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는 사람들(1) 백정 박성춘
한국인 최초의 외과의사는 박서양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백정 박성춘이었습니다. 조선시대 백정은 인구조사에서도 제외되었고, 거주지역도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양반집 아이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했고, 아무리 나이 많아도 양반의 어린아이 앞에서 눈도 들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름도 없었고, 일반인 집에 용무가 있어서 가면 마당에서 꿇어 앉아 말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상투를 올릴 수도 없고, 망건이나 갓을 쓰는 것도 금지당하였습니다. 박성춘은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백정마을에서 백정의 딸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봉출인데 그가 바로 박서양입니다. 상스러운 태양이란 뜻에서 학교에서 서양(瑞陽)이라고 지어주었답니다. 의사 박서양의 아버지 백정 박성춘은 허가 받지 않는 소를 몰래 잡아 주었다는 이유로 군관과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는데 그 때 그의 부인이 결사적으로 막으려다 그들이 휘두르는 육모 방망이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둘째 아들까지 병으로 사망하자, 박성춘은 큰아들 봉출이만은 천추의 한이 되었던 백정으로서 멸시천대를 면하게 하기 위해서 공부를 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 사무엘 무어(모삼열)가 세운 곤당골 교회 안에 있는 무료 학당에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1894년, 조선 땅에 청‧일 전쟁이 발발하였고 곳곳에 콜레라가 창궐하였습니다. 이때 박성춘도 전염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병을 선교사에게 알렸고 당시 고종황제의 주치의였던 에비슨 선교사가 백정마을을 찾아가 그의 전염병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임금의 몸을 만진 어의가 인간취급 받지 못하는 백정에서 손을 대어 치료하는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의 은혜를 갚기 위해 박성춘과 가족들 모두는 곤당골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교인은 20여 명 정도였는데, 정부 관리들이 많이 출석하는 양반교회였습니다. 세례받은 박성춘의 신분이 백정이라는 사실은 안 양반 교인 여섯 명이 백성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교회 출석을 중단해 버렸습니다. 교회 출석 거부를 통해 백정 박성춘을 교회에 나오지 못하게 무어에게 압력을 가한 것입니다. 당시 양반교인들은 교회에 나와 앉을 때 종들이 호피를 깔아 주고 나가면 그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릴 정도로 신분을 철폐한 예수님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백인들은 예배드리고 흑인들은 청소하는 교회와 같았습니다. 이 때 이주사라는 사람이 양반들은 앞자리에 앉히고 백정들은 뒤에 따로 앉히면 나오게 해보겠다고 중재했습니다. 조선에 와서 갖은 박해를 다 무릅쓰고 조선 관리들을 전도해 세운 교회가 백정 한 사람 때문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 무어 목사는 심각한 갈등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어 목사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며 그들을 설득하였습니다. 결국 양반들은 교회를 떠나 순수 양반교회인 ‘홍문수골교회’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백정의 편에 서서 자신들을 위해 헌신하는 무어 목사에게 감동을 받은 박성춘은 천민들을 찾아가 전도하여 교회는 날로 부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양반교회인 홍문수골 교회는 부흥이 되지 않았고 교회에 불이 났습니다. 이 때 백정 교회는 양반 교회를 도와주었고 그 일을 계기로 두 교회는 3년 만에 하나로 합쳐져 인사동의 승동 교회로 탄생하였습니다. 박성춘은 1911년 승동교회 초대 장로가 되었습니다. 백정출신 장로가 세워지자 양반교인들이 또 다시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자리를 양반석과 일반석을 구분해주고 백정출신을 장로로 세운 것을 무효화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하나님 안에서는 양반 상놈 없다고 단호하게 거부하였습니다. 그 후 선조 임금의 11대손 왕손인 이재형이 승동교회에서 1914년에 장로가 되어 한 당회에서 백정과 왕손이 같이 교회를 섬기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장로가 된 박성춘은 당시 내각총서로 있던 유길준에게 ‘백정차별금지법’을 만들어 백정들도 갓과 망건을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장문의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결국 박성춘은 조선 500년 동안 신분의 차이로 쓰지 못하던 '망건과 갓'을 제일 먼저 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갓을 쓰던 날 너무 기뻐서 잠잘 때도 갓을 벗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 개신교 선교 역사」를 쓴 마르다 허틀리 여사는 조선의 백정의 해방을 ‘세계를 뒤집어 놓은 사건’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백정의 아들 박서양은 예수 믿고 세브란스의학교에서 에비슨에게 의학을 배워 제1회 졸업생되어 간도에 병원을 세우고 민족교육기관인 숭신학교를 세워 교장이 되었습니다.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국민회에 적극참여 하였고 군사령부의 유일한 군의로서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해 2008년 광복절에 ‘대한민국건국포장’을 받았습니다. 예수 믿으면 이런 가문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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