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시는 하나님
사도행전23:12-30
금요일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과에 눈을 치료받기 위해 갔습니다. 치료받기 위해 온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습니다. 병원 가보니까 눈 아픈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안관에 갔으니 생각해 보니 참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한 눈을 가지고 살았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눈곱이 계속 끼는데 그냥 지나면 났겠지 했는데 계속 눈곱이 끼고 불편하여 안과에 갔습니다. 턱을 위에 올려놓고 검사하는데 눈을 크게 뜨라고 했습니다. 제 눈이 작아서 크게 떠도 그게 그것입니다. 아무리 크게 떠도 의사가 잘 안 보이는 지 더 크게 뜨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더 크게 떴는데 나중에는 간호사를 시켜 저의 눈을 강제로 크게 만들어 진료를 했습니다. 아마 제 눈이 작기는 작은 가 봅니다. 저같이 눈이 작아도 하나님이 쓰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혹시 오늘 예배드리면서 외모 때문에 열등감의 감옥에 갇혀 있는 분이 있습니까? 가난하다고 절망하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실력이 없다고, 능력이 없다고 포기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반복되는 실패로 의욕 상실의 감옥에 갇혀 있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장애가 있다고, 질병이 있다고 원망하고 낙심한 분 있습니까? 혹 나는 별수 없다고 포기하고 낙심한 성도님 계시지 않습니까? 아무리 부족해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잠깐 있다 가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으로 역사를 주관하시면 이끌어 가십니다.
우상장사의 아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한 시대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갔습니다. 기생의 아들 입다, 기생 라합, 장애인 에후, 성중독자 바람둥이 삼손, 겁쟁이 기드온, 농사꾼 아모스, 소모는 엘리사, 당시 사람 취급받지 못한 주부 드보라도, 남편과 두 아들을 먼저 보낸 한 맺힌 나오미, 평생 목동으로 살아야 할 다윗, 여러번 실패하고 저주까지 한 어부 베드로도 하나님이 한 시대 선택하여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이루었습니다. 태생적으로 어머니 넷을 두고 욕심이 많아 사기쳤던 야곱도 하나님이 버리지 않고 그를 통하여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게 하였습니다. 역사상에 이름을 남긴 링컨, 헬렌켈러, 칼빈, 루터, 처칠, 워싱턴 모두 다 좋은 가정환경, 좋은 조건을 갖추고 태어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초등 학교도 못 갈 정도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고,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고 조롱 받을 정도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일을 역사 속에서 이루어 갔습니다. 한평생 맹인으로 은혜로운 영혼의 찬송가 10,000여 편을 쓴 분 페니 크로스비는 생후 6주만에 맹인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한 시대 강력하게 쓰임받았습니다.
오늘 이 시대 부족하지만 성도님과 저를 통해서도 하나님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 문을 열고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한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결국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고야 마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만나 어둠의 터널을 뚫고 진정 위로를 받고 진정 기쁨을 얻고 분명한 비전을 품고 힘차게 일어서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바울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질병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외모가 변변치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러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주의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억울하게 유대인들의 음모에 의해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방인들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는 죄목으로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바울이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예수님께서 고통에 잠긴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 일을 알려 주십니다. 주님께서 바울을 위로해 주십니다. 용기를 주십니다. 희망을 주십니다. 죽지 않고 로마에 갈 것이라고 확신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성도님과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 되시길 바랍니다. 건강 때문에 아주 망하지 않습니다. 가난 때문에 아주 폭삭 쓰러지지 않습니다. 추한 과거 때문에 끝나지 않습니다. 외모 때문에 인생길 끝장 나는 것 아닙니다. 회사가 부도 위기에 있는데 주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회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신다면 얼마나 기대를 하겠습니까? 중병으로 쓰러져 절망 가운데 있는데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죽지 않고 주신 사명을 다 이룰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면 얼마나 힘이 솟아나겠습니까? 경제적 궁핍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데 염려하지 말라 머지않아 경제적인 부를 누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기대에 부풀겠습니까? 바울은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새 날이 밝아 오면 무엇인가 획기적인 일이 생길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희망의 새날이 밝아 왔는데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12절 성경을 보십시오. 어둠은 더 깊어만 갔습니다. 겨우 로마 시민권을 통해 죽음을 면했는데 이제는 더 큰 고난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어떻게 이루어 가십니까?
