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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인생(5) 두려움 올무 끊기(이사야 41:8-1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8152 추천수:8 220.120.123.244
2023-04-16 15:14:22

건강한 인생(5) 두려움 올무 끊기

이사야 41:8-16

 

제가 2020년에 <건강한 인생> 시리즈로 4번에 걸쳐 설교를 했습니다. 첫째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라는 말씀을 본문으로 우리가 건강한 인생을 살려면 영혼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건강의 정의를 "건강은 단지 질병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상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삶의 질 향상과 개인의 잠재적 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신체적, 감정적, 사회적, 지적, 정신적 요소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건강한 인생이 되려면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뿐 아니라 우선순위로 영적 건강을 말합니다.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영혼이 잘 되는 3요소는 첫째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야 하고, 둘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셋째 기도해야 된다는 사실을 요한 3서를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둘째는 “말씀과 건강”으로 건강한 인생은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잠언서 4장 22절에는 “말씀을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라”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몸의 건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육체의 건강을 얻는 삼요소로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건강의 법칙으로 받아들이고,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셋째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면 몸의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 번째는 “마음과 건강”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건강한 인생은 마음도 건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서 4장 23절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건강한 인생을 살려면 우리의 마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마음이 건강하려면 악한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안하도록 마음을 잘 지켜야 하고 삶의 현장에서 말씀으로 눈과 입, 발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네 번째는 “정서와 건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건강한 인생은 정서가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의 건강은 건강한 인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잠언서 17장 22절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잠언서 15장 13절에서는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자책, 불안, 분노, 근심, 걱정, 시기, 질투 등과 같은 부정적 감정으로 가득차 있으면 몸의 건강도 잃게 되고 인생도 건강하지 못합니다. 건강한 정서를 가지려면 우리는 하나님이 미래를 보장해 주신다는 긍정적 생각을 가져야 하고, 우리는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긍정적 정서를 가져야 하며, 우리는 힘이 되신 하나님과 함께 행함으로 긍정적 정서를 가져야 하다고 시편 46편을 통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건강한 인생” 다섯 번째로 “두려움 올무 끊기”로 건강한 인생을 만들려면 평생동안 따라다니는 두려움의 올무을 끊어야 한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두려움은 사람이 지닌 기본적인 감정의 하나이며, 삶의 양식입니다. 심리학자 브리쥐(BRIDGES)에 의하면 갓난아이가 6개월이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갓난아이가 3개월이 되면 쾌 불쾌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6개월이 되면 분노, 혐오, 두려운 감정 생긴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시작하여 두려움은 죽음의 순간까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사람에 대한 두려움, 사물에 대한 두려움 등 갖가지 옷을 입고 사람을 따라다닙니다.

두려움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두려움과 부정적인 두려움입니다. 긍정적인 두려움은 생명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안전을 추구하게 하여 우리의 삶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위험한 동물을 만났을 때, 시험 볼 때, 연설하려 할 때 겪게 되는 정상적인 두려움은 사람을 좀 더 각성하거나 예민해지게 하여 직면한 문제를 효율적으로 잘 해결해 나가도록 합니다. 문제는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은 부정적인 두려움입니다. 사나운 곰 앞에 서 있을 때 두려워하는 것처럼 두려움은 실제적 위협의 대상 앞에서 공포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이 곰 그림만 보아도 공포로 다가온다면 이것은 공포이기 보다는 불안이라는 말로 사용합니다. 이 불안은 과거에 경험했던 곰을 상상하며 느끼는 두려움인데 머리 속의 상상 예측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 불안은 병적으로 진행되는 불안이 문제입니다. “친한 친구가 코로나에 걸리면 나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까? 3명 중에 1명은 암에 걸린다고 하는데 나도 암에 걸리지 않을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후 위기로 재앙이 일어나지 않을까? AI의 발달로 직장은 잃지 않을까? 물가와 환률, 이자 폭등으로 망하지는 않을까?” 등 실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마음 속에 생각 공장이 풀 가동되어 “아마도 그럴거야, 오늘은 왠지 그럴 것같아. 어쩌지, 혹시”등과 같이 상상함으로 건강한 인생을 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불안이 악화되면 심장마비나 질식과 같은 응급 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극심한 불안 발작 상태가 되는 공황장애 같은 것이 생깁니다. 집만 나오면 가스를 꺼지 않고 나오지 않았는가 불안해 하는 강박 장애같은 것이 생깁니다. 이러한 불안은 정상적 불안을 넘어 병적인 불안으로 발전하여 몸에 여러 가지 원인 모를 병들을 만들어 냅니다. 주어진 자극에 대하여 빈도, 강도, 기간의 측면에서 부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를 병적인 불안 또는 불안장애라고 합니다. 불안장애는 감정적으로 신체적으로 행동적으로 건강한 인생살이에 많은 불행을 가져다 줍니다.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8.7%가 평생에 한번 이상 불안장애로 고통을 겪는다고 하는데 이런 부정적인 두려움이 만들어 낸 결과는 건강한 인생을 살지 못하게 하는데 크게 다섯가지 해로움이 있습니다.

