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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계21:1-7)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0636 추천수:8 112.168.96.71
2015-06-22 08:42:01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계21:1-7

 

지난주에 어느 장로님을 만나 식사를 하는데 장로님이 목사님들은 교회에서는 신령하신데 왜 노회만 오시면 예비군복 입혀 놓은 것처럼 달라져 싸우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전혀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정치하는 일부 목사님들은 노회를 하는 것을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서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싸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정말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예수님을 믿고 살았답니다. 돌아가셔서 눈을 떠보니까 정말 천국에 온 것입니다. 천국에 가니까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일어서서 환영을 하시더랍니다. 그런데 집사님들을 일어서서 반갑게 환영하시는 예수님께서 목사님이 들어가니까 보좌에 재빨리 앉아서 “박 목사 왔는가?”라고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서운한 박목사님이 “왜 저기 있는 집사님들은 일어서서 환영하면서 교회 개척하여 고생 고생 생고생하다 온 저는 앉아서 맞이해 줍니까?”라고 항의했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너는 내가 일어나면 내 자리마저 네가 차지할 것이 아니냐?”라고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까? 이 사실만 확실히 믿고 살도 우리의 삶의 질은 달라집니다. 차원이 달라집니다. 기준이 달라집니다. 신문을 보니까 미국의 무신론 단체가 "지옥은 없으니 삶을 즐겨요"라는 현수막 광고를 내 걸고 무신론자 회원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부스를 마련해 놓고 "안심하세요 : 지옥은 없습니다. 천국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즐기세요."라는 현수막을 처 놓고 음식을 제공하며 회원을 모집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천국과 지옥이 없을까요? 노아 시대 때도 홍수가 없다고 먹고 마시고 즐기면 살았지만 결국 대홍수가 왔고 노아의 가족만 제외하고 모두 전멸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분명하게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첫 번 설교가 무엇입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로 가르치신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마4:2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 5:3)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 5:10)” 복음서를 보면 많은 내용이 천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 누룩 비유나, 감추인 보화 비유, 포도원 품꾼 비유나, 혼인 잔치 비유나 다 천국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눅12:5)”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7)”

천국과 지옥은 동화의 세계, 종교의 세계, 철학의 세계가 아니라 실존하는 세계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지옥이라는 말이 22번 나오는데 예수님이 14번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은 사기꾼이거나 정신병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해 주신 말씀의 주제가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국은 죽음도 고통도 눈물도 슬픔도 없는 장소이지만 지옥, 음부, 하데스는 고통의 세계, 불타는 세계입니다. 지옥은 단 한 방울의 물의 자비도 끊어진 장소입니다. 지옥은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장소입니다. 오늘 밤 돌아가셔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이 믿고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 아무리 세상이 힘들어도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1,2)

로마 시대 때 기독교인들은 10번에 걸쳐 큰 박해를 받았습니다. 첫 번째 박해를 한 황제는 네로 황제였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불태워 황제의 정원을 밝혔다고 할 정도로 잔인하게 신앙인을 처형하였습니다. 이 때 베드로 사도도 바울 사도도 순교를 하였습니다. 네로에 이어 두 번째 기독교인들은 잔인하게 박해한 황제는 90년부터 96년까지 핍박을 한 도미티안 황제입니다. 그는 정권 말기에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자신을 "주와 신"(Dominus et Deus)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의로운 신앙인은 황제 숭배를 반대하였고 황제 숭배를 하지 않는 신앙인을 잔인하게 처형하였습니다. 이 때 로마의 클레멘트가 순교하였고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고 합니다. 이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어두운 밤,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신음소리와 잠 못 이루는 맹수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공포심을 자아내 감옥은 마치 지옥을 연상시켰을 것입니다. 메르스 공포는 비교할 수 없는 공포입니다. 사도 요한의 친형인 야고보는 제자 중 제일 먼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과거 자신은 예수님께서 왕국을 건설하면 적어도 국무총리나 내무부 장관 정도는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형은 가장 먼저 순교를 하였고 같이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끔찍한 순교의 장면을 보기도 하고 들어 알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권력욕도 있었던 사람입니다. 출세하여 잘 살고 싶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도 치맛바람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혁명을 일으켜 왕이 되면 자신의 아들 요한과 야고보가 좌의정 우의정을 했으면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형은 젊은 나이에 비참하게 순교를 당하였고 제자들도 다 순교를 당하고 이제 마지막 자신만 살아남았습니다. 혁명으로 새로운 세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이 티투스에 의해 멸망당했고 매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로 섬긴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끔찍한 일이 눈앞에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몹시 괴롭고 인간적인 번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모진 고난과 아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하게 목격했고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을 분명히 들었기 때문에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데 수많은 신앙인이 신음하며 사자 밥이 되고 십자가에 달려 화형을 당하는데 예수님은 오시지도 않고 기적은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로마인들은 콜롯세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피흘리며 쓰러지는 잔인한 장면을 즐기기 위해 모였습니다. 팡파레가 울리자 관중들이 조용해지면서 도미티안 황제가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군중들은 환호를 보냈고 도미티안 황제는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자기 자리에 앉습니다. 잔인한 격투기가 벌어지고 경기가 끝난 다음에는 감금되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쓴 채로 경기장에 밀려 나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한데 뭉쳐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그것도 잠시일 뿐 곧이어 쇠문이 열리면서 여러 마리의 굶주린 사자들이 뛰쳐 나와 사냥감을 발견하고 공격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순식간에 뿔뿔히 흩어지고 비명소리, 살려달라는 아우성 소리와 함께 하나 둘씩 사라져 갑니다. 감옥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신앙인들을 종일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이 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땅이 갈라지며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이면 신앙인들이 통쾌할텐데 아무런 징조도 없습니다.

