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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손에게 물려줄 위대한 유산, 화목(잠17: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7480 추천수:12 112.168.96.71
2015-05-03 09:58:57

 

자손에게 물려줄 위대한 유산, 화목

잠언17:1

 

가수 이효리를 아실 것입니다. 이상순씨와 결혼했습니다. 이상순씨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신문에 나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돈이나 외모가 아니었답니다. 이상순씨의 “화목한 가정 분위기”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족은 명절에 만나면 항상 싸우면서 끝나는데 이상순 씨는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산 사람이면 내가 평생 믿어도 되겠다 싶었다고 합니다. 시부모님이 화목하게 사시며 연세가 많으신 데도 조조영화를 보러 다니신다고 합니다.

프리미엄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직장인들의 인생의 최종목표를 조사했습니다. 1위가 무엇이겠습니까? “화목한 가정(28.3%)”이었습니다. 어린이와 중학생을 대상으로 행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물었습니다. 첫째가 '화목한 가정(43.6%)'이었습니다.

서울 청소년 상담지원 센터는 서울시 19개 중고교 재학생 및 17개 대안학교, 청소년쉼터 이용 청소년 1,553명을 대상으로 생활실태 및 의식조사를 했습니다. 응답자의 70% 이상(73.1%)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고 했습니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9.7%가 “가정의 화목”을 행복 조건 제1순위로 꼽았습니다. 그만큼 부모나 자식이 가정화목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위대한 유산이 무엇인가를 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예전에 시골집에 가면 많은 가정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글이 많이 쓰여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집에서 화나면 만사가 성난다”는 말이 아니라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가정의 화목은 가정을 다스리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자 사회생활의 근본으로 중시되었습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자손들에게 위대한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짧은 본문이지만 행복을 지배하는 우리 마음 즉 가치관과 감정의 통제력, 행동을 결정짖는 신앙 이 세가지 관점에서 본문을 묵상하며 자손에게 물려줄 위대한 유산, 화목한 가정에 대하여 교훈을 받으려고 합니다.

 

1. 재물보다 화목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을 갖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마음 문제, 즉 가치관,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표준 새번역에서는 “마른 빵 한 조각을 먹으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진수성찬을 가득히 차린 집에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낫다.(잠17:1 표준새번역)”라고 번역했습니다.

공동 번역에서는 “집에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다투는 것보다 누룽지를 먹어도 마음 편한 것이 낫다.(잠17:1 공동번역)”라고 번역했습니다.

원문을 직역을 하면 “다툼의 희생 제물들이 가득 찬 집보다 마른 빵 부스러기와 그것과 함께 있는 평온함이 좋다.”라는 말입니다. 원문에서는 맨 앞에 “토브(좋다)”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하신 후 사용했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과 같습니다. 비교하여 무엇이 좋느냐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어 놓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했는데 가정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무엇이냐는 문제입니다. 화목한 가정이 보시기에 좋으신 것입니다. 심히 보시기에 좋았지만 범죄하여 에덴에서 추방되고 큰아들이 작은 아들을 쳐 죽이는 아담가정은 화목한 가정이 아니고 화목을 위대한 유산으로 물려준 가정이 아닙니다. 가정의 화목을 파괴하는 것이 성적 타락이나 권력욕, 재물욕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록한 사람은 솔로몬입니다. 부귀영화를 충분히 누린 사람입니다. 밥먹는 그릇이 금그릇일 정도로 원이 없이 즐기고 수많은 여인들을 거느리면 부귀를 누린 사람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다윗입니다. 그런데 그 부자집에서 형제들이 겁탈하고 권력 다툼을 하고 화목하지 못합니다. 어릴 때 이복형제 자매끼리 성폭행도 하고, 보복으로 죽이기도 하는 불행을 겪었습니다. 솔로몬은 다섯 살 때쯤 이복형 압살롬이 일으킨 내란 때문에 아버지 다윗이 맨발로 울면서 피난할 때 같이 피난했습니다(삼하 13-18장).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도 후궁과 첩을 1천 명이나 두었으니(왕상 11:3) 그 집안에 미움과 다툼이 그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런 불행한 가정을 체험한 사람으로 이런 진리를 고백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가정 화목인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 가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가정화목보다 우선시 하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돈 때문에 형제가 다투고 부부가 싸우고, 부자가 원수되는 것보다 가난해도 가정화목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탐욕은 도덕적 감각을 마비시키고 다툼을 유발합니다. 가정이 화목치 못한 가정은 대부분 물질을 최우선시 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물질도 인간행복에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화목보다 우선시할 때는 우상이 될 수 있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네 가지 경우수의 가정이 나올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마른 빵 한 조각 먹으면서 화목하게 지내는 가정입니다. 둘째는 진수성찬을 먹으면서 다투는 가정입니다. 셋째는 마른 빵 한 조각 먹으면서 다투는 가정입니다. 넷째는 진수성찬 먹으면서 화목하게 지내는 가정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떤 가정이 되시길 원하십니까?