첫째 건강에 해롭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입시를 앞두고 두려움에 시달리면서 소위 "고 3병"을 앓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늘 긴장하고, 불안해하며 숨을 열심히 쉬어도 숨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늘 큰 숨을 쉬고 답답해합니다. 두려움에 의한 '과호흡증후군'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 3 모두가 시험을 보는데 유독 이런 불안을 가지 아이는 '현실적 불안'이 아니라 '신경증적 불안'을 가진 아이라고 합니다, 존스 홉킨스대학교 의과대학의 심장내과학 교수인 제임스 테일러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불안한 상태에서 1년 3개월 이상 노출되면 92%가 심장병에 걸릴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의 벤슨 교수에 따르면 "질병의 60%-90%는 육체적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 즉 신경성인데 그 원인은 삶의 스트레스에서 오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만성적인 불안은 불안을 느끼게 되면 몸의 평형을 유지하려는 항상성(homeostasis)를 깨뜨리게 되고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질병에 걸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불안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혈압을 높여 신경계와 내분비계에 영향을 미쳐 신체의 기능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울프라는 의사의 실험에 의하면, 불안감은 위장 내 혈액순환 및 위 운동을 급작스레 증가시키고 특히 위액분비를 현저히 증가시킴으로써 불필요한 위액분비로 인해 위벽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소화장애, 위염, 소화성 궤양 등을 초래한다고 합니다. 만성적인 두려움은 부정수소증(不定愁訴症) 또는 부정형 신체 증후군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이유 없이 아프다면 식사 때문입니다>라는 책의 저자 의사인 미조고치 도루는 특정한 질병이 없는데 기분이 쉽게 우울해지고, 불안과 긴장이 멈추지 않으며, 의욕이 상실되고, 식욕이 없어지며 권태롭고 매사 짜증이 나는 것은 자율신경의 균형이 깨진 상태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성 두려움은 심신의 불안정을 만들어내고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부조화를 만들어 각종 질병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 병적인 불안은 감정과 신체와 행동에 영향을 주어 두통, 수면 장애, 가슴 통증, 심박수 증가, 마비, 긴장, 호흡곤란, 안면 홍조, 귀에 울리는 소리, 과도한 발한 등 각종 질병을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두려움은 정신적, 신체적, 감성적으로 건강하게 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영적, 관계적 건강을 파괴해 버립니다.

둘째는 우리의 잠재력을 마비시켜 버린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힐은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하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모든 열성을 지워버리며,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과 불행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파괴해 버립니다.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비난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피해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갖지 못합니다. 넷째는 우리의 행복을 방해합니다. 두려움은 대인 공포증, 광장공포증, 고소공포증, 질환공포증, 죽음공포증 등과 같은 심각한 만성 공포증 환자가 되어 버립니다. 워즈워드는 "두려움은 수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힌다." 라고 했습니다. 세네카라는 “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행복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섯째는 우리의 성공을 방해합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린다 새퍼딘은 <두려움이 나를 망친다>라는 책에서 두려움은 사람을 수동적이고 소심하게 하고, 늘 경계심을 품게 하고, 불안하게 하며, 자신이 없게 만들고, 매사에 비판적이게 하여 자신을 망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불안장애가 심하면 항불안제같은 약물치료도 필요하고 인지행동 치료도 필요합니다. 신앙적인 측면서에서 건강한 인생살이를 위해 이러한 두려움의 올무를 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1. 건강한 인생을 살기 원하는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홀로라는 두려움의 올무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세 번이나 강조하고 있는데 왜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의 결과로 발생한 바벨론 포로 생활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이스라엘을 가리켜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죄로 말미암아 비참한 상태에 처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왜 사람은 두려워합니까? 성경에서 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4가지 경우에 두려워함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10)”라고 했습니다. 둘째, 자신이 너무 연약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민수기에 나오는 열명의 정탐꾼들처럼 두려워합니다. 셋째, 불확실한 미래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 예수님이 그들을 떠날 것을 말씀하니까 제자들이 두려워합니다. 넷째, 죽음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4장 홍해 앞의 이스라엘 백성의 두려움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두려워하는 것처럼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두려움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포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될 줄을 모릅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직장을 잃어 버렸습니다. 언제 돌아갈지 기약이 없습니다. 모든 논밭을 잃어 버렸습니다. 국제 정세도 자신의 나라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습니다. 국제 정세를 보니 바사 나라가 일어나고 그 나라에 대항하여 열국들이 우상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연합하여 국제 패권 다툼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입니다. 이 때 하나님을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두려움과 불안, 공포가 다가 올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모든 두려움의 올무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한 밤중에 공동묘지를 걸어가도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가면 두려움 없이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을 어떤 존재라고 말씀합니까?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홀로 떨어져 두려워하고 있는 바벨론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을 나의 종이라고, 하나님이 택한 사람,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합니다. 9절 보세요 땅끝에서 너를 붙들며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우리가 고난에 처했다고 우리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게 살지 못했다고 우리를 영원히 버린 것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 쫓겨나 홀로 있을 때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불안장애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망각하고 불행한 인생으로 마감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하신 하나님으로 하나님과 함께 평생 건강한 삶을 살았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죄 짓고 도망갔습니다. 그렇다고 두려움의 올무에 걸려 불행한 삶으로 인생을 마감하지 않았습니다.