이 때 같이 감옥에 갇혀 있던 사도 요한은 그들을 격려하며 용기를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에 많도다"라고 했습니다. "두려워 맙시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이 있습니다." 밤에는 화형식이 이루어졌습니다. 경기장 안에 횃불을 밝혀 놓고 곳곳에 십자가를 세워 놓고 그 아래 장작을 쌓 놓았습니다. 형리들은 그리스도인들 수십 명을 십자가에 묶은 뒤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렀습니다. 로마인들은 조롱합니다. "너희들이 세상의 빛이냐? 더 빛나게 해주랴?" 하나님은 사도 요한을 그곳에서 순교를 당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도미티안은 요한을 밧모섬에 유배시켰습니다. 언제 다시 불려가 화형을 당하거나 사자의 밥이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도미티안의 박해가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신앙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집을 빼앗기고 가족과 이별하고 유리하다가 붙들려 화형을 당하는 것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아마 요한은 밧모섬에서 울부짖으며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 때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요한에게 나타났습니다. 계시록을 통해 하나님의 세계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최고 절정의 순간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1절과 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은 그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고 있습니다. 고문당하고 고통당하고 늘 두려워하며 울며 슬퍼하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나라는 이 땅에서 주님 때문에 흘린 눈물을 닦아 주시는 곳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죽음도, 다시는 슬픔도 우는 것도 아픈 것도 절대로 없는 세상입니다.

이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언젠가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천국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천국을 바라볼 때 요한은 자신이 결박된 유배지의 참혹한 정치적 현실을 보며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굶주림 가운데 고난 받는 경제적 궁핍을 보며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였는데 왜 이런 고난과 역경을 만나야 한다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살면 이 땅에서의 삶의 질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현실의 어려움과 힘겨운 환경을 바라보며 미래를 부정적으로 단정하며 절망하지 마시고 아무리 어려운 현실과 환경일지라도 믿음의 눈으로 나에게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희망차게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초가삼간도 나는 만족하네 값진 재물도 내겐 없지만 앞으로 나가 하늘나라에 가면 순 황금길을 거닐겠네. 저 하늘 너머 주 계시는 본향 영원한 기쁨 넘치는 그곳 언젠가 내가 빛난 천국 이르러 주님과 함께 거닐겠네.”

 

우리는 아무리 어두운 현실일지라도 현실을 바라볼 때 소망을 이루는 재료로 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소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인에게는 죽음까지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 있습니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적 현실, 힘겨운 경제적 어려움, 풀리지 않는 가족 문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내 인생에 닥쳐오고, 어찌할 수 없는 건강상의 한계 상황이 있다할지라도 나를 괴롭히는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며 희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요한은 그 어려운 박해 가운데서도 이런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않고 위로 받으면 소망 가운데 일어섰습니다. 악이 없는 세상, 구원받은 성도들의 공동체 새 예루살렘(9,10). 사망이나 애통함 아픈 것 없는 세상(4) 죄와 악이 없으며(8)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는(3) 세상을 바라보고 희망을 얻었습니다.

