린 페루-아르헨티나 경기 때도 3백여 명이 숨졌고, 1982년 네덜란드 할렘-모스크바 스파르타크의 경기에서는 22명이 숨졌습니다. 심지어는 1969년 온두라스에서 열린 온두라스-엘살바도르의 월드컵 남미지역예선전에서 선수들 간의 싸움이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선수들 간의 싸움은 관중석으로 이어졌고, 이 광경을 생중계를 통해 지켜보던 엘살바도르 군대는 온두라스를 폭격하여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정치 역시 경기장의 게임과 같습니다. 탄핵도 정치게임 중의 하나입니다. 게임 상황에는 세 가지 구성요소가 있습니다. 게임의 참가자들(players), 참가자들의 전략(strategy), 게임이 끝나면 참가자들이 획득하는 보상 또는 이득(payoff) 등입니다. 게임 참가자들은 게임을 끝마치고 획득할 보상을 위해 코치의 치밀한 전략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 게임의 무대에는 공정한 경쟁을 위해 심판과 게임 규칙이 필요합니다.

어떤 경기든 선수를 지지하는 광팬들이 훌리건이 되어 난동은 부린다면 경기는 제대로 치러질 수 없고, 심판이 부정한 방법으로 경기 운영을 한다면 그 경기는 승자가 환영받고 패자가 승복하는 경기가 될 수 없습니다. 승리에 집착하여 게임의 상대자를 제거한다면 그 게임은 게임이 아니라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게임은 법치 국가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탄핵 게임은 이념 대립으로 정적을 죽이는 게임이 아니라 헌정질서와 법치주의 문제입니다. 헌법재판소가 경기 규칙에 따라 판단할 문제이지 광팬 훌리건들의 아우성으로 결정될 문제가 아닙니다. 상대선수를 불법적 방법으로 제거해서는 안 된다는 게임의 법칙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임 참가자들은 승리하기 위해 차선책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게임의 법칙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꾸려고 합니다. 게임의 법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증거와 증인들을 확보합니다. 심판은 성문화된 법을 근거로 실체적 사실을 밝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도록 객관적 판단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정치 훌리건들은 실체적 진실보다는 지지자들의 수, 여론, 통계, 허위의식 등을 동원하여 판단의 기준을 흐리게 만들고 심판도 자기 진영에 가두어 놓으려고 합니다.

게임 이론 중에 악명효과(reputation effect)를 노리는 “또라이 전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북한과 같이 “아웅산 폭발사건, 대한항공 757기 폭발 사건, 핵실험” 등 법칙대로 움직이지 않음으로 승리를 꾀하는 전략입니다. 진영논리의 올무에 관중을 묶어 놓고 군중심리로 이성도 양심도 마비시켜 버리는 전략입니다. 거짓 기사나 허위 날조된 첩보를 흘려 조작된 거짓 여론으로 미혹하는 정치꾼들에게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백성의 안위나 국가의 미래보다는 승부에 집착한 정치 게이머들은 지도자와 지지자를 분리시키는 고도의 전략을 구사합니다. 정치꾼들은 정치 혐오증을 만들어 게임의 결과에 대한 기대를 0으로 만들어 버리고, 결국 게임 현장을 떠나 무관심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관중에게는 지도자 혐오증을 가지게 만들어 놓고 낮에는 훌리건들을 위해 싸우다가 밤에는 같이 술을 마시는 그들만의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자신이 선수가 되어 뛰는 게임입니다.

남의 경기에 훌리건이 되어 미친 춤을 추며 경기장을 개판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관중이나 선수가 심판이 될 수 없습니다. 탄핵 판결은 심판에게 맡기고 경기장에서 선수로 자신의 인생이 탄핵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달려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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