1.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 동역자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십니다.(12-16)
1)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음모는 더욱 깊어 만 갔습니다(12-14).
유대인들 중에서 열성분자 40여명이 당을 지어 바울을 죽이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한 명만 회사에서 대적해도 힘겨운 일입니다. 40명이 죽이기로 작정하고 덤빕니다. 주님의 확실한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아침이 되면 희망의 새 소식을 들려 올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데 음모는 더 깊어만 갔습니다. 일은 더욱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전개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점점 죽음을 향해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병은 더 깊어만 가고 사업은 더욱 어렵게 된 것입니다. 40일 특별 새벽기도를 했는데도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 것입니다. 산헤드린의 정당한 법으로 바울을 죽이지 못하니까 열정분자들이 암살단을 만든 것입니다. 맹세를 하였습니다. 바울을 죽이지 못하면 금식하다 죽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까지는 먹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자객 팀을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천부장의 군대가 바울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을 접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생각해낸 것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협조를 얻으면 가능하리라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들 대제사장과 장로는 산헤드린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바울에 대한 적개심이 남달리 강한 사두개인들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음모는 구체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음모를 지지해주고 정당화시켜주는 배후 세력도 확보했습니다. 그 계획은 철저했고 실현 가능성이 보이였습니다. 공회가 천부장에게 재심을 청구하고 로마 군대가 바울을 공의회에 출석시키기 위해 성에서 데리고 내려올 때 길가에 자객을 매복시켜 습격하면 바울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음모는 아무도 모를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어둠 속에서 진행된 일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남모르는 고통, 우리의 눈물, 우리의 수고, 우리의 가난, 우리의 억울함, 우리의 헌신, 우리의 질병, 우리의 어려움, 우리의 약점을 등을 하나님이 알고 계십니다.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다 알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 동역자를 통해 바울을 도우셨습니다(16-21).
이 때 하나님은 그들의 음모가 그대로 진행되도록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았지만 극단적 상황으로 가도록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생질로 하여금 그 사실을 알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가 아무도 모르게 진행한 이 음모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게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상 장사의 아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사기꾼 같은 야곱을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다 이루셨습니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였습니까? 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바울을 살리는데 쓴 사람은 바로 바울의 누이의 아들입니다. 조카입니다. 우리는 그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성경에 단 한 번 나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나와 바울의 생명의 살려 주었습니다. 전혀 예기치 않은 인물을 준비시켜서 하나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아마 바울을 이 위기로부터 구해낼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고 하나님마저도 내 사정을 외면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조카를 준비시켜 놓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바울을 위기로부터 구출해 주었습니다.
3)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 동역자를 통해 우리가 사명을 이울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다 우리를 배반하는 것 같고 다 원수인 것 같지만 늘 하나님은 우리를 도울 사람들을 준비시켜 놓고 있습니다. 그 분이 자식이 될 수 있습니다. 캐냐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은 그 오지에 들어가 살면서 학교를 이루었는데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는 것같은데 아들 딸이 선교비를 보내 주었다고 합니다. 우물을 파야 하는데 한 장로님이 5천 만원을 보내와 우물을 팠다고 합니다. 전혀 알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내가 질병으로 천국 가면서 적금 들어 놓은 것이 있었는데 가장 보람 있는 일에 쓰임받게 해 달라는 유언을 남겨 그 돈을 가치있게 사용할 것을 찾다가 선교사님에게 왔다는 것입니다. 저 아는 어떤 목사님은 시골 교회에서 목회하는데 교회 건축을 놓고 기도했답니다. 국도변에 교회가 있었는데 그런데 어느날 한 중년 신사가 찾아와 헌금을 하고 갔다고 합니다. 