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인
신명기1:28-33
저는 지난 3주 동안 만만만에서 후원하는 아프리카 아이들과 부모님을 만나고 학교와 유치원을 방문하고 왔습니다. 5나라에서 21명의 선교사님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니 우리나라 사람들만 마스크를 하고 있었습니다. 메르스 공포가 나라 전체를 짓누르는 듯했습니다. 학교가 휴업하고 극장· 백화점엔 사람이 끊기고 모임이 취소되고 있다고 합니다. 병원 가기도 꺼리고 중동에 갔다 온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누가 기침을 하면 메르스가 아닌가 하여 의심하며 두려워합니다. 혹시 우리 교인 중에서도 제가 오랫동안 아프리카에 있었기 때문에 만나는 것을 꺼리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출국할 때는 메르스라는 질병 이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귀국하면서 하루 두바이에 머물면서 우리나라 기업이 지었다는 세계 최고층 빌딩도 구경하고 사막에 기적을 이루었다는 두바이의 발전상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같이 간 한 목사님의 사모님이 목사님에게 메르스에 대한 소식을 문자로 전해 주었습니다. 일인당 20여만의 벌금을 내고 비행기표를 바꾸어 귀국하였습니다. 인류를 공포로 몰아가는 전염병은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언제 어떤 인수 공통 전염병이 창궐할지 모릅니다. 12세기는 나병, 14세기는 '흑사병(黑死病)', 16세기는 매독(梅毒), 발진티푸스, 아메리카의 역병 천연두, 19세기는 '백색 페스트' 결핵, 20세기는 스페인독감, 에이즈 등이 인간을 공포의 올무로 매었습니다. 14세기 후반 유럽을 휩쓸었던 "검은 죽음의 병" 흑사병은 유럽사람 4명에 1명꼴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 40일 동안 격리시키는 것이 유일한 예방법이어서 [고독 살인]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2,500만 명이 흑사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페스트로 인하여 무역은 부진해지고 노동자의 죽음으로 경작지는 급속히 감소했으며 지주들이 파산했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사회는 공황에 빠졌고 성직자들은 위기 속에서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답니다. 21세기 초두에 세계는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사스·SARS)으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메르스 공포로 경기가 얼어붙고 있는 듯합니다.
데이비드 로스코프는 이것을 '인포데믹(정보 전염병)'이라고 말합니다. 소문은 전염병처럼 번져 급격하게 경제를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193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휩쓴 대 경제공황 때 무서운 경제 파탄이 가중된 원인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경제공황이 닥쳐온다. 증권은 휴지가 된다. 은행에 돈이 떨어져 예금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는 소문이 퍼지자 두려움과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도 나도 은행에 몰려가 저금한 돈을 찾아가니 은행고는 텅 비게 되고 은행이 문을 닫자 사업체들이 연쇄적으로 도산을 해 세계는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공황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죽은 청년의 수가 30만 명인데 아들과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고 그 염려와 근심과 불안 때문에 심장마비로 죽은 미국 시민들은 약 1백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사실 사스의 치사율은 3~4%로 독감과 일반 폐렴의 치사율 4~5%보다 오히려 낮다고 합니다. 메르스의 치사율도 40%가 아니라 10% 정도라고 합니다. 이는 매년 목에 이물질이 걸려 질식사하는 4700명의 미국인 수에 비하면 많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7000여명 쯤 된 것에 비하면 그렇게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마음을 무기력하게 하는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나폴레옹 힐은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하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모든 열성을 지워버리며,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과 불행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워즈워드는 "두려움은 수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힌다" 라고 했습니다. 세네카라는 사람은「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행복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의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 불안의 시대라고 말을 합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질병의 두려움, 사고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 실직의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도 모르게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1.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0, 21).
오늘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 적들이 우글거리는 땅, 위험과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으로 가나안을 주시고 그곳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으로 갈까 가나안으로 갈까 우리가 어디로 갈꼬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이 주신 땅을 좋아하기는 하였습니다(25). 그러나 좋아하는 것과 실제 믿고 바라보고 올라가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정탐을 해 보니 어려운 난관이 있습니다. 거대한 성이 있습니다.
