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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DNA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605 추천수:6 112.168.96.71
2016-05-01 08:07:17

자비 DNA

내전을 하고 있는 시리아에서 병원이 무차별 폭격을 당하여 1백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지난 5년 간 내전으로 사망자만 40만이 넘었다고 합니다. 인간이 사는 지구촌에는 오늘도 무자비한 테러와 숙청, 학살, 탄압, 폭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윌(Will)박사와 아리엘 듀란트(Ariel Durant) 박사에 의하면 지난 3421년 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은 기간은 불과 286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지구촌 역사에는 91.6%가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100년, 20세기 하나만을 놓고 보아도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서 약 9억이라고 하는 인구가 살상되었다고 합니다. 전쟁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와 같은 이념문제로 전쟁이 일어납니다. 십자군 전쟁과 같이 종교문제로 전쟁이 일어납니다. 1,2차 대전처럼 영토문제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장미 전쟁처럼 왕위 계승문제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현대전처럼 경제문제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자비를 잃은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이 무자비한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본래 자비심이 심겨져 있습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공감력과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슬퍼하는 사람을 보면 눈물이 나고,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 그들의 아픔을 덜어주고 싶으며, 마땅히 멸해야 할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마음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온 마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비로운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당연히 자비의 DNA가 심겨져 있고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6)”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요구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비로운 하나님을 하늘에 유배시키고, 마음에 심겨진 자비의 DNA를 악마의 먹잇감으로 던지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쳇바퀴를 돌리고 있습니다. 그 쳇바퀴를 통해 배출되는 것은 피와 눈물, 죽음뿐인데 말입니다. 자비의 DNA를 질식시키면 탐욕과 이기심 앞에 자비는 유배되고, 망각되고, 억압되고 무자비만 길거리에서 춤을 추게 됩니다. 자비의 부재로 인해 고통과 슬픔은 가중되고 기쁨과 즐거움은 피의 잔치가 될 뿐입니다.

어쩌면 경쟁 사회에서 자비는 사치품이 되어 가고 있고 바보취급당하고 심지어는 위험한 것으로 매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과 번영, 만족을 누리려면 자비의 DNA가 살아 흘러넘치게 해야 합니다. <영성 자비의 힘>의 저자 매튜 폭스는 자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자비는 연민이 아니라 축제이며 자비는 감상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고, 긍휼을 실천하는 것이며, 자비는 사적이고 이기적이고 자기도취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이며, 자비는 인간미 넘치는 인격주의인 것만이 아니라 넓이로는 우주적인 것이며 에너지 관점에서는 신적이다. 또한 자비는 금욕적인 초탈이나 추상적인 명상이 아니라 열정적인 관심이며 자비는 지성을 반대하지 않고 만물의 상호연결을 알고 이해하려고 하며, 자비는 도덕적인 계명이 아니라 가장 충만한 인간 에너지와 신적인 에너지의 흐름이자 흘러넘침이며, 자비는 이타주의가 아니라 자기-사랑과 타자-사랑이 하나된 것이다. 자비는 종교가 아니라 삶의 길, 즉 영성이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제사장도 외면하고 레위인도 외면하였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는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겼으며(눅10:33)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34)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35)라고 말하며 끝까지 책임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자비를 베푼 자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37). 자비의 DNA가 흘러 넘쳐야 세상은 살맛나고 자신도 살고 이웃도 살아납니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 상인』에서 재판관 포셔는 잔인한 장사꾼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호소하며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자비의 본질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땅위로 내리는 부드러운 비와 같습니다. 이중의 축복인데 베푸는 사람과 받는 이의 축복입니다.”

뉴욕시장을 세 번 지낸 라과디아(LaGuardia)가 판사로 있을 때 가난 때문에 빵 한 덩어리를 처음 훔친 범인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였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자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내리고, 재판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50센트를 내게 했답니다. 그래서 거둔 돈이 57달러 50센트였고 그는 그 돈으로 벌금을 내고 47달러 50센트를 손에 쥐어주었답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마12:7)”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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