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견(忠犬) 이야기
전북 남원 오수에는 “충견비”가 있습니다. 주인이 술에 취하여 쓰러져 잠들었을 때 불이 났답니다. 주인이 불에 타서 죽을 것을 안 개는 자기 몸에 물을 적셔서 주인 곁에 뒹굴어 불이 오지 못하게 막다가 주인을 살리고 그 개는 지쳐서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유사한 충견 이야기는 동서고금에 있습니다. 경상도 봉양면 장대리에도 견비(犬碑)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침범했을 때 이곳에 살던 ‘정태을’의 처 ‘박씨’와 그의 두 딸이 미처 피난을 가지 못했답니다. 그들은 왜군에게 잡혀 욕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답니다. 왜군들이 달려들어 두 딸을 욕보이려 할 때 어머니는 두 딸을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죽음으로 정조를 지켰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들의 시신을 돌봐 주거나 장례를 치러 주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그 집에서 기르던 개가 까마귀 떼를 쫓으며 밤낮으로 사흘을 지키다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후대에 기념하기 위해 의구(義狗)의 비석을 만들어 주었답니다. 미
국에서 주인이 쓰러지자 전화를 걸어 주인을 살린 충견 이야기가 있고, 일본에는 자신을 아껴주던 주인이 죽은 후 10년 동안이나 시부야 역 앞에서 주인을 기다렸던 충견 하치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호주에서 위험에 처한 주인을 구하기 위해 독사와 싸우고 주인을 구한 충견 이야기가 있고, 영국에는 죽은 주인의 무덤에 14년간 매일 밤마다 찾아와 주인의 무덤을 지킨 양치기 개였던 보비이야기가 있습니다. 로마 사비누스의 개는 주인이 처형당해 강물에 던져지자 뛰어들어 사체를 끌어올리려다 기진하여 더불어 죽고 말았으며, 비극의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의 애견 디스비는 주인이 갇힌 감옥 둘레를 맴돌다가 인근 세느강에 몸을 던졌답니다. 우리 나라에도 은혜를 보답하는 충견이야기가 여러 곳에 있는데 경주에 전해오는 주인의 아이를 젖먹여 기른 개 이야기, 주인의 억울함을 풀어준 의로운 개 이야기, 경남 하동에는 살인범을 잡은 충견 이야기 등도 있습니다.
전남 순천에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한 마리의 개를 자식 삼아 키우며 살았답니다. 할머니는 백내장으로 눈이 잘 보이질 않았고 개를 키운지 3년째 되던 어느날, 할아버지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할머니만 있는 집의 개가 한 집에 들어가 밥그릇을 물어 놓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답니다. 그 집 아주머니는 밥을 퍼주고 혼자된 맹인 할머니가 걱정이 되어 그 집을 들여다보았답니다. 그런데 그 개가 아침에 자기가 준 밥그릇을 마루에 올려놓고선, 눈이 안 보이는 할머니의 소맷자락을 물고 손을 밥에 다가가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개의 뜻을 알고 절반의 밥을 먹고 개에게 미뤄주니까 그 때야 개가 자기 밥을 먹기 시작했답니다. 이 소문이 퍼져 동네 사람들은 깨끗한 새 그릇에 밥과 반찬을 고루 넣어 주었는데 그 때마다 할머니에게 밥을 가져다주고 남은 것을 자기가 먹더라는 것입니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풀을 맺어 받은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로 죽어서도 은혜를 잊지 않고 꼭 갚는다는 말입니다. 반대되는 말로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고맙게 여기지 않고 잊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은 결초보은하는 사람보다 배은망덕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만약 멍청하지 않다면 지독히 배은망덕한 존재이다. 나는 사람이 배은망덕한 짐승이라고 하는 것이 최고의 정의라고 믿는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그마치 430년간의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건짐을 받았지만 쉽게 은혜를 잊어 버렸습니다. 가룟 유다는 스승을 은 30냥에 팔았고, 롯은 은혜를 모르고 좋은 땅을 차지했으며 사울은 은혜를 모르고 다윗을 죽이려했습니다.
한 심리학자가 특이한 실험을 했습니다. 어떤 동네의 한 구역을 택해서 집집마다 매일 100달러씩 갖다놓은 후에 그 결과를 관찰한 것입니다. 실험 첫날 사람들은 그가 미친 사람이 아닌가 의아해하면서도 슬그머니 돈을 집어갔습니다. 둘째 주쯤 되자 현관 앞에 나와 돈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셋째 주쯤 되자 돈을 받는 것을 이상해 하지 않았고, 넷째 주가 되었을 때는 아주 당연한 것처럼 돈을 집어갔습니다. 실험기간인 한 달이 지나자 학자는 돈을 집 앞에 놓지 않고 그냥 동네를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매우 불쾌해 하며 “왜 오늘은 안 주고 가느냐?”고 따졌습니다. 은혜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를 안다는 것은 사람답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은혜를 알고, 제자가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는 것은 인간답게 사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데 첫 번째 요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사1:3)"라고 탄식했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116:12)”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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