가장 나쁜 경우는 마른 빵 한 조각 먹으면서 다투는 가정일 것입니다. 가장 우리가 바라는 것은 진수성찬을 먹으면서 화목하게 지내는 가정일 것입니다. 행복은 돈 순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결국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우리의 생각, 우리의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화목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우리의 생각입니다. 이것이 지혜 있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가난해도 얼마든지 화목하게 살 수 있습니다. "화목"이라는 말은 “샬르와”로 ‘평온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샬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평화와 번영’ ‘평온, 안락함’을 내포하는 말입니다. 우리말로는 ‘서로 뜻이 맞고 정답고 하나됨’으로 해석해 놓았습니다. 영어에서는 ‘평안, 우환이 없음, 조용, 안식, 기쁨’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평화가 있는 가정이 화목한 가정입니다. 평안이 있는 가정이 화목한 가정입니다. 평온이 있는 가정이 화목한 가정입니다. 안락함이 있는 가정이 화목한 가정입니다. 우환이 없는 가정은 화목한 가정입니다. 갈등과 다툼이 없는 가정이 화목한 가정입니다. 서로 뜻이 통하는 가정이 화목한 가정입니다. 돈 때문에 가정의 평안과 가정의 평온, 가정의 평화, 가정의 안락을 깨뜨리고 갈등과 다툼으로 사는 가정을 만들어 후손에게 남겨주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 때문에 화목을 깨기보다는 물질이 부족해도 화목하게 사는 가정을 만들어 후손에게 남겨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 가정의 실태는 어떻습니까? 세계 법의학계에 통계가 보고된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가 친족 살해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경찰 통계를 보면 최근 7년 동안 매년 평균 1,100건씩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가운데 가족 살해가 평균 80건이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가족 살해 사건은 611건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살해한 경우도 230건으로 이 역시 가장 높습니다. 그러니까 살인사건의 7% 정도가 가족 사이에서 일어났다는 겁니다. 프랑스 2.8%, 미국 2%, 영국 1.5%에 비해서 매우 높은 편입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부부 불화가 있었던 가정은 17%, 부모와 자식 간 다툼이 잦았던 가정은 8%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납니까? 이유는 사건 당시 66%의 가정에서 가해자가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가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가정 화목을 방해하는 것이 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고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잘해 놓고 사는 집과 잘사는 집은 다릅니다. 혼수로 혼사가 깨질 수 있습니다. 많은 것 가졌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재산순위가 행복순위는 아닙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돈으로 편안한 잠은 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얼마든지 좋은 책은 살 수 있지만 지식은 결코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살 수 있지만 식욕은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아름다운 옷과 예쁜 장신구는 살 수 있지만 참된 아름다움은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좋은 집은 살 수 있지만 행복한 가정은 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사치를 꾸밀 수 있지만 문화는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향락을 누릴 수 있지만 만족은 돈으로 누릴 수가 없습니다. 돈으로 종교생활은 할 수 있지만 영원한 생명은 결코 돈으로 구할 수가 없습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세상 돈으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영적인 것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돈으로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돈으로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돈으로 성령의 권능을 체험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돈으로 성령이 주신는 인격의 변화를 누릴 수 있습니까? 우리가 돈으로 성령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 만족을 체험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돈으로 성령이 주시는 기적들을 가질 수 있습니까? 돈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으로 가장 고귀한 것들은 할 수 없습니다. 태양 빛을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다된다는 이 생각을 버려야 우리는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고 가정을 화목할 수 있고 세상은 좀 더 밝아 질 수 있습니다.

