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꿈은 이루어진다. (창38:12-1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4519 추천수:7 112.168.96.71
2015-06-03 13:49:10

 

꿈은 이루어진다.


창세기 38:12-18

덴마크라는 나라가 오랜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국토를 잃어버리고 남은 국토가 황폐했을 때 그룬트비라는 목사님이 외친 소망의 메시지에 힘을 얻고 오늘날 저렇게 선진국이 된 것입니다. 독일도 2차 대전 참패로 전 국민이 힘들어 할 때 몰트만이라고 하는 한 신학자가 나타나서 소망의 신학을 외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소망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소망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대를 표현하는 말은 다양하지만 오늘날 젊은이들 중에 해당되는 하나의 표현은 ‘삼포시대’라는 말입니다. 세 가지를 포기한 시대라는 의미입니다. 첫째는 취업을 포기하고, 둘째는 결혼을 포기하고, 셋째는 출산을 포기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꿈을 포기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꿈을 포기하면 우울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현대는 꿈이 없고 우울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 설교하려는 야곱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고 그가 믿는 하나님을 친히 만나서 약속까지 받은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까지도 이스라엘이라고 하나님이 개명해주시는 체험 있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꿈이 사라진 적이 있었습니다. 야곱에게 꿈이 사라진 이유는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아들 요셉을 잃었다는 슬픔 때문이었습니다. 현대는 꿈이 없어 자식을 낳지 않으려는 시대이지만 야곱은 자식을 잃은 슬픔 때문에 꿈이 사라진 것입니다. 당시 야곱의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는 말씀이 창 37:35절 말씀입니다. 모든 자녀들이 위로하되 위로가 되지 않았으며 야곱이 지옥 끝까지 가서라도 요셉을 만나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야곱의 당시 상황은 절박하고 괴로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꿈이 사라진 야곱에게 들려준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유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이야기는 해괴망측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삼류 소설같은 내용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참으로 민망한 사건이 발생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이 본문을 설교 본문으로 잘 활용하지 않습니다. 간혹 이 본문으로 설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본문의 의도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장르와 설교’라는 과목을 강의를 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강조한 내용이 바로 장르의 법칙입니다. 장르란 ‘인식론의 도구’입니다. 장르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면 본문 해석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의의는 내러티브 해석원칙에 따라서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내러티브 해석원칙이란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의 내러티브 안에서는 한절 한절이 각각 따로따로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 전체를 통해서 하나의 거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위 장르의 주제는 상위 장르의 주제를 벗어날 수 없다는 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38장의 내용을 기록하게 하신 목적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창세기 38장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창 38장은 37장과 39장의 사이에서 그 의미가 있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야곱의 전체적인 내러티브가 지니고 있는 의의 속에서 그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창 38장의 특수성은 야곱의 내러티브 속에 있는 요셉에 관한 이야기와 맞물려 있다는 복합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창 38장은 야곱도 요셉도 아닌 유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가 아닌 유다의 이야기만 가지고 그 의미를 찾으려다 보니 많은 오해가 빚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유다의 이야기를 통해서 야곱의 내러티브와 요셉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 창 38장은 요셉을 죽음에서 구해주었던 유다의 이야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다를 통해서 주시할 주제는 물론 아들 주신다는 약속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사실 대를 잇기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됩니다. 유다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이 엘이며, 차자가 오난이었고 삼자가 셀라였습니다. 그런데 엘이 다말이라는 여자를 아내로 얻었는데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엘이 죽은 이유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이 자녀가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살면서 자녀를 낳아서 형의 대를 잇게 하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고엘’제도라고 해서 구약에서는 당연시 여겼던 관습이었습니다. 야곱은 당시의 그러한 법에 의해서 다말이라는 며느리를 차자인 오난의 아내로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난이 그러한 계대결혼 제도에 불만을 품고 자기의 역할을 잘 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죽게 됩니다. 그러면 야곱은 셋째인 셀라에게 다말을 아내로 주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난까지 죽은 처지에서 하나 남은 셀라마저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셀라가 어리다는 핑계를 대면서 다말을 친정으로 보내버립니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기다리던 다말이 시아버지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작전을 짜서 창녀처럼 꾸미고 시아버지의 자식을 갖게 됩니다. 참으로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태어난 자식이 베레스와 세라였습니다. 