자기가 사업을 하는 장로인데 늘 그 길을 가다가 초라한 교회를 보고 자신이 어릴 때 다녔던 시골 교회가 생각나 헌금을 한다고 무명으로 헌금을 하고 가 그것으로 건축을 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니까 교회를 건축하고 부채 때문에 교회가 경매될 위기에 처했는데 새벽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눈물로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교회 은퇴 장로님이 찾아와 20억을 헌금해 주어 위기를 모면했다는 간증을 들어 보았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들을 목회하면서 여러 차례 해보았습니다. 파키스탄에 학교를 세울 때 전혀 알지 못하는 국회의원이 5천만원 헌금을 해 주었습니다. 다윗도 보십시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도와주고 딸 미갈이 도와줍니다. 자기가 후계자인데 아버지 편을 들지 않고 다윗을 도와줍니다. 이런 것을 어떻게 인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건강을 일으켜 세우고 사업을 다시 세울 사람들을 준비시켜 놓고 있습니다. 우리를 도울 사람, 우리와 함께 뜻을 같이하고 일할 사람을 준비시켜 놓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아픔과 고통이 있다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사명을 붙들고 나가다 보면 누군가를 통해 도움의 손길을 하나님께서는 펴 주실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다고 절망 가운데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사명을 성취하게 할 때 뜻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도와 주게 합니다. 우리는 잘 몰라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바울에게도 때와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로마에 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실제적으로 도와주십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바나바를 만나 사도들의 인정을 받게 만듭니다. 눈이 멀었을 때는 아나니아를 만나게 하여 눈을 뜨고 사명을 받게 합니다. 신실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만나 교회를 개척하게 합니다. 아들같은 디모데를 만나게 하여 함께 동역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신 하나님이 로마에 가기까지 신실하게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열린교회도 하나님이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광야 40년 훈련을 받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라하니까 말이 둔하여 못한다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출 4:14)" 하나님은 모세를 위해 대언자로 아론을 이미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40년이라는 세월 잊혀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포기하시지 않고 이루어가셨습니다. 그저 쓰임받는 것이 복일뿐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인신매매되어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형들과 부모가 절하는 꿈을 꾸었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디발을 준비시켜 놓아 그 집의 총무로 삼아 주었고 보디발의 아내의 음모에 의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지만 술맡은 관원장을 준비시켜 놓았다가 그로 하여금 바로 왕을 만나게 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요셉으로 하여금 사명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기적을 베풀었는데도 여전히 이세벨이 죽이려고 합니다. 그 때 그는 하나님께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자신 홀로 밖에 없다고 하며 죽여 달라고 합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라고 말씀하십니다. 힘들고 어렵습니까? 우리를 위로해 주고 도와 주고 격려해 주고 실제적으로 문제를 풀어 주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내어 도와 주시고 있으면 도와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 지쳐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살려고 하는데 세상 살기가 너무 힘이 듭니까? 베드로가 주님을 증거하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제 끝이 난 것 같고 이제 홀로 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은 베드로를 사랑하는 성도들을 통해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 12:5)" 그리고 그 날 밤 옥문이 열리고 베드로는 풀려났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께 협력하여 일할 분들을 붙여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누군가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2. 하나님은 고난의 과정 속에서도 섬세하게 개입하시어 불신자의 마음도 움직여 우리가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17-22)
우리는 바울과 같은 고난을 당하면 그 고난의 과정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 고난 가운데 침묵하시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어머니는 많은 고난의 과정을 거칩니다. 고난의 과정 없이 아이가 이 땅에 태어날 수 없습니다. 비록 고난을 겪지만 그 고난의 과정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계속되는 고난의 과정을 겪고 있는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의 조카가 바울을 죽이려는 열성분자들의 음모를 바울에게 알려 준 후 사건은 그 후 어떻게 전개되었습니까? 인간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17절 이하를 보십시오.
1)죄수인 바울의 말을 불신자인 백부장이 마치 상관의 말처럼 듣습니다(17-18).