한 때 돈을 많이 벌어 세계를 누비며 사업했던 전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씨는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라는 책을 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에 대하여 이렇게 그 책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6.25때 대구에서 피난살이를 했답니다. 아버지는 이미 납치되어 안계셨고, 형님들은 군에 입대해 어머니와 동생들 네 식구의 생계를 해결해야할 가장이 되었답니다. 14살 때 방천 시장에서 신문팔이를 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100장을 팔아야 네 식구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답니다. 집에는 어머니와 두 명의 어린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신문을 다 팔고 밤늦게 들어가면 어머니와 동생들은 대개 그 때까지 식사를 하지 않고 자신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함께 밥을 먹기 위해서였답니다. 종일토록 고생하고 돌아왔지만 밥상에 네 식구가 마주 앉았을 때 그 밥은 그렇게 맛있었고 그 때의 기분은 그렇게도 행복했답니다. 그런데 날씨가 궂으면 100부를 팔지 못한답니다. 다 팔아야 식구들이 굶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팔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 보면 어김없이 어머니와 동생들이 자고 있었답니다. 이유는 뻔했답니다. 밥이 딱 한 그릇밖에 없으니 굶고 자는 것이었답니다. 한 그릇을 내 앞에 내놓으며 어머니는 말씀하였답니다. “우리는 먼저 먹었다. 시장하지? 어서 먹어라.” 그는 이렇게 써 놓고 있습니다. “미리 동생들을 재운 어머니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밖에서 돌아온 형 몫의 밥 한 그릇을 위해 허기진 배를 안고 억지로 잠을 청한 동생들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러면 나도 눈물을 감추며 말했다. “나는 밖에서 오뎅이랑 사 먹었더니 배가 불러요. 어머니랑 동생들이나 드세요.” 어머니와 나는 서로 거짓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 우리의 가슴으로 차오르던 뜨겁고 뭉클한 기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행복이란 게 다른 것이 아니다. 무슨 거창한 것도 아니고 무지개처럼 손에 잡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생애 가운데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이 아닌가도 싶다. 어머니가 날 위해 주고 동생이 날 위해 주고 또 내가 어머니와 동생들을 내 몸보다 더 위해 주고....... 그 때 우리는 가난했지만 부자였다.”

하나님은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 15:17)”라고 말씀합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 15:16)”

 

