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격차를 만드는 태도(1) 성경 말씀을 대하는 태도
창세기19:14
오늘부터 제가 “삶의 격차를 만드는 태도”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태도란 사전을 찾아보면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를 대하는 마음가짐. 또는 그 마음가짐이 드러난 자세”라고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1. 태도의 중요성
태도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커밍워크는 사람의 성공 요인을 "머리(I.Q), 지식(Knowledge), 기술(skill), 태도(Attitude)" 4가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요인 중에서 성공적인 삶에 적어도 93% 이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태도"라고 말합니다.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성취심리>라는 책에서 "태도가 성공의 85%를 좌우합니다."라고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공 공식을 (선천적 특성+후천적으로 습득한 특성)x태도=개인적 성과라고 말합니다. 타고난 선천적 특성에 후천적으로 습득한 특성 즉 성장과정에서 습득한 계발적 지식, 기술, 재능, 경험, 능력 등을 더한 다음에 태도를 곱하면 개인적인 성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태도에는 마이너스가 있어 아무리 선천적 능력이 있어도 태도가 나쁘면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태도가 마이너스이면 선천적인 특정과 후천적인 능력이 아무리 큰 수일지라도 마이너스인 태도를 곱하여 버리면 마이너스가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티튜드(도리스 메르틴 저)>라는 책의 저자는 “무엇이 삶의 격차를 만드는가? 당신이 선택한 ‘태도’가 모든 것을 바꾼다!”라고 말합니다. 태도를 조금만 바꾸어도 생각은 놀랄 만큼 달라지며, 생각이 달라지면 믿음이 바뀌게 되고, 믿음이 달라지면 행동이, 더 나아가 인생이 바뀌게 된다는 말입니다. 태도가 인생을 만듭니다. 행복한 태도가 행복한 인생을 만들고, 불행한 태도가 불행한 인생을 만들고, 좋은 태도가 좋은 인생을 만들고, 나쁜 태도가 나쁜 인생을 만들며, 불량한 태도가 불량한 인생을 만들고, 선량한 태도가 선량한 인생을 만들며, 슬픈 태도가 슬픈 인생을 만들고, 웃는 태도가 웃은 인생을 만듭니다. 의사이면서 철학과 심리학을 한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 세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에서 태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키스 해럴이라는 사람이 <태도의 경쟁력>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는 그의 책에서 "태도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바탕이자 도구로, 운명을 통제하고 직장생활이나 개인생활을 최고로 만들기 위한 핵심 요소"라고 주장하면서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좋은 태도를 선택하고 '나쁜 태도'를 '좋은 태도'로 전환하라"고 말합니다.
가정 생활과 학교생활, 사회생활과 노후 생활, 대인관계와 신앙생활뿐 아니라 사업에 성공하고 직장 생활에 성공하는 것도 태도가 중요합니다.
마틴 셀리그먼 박사는 어느 날 메트로폴리탄 생명보험회사의 사장으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답니다. 유능한 세일즈맨을 선발하는 방법을 찾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보험회사 사장은 매년 6만 명 정도의 지원자 중에서 선발된 5천 명 정도의 신입사원 중 절반 이상이 1년 이내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나면 80%가 중도 탈락하기 때문에 매년 7천 500만 달러 정도의 비용이 허비된다고 했답니다. 셀리그먼이 관찰한 결과,성공한 세일즈맨과 실패한 세일즈맨들 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답니다. 태도의 차이였답니다. 성공한 직원들은 낙관적이었으며 실패하는 사람들은 비관적이었답니다. 특히, 보험 가입의 권유를 거절당했을 때 스스로에게 말하는 방식이 매우 달랐답니다. 실적을 많이 올리는 직원은 "이 사람은 너무 바빠","이 사람은 이미 다른 보험에 가입했지만, 부분보험일 거야", 또는 "저녁 식사 중에 전화를 걸었나 봐"라는 식으로 생각했답니다. 그러나 비관적인 사람들은 "난 안 되나 봐", "재수가 없나 봐", "이러다간 밥값도 제대로 못 하겠어"라는 식으로 속으로 중얼거렸답니다. 셀리그먼은 낙관주의 검사를 실시해 입사한 지 1년이 되었을 때와 2년이 되었을 때의 보험 계약고를 비교했답니다. 분기별 평균 계약실적을 비교한 결과, 입사 후 1년째에는 낙관적인 사원의 경우 3천 87달러인 반면, 비관적인 사원은 1천 962달러를 계약해서 낙관적인 사원들이 비관적인 사원에 비해 57%나 더 많은 계약실적을 올렸답니다. 그런데 입사 후 2년째에는 차이가 심해졌답니다. 낙관적인 사원들이 그렇지 않은 사원에 비해 무려 638%나 더 많은 계약실적을 올렸답니다.그는 낙관론자들이 비슷한 능력의 비관론자에 비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내 인생을 결정짓는 긍정의 심리학(이민규 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똑같은 반 컵의 물을 보고 낙관주의적 태도를 가진 사람은 "어,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말하고, 비관주의적 태도를 가진 사람은 "어, 컵에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같은 동일한 조건이라면 낙관주의적 태도를 가진 사람이 비관주의적 태도를 가진 사람보다 훨씬 공부나 사업, 신앙생활, 건강 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 직장 생활을 더 잘한다고 합니다. <태도, 인생의 가치를 바꾸다>의 저자 존 맥스웰은 "현재의 삶은 지금까지의 태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태도(attitude)가 고도(altitude)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행기가 아래로 향하느냐 위로 향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고도가 결정되듯 사람이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방향과 높이가 결정됩니다. 누구나 높이 오르고 싶어하지만 아무나 높이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를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태도는 성공을 결정하는 힘이 있습니다. 태도는 역경을 극복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똑같은 역경을 만나도 어떤 태도를 가지냐에 따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이렇게 태도가 중요한데 오늘은 “삶의 격차를 만드는 태도” 첫 번째 설교로 “성경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의 가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졌는가가 나와 있습니다.