 

2.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3).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을 본 요한은 이제 무엇을 합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무엇을 듣습니까? 보좌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요한은 그 고난 가운데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시고, 자신들을 외면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10년이 가도 20년이 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고난만 더 주어지면 실존적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필수적인 요소 5가지를 다 잃어버리고 질병가운데 고통당하는 욥에게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라고 말한 욥의 아내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말씀하시는 말씀이 오늘 저와 성도님에게 주신 말씀이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는 음성을 듣고 힘을 얻고 용기 가지시길 바랍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요한은 이제 나이 늙었습니다. 홀로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가족도 같이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도 같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노년에 감옥에 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다 떠났지만 하나님 만은 바울과 함께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후 4:17-18)”

우리가 천국에 이르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 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 시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 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미친 것 전혀 없네”

 

영원히 함께 해 주십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병들었을 때나 건강할 때,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 언제든지 우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요셉이 비록 형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결국 인생이 형통하였습니다. 요셉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였습니다. 노예로 팔려 가도 그것에 함께 하였고 감옥에 갇혀도 그 곳에 함께 하셨으며 총리가 될 때도 하나님이 함께 였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창 39:21)"

힘이 없는 에스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힘을 얻었습니다. 민족을 개혁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시면 어려운 가운데서도 일이 잘 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세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만 4개월이 걸리는(스 7: 9) 먼 길이었습니다. 둘째는 길가에는 대적과 매복한 자가 많은 위험한 길이었습니다.(스 8: 31), 셋째는 경호원들이 따르지 않는 길이었습니다(스 8 : 22). 그런데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에스라는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와 함께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그 무수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벽을 재건합니다. 우리의 앞길에 시험하는 자, 매복하는 자, 우리의 신앙의 길을 방해하는 어떤 일이 나타난다 하여도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말씀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우리는 홀로 가는 것 같지만 우리 홀로 가는 세월이 아닙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6)"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무엇을 합니까?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하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몸소 닦아 주십니다.” 눈물은 고통과 죽음, 슬픔과 불행의 상징입니다. 주님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까? 언젠가는 그 눈물 다 닦아 주실 날이 옵니다. 자녀를 위해 흘리는 눈물, 교회를 위해 흘리는 눈물, 전도를 위해 흘리는 눈물, 남편을 위해 흘리는 눈물, 주님을 위해 흘리는 눈물 언젠가를 다 닦아 줄 날이 옵니다. 아무리 힘겨운 일이 있다고 해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무엇을 합니까? 7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게도 동일한 말씀을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3.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우리 주님께서 새롭게 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살아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들려주신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무엇을 지시하십니까? 5절을 보십시오.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록하라는 것입니까?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모두 다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새롭게 합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은 인간의 노력이나 제도개혁, 혁명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미티아누스가 영구히 집권하며 괴롭힐 것같지만 그 나라는 망하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새로운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6절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역사를 다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루었다(게고난)”은 복수 동사로서 문자적으로 ‘그것들이 성취되어 왔다’라는 의미입니다. 누가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까? 하나님입니다. ‘알파와 처음’은 하나님께서 창조자로서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신 것을 말씀합니다. ‘오메가와 나중’은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셔서 온전히 새롭게 하실 분임을 말씀합니다. 인간이 역사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간뿐만 아니라 모든 것의 원천이며 근원이시며 정한 모든 것의 목적을 마지막까지 완전히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믿습니까?

인류의 구속사도 하나님이 이루어 가십니다. 세속사도 인간이 이루어 가는 것같이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이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의 세계는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옵니다. 그 곳은 죄가 없는 곳이었고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 속에서 교류하던 곳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순종하면서 살기만 하면 그러한 복된 삶을 영원히 살 수 있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3장에 죄가 들어 왔습니다. 인간의 반역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존하기 보다는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힘이 통치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그 사탄 마귀를 머리를 상하게 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여자의 후손입니다. “제라”라는 말입니다. '자손, 후손,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여기는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유일한 후손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명백하게 그 후손이 예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3:15-16)”

 

역사의 중심 주제는 구속사의 흐름 속에 있고 이 일을 하나님 스스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단지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 손에 붙들려 쓰임받을 따름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이 땅의 역사의 마지막을 그리면서 계시록에서는 이 땅에 들어온 사탄이 20장에서 결박되고 21장 22장에 사탄도 죄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 일을 누가 이룬다는 것입니까?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인간이 대단한 것같고 역사의 중심인물 같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미티안이 대단한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같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내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가 쓰임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받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7절에 이기는 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계시록 2장 3장에 잘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들은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으며(2:7)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고(2:11) 감추었던 만나와 힌 돌을 받으며(2:17)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받고(2:26) 그 이름이 생명책에 흐리지 않으며(3:5)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며(3:12) 그리스도의 보좌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게 됩니다(3:21) 이것이 값없는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라고 고백합니다.

