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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격차를 만드는 태도(3) 사람을 대하는 태도(마25:31-4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9357 추천수:9 220.120.123.244
2023-03-19 04:30:03

삶의 격차를 만드는 태도(3)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마25:31-46

 

오늘은 삶의 격차를 만드는 태도 세 번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삶은 큰 격차가 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날 밤, 한 부부가 작은 호텔에 들어왔답니다. 그런데 방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우리 성도님이 안내석에 앉아 있었다면 어떻게 그 부부를 대하였겠습니까? 당시 조지 볼트로라는 사람이 근무했는데 그는 친절한 태도로 "이 빗속에 그냥 돌려보낼 수 없으니 괜찮으시다면 제가 쓰는 방에라도 묵고 가시죠"라고 했답니다. 이 부부는 그의 친절한 태도에 감동받아 하룻밤을 잘 쉬었답니다. 몇 년 후 조지 볼트로는 이 부부의 초청을 받아 뉴욕으로 가게 되었답니다. 그는 조지 볼트로를 데리고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로 가 "이것이 바로 당신에게 관리를 맡길 호텔이오"라고 말했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그가 근무한 호텔에 방문한 사람은 뉴욕에서 가장 화려한 특급 호텔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소유주인 '윌리엄 월도프아스토'였습니다. 사람에 대한 태도 볼트로의 태도가 그의 인생에 큰 차이를 만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식당에서 노부부가 휴게소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젊은 20대 연인들도 식사를 하러 들어왔습니다. 식사를 하다가 노부부 아내가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 뜨리면서 옆에서 식사하던 젊은 연인의 밥그릇을 넘어뜨렸습니다. 식당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떤 태도로 노부부를 대하겠습니까? 그때 젊은이는 "시발 늙어가지고 기어 나와서 민폐네 진짜 늙으면 집에 처박혀 있지 왜 나와서 지랄인지."라고 말했답니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먹으니 실수가 많아지네요.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정중하게 사과했답니다. 젊은이는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나이는 처먹어 가지고 집구석에 처박혀 있지. 냄새나는 것들 나가자." 하면서 식사를 계산했답니다. 버릇없는 태도, 싸가지 없는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노인은 화내지 않고 "젊은이 미안하게 됐습니다. 계산은 우리가 하겠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젊은 연인은 "됐어요. 됐어."라고 말하고 계산하고 나갔버렸답니다. 젊은 연인은 기분이 상해 차를 급하게 빼다가 옆에 있는 차를 긁었답니다. 노부부도 뒤따라 나오면서 차를 타려고 하니 자신의 승용차를 극고 나가는 것입니다. 노부부 차는 1억 8천 짜리 메르세데스 벤츠였답니다. 젊은 여인은 차에서 내려 긁힌 상황을 보고 어쩔 줄 몰라 쳐다보니 그 노부부였답니다.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른 젊은이는 "사장님 죄송합니다."라고 했답니다. 할아버지는 "차 운전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나이를 먹어 바깥으로 많이 돌아다녀서 죄송합니다."라고 했답니다. 수리비만 2800만원 나왔답니다. 할아버지는 속으로 말했답니다. "당신이 식당에서 나에게 친절하게 대했다면. 난 차수리비를 청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에 따라 그 결과는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사람에게 변하지 않는 것은 아이큐와 성격이라고 합니다. 아이큐와 성격을 잘 변하지 않는데 아이큐와 성격을 합해 기질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기질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깁스(gibbs)라는 학자에 의하면 실제로 지능지수나 학교시절의 성적이 인생에서의 성공을 예언하는 정도는 20%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지능지수(IQ) 보다 대인관계 지수(NQ)가 성공적인 삶을 사는데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MBA 과정에서 유수 기업 CEO들을 상대로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전자는 응답자의 85퍼센트가 '원만한 인간관계 및 다른 사람과의 공감 능력'을 꼽았답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위건(A.E.Wiggan) 박사는 직장, 가정, 사회생활 등 각 분야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전문지식이 모자라 실패한 사람들은 불과 15%밖에 안 되었답니다. 나머지 85%의 사람들은 모두다 인간관계를 잘못했기 때문에 인생에 실패하는 것을 발견되었답니다. 그만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잘못된 인간에 대한 태도가 인간관계를 망치게 되고 전쟁을 일으키고 세상을 지옥같이 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쳇GDP>에게 “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느냐”라고 질문을 던지니까 4가지로 답해 주었습니다.