도망가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

야곱 스스로도 어떤 고백을 합니까? 삼촌이 배신합니다. 재산을 다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약속을 어깁니다. 그럴 때 야곱은 고백합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창31:5)"

인생의 갖은 고생을 다하고 그는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창 35:3)"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죽기전 마지막 고백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창 48:21)" 나는 떠나도 하나님은 함께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고 건강한 인생으로 마감하였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두려움이 일어나는 순간이 얼마나 많습니까? 수술을 받을 때, 나이가 들어 죽음의 사자가 가까이 오는 것을 느낄 때, 계획한 일이 실패로 그칠 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보았을 때, 홀로 있다고 생각할 때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몰려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내 옆에 계시고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어 내 위에 계시고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서 나를 강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나 곁에 계서 나를 붙들어 주십니다.

혹 경제적인 고난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혹 자녀의 문제로 사업의 문제로 직장의 문제로 질병의 문제로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아 답답해 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남편이 먼저 떠나도, 아내가 먼저 떠나도, 부모님이 어릴 때 떠나도, 요양원에 홀로 고독하게 버려진 것같아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같은 현장에서도 하나님은 한 번 택한 백성 버리지 않고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 것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의 아들 딸 삼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아내도 떠나고 아들도 떠나고 남편도 떠나고 친구도 떠난다고 하여고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뿐일세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쟎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검은 구름 덮이고 광풍 일어도 예수 나의 힘 되니 겁낼 것 없네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쟎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괴로운 일 당해도 낙심 말아라 영원한 주 능력이 붙드시겠네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쟎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449장)”

 

2. 건강한 인생을 살기 원하는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심으로 문제 해결 시 다가오는 두려움의 올무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10,13,14)

두려움의 원인 중의 하나는 당면한 문제를 풀 수 없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다가올 문제를 풀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전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이 풀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 오면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갈멜산에서 대결하여 대승리를 거뒀던 엘리야 선지자도 아합의 왕비인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두려워서 도망가 로뎀나무 밑에서 두려움과 실망에 가득차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골리앗을 물리친 용맹스러운 다윗왕도 원수와 악인들이 압제하고 사망의 위험이 이르게 되자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시 55:5).”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바벨론 포로에서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 있는 사람들을 행하여 이사야 선지자가 그들을 하나님께서 바베론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신다고 하자 “하나님! 우리를 바벨론에서 실제로 구원해낼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하며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유명한 정신 분석학자 메닝거는 두려움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그 원인은 “우리가 너무 자신에 몰두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한계가 분명한 자신에게 몰두하면 두려움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힘이 없는데, 나는 할 수 없는데, 내가 병들면, 내가 죽으면” 등 지나치게 자신에게 몰두하다 보면 두려움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몰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사41:10,13,14)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내가 함께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떤 약속을 해 주시고 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네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합니다. 너를 굳세게하리라고 약속합니다. 너를 도와 주겠다고 하십니다.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이 약속을 믿습니까?

하나님께 시각을 돌리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버러지 같은 야곱일지라도 너를 도와주겠다는 것입니다. 너는 버저지 같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너를 도와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는 것 같지만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포로 생활을 통하여 그들을 훈련시키시고 그들을 사용하기 위해 그들을 도와 주고 계십니다.

