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의 담 넘기
오해는 심각한 결과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1990년 6월 2일 세모자 피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수사팀은 전형적인 강도살인 사건으로 추측했지만 사건을 조사한 결과 어머니가 자녀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자살한 사건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내는 성실한 가정주부로 자녀들의 교육에도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답니다. 부부는 둘 다 고학력 소유자로 집안배경도 좋았고 경제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부터 극심한 불화를 겪게 되었답니다. 이유는 아들의 혈액형 때문이었답니다. 부부의 혈액형은 둘 다 O형인데 아들의 혈액형이 A형으로 나왔답니다. 남편은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이 일로 부부는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고 합니다. 남편은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아내를 본의 아니게 괴롭혔고, 아내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믿어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아내는 우울증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이 없었는데도 남편의 의심을 받으며 괴로워하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남편의 혈액형은 O형이 아닌 A형으로 밝혀졌답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실시한 혈액판정 결과에 따라 여태껏 자신의 혈액형을 O형으로 잘못 알고 있었답니다. 집 떠난 아들을 기다리다 여관에 찾아 온 말쑥한 청년을 자신의 아들인 줄 모르고 살해하고 모녀도 함께 죽는 카뮈의 “오해”와 같은 사건이 실제 삶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오해는 크고 작은 수많은 비극들을 만들어 냅니다.
국가 간 전쟁을 일으키게 하고, 행복한 부부를 이혼하게도 하고, 멀쩡한 직장을 그만 두게 하기도 하며, 다정한 연인을 이별하게도 하고, 잘 하던 일을 포기하게도 합니다. 인간 생활에서 끊임없이 다가오는 오해의 담을 잘 넘어가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해(誤解)라는 말의 사전적 뜻은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뜻을 잘못 앎. 또는 그런 해석이나 이해.”입니다. 건강한 인간관계는 이해의 폭을 넓히고 오해의 폭을 줄이는데 있습니다. 화자는 AB의 의미를 전달하려 했으나 청자가 그것을 BC로 받아들였으면, 여기서 B에 해당하는 것이 '이해(understanding)'된 부분이고 C에 해당하는 것이 '오해(misunderstanding)'된 부분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B의 폭이 넓어야 합니다.
구조적인 언어의 병 때문에 화자와 청자가 의미를 정확하게 공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어에는 외연과 내포가 있습니다. 만연필과 같이 외연과 내포가 동일할 때는 오해의 소지가 적지만 외연과 내포가 일치하지 않을 때는 쉽게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외연”은 같지만 그 속에 포함된 “내포”는 다양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군가 상대에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청자는 남녀 간의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형제간의 사랑으로, 혹은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형제가 한 자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자매가 이성간의 사랑으로 받아들이면 오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는 것은 화자가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수신자의 머릿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중심적 편향이 있기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이미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의해 해석합니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의해 일단 판단하고 그 판단에 의해 후속 정보를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오해의 늪은 더 깊어집니다.
그러므로 대인관계에 있어 오해의 늪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화자가 애매한 입장을 취하지 말고 최대한 정확히 전달하여야 합니다. 청자는 판단하고 보고 듣기 보다는 다 듣고 본 후 판단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역사상 가장 많은 오해를 받으신 분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오해를 파괴적으로 풀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도 수없이 오해를 받았습니다. 요한복음에 유대인들에게 7차례(2:19-12; 6:51-53; 7:33-36; 8:21-22, 31-35, 51-53, 56-58), 제자들에게 6차례(4:31-34; 11:11-15; 13:36-38; 14:4-6, 7-9; 16:16-19), 군중들에게 5차례(3:3-5; 4:10-15; 6:32-35; 11:23-25; 12:32-34) 오해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가족으로 부터도 미쳤다고 오해를 받았습니다. 바울도 수많은 오해를 받았습니다. 때로는 여성 차별주의자로, 반유대주의자로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오해를 받았고, 모세도 수많은 오해를 받았으며 요셉은 많은 오해를 받았습니다. 오해받지 않고 살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위인들은 오해 앞에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오해받지 않도록 충분한 설명도 필요하지만 오해하기로 작심하고 덤비는 사람 앞에서는 설명 그 자체가 오해가 될 것입니다. 그럴 때는 구차한 변명으로 오해의 늪을 더 파거나 파괴적으로 이해시키려 하지 말고 사명 붙들고 묵묵히 오해의 담을 넘어가야 합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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