첫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좋으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에게 더 많은 신뢰와 존중을 가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의사소통하는 데 있어서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더 쉽게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며, 상호간의 이해와 협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성취감을 높여 준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의 자신감과 자존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넷째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내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능력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론은 이렇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항상 긍정적이고 존중하며 이해심 있는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윤리 선생님처럼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예수님은 사람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라고 말씀해주고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에 대한 태도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그의 가르침은 사랑과 관용, 자비, 겸손, 서로 돕는 마음 등을 강조했습니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서로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많이 강조하신 것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씀입니다.”라고 대답하며 설명해 나갔습니다. 참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과거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성경을 많이 읽어야 했고 그 말씀을 많은 시간을 들여 묵상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여러 주석들이 나오고 책들이 나오면서 주석과 책을 참고하며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자 구글을 통해 정보를 취득했습니다. 좋은 정보를 찾으려면 많은 시간을 드리고 많은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질문을 던지면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분야에 대하여 전문가가 아니라고 해도 그럴듯한 답을 단숨에 얻어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여러 차례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사람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라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람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로를 가져야 합니다.

4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4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 때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면서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 형제는 좁게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넓게는 예수님이 돌보신 병들고 가난한 이웃들,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35,36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6종류의 사람과 예수님을 동일시하여 말씀하십니다. 주리는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를 예수님 대하듯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사람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는 눈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을 이용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사람을 내 유희물로 보지 않습니다. 사람을 물건이나 짐승처럼 보지 않습니다. 사람을 수단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차별대우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경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으로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 안에 있는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칸트는 “너는 너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간주하여야 하며,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을 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타인을 착취의 대상으로 여겨 노동을 착취하고 재능을 착취하고, 시간을 착취하고 성을 착취합니다. 자신과 동일한 존귀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를 사회의 좀비로 취급하여 인권이 발달 되지 않을 때는 장애인을 죽여 버렸습니다. 히틀러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인들을 쓸모 없는 자라고 20여만명이나 무참하게 살해해 버렸습니다. 문명이 발달되고 인권이 발달된 지금도 인간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많은 아동들이 저임금 노동으로 착취당하고 기계 부속품처럼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까? 사람을 경쟁의 태도로 바라보고 일등만 살아남는 세상이라고 하니까 끝없는 경쟁으로 지옥같은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종말의 시간은 종말 9초전을 가르키고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핵전쟁의 위협, 기후 변화, 팬데믹, 미중의 패권싸움, 대만을 중심으로 한 미 중간의 갈등 등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신냉전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토크빌이 “과거가 미래를 향한 빛을 비추지 못한다면 인간의 정신은 어둠 속에서 방황한다”라고 했는데 영국이 패권국이 되어 세상에 영원한 평화가 있을 듯한 시기에 사라에보에서 총성이 울려 세계 대전이 일어났듯이 지금은 평온한 것같지만 어디에서 어느 미치광이가 방아쇠를 당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질서가 무너지고 혼돈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주전자의 물이 100도가 되면 움직이는 것처럼 내부 에너지의 증가로 혼돈의 시대, 무질서의 시대, 불완전한 상태로 나아가는 순간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증유기가 가득찬 방처럼 구조적으로 기존 질서가 붕괴될 조건이 지금의 세계는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방안에 가스가 가득차 사라에보의 총청처럼 누군가 불만 당기면 폭발할 것같은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을 경쟁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한국 전쟁에 대하여 미국의 국무 장관으로 미국의 극봉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한 애치슨은 “한국이 우리 미국을 구했다”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미국은 한국 전쟁으로 패권을 쥐게 되었고 국민들에게 냉전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중요한 구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고 있는데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밖에 없는 존엄한 인간, 자기 아들 딸, 자기 생명처럼 보지 않고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람을 경쟁의 대상, 착취의 대상으로 보면 이런 사고가 생기게 됩니다. 조금 발전하면 사람을 거래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더 발전하면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입니다. 영적인 눈을 떠 더 차원 높아지면 사람에 대한 태도는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천국에서 맛볼 수 있는 인간에 대한 태도입니다. 인간에 대하여 이런 태도를 가지면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이 땅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그 정도까지 성숙된 사람에 대한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중에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작품의 주인공인 구두 수선공 마르틴은 아내와 두 자녀, 막내아들까지 어린 나이에 떠나보냈습니다. 하나 남은 아들마저 죽자 상심한 마르틴은 한동안 교회에도 나가지 않고 술로 겨우 버텼습니다. 그러다 일찍 남편과 자녀들을 잃고 홀로 노년을 보내는 할머니가 성경책을 들고 와서 지금처럼 괴로울 때 성경을 읽으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이미 그의 눈 밖에 있었던 성경이었지만 할머니 진심 어린 위로의 말과 격려를 통해 성경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는 진정 하나님이 계신다면, 자신도 어서 빨리 데려가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지만, 아들딸을 다 보낸 욥이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주신 것을 거두어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라."라고 고백하는 것을 읽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 날 성경 말씀을 읽고 나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마르틴, 내가 내일 너를 찾아갈 테니 창밖을 보라."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기다렸지만, 하나님은 오시지 않았고 창밖에는 늙은 청소부만이 눈을 쓸고 있었습니다. 마르틴은 밖으로 나와 그와 함께 눈을 쓸고 그를 가게 안으로 들게 한 뒤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추위에 언 몸을 녹이게 했습니다. 다시 한 시간쯤 지나 창밖을 보니 얇은 옷만 입은 체 젖먹이 아기를 안으며 떨고 있는 젊은 엄마를 보았습니다. 그는 그 여인을 가게 안으로 맞아들여 먹을 것과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옷을 찾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해 질 무렵 창밖을 바라보니, 사과 파는 할머니가 소매치기 소년을 붙잡고 야단을 치고 있었습니다. 마르틴은 밖으로 나가 꾸중을 듣고 있는 소년에게 할머님께 용서를 빌게 하고 사과 값을 대신 갚아 주었습니다. 그 날밤 마르틴은 성경을 읽다 잠이 들었는데 낮에 만난 청소부 할아버지와 아기엄마. 과일 장사 할머니와 굶주리던 소년이 한 모습으로 나타나 환한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마르틴, 네가 오늘 만난 사람들이 바로 나였단다. 그러므로 너는 오늘 그들로 가장한 나를 대접한 것이다” 깜짝 놀란 마르틴은 꿈에서 깨어나 펼쳐져 있는 성경 말씀을 보았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35-40)” 신앙인은 우리의 형제를 예수님처럼 대하여야 합니다. 신분으로, 성별로, 출신지역으로, 장애의 정도로, 재산의 정도로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이다.”라고 했습니다. 타자를 대하는 태도로 하나님을 잘 모시는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대할 때 예수님 대하듯 하여야 합니다. 아내를 남편을 자식을 이웃을 예수님처럼 대하여 그곳에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증표입니다.