그 때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26절을 보십시오. 올라가기를 즐겨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명을 거역합니다. 우리가 어디로 갈꼬하며 망설입니다.
우유부단합니다(28). 낙심합니다.
상대를 과대 평가합니다(28). 자신들에 대하여서는 과소 평가합니다.
일을 시킨 분에 대하여 원망을 합니다(27).
그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29)
2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두려워하며 머뭇거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9).
왜 그렇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이 땅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 앞에 두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신 방법대로 올라가 얻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두려울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영원한 실패가 아닙니다. 미래는 우리의 상상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미래는 우리의 예측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현재의 노예가 아닙니다. 지금 병들었다고, 지금 가난하다고, 지금 실패했다고, 지금 조건이 좋지 않다고 미래도 동일하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 준비해 놓고 담대하게 이루시길 원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외아들을 바치라고 합니다. 이성에도 신앙에도 맡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았다는 신앙을 갖고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이미 수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여호와 이레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세 죽을 것같지만 이미 하나님은 공주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공주가 강가에 나와 목욕한다는 것 신비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수영도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모세를 위해 준비해 놓은 사람입니다. 모세가 80살에 민족을 위해 부름받았을 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사실 죽음의 두려움입니다. 그 때도 하나님은 아론을 준비해 놓았다고 말합니다.
다윗을 쓰시기 위해 충성된 용사를 준비해 놓으셨고, 요나단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바울을 통해 세계 선교를 감당하게 하기 위해 동역자 바나바와 지역 지역에 신실한 종들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앞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3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 말씀이 이 시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길 바랍니다. 질병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 만남의 두려움, 무능의 두려움(만약 실패한다면?), 거부의 두려움(핵심에 끼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결핍의 두려움(내 성과를 훔쳐 가면 어쩌나?), 현실의 두려움(어디 손쉬운 해결책이 없는가?), 미지의 두려움(저기 뭐가 숨어있지?), 나이의 두려움(퇴물이 되면 어떻게 하지?)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 말씀이 살아 역사하여 치유되고 회복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주께서 내 길 예비 하시네,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하루 하루 살아요... ] 두려운 상황이 오면 더욱 기대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1973 자신의 이름을 따 종교계에서 많은 공헌을 한 사람에게 시상하는 '템플턴 상'을 제정한 존 템플턴은 [템플턴 플랜]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신앙인으로 프린스턴 신학교의 이사와 학장을 역임하기도 한 사람입니다. 1954년 Templeton Growth 사를 설립하여 글로벌 펀드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인물입니다. 그가 부자가 된 계기는 1939년 9월이었다고 합니다.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미국은 역사상 최악의 경제 공황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스물 여섯 살 그는 전쟁이라는 것을 기회로 예측했습니다. 주식이 폭락할 때, 언제 휴지 조각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주당 1달러 미만으로 거래되는 모든 주식들을 각 종목 당 100달러 어치씩 매수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자신의 돈이 아니라 사장으로부터 1만 달러를 빌려서 투자를 한 것입니다. 결국 그가 매수한 104개 종목 가운데 단 4개 종목만 파산했고, 템플턴은 1년 만에 빌린 돈을 모두 갚았고 4년 후 최초의 투자금은 4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부자들]이라는 책을 쓴 한상복씨는 1년 2개월에 걸쳐 한국의 부자 143명을 조사한 결과 부자는 부자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부자들은 불황일 때 주식을 사고, 부자가 되기에 이미 늦은 때는 없고 부자들은 거꾸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어둠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미래가 암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촛불을 켜야 합니다. 촛불은 대낮에는 별 가치가 없습니다. 어두울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2. 우리는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뒤를 따라가기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0).