자신의 조카를 밑도 끝도 없이 천부장에게 인도해 달라고 합니다. 바울은 지금 죄수입니다. 당시 로마 감옥은 세 종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공중 감옥(custodia publica)으로 보통 사람들을 가두는 곳으로 대개 어두운 지하실이었다고 합니다. 둘째는 자유 감옥(Custodia libera)으로 상류층 죄수를 가두는 곳으로 어느 정도의 자유가 허용되었다고 합니다. 셋째는 군영 감옥(custodia Militaris)으로 군사 한 사람이 자신의 한 손과 죄수의 한 손을 함께 묶어 감시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 바울은 이 군영 감옥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죄인인 바울의 요구를 들어 주겠습니까? 죄인으로 감옥에 갇힌 사람이 면회 온 사람을 경찰 서장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무런 설명도 없습니다. 무슨 이야기 할 것만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경찰 서장을 만나게 해 주겠습니까? 그런데 신비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 백부장이 아무 말 하지 않고 천부장에게 데리고 갑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또 천부장에게 갔습니다. 천부장은 어떻습니까? 19절을 보십시오.
2)불신자인 천부장이 친절을 베풀어 청년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의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19-22).
천부장은 바울의 생질의 이야기를 순순히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유대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입니다. 그 공회가 바울을 다시 재판하겠다고 부를 때 그를 보내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40명의 자객을 숨겨 놓고 가는 중에 죽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천부장이 이 사실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일개 시민의 제보를 믿고 국회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때 어디에 줄을 대야 하겠습니까? 국회의원입니까? 이름 없는 일개 시민입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의 이익이 되는 쪽의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없지만 예배시간에 보면 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목사님은 몇몇 교인이 졸고 있자 "내가 어떤 사람인데 설교 중에 잠을 자느냐"며 화를 냈답니다. 그리고는 한 교인에게 다가가 "넌 우리 교회에서 가장 불쌍한 인간이야. 15센트짜리도 안 돼"라며 독설을 날렸답니다. 그래서 그 교인은 그 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자신의 아버지가 교회에 나오는데 하도 목사님의 아버지가 앞에 앉아 조니까 민망해서 아들에게 할아버지 옆에 앉아 졸 때마다 깨우면 1달러씩 준다고 했답니다. 아들은 열심히 깨웠는데 어느날 깨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유를 물어보니 할아버지가 예배시간 졸 때 깨우지 않으면 2달러를 준다고 해서 깨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고 편지를 주고 기쁨을 주는데로 마음이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천부장은 신비하게도 바울의 생질의 말을 믿습니다. 천부장은 친절하게도 둘 사이의 일을 비밀로 하라고 경계시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바울의 생질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고 음모자들이 다른 계획을 세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바울 생질이 밀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바울의 조카를 살려 주지 않을 것이고 자신들의 음모가 들통났다는 것을 알면 다른 방법을 쓸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음모를 꾸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천부장이 바울 편이라 그렇겠습니까? 천부장이 바울의 조카를 전에부터 잘 알고 있어서 그렇겠습니까? 우연히 이런 일이 있었겠습니까? 백부장도 천부장도 우연히 그렇게 했겠습니까? 저는 고난 가운데 세밀하게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불신자도 하나님의 통제권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사람의 마음을 간섭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살리기 위해 과정 가운데 섬세하게 개입하신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낯선 사람의 말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닥칠 줄 알면서도 용기 있게 산헤드린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힘있는 자 권력있는 자의 마음도 움직이어 실제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은행장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집도하는 의사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대적하는 힘 있는 자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3) 과정에 섬세하게 개입하시어 불신자의 마음을 움직여서도 우리가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17-22)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 만 주시고 방치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잘 몰라서 그렇지 과정에 섬세하게 개입하셔서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실제적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질 때 이해를 못한다고 그 과정을 참지 못하고 원망하고 좌절하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고난의 과정, 어떤 긴 터널이 있을 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때로는 불신자의 마음을 세미하게 간섭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불신자도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받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명 붙들고 쓰임받은 인물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섬세하게 도와 주십니까?
