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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과 배신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783 추천수:1 112.168.96.71
2016-05-15 08:57:26

충성과 배신

충북도청과 청주시는 1980년 우암산 자락에 삼일공원을 조성하면서 청주 출신으로 3.1운동 독립 선언서에 서명을 한 6인(손병희, 권동진, 권병덕, 신홍식, 신석구, 정춘수)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그 중 신석구와 정춘수는 목사이며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춘수 목사의 동상은 철거되고 빈 좌대만 남아 있습니다. 신선구 목사는 1907년 7월부터 고랑포교회에 출석하는데, 그곳에서 고향 친구인 정춘수 전도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신석구는 정춘수에게 이끌려 신학교를 다녔고 목사가 되어 민족지도자 33인 중 한 사람으로 3.1 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년 8개월 동안 수감되어 고난을 겪다가 1921년 출옥하였습니다.

정춘수 목사도 똑같이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지만 일제의 고문과 회유를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1935년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온 후에는 노골적으로 친일 노선을 걸어 일제말기 가장 대표적인 친일파 종교인이 되었습니다. 1940년 감리교 감독이 된 후에는 한국 교회를 일본교회 예속으로 추진하였고 1943년 소위 ‘혁신교단’이라는 친일교단을 조직하여 일제의 종교정책에 적극 순응하는 비굴한 종교 지도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감독을 통리자로, 목사를 교사로 바꾸고 감리교 연회를 해산하고 대신 교구를 만들었습니다. 총독부의 징병제도 실시에 동조하는 내용의 공시문을 발표하고, 일본어로 설교할 것과 구약전체와 신약의 계시록을 읽지 말 것, 찬송가에서도 전쟁이나 평화, 메시야나 재림에 관한 찬송을 삭제할 것 등을 지시하였습니다. 또한 국방헌금을 실시할 것과, 전국 34개 교회를 폐쇄하고 그 부동산을 매각하여 ‘감리교단 애국기(愛國機)’ 3대를 헌납할 것을 발표하였습니다. 친일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 목회자들은 제명, 출교 혹은 휴직, 퇴직 처분하였습니다. 이러한 친구의 변절을 지켜보다 못한 신석구는 1944년 여름, ‘소고기 두 근’을 들고 정춘수의 집을 찾아갔지만, 정춘수는 친구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정춘수 목사는 명예에 혈안이 되어 ‘유명세’를 타고 감리교회 제4대 감독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해방이후 ‘친일파’로 비난을 받고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구금되어 있을 때 감리교를 이탈하여 천주교로 개종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쓸쓸히 말년을 보내다가 1951년 고향에서 피난 중에 비참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한편 신석구 목사는 8.15해방을 용강경찰서에서 맞았고 해방 후 유사리 교회에 복귀하였지만 곧이어 들어온 공산주의 세력으로 인해 혹독한 고난의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교회를 지키겠다며 북쪽에 남았던 신석구는 1949년 '진남포 4.19사건'에 연루되었지만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10년형을 선고 받아 인민교화소에 수감되었습니다. 6.25 전쟁 때 유엔군과 국군에 의해서 10월 19일 교화소의 문이 열렸으나 그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교화소 안에서 10월 10일 총소리가 났다는 누군가의 증언으로 그즈음 순교한 것으로 짐작할 뿐입니다. 76세에 순교하기까지 회유와 위협 앞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끝까지 올곧게 하나님께 충성한 신선구 목사의 삶은 그렇게 마감되었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았던 친구이지만 그들의 길은 전혀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충성된 길을 걸었고 한 사람은 배신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사람들은 ‘변절자’ 혹은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합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라는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정신은 왕조시대의 핵심적 가치였습니다. 선죽교에서 철퇴를 맞고 세상을 떠나면서도 일백 번 고쳐죽어도 님 향한 일편단심은 변치 않겠다고 절개를 지킨 정몽주는 고려의 대표적인 충신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배신, 21세기를 사는 지혜”라는 책 제목처럼 배신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세술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테는 '신곡(神曲)'에서 배신자를 지옥 맨 밑바닥에 두었습니다. 배신자로 자기의 스승인 예수를 판 가룟 유다와 로마황제 줄리어스 시저를 암살한 그의 친구이던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넣어 놓았습니다. 단테는 배신은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죄악 중에서 가장 밉고, 더럽고, 비열한 최대의 죄악으로 본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것은 자기가 믿고 섬겼던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의로움보다 살아남는 것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는 세상이지만 충성은 박물관의 유물만은 아닙니다. 폴리갑이 화형을 당하기 전 로마의 권위자가 그에게 물었답니다. "어떠냐? 이제라도 네가 섬기는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번만 부인하는 것이. 그러면 너는 살아 나갈 수 있다." 천천히 그 로마인을 바라보던 폴리갑이 고개를 흔들었답니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강인하게 말했답니다. "아니오. 나를 저 불 속에 던지시오. 어떻게 내가 그 분을 부인할 수 있겠소. 오늘까지 그 분은 나를 한 번도 외면한 적이 없는데!"

성경은 말세가 되면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4)"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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