2. 롯의 사위들의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태도
롯의 사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졌습니까?
오늘 성경 14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과 불에 의해 멸망할 때(24) 하나님께서 롯에게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밖으로 이끌어 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롯이 앞으로 결혼할 사위들에게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때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비웃고 희롱하고 우습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 비하여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장인될 사람이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멀쩡하게 즐기며 잘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이 도시가 망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의 세계관은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 정신에서 배운 것입니다. 소돔이라는 도시가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조롱하고 우습게 여기는 지극히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얼마나 타락하였는지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롯의 집에 남자 손님이 둘이 왔는데 그들이 잠들기 전에 소돔 백성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롯의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라고 말합니다. 동성연애하겠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보면 그 시대이 시대정신을 알 수 있습니다. 부부가 돕는 배필인가 도구인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든 후 돕는 배필로 만들었습니다. 창조질서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동성끼리 성적 도구로 사용합니다. 창18:32절을 보면 의인 10명이 없는 도시였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이 달려나와 나그네를 맞이하여 대접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자기들의 유익과 쾌락의 도구로 삼겠다는 것입니다(창19:4,5). 사사 시대 때 기브아의 베냐민 지파 사람들(삿19:22-24)처럼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인간을 성적 쾌락의 도구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죄악 된 세상을 상징적으로 축약하고 있는 소돔은 하나님마저도 조롱하는 그런 곳입니다. 18장 20절을 보십시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 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19장 13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이 곳을 멸하려고 합니다. 이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을 규탄하는 크나큰 울부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렀으므로, 주님께서 소돔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습니다.”라고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그들에 대하여'라는 둘 다 소유격 '소돔과 고모라의 부르짖음, 그들의 부르짖음'입니다. 소돔 안에 살고 있는 어떤 소수의 의인들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소돔 사람들의 부르짖음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부르짖음일까요? '하나님이 있긴 어디 있어? 하나님 네까짓 게 뭐야?'라는 조롱과 경멸의 부르짖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돔 사람들의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그런 곳에 살다 보니까 롯의 사위들도 하나님이 말씀을 조롱하고 비웃는 태도를 가진 것입니다. 롯의 사위들이 그런 세상에 살기 때문에 세상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소돔 성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소돔 사람처럼 깊이 중독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딸들이 우리의 사위들이, 다음 세대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이 아니라 신화처럼 농담처럼 여깁니다. 하나님의 창조, 구원, 심판,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재림 등을 이야기하면 신화이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농담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지성이 없는 것입니다. 지옥과 천국을 이야기하면 꾸며낸 동화처럼 받아들입니다. "안심하세요. 지옥은 없습니다. 천국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즐기세요."라고 말합니다. 호킹처럼 "천국은 동화 속에 나오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내세의 존재를 부인하고 인생은 이 땅으로 끝이고 인생은 단지 세포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자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시2:4)"라고 말씀합니다.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옥이나 천국은 사람들의 관념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라 실존하는 세계임을 성경은 명백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죽음 이후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지옥이라는 말이 22번 나오는데 예수님이 14번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은 사기꾼이거나 정신병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해 주신 말씀의 주제가 천국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꾸며낸 동화의 세계나 종교의 세계가 아니라 실존하는 세계입니다. 천국은 죽음도 고통도 눈물도 슬픔도 없는 장소이지만 지옥, 음부, 하데스는 고통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바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아도 나무가 흔들리는 현상을 보면 바람이 실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조 진조 할아버지 사진이 없다고 고조 진조 할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천지가 인간이 우연히 이 땅에 태어났을까요. 창조하신 분이 있기 때문에 우주가 존재하는 것입니다.L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성경 말씀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던 롯의 사위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24-2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처럼 여기던 사위들은 모두 소돔과 함께 불에 타 죽었습니다.
3. 롯의 아내의 말씀에 대한 태도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졌습니까?