그리고 그 베레스는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가는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유다의 대를 잇게 하시기 위해서 다말이라는 여자를 통해서 아이를 낳게 하셨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다의 대를 잇게 하기 위해서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부정한 관계를 조장하신 것은 아닙니다. 약속의 통로였던 유다의 아들들이 잘못 행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여지없이 징계하시고 심판하신 분이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을 조장하신 분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왜 유다는 며느리와 자녀를 낳게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조장하신 것이 아니라 유다의 실수와 며느리의 의도성이 결부된 인간적인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코 칭찬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건의 결과를 선으로 활용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들이 잘못한 것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신 하나의 과정으로 인정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예를 한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아는 신앙 좋은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자매와 만나서 결혼 전에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조건 좋은 아들이 유학까지 같다 와서 볼품없는 자매를 좋아하게 된 사실에 대해서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반대를 많이 했었지만 신앙인으로서 이미 손주까지 낳은 며느리를 거부할 수 없기에 가족으로 인정해서 잘 살고 있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유다와 다말 사건을 볼 때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발생한 인간들의 실수를 선하게 활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간들이 저질은 모든 실수를 다 선하게 사용하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다 지쳐 온 가족이 합의한 후에 몸종인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부정한 방법이 아니라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아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유다의 사건은 악한 방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선하게 활용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한 메시지가 유다와 다말 사건이 선한가 악한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곱에게 주신 메시지가 있고 당시 모세가 광야 백성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유다의 특수 상황을 통해서 야곱을 교훈하시려는 의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와 며느리의 부정한 사건을 폭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유다의 대를 잇기 위해서 계획하신 것이 시아버지와 며느리를 통해서 자식을 낳게 하셨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도 아닙니다. 그 두 가지는 모두가 하나님을 잘못된 하나님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두 가지 모두 합당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한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선 이해가 필요합니다. 야곱의 아들들 중에서 유다와 요셉에 관한 선 이해와 앞 뒤 문맥에 관한 이해입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는 두 가지 약속은 땅을 주신다는 것과 아들을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두 가지가 이삭을 통해서 그리고 야곱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에게는 열 두 아들이 태어나서 열두지파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하셨다는 두 가지 약속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습니까? 모세 오경 속에서 그 해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모세 오경에서는 유다와 요셉이 쌍벽을 이루는 사역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다는 메시아의 계보를 형성하면서 광야 교회를 이끌었던 지파이며, 그 대표는 갈렙이었습니다. 요셉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를 기근에서 보호해주고 출애굽 때는 가나안 전쟁에서 큰 역할을 했던 지파입니다. 그리고 그 대표는 여호수아였습니다. 출애굽 했던 장정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가나안에 입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지파의 역할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과 성경 전체의 내용을 근거로 할 때 유다 지파를 통해서는 아들 주신다는 약속을 성취하시고, 요셉 지파를 통해서는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성취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선발대로 애굽에 내려가서 국무총리가 되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을 지켜주고 보호해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때는 레위지파인 모세를 세워서 출애굽시키더니 결국은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 지파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정복전쟁과 정착을 시키도록 하셨습니다. 결국 요셉지파를 통해서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꿈을 주신 것입니다. 그 꿈은 요셉이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될 것이며 인도자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요셉은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오해하여 혼자서 통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7장에서 땅의 약속에 대한 중요한 역할을 위해서 요셉은 떠났습니다. 정상적으로 떠난 것이 아닙니다. 꿈을 안고 있는 요셉이 떠난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떠나게 됩니다. 모든 이를 울리고 아비를 통곡하게 하는 방법이지만 그 방법이 가장 유리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요셉의 형제들을 악하게 사용하신 것은 아닙니다. 순전히 사람들의 악한 심성이 작용해서 동생을 팔아버리는 잘못을 범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하게 활용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먼 훗날 요셉이 형들에게 고백한 내용과 같습니다.(창 50:20)