2. 살벌한 다툼보다 화목을 우선시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감정 통제를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단순하게 화목한 가정이 되려면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 폭력이 있으면 안 됩니다. 감정통제를 제대로 못하면 정서적 폭력, 언어적 폭력, 물리적 폭력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가정 폭력은 모든 불행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화목한 가정을 파괴합니다. 경제적으로 더 잘 사는 것 같은데 가정 폭력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2년 8천762건, 2013년 1만6천785건, 2014년 1만7천557건으로 해마다 가정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랍니다. 가정의 달 5월에 가정폭력이 최다라고 합니다. 아이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고, 부모님께 자식의 도리를 다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아이와 함께 놀러갈 장소를 정하거나 양가 부모님께 드릴 용돈의 액수를 정하다 보면 부부간 의견 충돌이 생겨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가정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가정 화목의 유산을 남겨주는데 힘써야 할 5월에 오히려 문제 부모가 되어 문제 아이를 만드는 달이 된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볼륨을 줄여 달라 했는데 줄여주지 않는다고 폭행하고 시아버지 팔순잔치에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하고, 떡국을 끓여달라고 했는데 미숫가루를 타 줬다는 이유로 폭행하기도 하고 심지어 교회를 가기로 해놓고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하기도 한답니다. 부부 중 34.1%가 1년에 적어도 한 차례 이상 폭력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신체적 학대를 받는 자녀가 72%, 성적 학대를 받는 자녀가 3.7%라 심각한 수준입니다. 폭행이나 학대를 받는 노인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가정폭력은 70% 이상 자녀들에게 대물림까지 된답니다. 이 살벌한 가정 문화를 내 대에 끊어 버리고 화목한 가정의 위대한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문제는 남편이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답니다. 2013년에는 830건이었는데 지난해 1100여건으로 32%가 늘었답니다. "신고한 남편들은 힘이 없어서 맞는 게 아니라 부부 사이의 주도권을 빼앗긴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아내가 자신보다 애완견을 더 좋아하니까 이사갈 때는 애완견을 꼭 품에 앉고 다닌다고 합니다. 자신은 관심없어도 애완견은 찾으니까 꼭 데리고 가라고 말입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50대 부터 80대 남자 분들이 다들 집에서 마누라한테 매를 맞고 병원에 입원을 했답니다. 서로 왜 맞았는지 사연을 들어봤답니다. 50대 " 밥달라고 했더니....흑흑", 60대 " TV 안보인다고 했더니..흑흑", 70대 "어디가냐고 물어봤다가.. 흑흑", 80대 노인 " ..... 아침에 눈 떴다고......" 맞었답니다. 찍 소리도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은퇴한 어떤 60대가 모처럼 친구를 만나 회식하고 집에 연락도 없이 새벽 늦게야 도착했답니다. 아내의 따발총 같은 잔소리는 시작되었답니다. 남편이 변명을 하려 하자 더 화가 난 아내가 " 찍 소리도 하지마~!!"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남편이 혼자만 듣게 "찍...."라고 잤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잠 19:13; 27:15-16). "다투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21:9, 19; 25:24).

싸움은 화목한 가정을 허무는 적입니다. 어떤 경우도 다툼으로 화목의 유산을 쓰레기 통에 쳐 박아서는 안 됩니다. 가족 구성원들의 인간관계가 다툼이 아니라 화목한 관계를 가지고 가정생활하는 유산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가화만사성이 단지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실제 영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역학’이라는 학문에서는 사람의 수명조차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합니다. 부모가 싸우고 이혼하면 아이들의 수명이 4년 단축되고 전염성 질병에 저항하는 면역력이 약화된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사교성이 떨어지고 더욱 공격적이 되어 또래에게 거절당하기 쉬울뿐더러,우울증과 다른 내적 장애를 일으킬 확률도 높답니다. 피해자들은 자존심이 상하고, 적개심을 터뜨리지 못하고 억압해야 하고, 자신에 대한 모멸감 자괴심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무력감과 죄의식에 시달려야 합니다. 부부의 관계가 아이 성격에 50% 이상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합니다. 싸우면 어린 아이들도 다 압니다.

어떤 목사님이 사소한 문제로 부부 싸움을 했답니다. 딸 아이가 세 살 때였답니다. 빤히 쳐다보고 있던 딸 아이가 부부 싸움을 하는 자신과 아내를 보고 앉으라고 하더랍니다. 세 살 딸 아이가 시키는대로 했답니다. 그러자 이 딸 아이가 목사님 부부와 어깨동무를 하고 세 사람의 머리를 가운데로 모은 후 한 마디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쫌 사이좋게 살자."