다니엘을 보십시오.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것같습니다. 다행이 궁중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상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다니엘은 어떤 경우에도 신앙의 정조는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먹지 않겠다고 거절합니다. 자신을 관리하는 환관장에게 말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 환관장이 허락하였습니다. 그 사실에 대하여 성경은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단 1:9)"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환관장의 마음을 하나님 다스렸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오히려 더 건강하고 지혜로워졌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총리로 만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불신자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여 이루고자 하는 뜻을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포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자기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비록 바벨론 포로로 잡혀왔지만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왕에게 고합니다. 왕은 기쁘게 허락해 주었습니다. 국경선을 통과할 수 있도록 조서를 내려 주었습니다. 건축할 재료까지 줍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느 2: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이방 나라 왕의 마음도 움직이어 도와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불신자의 마음까지도 움직이어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아무리 힘든 과정일지라도 그 과정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여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우리는 불신자를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나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의 사명을 이루는데 도와주는 자로 쓰임을 받게 만듭니다. 저는 청소년 시절에 핍박이 오히려 저의 신앙을 견고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겨울 철에 잘 밟으면 잘 밟은 만큼 보리는 봄에 더 건강하게 자라 많은 수확을 거두는 것입니다. 바람으로 인해 오히려 배는 빨리 가는 것입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503장 2절)" 큰 풍랑이 있습니까? 그 풍랑 속에서 불신자의 마음도 움직이어 항구에 도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세미한 손길을 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고난 가운데 처해 있지만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이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까? 23절 이하를 보십시오. 천부장은 즉각 어떤 조치를 합니까?
3.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처한 제도나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의도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가 사명을 이루도록 도와주십니다.(23-35) 모든 환경을 이용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1)천부장의 권력 조직인 로마 군인을 사용하여 바울을 보호합니다.(23-24)
천부장은 백부장 둘을 불렀습니다. 그 때가 밤 제 삼시입니다. 지금 말하면 저녁 9시입니다. 천부장은 유대인들의 집요함과 폭력성을 익히 잘 알던 터라 조금이라도 지체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즉각적으로 조치를 취합니다. 음모자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바울을 밤에 빼 돌렸습니다. 바울을 호송하기 위해 로마 병력을 동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호송이 아닙니다. 바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철저한 하나님의 간섭입니다. 바울 한 사람을 호송하는 데 호위 병력을 무려 사백 칠십명, 자기 병력 반이나 동원하였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보병 이백, 마병 칠십, 창을 든 창군 이백명입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그 당시의 제도와 천부장의 권력을 충분히 이용하십니다. 당시 로마 군인은 보기도 싫고 만나기도 싫은 증오이 대상입니다. 그런데 그 군인들이 사명자 바울을 살리는데 쓰임 받습니다. 악한 제도가 오히려 선한 도구로 쓰임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선하게 쓰임받는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타고 갈 짐승까지 준비하였습니다. 자가용을 준비하여 태우고 가는 것입니다. 전용비행기를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호송하기 위해 얼마나 신중하게 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천부장의 이러한 조치가 바울에 대한 애정이나 존경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한 사람의 로마 시민이 자기의 관할 구역에서 무고한 희생을 당하도록 방치했을 때 그 자신도 책임을 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일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통해, 그의 권력을 통해, 그의 조직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때로는 자연 재해가,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때로는 폭력적인 정권이, 때로는 고난이, 때로는 실패가, 때로는 사고가 우리로 하여금 사명을 붙들고 하나님의 일을 더욱 분명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2)천부장의 선처에도 불구하고 더 상황은 나빠졌지만 그것까지도 하나님은 사용하여 바울을 도와 주십니다.(25-35)
그는 총독에게 편지를 합니다. 그 편지 내용은 무엇입니까? 27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로마의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죽일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것은 율법에 관한 문제일 뿐 형사 처벌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그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바울을 해하려고 하는 것은 유대인의 간계라는 것입니다. 그들도 총독에게 이 재판을 맡기기를 원해 바울을 총독에게 보낸다는 것입니다. 총독은 이 편지를 받고 어떻게 합니까? 한 가지를 물어 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어느 영지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황제의 직할지인가 아니면 지방 총독의 속주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바울의 출신지에 따라 재판 관할권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길리기아 출신이라고 대답하자, 그곳은 로마의 직접 통치 지역이었으므로 벨릭스는 자기가 재판을 담당하기로 결정하고서 바울을 송사하는 자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게 합니다. 무려 2년 동안(행24:27) 그곳에 결박되어 세월을 보냅니다. 로마에 가겠다는 사명을 받은 바울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천부장이 그렇게 까지 편지를 써서 선처를 부탁했으면 바로 석방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로마의 법정에 왔으니 당연히 석방되고 자유의 몸이 되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결과는 무엇입니까? 더 악한 사람에게 붙들려 있습니다.