 

자꾸 자기를 내세우며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이루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과정만 보며 나뿐만 아니라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만나 결혼한 부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님이 두 분 다 그 교회 장로님이셨답니다. 이 두 분이 들 교회에 갔다 오면 다른 사람들의 흠을 보았답니다. 목사님이 어떻고 권사님이 어떻고 비평가가 되었답니다. 이 부부가 어릴 때부터 이런 모습을 보고 살아서 자신들은 그렇게 믿음생활 하지 않아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답니다. 남편은 사장이고 아내도 작은 기업을 하였답니다. 집안 식구들이 기독교인이까 교회에 나가지 않을 수는 없고 천국에 대한 절박함이나 확신도 없이 교회에 다녔답니다. 아버지를 닮아 서로 잘났다고 서로를 비판했답니다. 교회 다니면서 장로 딸이 장로 아들이 그렇게 사느냐고 똑바로 살라고 서로 책망을 했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아내가 먼저 죽고 다음에 남편에 죽었답니다. 신앙적인 삶은 볼 품 없었지만 예수는 믿어 천국에 갔답니다. 천국에 도착하자 베드로가 물었답니다. 세 사람이 동시에 왔답니다. " 자네는 외도를 하고 마누라를 속인 적 있는가? " " 저는 단 한 번도 마누라에게 부끄러운 짓 안했답니다." " 아주 모범생이였군..." 베드로가 최 고급 승용차를 내 주었답니다. 두 번째 사람에게 물어 보니까 “전 딱 한번 뿐입니다." " 아주 마음에 드는군..." 중형차를 내어 주었답니다. 자신에게 물었답니다. " 자네는 외도를 하고 마누라를 속인 적 있는가 ? " 거짓말 할 수 없어 " 일생동안 딱 두 번 밖에 없었습니다요." " 그런 대로 괜찮군..." 천국에서 타고 다닐 소형차 한 대를 주었답니다. 천국의 교차로에서 빨간 불이 들어와 차들이 섰는데 마침 소형차, 고급차, 중형차가 나란히 멈췄는데 소형차 타고 있는 사람이 엉엉 울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아니 선생은 왜 우십니까 ?"라고 물으니 “억울해서 그래요, 방금 지나 오다가 마누라를 만났는데 자전거를 타고 있지 뭡니까....?”

하나님이 이루어 가십니다. 너무 인간끼리 의의 싸움을 하면서 이미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우리가 교회를 지옥으로 만들고 지옥같은 교회 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라고 했습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다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보기 싫은 사람이 있다할 지라도 필요하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다 새롭게 하십니다.

어느 시골교회 나 잘난 권사님이 있었다고 합니다. 새벽기도회도 잘 나오고, 수요 기도회, 주일 예배, 저녁 예배 빠지지 않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을 보면 새벽기도회를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어떤 권사님은 주일 대예배만 참석하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뭐 저같은 사람이 장로고 권사냐고 불평하며 한 평생 살았는데 그 권사님이 죽어 하나님께 갔답니다. 그런데 천국 입구에 엄청나게 많은 시계가 걸려 있고 그 시계 밑에는 사람들의 명패가 일일이 붙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그 이유를 물었답니다. "여긴 왠 시계가 이렇게 많이 걸려 있죠?" 그러자 베드로가 "여기에 걸려있는 시계는 자신이 세상에서 살 때 나쁜 일을 한 만큼 시계 바늘이 빠르게 돌고 있느니라."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시계를 보았답니다. 빨리 돌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장로님의 시계를 보았답니다. 더 빨리 돌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교인들의 시계를 보았답니다. 다 빨리 돌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이 인간들이 그렇게 살더니 여기 와 보니 증명이 되는 군’ 자신의 시계를 찾아보았답니다. 그런데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물어 보았답니다. "전 나쁜 일을 하나도 안 해서 내 시계가 없나보죠?" 그러자 베드로가 하는 말이 "당신의 시계는 너무 빨리 돌고 있어서 모세 할아버지가 지금 선풍기로 쓰고 있소!"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을 보십시오. 8절을 보십시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핍박을 두려워하는 자들(마8:26; 막4:40), 복음이나 그리스도의 초청을 거부하는 자들(마7:21-27), 세상의 더러운 것에 감염된 흉악한 자들(롬2:22), 살인자들, 행음하는 자들, 술객들, 우상숭배자들, 거짓말 하는 자들은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결국 이들은 믿지 않고 우상숭배하는 자들입니다. 만약 이런 상태에 있다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1:18)"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 43:25)"

 

인생을 하나님이 이루시는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살인한 모세에 머물면 안됩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아브라함에 머물면 안됩니다. 간음하고 살인한 다윗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그들을 사용하여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내가 못한다고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이 새롭게 하신다는 사실을 기대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5.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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