 

화목한 가정이 건강에 좋은 이유 6가지를 미국 허핑턴포스트가 소개했습니다. 가족이 화목하게 식사를 하면 아동이나 청소년들은 과체중이 줄어든답니다. 청소년의 경우 담배나 마약을 시도하는 사례가 더 적고 어린이들은 언어능력을 발달된다고 합니다.

형제자매가 있으면 더 행복하고 더 낙관적이며, 스트레스도 덜 받을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능력도 더 낫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유대감을 가진 자녀들은 수업, 과외활동 등에서 평균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답니다.

우리 나라 중앙일보(열려라 공부)에서도 조사를 했는데 화목한 가정이 전교 1등을 만든다고 합니다. 1966년 미 존스홉킨스대 제임스 콜먼 교수는 ‘콜먼의 교육기회 균등에 대한 연구’(콜먼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학생 60만 명과 교사 6만 명, 그리고 이들이 속한 학교 4000개를 광범위하고 폭넓게 연구한 결과 교육정책이나 학교시설· 교육과정· 교사의 질 등 소위 ‘학교 효과’보다 ‘학생의 가정 환경’과 ‘친한 친구의 가정 환경’ 이 두 요소가 학업성취도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습니다. 가족 간 끈근한 정서적 유대감이 있는 화목한 가정이 아이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줘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준다는 얘기입니다. 아이들 공부 잘 하게 하려면 화목한 가정을 만들라는 말입니다.

부부가 행복하면 병도 빨리 낫는답니다. 원만한 관계를 갖지 못한 부부는 원만한 관계의 부부보다 질병의 회복 속도가 40% 더딘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은 어린이들은 일생동안 면역력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감정코치>라는 책이 있습니다. 존 가트만 교수가 쓴 책입니다. 이 분은 가정 관계의 문제의 근본은 말에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부부는 관계가 좋고 왜 어떤 부부는 관계가 좋지 않을까?’를 알아보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실험에 참여했던 부부들의 5년 후, 10년 후, 15년 후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며 연구한 결과 놀랍게도 이혼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이혼 사유가 흔히 말하는 '성격차이' 때문이 아닌 '부부 싸움의 방식' 때문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흔히 알고 있는 성격차이, 학력, 직업, 수입, 외도, 폭력, 음주, 돈, 고부갈등 등의 요인은 드러나는 현상일 뿐이며 실제로 부부를 불행하게 만들고 이혼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은 잘못된 싸움 방식, 부정적인 싸움의 방식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불행하게 하는 말은 “비난, 경멸, 방어, 담 쌓기”였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어떻게 말하는 가를 보면 91% 이상 앞으로 이 부부가 어떻게 될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싸우면 이혼하고 가정은 화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항상 그렇지 뭐!” “만날 술이나 마시고 들어오고!” “결혼기념일 한번이라도 챙겼어?” 그동안의 잘못을 모두 뭉뚱그려 비난하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도 “이게 당신 탓이지 내 탓이야?” “왜 나만 잘못했다고 그래?” “그러는 넌 뭘 잘했는데?”라고 방어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자존심 싸움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이 새대가리야”“주제 파악이나 하시지.” “흥! 꼴에 잘난 척은!” 등과 같이 상대를 경멸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못난 사람 취급을 해 조롱하고 비웃는 것이어서 비난보다 훨씬 기분 나쁘게 한다고 합니다. 한쪽에서 비난을 시작하면 ‘혼자 실컷 떠들어라’ ‘이럴 땐 그저 피하는 게 상책이지’ 이런 속셈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것이 담쌓기라고 합니다. 싸우지는 않지만 적대적인 감정이 풀어지지 않은 상태로 불신만 점점 더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나 전달법으로 해 보라는 것입니다. 비난에 대한 해독제는 적절한 불평과 요청이라고 합니다. 예컨데 퇴근했을 때 어질러진 집을 보고 “당신은 도대체 뭐하는 여자야, 집도 안 치우고”라고 말하면 비난이 되지만 “집이 너무 지저분하네. 퇴근했을 때 나는 집이 좀 깨끗했으면 좋겠어’라고 하면 상황에 대해 불평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전하는 것(나 전달법,I 메시지)으로 싸움으로 번질 염려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방어에 대한 해독제는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요즘 피곤해서 집을 못 치웠어. 당신이 싫어하는 거 아는데 미안해요” 했을 때 계속 화낼 남편은 드물다는 것입니다.

