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섬기는 언어

섬기는 언어

게시글 검색
상실의 종류와 극복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1805 추천수:7 112.168.96.71
2016-10-02 07:09:43

상실의 종류와 극복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고 작은 상실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국어대사전에서는 상실(喪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넓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목회상담학 교수인 허버트 앤더슨과 케네스 미첼은 <상실과 슬픔의 치유>에서 상실의 종류를 여섯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째는 “물질적인 상실”입니다. 손때가 묻고, 추억이 서리고, 애정이 깃든 물건을 잃었을 때 애착한 만큼 상실감도 커지게 됩니다. 특별이 대체품이 없는 물질은 더욱 상실감이 깊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합된 외적 가치를 지닌 물건을 잃었을 때는 극심한 고통이 동반됩니다.
두 번째는 “관계의 상실”입니다. 무엇을 잃었다고 반드시 강한 고통이나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나와 관계가 있는 것일수록 상실의 고통이 큽니다. 인간은 모태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관계를 맺으며 살다 관계를 상실합니다. 죽음이나, 병, 은퇴, 실직, 이민, 이혼,단교, 거부, 버림받음, 실연 등과 같은 관계상실로 큰 고통을 겪습니다.
셋째는 “내적 심리적 상실”입니다. 이것은 “기대와 꿈의 상실”입니다. 기대와 꿈의 상실은 청소년기나 성인기에 많이 일어납니다. 이 때 사람들은 기쁨, 자신감, 사랑, 만족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넷째는 “기능적 상실”입니다. 노화나 질병, 혹은 사고로 몸의 근육이나 신경계의 어떤 기능을 잃고 강렬한 슬픔에 잠기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역할 상실”입니다. 명퇴나 실직 등으로 역할을 상실하면 우울함, 죄책감, 수치심, 두려움, 무력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여섯째는 “체제의 상실”입니다. 부모나 자녀가 가족을 떠날 때 체제의 상실이 일어납니다. 공동체에서 중요한 인물이 그 공동체를 떠나면 상실감에 젖게 됩니다.

아치볼드는『숨겨진 감정의 회복』에서 이처럼 다양한 상실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째는 물건의 분실, 자동차 사고, 카메라가 부서지거나 개가 죽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대상이 있는 구체적 상실입니다.
둘째는 사랑,야망,자존감, 통제력처럼 가치 있게 여기지만 구체적이지 않은 것들을 잃어버리는 추상적 상실입니다.
셋째는 상상으로 구체적이고 추상적인 상실을 모두 경험하는 가상적 상실로, 이는 실제로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상실과 우울증이 발생할 환경을 조성하며 구체적 상실만큼 사실적으로 상실을 느끼게 합니다.
넷째는 실제 상실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곧 상실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 때, 그 과정이 끝나기 전에는 슬픔이 가시지 않거나 우울을 경험하게 되는 위협적 상실입니다.

앤더슨과 미첼은 여러 요인으로 인한 상실을 네 가지 유형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피할 수 있는 상실과 피할 수 없는 상실”입니다.
둘째는 “일시적 상실과 영구적 상실”입니다.
셋째는 “실제적 상실과 상상속 상실”입니다.
넷째는 “예견한 상실과 예견하지 못한 상실”입니다. 상실 앞에 감정, 인지, 신체, 행동은 부정적 반응을 일으킵니다. 어떤 상실이든 상실은 부정적 반응으로부터 치유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중풍으로 9년간 마비된 몸으로 힘겹게 살아온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 직전에 남긴 유고작 『상실 수업』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겪는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 등의 다섯 단계를 상실의 아픔을 겪는 사람도 거쳐 간다고 말합니다. 상실을 당하면 첫단계는 부정하고 싶어합니다.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단계입니다. 그 다음은 의료관리 체제나, 삶, 하나님에 대해 분노합니다. 이 단계가 지나면 사랑한 이를 살리기 위해 타협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사랑한 이 대신 자신을 죽게 해달라고, 고통 없이 죽게 해달라고 타협을 한다고 합니다. 다음 단계로 절망하지만 절망은 밑에서부터 다시 새롭게 일으켜 세워주어 수용의 단계로 이끌어 간다고 합니다. 상실은 인생의 필수적 과정입니다. 인생의 여정 중에 상실의 아픔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상실이든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경험과 관련이 있고, 잃어버린 것이 물질이든 추억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상실은 대상상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려면 애도의 과정 속에서 영원한 위로와 만족의 대상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자식도, 재산도, 건강도 잃었던 욥은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라고 고백하며 모든 것을 잃은 현장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 상실의 아픔을 극복했습니다. 바울은 노년에 감옥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자신을 떠나 버렸을 때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라고 고백하며 상실의 아픔을 극복했습니다. 모든 것은 다 상실할 때가 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할 수 있을 때 상실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6.10.2

 

SNS 공유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