 

그런데 아들 주신다는 약속은 유다 지파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 중에서 유다는 가장 신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태어날 때 유다라고 이름붙인 것도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의미로 지었던 이름입니다. 챵 37장에서 유다가 요셉을 살리는데 그 역할을 했던 내용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생명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창 38장에 나타난 것처럼 대가 끊어지려는 위기에서 극적으로 대를 잇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데 악을 선하게 활용하시는 모습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볼 때 요셉이나 유다는 하나님의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이름의 뜻처럼 신앙안에서 생명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약속 중에서 아들 주신다는 약속을 성취하는 계보를 형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열두 지파가 있었지만 오직 유다 지파를 통해서 아들 주신다는 약속을 성취하는 통로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대를 잇지 못하고 맥이 끊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며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꿈은 곧 아들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를 통해서 그의 맥이 끊어진 대를 어떻게 잇게 하시는가를 보여주신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는 사람은 이처럼 반드시 꿈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또 하나의 선 이해는 앞 뒤 문맥의 이해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38장에서 유다의 이야기를 기록하게 하신 것은 앞 뒤 문맥의 중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후문맥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창세기 37장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인 요셉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는 내용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해서 애굽의 상인들에게 팔아버리고는 마치 요셉이 맹수에게 물려 죽은 것으로 가장했기 때문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야곱은 자신의 옷을 찢으며 아들을 위해서 오래도록 애통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셉이 들려준 꿈을 생각할 때 야곱은 요셉의 꿈에 대한 불신을 떨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39장에서는 애굽의 시위대장의 집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보여 주셨던 꿈처럼 반드시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때가 오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38장의 내용을 설교하면서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제목을 정해보았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꿈은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 제목은 38장을 독자적으로 해석한다면 관계가 없거나 거리가 먼 제목같이 여겨집니다. 그러나 38의 내용은 아들의 죽음을 애통하는 야곱에게 무엇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삽입장의 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제목이 될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유다의 이야기는 아버지인 야곱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습니까?

야곱은 요셉의 꿈을 들은 사람입니다. 아버지인 자신이 사랑하는 것 외에도 하나님께서 요셉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가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했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죽었다면 그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요셉을 잃었다는 슬픔에 잠겨서 요셉의 꿈을 잊어버리지나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야곱은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기에 혼자서 통곡하고 괴로워하는 신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야곱에게 암시라도 해 주셨다면 야곱이 덜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혼자서 오해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야곱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요셉의 꿈을 들었지 않았느냐 그 꿈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지옥까지라도 내려가서 요셉을 보겠다는 말이 웬말이냐 나를 믿지 못하고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하느냐 요셉은 지금 훗날에 너희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애굽에 선발대로 보내서 미래를 예비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서 벌써 애굽에 파송하여 너희를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 꿈이 있다면 그 꿈을 믿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꿈을 포기하지 말고 믿어라 하나님은 죽은 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고 꿈을 포기한 야곱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메시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의 사건을 통해서 야곱에게 깨닫게 하신 의도는 유다의 맥을 잇는 역사가 바로 의외로 드러나듯이 요셉도 야곱이 생각한대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서 반드시 꿈을 이루실 것이라는 암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야곱에게 요셉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믿음을 가지라는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오늘날 성도에게도 이런 경우가 종종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모르기 때문에 혼자서 애태우며 괴로워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를 위한 계획은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어떤 경우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광야 교회 백성들에게 무슨 의도로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가나안에 대한 꿈을 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모세가 기록할 당시에는 이스라엘은 광야 교회를 형성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들은 조그만 어려움이 있으면 가나안에 대한 꿈을 포기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서 다시 노예생활하기를 자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꿈을 버리지 말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다지파 갈렙과 요셉지파 여호수아도 모세를 도와서 가나안의 꿈을 버리지 말 것을 역설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창세기 38장의 의미가 얼마나 넓게 확산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 내용을 기록하라고 하신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본문을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좌절과 절망이란 성도에게는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희망을 갖게 하신 분이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일시적으로 야곱처럼 통곡할 수는 있지만 절대로 절망해서는 안 된다. 요한복음 16:21절에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도가 겪는 세상의 근심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잠깐동안 겪는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될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세상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건강상의 어려움이나 물질적인 어려움이나 그밖에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서 힘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주신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미래가 있고 세상을 이길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 안에서 주어진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잠시 당한 어려움은 해산의 고통일 뿐입니다. 해산의 고통은 더 큰 출산의 기쁨을 누리기 위함임을 잊지 마시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야곱 모르게 요셉을 선발대로 보내서 미래를 예비하신 것처럼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놀라운 계획을 실천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해로 인한 눈물을 보시고 어이없어하지 않도록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여러분이 간구하는 모든 꿈이 속히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열린교회/문연철 목사/ 2015.5.31

SNS 공유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