 

2.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반드시 결산의 때가 있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예수님 대하듯한 대도로 한 결과는 무엇입니까?(34) 34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양으로 분류된 사람들입니다. 아버지께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에도 들어갑니다.

염소로 분류된 사람들의 결과는 무엇입니까?(41,46) 4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저주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마귀를 위해 예비된 영원한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영벌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 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의 결산이 있음을 믿고 사람을 대하여야 합니다. 심판하시는 분은 누구이십니까?(31)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심판을 말씀합니다. 이 결산은 어느 날 갑자기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이 땅에서 죽습니다. 역사도 끝이 날 때가 옵니다. 예고하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계 20:13)" 불신자에게는 지옥과 천국에 가는 심판이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상급의 심판이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라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렇다고 요즈음 언론에서 회자되는 이단 사이비 교주처럼 말로만, 형식적으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며 사람을 자신의 성욕의 수단으로, 성착위 대상으로, 노동착취의 대상으로 삼은 인간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7)”라고 했습니다. 허탄한 것이고 가라지에 불과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진짜 믿는 사람이지 가짜 믿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다른 사람을 물건 취급하지 않습니다. 진화된 동물 취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부터 착취의 대상이나 이용의 수단이나 도구로 인간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돕는 베필로 만들어습니다. 영혼이 있는 영생하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타인을 대할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존귀한 자라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약자들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태도의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사람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 것은 결코 손해도 낭비도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는 삶이 곧 나를 위하여 사는 삶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6:31)"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친절, 작은 사랑일지라도 남에게 베푼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결산의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42)" 하였습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을 베푼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잘못 걸려온 전화에도 얼굴에서 훈훈한 미소를 잃지 않고 친절을 베풀면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물건도 사지 않고 스쳐가는 손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낭비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낯선 방문객에게 친절을 베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하게 되었습니다(히 13:2). 오른 손이 왼손 모르게 선행을 행한 것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영혼의 만족함을 누리게 됩니다. "(사58:10-11)주린자에게 네 심정을 토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하면......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옷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뼈를 견고케 하리니"

친구가 많아집니다(잠19:6) "너그러운 사람에게는은혜를 구하는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놓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친절과 사랑을 베풀지 않으면 자신이 복을 못받습니다.(잠28:27 신15:9) 자기가 부르짖을 때 들을 자 없습니다(잠21:13). 들어오는 물만 있고 나가는 물이 없으면 사해와 같이 아무런 생명이 살지 못합니다. 동맥경화에 걸린 사람과 같이 됩니다.