1)사람이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신체적 정신적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변화된 환경 조건에 대처하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신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자기에게 해를 끼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두려움에 쌓이게 됩니다. 밀러라는 이런 예측된 불안이 두려워하는 사건 전에 일어나면 이를 걱정 또는 염려라 하고, 과정 중에 일어나면, 공포(panic,terror)라 하고, 후에 일어나면 이를 죄책감, 또는 좌절감이라합니다(Miller & Jackson, 1985, P.210).
(2)사람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두려워 합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자신의 앞길이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면 사람은 불안으로 시달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광풍이 불어올지, 배가 언제 기울어질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해 중에 두려워합니다. 위험스런 상황을 경험할 때 보다 위험 스런 사건을 예측할 때 더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합니다. 낙하산 부대의 군인들은 공중 낙하 전후의 생리적 긴장지표(심장박동, 땀)가 가장 높다고 합니다.
(3)미래에 대한 믿음, 확신이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2)오늘 성경에 보면 두려워하는 이들을 향해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그들을 앞서 행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0).
우리의 문제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의 비전만 주시고 쉬시고 주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갈 수 있도록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시편 기자도 이 사실을 "(시 68:7)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라고 읊고 있습니다.
앞서 행하시면서 무엇을 합니까?
①우리를 인도하십니다(33).
성경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광야같은 세상 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출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출 23:23)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
②우리를 위해 싸워 주십니다(30).
홍해를 가릅니다. 쓴물이 단물로 변합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립니다.
3)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면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뒤를 따라가면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기대를 가지고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이 앞서 가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에 중대한 실수를 보십시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두려워했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들을 약속합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합니다.
이방 왕 앞에서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신뢰가 없습니다. 아내를 내어 줍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40세에 혈기를 부려 애굽인을 죽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합니다. 하나님 뒤를 따라가지 못하고 하나님 앞서 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됩니까? 결국 광야에 나가 40년을 고생을 합니다. 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건을 조성해 주시고 이룰 수 있도록 대로를 만들어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여 실패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단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지 못하니까 말씀대로 따르지도 않고 어떤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께 물어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결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업하는데도 자기 마음대로 계획하고 실행하다가 실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얼마나 한심합니까? 출애굽기 15장을 보십시오. 금방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춤추며 기뻐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3일 지나니까 먹을 물이 없습니다. 마라라는 지역에 이르렀는데 쓴물만 있습니다. 모세를 원망합니다. 조금 가면 하나님께서는 오아시스를 준비해 놓고 있는데 그 사이를 못 견디고 원망하고 좌절하고 불평하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바로 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왕은 되지 못하고 계속 죽음의 위기를 당합니다. 그 때 그는 어떻게 합니까?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어도 묵묵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갑니다. 17년 만에 통일 왕국의 왕이 됩니다. 위대한 성군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보다 앞서가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결국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뒤를 따라가는 것이겠습니까? 말씀을 좇아가는 삶입니다. 오늘 날을 구름기둥 불기둥이 직접 나타나서 앞서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말씀이 가라는 곳에 가고 말씀이 멈추라는 곳에 멈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뒤를 따라 가는 삶입니다. 기도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질병이 있으면 두려움으로 보내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하면 됩니다. 앞으로 되어질 일을 보며 걱정 근심하며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대로 기도하면 이루어집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면 그냥 그 말씀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믿고 말씀 붙들고 나아가면 미래는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따라가면 미래에 대하여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그 사실을 확신하고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1,33).
1)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의 아들을 안음같이 우리를 보호해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1).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에서 그들을 광야에서 어떻게 도와주셨는지를 기억시켜 주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안고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두려워서 떨 때에 여호와에서 우리들에게 이와 똑같이 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광야를 통과하는 이스라엘은 많은 두려움과 염려가 계속되는 삶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은 처음 가는 길이요 낯선 길이었습니다. 또한 언제 덮칠지 모르는 외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과 음식에 대한 염려도 그들을 괴롭히는 일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친히 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추격하던 애굽 군사들을 바다에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또한 반석에서 물이 나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그들의 보호자와 인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과 함께 계셨고 그들을 친히 보호해 주셨습니다.