당시 벨리스 총독은 노예 출신으로 총독이 된 사람입니다. 아내를 셋이나 두고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측근도 장애가 되면 살해해 버렸고 대제사장 요나단도 살해해 버린 사람입니다. 악명을 떨친 사람으로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바울이 왔습니다. 벨릭스 총독은 그의 출신이나 전력, 인품으로 보아서 바울이 정당한 재판을 받거나, 정상적인 재판으로 석방되기는 쉽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명을 이루기 위해 부름받은 바울의 앞엔 첩첩산중이 놓여 있었습니다. 천부장에게 채찍으로 맞는 것이 고통스럽고 싫어서 '로마 시민권'을 내세워 재판을 받겠다고 해서 총독에게까지 왔는데 총독은 천부장보다도 더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너무 한 것일까요? 고난의 현장에 무슨 뜻이 있지 않을까요?
3)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우리가 처한 제도나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의도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가 사명을 이루도록 도와주십니다.(23-35)
신앙 생활하면서 우리는 많은 일을 만납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언제까지 이런 일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런 수모와 고통이 언제나 끝이 옵니까? 왜 어두움 밤이 계속됩니까? 2년 동안을 기도했는데 결과가 왜 더 안 좋은 것입니까? 이만큼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봉사했는데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다가옵니까?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지만 빛이 드러나면 그 이유를 밝히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바울을 로마로 보낸다고 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보낸다는 말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벨릭스가 선한 사람이었다면 이 정도의 편지를 받았으면 바로 석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교활하고 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바울을 2년 동안 잡아 두었습니다. 만약 바로 석방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죽기로 금식하며 바울을 죽이려는 40명의 자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사람만 죽기로 작심해도 살아남기 힘듭니다. 하나님은 그 악한 벨릭스를 통해 2년 동안 바울의 생명을 철저하게 보호했던 것입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바울은 도저히 안 되겠다고 싶어 가이사에 가겠다고 상소를 합니다. 그래서 로마로 갑니다. 자유로운 몸이 아니라 죄수의 몸으로 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가서도 죄수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수많은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로마로 보낸다고 해 놓고 왜 이런 꼴을 해야 합니까? 바울은 나중에 깨닫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립보서 1:12에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오히려 복음을 전파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황제 시위대가 바울을 지켰습니다. 지금 말하면 경호실입니다. 최고의 엘리트들입니다. 바울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권력층에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자유인으로 갔다면 어떻게 최고의 권력층에게 접근할 수 있겠습니까? 최고의 권력층이 변했기 때문에 로마가 기독교 국가로 바꾸어져 버린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갖은 고생을 한 요셉의 고백을 보십시오. 요셉이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수많은 세월 얼마나 질문을 했겠습니까?
"하나님 왜 억울하게 감옥에 가야하고 왜 이런 고생을 하여야 합니까? 나의 고생은 언제나 끝이 납니까?" 수많은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밝은 빛 앞에서 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어떤 고백을 합니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 성도님의 가정도, 우리 성도님의 사업도, 자녀도, 미래도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이것을 믿으면 됩니다.
바울은 유대 땅에 머물던 기독교를 세계 종교가 되도록 한 시대 쓰임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명을 바울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명을 이루기 까지는 어두운 터널을 끝없이 통과해야 했습니다. 사명을 이루는 앞길에 이해할 수 없는 어둠이 있습니까? 벗어나고 싶은 고통이 있습니까? 끝없이 이어지는 고난으로 의욕을 상실하였습니까? 신앙의 기쁨도 마음의 평안도 이미 없어졌습니까? 오늘 이 시간 바울과 함께 하여 마침내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내가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우리 가정, 우리 사업, 우리 민족, 우리 미래, 우리 인생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이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루십니까?
1.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 동역자를 통해 우리가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12-16)
2. 하나님은 고난의 과정 속에서도 섬세하게 개입하시어 불신자의 마음도 움직여 우리가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17-22)
3.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처한 제도나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의도 그 모든 환경을 통해 합력하여 우리가 사명을 이루도록 도와주십니다.(23-35)
잠 29:25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열린교회/김필곤 목사/ 201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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