경멸에 대한 해독제는 호감과 존중을 표현하는 것이고, 담쌓기에 대한 해독제는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감정의 비등점을 높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눅 6:31)” 인간관계에서는 다양한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 말씀만 명심하고 실천해도 화목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모범적인 부부생활을 해 온 목사님 부부가 결혼기념일 60주년인 회혼식을 맞이했답니다. 한 사람이 질문했답니다. "사모님, 두 분이 60년이나 화목하게 살아오신 비결이 뭔가요?" 사모님이 대답했답니다. "항상 배우자의 말에 동의해 주는 것이 우리의 화목한 결혼생활의 비결이랍니다." 그 사람이 이번에는 목사님에게 물었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내가 말했으니 그 말이 맞을 거요." 내가 받고자 하는 대로 가족에게 대접하면 가족은 다투지 않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위대한 유산으로 물려줄 것입니다.

 

3. 온 가족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잠언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세상을 다스리는 지혜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혜의 근본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1:7)”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범죄로 에덴에서 잃어버린 가정의 화목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불화하고 인간과 인간이 불화하는 것은 죄 문제 때문입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이후 하나님과 인간은 화목하지 못하였습니다. 인간과 인간이 화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여기서 화목은 ‘덮어 주다.’ 뜻입니다. 곧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이 만족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덮고 죄 용서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 죄를 덮어 준 것처럼 가족의 허물과 죄를 덮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어떤 부모도 용서해 주고 화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어떤 자식도 용서하고 화목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남편도, 어떤 아내도 예수님 때문에 용서하고 화목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5:11)"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살전 5:13)”

어떤 사람은 “뭐 화목할 만한 구석이 있어야 화목하지...”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용서해 주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날마다 싸웠던 부모가 있어도 내 대에서는 그 저주스런 불화의 가정을 십자가 밑에 파묻고 내 대부터 십자가의 보혈로 화목을 위대한 유산으로 남겨주면 됩니다.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고후 5:18)”

예수님 때문에 아버지와 화목해야 합니다. 화목한 가정은 서로의 허물을 덮어줍니다. 어머니와 화목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와 아들과 딸이 화목해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아내를 사랑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남편을 사랑합니다. 예수 예수 예수님 때문에... 할렐루야 할렐루야 우리 모두 함께 기쁜 찬양하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듣도록”

너무 남편 조건 보며 구박하며 불행을 스스로 자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이가 들면 아내들이 너무 많이 변한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부부가 TV 채널을 놓고 가끔 다툴 때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아이를 하나 낳았을 때에는 부인이 보던 채널을 남편이 돌리면 부인이 그냥 그렇게 얘기했데요. '여보 당신 보고 싶은 것 봐. 나는 그냥 애나 재울게.' 그런데 애가 둘이 생기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남자가 TV에 생명을 걸어 쪼잔하게.' 그런데 애가 셋이 되면 부인이 남편을 탁 째려보면서 이렇게 말한답니다. '지금부터 숫자 센다. 하나! 둘! 셋!' 힘있다고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되지 말고 언제든지 어떤 경우든지 피스메이커가 되어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것 남겨 줄 것 없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화목하게 사는 가정의 유산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 화목됐네 예수 안에서 우리 화목됐네 하나님의 영광 함께 누릴 소망 있네 예수 안에서 우리 화목됐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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