 

일본 사람 에가와히로시가 지은 <성공하려면 언어의 마술사가 돼라>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의 네바다 주의 사막을 한 노인이 뚜벅뚜벅 걷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주유소를 경영하고 있는 다마라는 남자가 지프를 몰고 왔습니다. 다마 씨는 노인 옆에 차를 세우고는 어디까지 가는가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라스베가스까지 간다고 말했습니다. 다마 씨는, "라스베가스까지 걸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근처까지 태워다 드릴 테니 올라타십시오."라고 말하고는 노인을 차에 태워 주었습니다. 라스베가스에 도착하자 노인을 내려 주고, 버스를 탈 때도 돈이 없으면 어떡하나 싶어 25센트를 주었습니다. "내가 차 태워 주신 보답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돈까지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하고 이 노인은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훗날 이 노인이 죽으며 유언장을 남겼습니다. 유언장에는 이 때 일의 기록과 함께 '전 재산의 16분의 1을 다마 씨에게 주기 바란다' 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이 노인의 이름은 하워드 휴즈로 당시의 대부호였답니다. 다른 사람을 예수님 대하듯 사랑과 친절을 베풀면 손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이 내가 잘 되는 첩경입니다. 결산의 때가 있는데 그 결산은 참 좋은 것으로 주어집니다. 목사님이 잘되어야 하고, 장로님, 안수집사님, 권사님, 우리 교인, 다른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이 곧 내가 잘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를 진짜 구주로 믿고 산다는 증거입니다.

 

3.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 재림주로 심판하시는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 주리는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습니까? 조그마한 부와 권력과 명예와 지식이 주어져도 다른 사람에게 교만 떨고, 무시하고, 멸시하는데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오셨는데 사람들을 어떤 태도로 대하여 주었습니까?

신분고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존엄한 인격체로 대하여 주었습니다.