 

그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어떻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11-13)

그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거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투는 자들이 결국 멸망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을 치는 자들이 허무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대단한 것같지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문제가 대단히 큰 것 같지만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그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한대로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관측 가능한 우주까지는 137억 광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일광년은 빛이 일년간 가는 거리입니다. 추정하기를 우주의 크기는 일천억 광년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가 타는 자동차 최고 속도 200킬로로 달려도 안드로메다까지는 약 이십조년이 걸립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주를 만드시고 우주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그 앞에서 바벨론이나 앗수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면 우리의 당면 문제를 작아집니다. 이스라엘의 대적 바벨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주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문제는 별거 아닙니다. 10명이 정탐꾼이 하나님을 작게 보니까 적을 크게 보면서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불가능한 태산 같은 것도 무너뜨려 평탄해 버립니다. 두려워하는 외적 환경을 변화시켜 버립니다. 국제 관계가 변화됩니다. 뜻하지 않게 고레스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버립니다. 포로에서 자유함을 줍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신다고 말씀합니까?(14-15)

지렁이 같지만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는다는 것입니다. 산들을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고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무능력한 자이지만 능력있는 자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포로로 살지만 자유인이 될 것이고 지금은 지배를 받고 노예처럼 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열방의 나라에서 쓰임받은 나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능력없다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여 우리를 도와 주면 능력이 생깁니다. 무식한 베드로를 사용합니다.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하십니다.

이사야 40장 29-3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면 어떻게 됩니까?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힘을 주시는 하나님인 줄 믿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힘으로 독수리처럼 비상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습니까? 한 두 해가 아닙니다. 17년 동안입니다. 적국에 들어가 미친짓도 해 봅니다. 살기 위해서입니다. 두려움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시 18:1-6)”

평생 동안 무수히 많은 두려움의 현장에 있었던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라고 고백했습니다.

 

3. 건강한 인생을 살기 원하는 우리는 하나님이 좋은 결과를 주실 것을 소망하며 미래의 두려움의 올무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16)

사람이 두려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동방의 부자로 많은 자녀를 낳고 살았던 욥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욥기 3장 25절을 보면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라고 탄식합니다. 이 구절은 욥이 평소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줍니다. '내가 이렇게 건강한데 혹시라도 건강을 잃으면 어떡하나? 나의 열 명의 자식을 잃으면 어떡하나? 내가 지금 부자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이 재산을 잃으면 어떡하나?'라와 같은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병적인 두려움이 되어 버리면 건강한 인생 살이를 못합니다. 마지막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병적인 두려움이 된 사람들은 건강한 인생살이를 못합니다.

노만 핀센트 필(Peale)박사에 의하면 과거에 의해서 두려움이 40%이며, 현재에 두려움은 10%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50%라고 합니다. 두려움이 찾아오면 우리는 계속적으로 불행의 사슬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결과를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부정의 올무를 끊지 못하고 영적, 정신적, 정서적, 신체적, 사회적 건강을 잃어 버리고 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보아야 두려움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사41:16 롬8:28; 요한1서 4:18)

16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너에게 두려움을 주는 문제를 날려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회리바람으로 그들을 흩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두려움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인생의 강을 건너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25년 흉년이들고, 아내를 내어 주어야 하고, 적들과 싸워야 할 때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수많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30여 년을 광야에서, 바울은 3년 반 동안이나 아라비아 사막에서 외로운 광야 훈련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시나이 광야에서 40년을 다윗은 17여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며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광야같은 인생에서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성경에 다 기록하지 않아서이지 그들에게 수많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두려움이 병이 되어 인생을 불행하게 끝마치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을 통해 하나님의 훈련을 받고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으로 담대하게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과 새 성품, 새 능력으로 건강한 인생으로 주어진 사명을 다 이루고 인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결국 두려움의 올무를 끊어 버리고 건강한 인생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이어서 계속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미래에 대한 이런 믿음으로 두려움의 올무를 다 끊어 버리고 담대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인생의 가장 두려움의 대상은 죽음입니다. 죽음의 올무도 우리를 두려움의 노예로 만들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다 해결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유진 오닐의 <나사로가 웃었다>라는 작품에서 부활 후 나사로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어 보니까 죽음이 별거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큰 돌 맞고 출렁이던 물로 시간 지나면 잠잠해집니다. 뜨거워진 물도 시간지나면 식어집니다. 미래를 볼 때 너무 두려웠던 것처럼 보인 것도 가보면 그렇게 두려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죽음은 두려움으로 다가갈 문이 아니라 희망을 가지고 들어아야 할 천국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계속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두려워 말라고 세 번이나 명령하고 있습니다.(10, 13, 14). 병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도와 주시고 하나님이 좋은 결론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을 불신하는 죄와 같은 것입니다. 부정적인 두려움과 질병적인 불안과 인생을 건강치 못하게 하는 신경질적 불안 장애는 결코 가치 중립적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파괴하는 죄입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과 고난의 문제가 있다고 하여도 두러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의 능력이 없다고 두러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굳세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오른 손으로 붙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자랑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10절 말씀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너라는 말씀에 우리 성도님의 이름을 넣어 3회 읽어 보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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