2) 우리의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보호의 대상자를 말씀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다 보호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롯과 그의 가족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일어날 때 다 보호받은 것은 아닙니다. 노아와 그 가족입니다.
(1)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거하는 자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시61:7) 저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저를 보호하소서
(2)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33: 12)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맞도록 보호하시고
(3)성도를 보호하십니다.
(시37 : 28)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사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라
(4)주께로 피하는 자를 보호하십니다.
(시5 : 11)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외치며
성실한 자를 보호하십니다.
“너 근심 걱정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382장)”
이 곡은 아버드에서 공부한 마틴 목사가 작곡하고 교사였던 그의 아내가 작시한 것입니다. 마틴 목사 부인인 시발라가 몹시 몸이 아팠을 때였답니다. 마틴 목사가 병상을 한시도 떠나지 못하고 간호하고 있을 때, 뉴욕의 레스터셔에 있는 어느 교회서 주일 저녁예배 설교를 요청해 왔답니다. 마틴 목사는 잠시 고민에 빠졌으나, 아내 시발라의 병간호 때문에 이 설교를 수락하지 않기로 결심했답니다. 거절전화를 막 걸려고 할 때, 어린 아들이 마틴 목사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빠, 오늘밤 해야 할 설교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아빠가 계시지 않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엄마를 지켜 주시지 않나요?”
이 말에 마틴 목사는 깊은 감동을 받았답니다. 하나님께서 어린 아들을 통해 자기를 꾸중하신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그래서 흔쾌히 저녁설교를 하러 집을 나섰답니다.
아들의 말에 감동을 받은 것은 마틴 목사만이 아니었답니다. 병상에 누워있던 시발라도 남편과 아이 대화에 말할 수 없이 뜨거운 감명을 받았답니다.
“그렇다! 우리가 근심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데!”
시를 썼던 시발라는 영감을 얻어 병상에 누운 채, 은혜로운 찬송시를 거침없이 써 내려갔답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낙망 말아라. 하나님이 돌보시리니. 필요한 모든 것 그가 마련하시며 하나님이 또한 우리를 돌보시네…”
마틴 목사의 저녁설교는 수십 명의 결신자를 낸 은혜로운 집회가 되었답니다. 마틴 목사는 기쁨과 감사로 예배를 마치고 황급히 아내 곁으로 돌아왔답니다. 이 때 시발라는 남편에게 손을 내밀며 쪽지를 건네주었답니다. 쪽지를 받아든 마틴 목사는 단숨에 읽어 내려갔고 곧 뜨거운 감격 속에 젖어들었답니다. 그는 단 30분 만에 곡조를 완성했답니다. 악보가 완성되자 주일학교 교사 두 사람과 마틴 목사 부부, 그리고 9살 난 아들과 같이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찬송가 382장)의 최초 공연을 했답니다.
악한 자에게서, 시험에서, 재앙에서 보호해 주십니다. 병든 자의 피난처 보호자가 되시고, 가난한 자, 헐벗고 굶주리고 멸시받는 자, 외로운 자 쫓기는 자, 범죄자의 피난처 보호자가 되십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구렁텅이에 감금하였습니다. 인신매매를 당하였습니다. 억울하게 옥에 갇혔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보호 해 주었습니다. 결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며 걱정과 두려움으로 보내어서는 아니 됩니다.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글에서 한 연구기관의 조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걱정 중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40%,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닌 작은 것에 대한 걱정이 22%,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진짜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결국 사람들은 96%의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기쁨도, 웃음도, 마음의 평화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죽어도 천국에 갑니다. 두려움이 아닙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 어찌할 수 없는 과거, 아픔과 상처의 과거,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메여 두려움에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예측하면서 그것으로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0, 21).
우리는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뒤를 따라가기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0).
우리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그 사실을 확신하고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1,33).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미래를 향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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