주리고 목마른 자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보십시오. 굶주린 수많은 군중을 빵과 생선의 기적을 통해 공급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주리고 목마른 자들의 신체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영적인 필요도 채워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경제적 무능력을 비난하지 않았고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사람 취급하지 않는 창기와 죄인과 세리들과 장애인들을 차별하고 정죄하기 보다는 용서하고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아 영혼을 가진 존재로 존경과 존중의 태도를 가지고 그들을 대하였습니다. 권세 있는 사람들에게 비굴하지 않았고 자기를 모욕한 사람들에게도 원수시 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못박는 자들도 용서하며 사랑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손해를 보아도 참지 못하고 자존심만 상해도 되갚아 주어야 속이 후련합니다.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간 제자들까지 끝까지 용서하며 사랑하여 주었습니다. 죽음 당일에도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도 용서를 구하고 못을 박는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자신을 인신매매하는 가룟 유다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희생의 태도를 일관성있게 마지막까지 가지고 사람을 대하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생명을 내어주고, 선한 일을 행하며, 자기를 살리는 것보다는 다른 이들을 살리기를 우선시했습니다. 탐욕과 권력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정의롭게 대하였고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하여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배고픈 사람들,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였습니다. 당시 아무도 상대하지 않고 부정탄다고 생각했던 문둥이, 간음한 여자, 부정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혈루증 앓은 여인, 심지어는 죽은 자,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 병든 자, 세리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의견이나 감정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태도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무관심하거나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친절하고 도움이 되려고 하는 태도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 대하여 공격적이고, 비판적이며, 위협적이고, 차별적이며, 자기 중심적이고, 악의적이며, 편견적이고, 억압적인 태도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게 됩니다. 결혼하면 아내가 남편이 내 안에 있듯이 내가 사랑하는 자녀들이 늘 내 마음 속에 있듯이 우리 주님을 우리가 믿고 사랑하면 우리 안에 늘 주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렇다면 우리는 매순간 다양한 사람을 대할 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고 왕이 되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대했을까”라는 질문을 한 번쯤 던져 보고 대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 중에 이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의 레이몬드 시에 헨리 맥스웰이라는 목사님이 부유한 지역의 대형교회인 레이몬드 제일교회 담임 목사로 섬겼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설교 준비를 하는데 30대 중반의 한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인쇄공이었는데 새로운 인쇄 기계가 나와서 거기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여 그만 실직을 당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그만 중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이들도 친척 집에 맡겨놓고 일자리를 구했지만 구하지 못하여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를 그냥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일자리를 하나 구해 주십시오. 그러면 아이들도 친척 집에서 데리고 와서 같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맥스웰 목사님은 설교 준비에 방해되는 이 사람이 귀찮아 "그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신에 제가 기도를 해 드릴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남자가 쓸쓸이 나간 후 이 일로 맥스웰 목사님의 마음은 편치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날 예배 시간에 참여하고 예배가 마치자 회중석 앞으로 나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섭섭한 말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그냥 도와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저에게 일자리를 하나 구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아무도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을 하고는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성도들이 모두 놀라서 웅성거렸고 맥스웰 목사님은 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정성스럽게 돌보아 주었지만 "목사님 참 감사합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아마도 목사님처럼 그렇게 하셨겠지요." 이 말을 하며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주일날 맥스웰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오늘부터 일 년 동안 우리 교회 교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이 질문을 하면서 살도록 합시다. 우리가 사업을 하면서도 직장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하면서도 반드시 이 질문을 하고 일을 시작하도록 합시다." 목사님의 이 제의에 교인들은 모두가 아멘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업을 하는 교인들은 그 사업을 하기 전에 과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질문을 하면서 모든 사업을 했고 변호사도 그 일을 하기 전에 이 질문을 하면서 자기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 년 뒤에 교인들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고 교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목사님은 자아도취에서 빠져나와 교인들을 향한 진정한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성도들은 성령의 임재로 무의식 중에 자신을 높이려는 모습이 사라지고 경건의 침묵과 부드러운 사색으로 찬양을 듣고 감동을 받습니다. 서로의 삶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부분들을 공유하며 해결책을 나누었습니다. 안일무사와 타성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모습을 닮기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하고 뜨겁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세상은 약육 강식의 세상입니다. 끊임없이 사람을 수단화하여 자기 목적을 성취하기를 강요하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칭찬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사람을 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 때 결산을 보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예수님으로 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존귀한 백성이 된 우리는 언젠가 결산의 때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말씀했을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람을 대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마지막 그 날에 부끄러운 구원이 아니라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는 칭찬을 듣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3.19

 

 

 

 

 

 

 

 

 

 

 

 

 

 

 

 

 

 

 

 

 

 

 

 

 

 

 

 

 

 

 

마을 모임(2023-3)

삶의 격차를 만드는 태도(3)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마25:31-46

 

1. 뉴욕 맨해튼의 최고 호텔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첫 사장이었던 '조지 볼트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날 밤, 한 부부가 작은 호텔에 들어왔습니다. 당일 조지 볼트로가 근무하였는데 방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 빗속에 그냥 돌려보낼 수 없으니 괜찮으시다면 제가 쓰는 방에라도 묵고 가시죠"라고 했습니다. 이 부부는 그의 친절에 감동받아 하룻밤을 잘 쉬었습니다. 몇 년 후 조지 볼트로는 이 부부의 초청을 받아 뉴욕으로 가게 됩니다. 그는 조지 볼트로를 데리고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로 가 "이것이 바로 당신에게 관리를 맡길 호텔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가장 화려한 특급 호텔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소유주인 '윌리엄 월도프아스토'였습니다. 우리는 사람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2. 사람을 어떤 존재로 보느냐에 따라 사람에 대하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유물주의 자들은 사람이 물질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진화론자들은 진화의 산물로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어떤 존재로 보고 있습니까?(31-34).

1) 창조 때 인간(창1:26-27)

2) 타락 후 인간(롬3:9-12)

3)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시16:3; 벧전2:9)

 

3. 오늘 성경에는 사람을 대하는 두 종류의 태도가 나옵니다. 그들의 태도는 어떻게 다릅니까?(35-36; 42-43) 우리는 사람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습니까?

 

 

4. 그들의 사람에 대한 태도의 차이는 어떤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34,41)

 

 

5. 예수님은 사람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가지시길 원합니까?(40,45 참고, 막12:31, 마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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