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중독자들
신문에 초등생 아들을 살해한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서울경찰청이 최근 발표한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논문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3년 3월까지 발생한 230건의 자식 살해 범죄 중 96.52%가 친부모에 의해 저질러졌습니다.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동물성이 지배해 버린 결과입니다. 흔히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말할 때 이성의 존재 여부를 말합니다. 이성의 반대 개념은 본능입니다. 육체 덩어리는 동물이나 인간이나 같지만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오직 인간만이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본능을 넘어서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물에 대하여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최형선 저)>라는 책에 의하면 일부 원숭이들은 유아살해를 한다고 합니다. 짖는원숭이의 경우, 유아 사망의 40퍼센트 이상이 수컷의 유아살해 때문이라고 합니다. 암컷이 새끼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새끼들도 죽지 않으려고 어미에게 바짝 붙어 발버둥치지만 힘센 우두머리 수컷에 죽임을 당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권력을 쟁취한 새 우두머리 수컷은 이전 우두머리 수컷의 새끼들을 모두 죽임으로써 수유 중인 암컷들을 임신 가능 상태로 유도해 제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런 우두머리 원숭이의 폭력 앞에 권력에 밀린 수컷이나 힘에 밀린 암컷은 우두머리의 처분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에 밀린 수컷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우두머리 수컷이 늙어 힘이 빠지면 권력을 잡고, 자신도 선배 우두머리처럼 또다시 유아살해를 되풀이 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DNA를 확산시키기 위해 동물의 권력욕은 대단합니다. 하이에나도, 사자도, 성충이 되어 하루 이틀 사는 하루살이도, 사회성이 발달된 벌도, 개미도 치열한 권력다툼을 합니다. <인간과 동물(최재천 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트럼핏나무에서 사는 아즈텍개미는 서로 완전히 종이 달라도 여왕들이 동맹을 맺어 적들을 물리치지만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는 한 마리 여왕만이 최후의 여왕으로 남는다고 합니다. 권력 쟁취를 위해 적들끼리도 손을 잡고 여왕개미는 자신의 몸에 축적되어 있는 영양분으로 새끼들을 먹이지만 먹이가 떨어질 때는 여왕들의 눈빛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몸을 녹여 함께 자식을 기르던 그 사랑스런 동료가 이제는 음식을 축내는 미운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왕이 한 마리 남을 때까지 서로 물고 뜯는 혈투를 벌여 죽은 시체를 먹고, 머리는 먹을 수 없으니까 버린다고 합니다. 오늘날 정치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유전학상으로 인간과 유인원의 차이는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1%의 차이는 엄청난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과 동물의 창조의 재료는 흙으로 똑같으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창2:7). 인간은 동물과 달리 영혼과 이성, 양심, 도덕성, 자유의지, 선의지 등이 있는 것입니다. 배고픈 고양이는 주인이 없는 생선가게에서 양껏 포식하지만 인간은 주인 없는 빵가게에서 배터지라 먹고 있지 않습니다. 발정난 개는 힘없는 암컷을 힘으로 제압하며 짝짓기를 하지만 인간은 성욕을 참지 못한다고 대낮 길가에서 이성을 겁탈하지 않습니다. 개는 발로 차며 침 뱉은 스테이크를 주어도 먹지만 순교자는 모진 고문 앞에서도 자신의 신앙의 지조를 지킵니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자신의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으면서 자신의 모든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이 책임지는 삶을 사는 영적 존재이지 DNA에 따라 결정된 ‘똥 만드는 기계’가 아닙니다.
언론에서 권력중독자들의 모습을 봅니다. 권력 중독자들은 예수님 당시 아내와 자식까지도 죽인 헤롯처럼 이성을 잃습니다. 데이비드 L. 와이너는 그의 책 [권력중독자]에서 권력중독자는 "외면적으로는 순진하고 따뜻한 성품"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를 보통사람과 구분시켜주는 특성은 "좀 더 높은 수준의 지배력과 지위를 얻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종종 도덕이나 윤리, 예의, 상식마저 무시한 채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지배력이 강한 권력중독자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과대 망상적 신념"을 가지고 있고 "역지사지"나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이입" 등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어떤 잘못에 대해서든지 그 책임을 다른 이에게 뒤집어씌울 방도를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고 합니다. 권력중독자는 독특한 견해 내지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도전받거나 침범당할 경우 현실에 대해 맹목적이고 사나우며 포악한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권력 욕구가 극단적으로 높은 상태의 사람은 강렬한 욕망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심각한 사람들은 으름장을 놓고 무례한 태도를 취하거나 괴로움을 주는 것을 낙으로 삼고 아돌프 히틀러, 폴 포트, 요시프 스탈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등처럼 자신의 길을 가로막는 대상은 누구든 무엇이든 무자비하게 제거해버린다고 합니다.
정치인들도 지배욕이 강한 사람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보다는 오직 다음 선거에만 집착합니다. 정권을 잡기 위한 갖가지 이슈를 만들어 '밀어내기(push)'와 '끌어당기기(pull)'를 통해 편을 가르고 차기 선거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 불리기에 몰입합니다. 모든 것을 권력 회득에 초점을 맞추고 패거리나 시정잡배들처럼 옳고 그름은 적이냐 동지냐에 따라 결정되고 사고는 흑백 논리의 감옥에 갇혀 버리게 됩니다. 순수를 잃어버리고 늘 저의가 무엇인지 추측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여 자기 합리화를 꾀합니다. 인간의 권력 게임은 동물의 권력 게임처럼 자신의 DNA를 확장하고 타인의 DNA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라고 말씀했습니다. 인간의 권력은 섬김의 도구가 될 때 세상은 아름답고 권력은 가치가 있습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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