하나님은 롯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그런데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반신반의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 “한 번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살았던 도시가 불에 타 없어져 말도 안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도마처럼 증거를 보아야 믿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하여 회의론적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실존하시어 말씀으로 통치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통치하시며 섭리하십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지는 것을 믿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이미 앞으로 멸망이 올 것을 예고하고 그 말씀대로 성취하였습니다. 백부장이 예수님께서 종이 치료되었다는 말씀할 때 그대로 믿고 가니 종이 치유된 것처럼 내 신념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믿고 가다 보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네 소원대로 되라”과 말씀하면 현실과는 너무나 격차가 많은 말씀일일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는 태도를 가지고 살다보면 어느새 그 말씀이 현실로 되어지는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노아 시대가 멸망한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처럼 인류의 최후의 종말이 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도 홍수, 가뭄, 폭염, 지진, 태풍 등 잇따른 이상기후 현상을 보면서 환경 위기 시계, 지구의 종말의 시계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세계 환경위기시각'은 9시 45분으로 위험 수준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6도'가 되면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대멸종이 진행된다고 합니다. 근대 물리학과 천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이작 뉴턴은 2060년 세계 종말을 예언하였습니다.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2050 거주불능 지구>라는 책을 통해 2050년이면 전 지구가 거주 불능의 상태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눅12:40)".
이미 소돔을 떠났는데 반신 반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교회에 나왔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꼭 증거를 보아야만 믿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신명기 29장 23절에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너희가 들어가는 땅에서 그들과 섞이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너희가 섬기면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반신반의합니다. “뭐 다시 소돔과 고모라같은 일이 있겠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일어날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경고합니다. 이사야서 13장 19절에 “나라들 가운데서 가장 찬란한 바빌론, 바벨론 사람의 영예요 자랑거리인 바벨론은,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실 때에,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경고합니다. 예레미야도 예레미야 50장 40절에서 소돔과 고모라처럼 바빌론 도성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신 반의하다 결국 나라가 망해버렸습니다.
롯의 아내를 보십시오. 2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뒤돌아 보지 말라고 했는데 반신반의하며 뒤를 돌아보다가 그 순간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재림을 말씀하면서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 날에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 물건들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들을 꺼내려고 내려가지 말아라. 또한 들에 있는 사람도 집으로 돌아가지 말아라.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눅17:31-32)”.
성경은 종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때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인데 예수님 재림할 때 태양, 달, 별들이 제 위치에서 벗어남으로 인해 상상할 수 없는 대변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사13:10; 암3:15 계8:12; 벧후3:10; 사34:9.). 계시록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계 8:12)"
이사야는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사 13:10)"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0)"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각 사람이 자기의 행한 대로 심판을"(계 20:13) 받는다고 했습니다.
재림하신 주님은 알곡과 가라지를 가려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집니다. 많은 사람이 크고 흰 보좌에 앉으신 주님 앞으로 나올 때에 주님께서는 오른편의 양과 왼편에 염소를 분명하게 나누실 것입니다(마 2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를 불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계 20:15). 예수님은 노아의 시대처럼 롯의 시대에도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나무를 심고 집을 짓고하였는데 롬이 소돔을 떠나던 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려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고 말씀하면서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태도는 죽음과 삶을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23:19)”
4. 롯의 말씀에 대한 태도
하나님께서 롯에게 말씀합니다.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이 말씀을 듣고 롯은 어떻게 합니까?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그 말씀을 듣고 그대로 전합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래의 세계이지만 그 말씀을 그대로 믿는 태도를 가졌습니다. 믿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씀을 믿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십시오.
15절의 동틀때라는 말을 보면 농담으로 여기는 자신의 사위될 사람들을 밤새도록 계속 설득했을 것같습니다. 사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가 불량하니까 아마 그들을 살리기 위해 계속 설득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아내와 두 딸만 이끌어 내라고 합니다. 함께 멸망하지 말고 빨리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때 롯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롯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서 지체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가 볼 때는 농담으로 여기는 사위들을 더 설득하기 위해 치체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는 말씀에 대한 적극적 태도를 가졌습니다. 이렇게 롯이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믿게 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롯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9절을 같이 읽겠습니까?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은혜를 입었고, 큰 인자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적극적 태도를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대하여 적당히 믿는 태도 적극적으로 믿는 태도는 그 결과가 다릅니다.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믿는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입니까? 2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중보자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입니다. 불타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함께 멸망당해야 했던 롯이 아브라함이라는 중보자의 기도로 하나님의 인자를 입어 살아난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역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죄인들과 함께 뒹굴고 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하나님의 인자를 입어 건져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하심을 받아 우리가 말씀을 전적으로 믿는 태도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게 하셨고 성경을 영구 불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게 된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같은 오늘 이 시대에 말씀을 전적으로 믿으며 믿지 않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말씀으로 설득하며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말씀이 믿어지고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단순한 문학 서적이나 종교적 신화의 기록이나 인간의 신앙고백으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는 태도를 갖게 된 것입니다. 요즈음 코로나 19를 통해 기독교인이 줄어드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 신앙인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타락은 하나님이 말씀 성경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신화적인 책으로, 인간의 신앙 고백으로, 문서의 편집으로, 고전으로 대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는 태도는 그 차이가 엄청납니다. 오늘날은 성경책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사탄은 성경을 가지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무력화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유튜브가 진리이고 쳇 GPT가 진리이고, 생물학자가, 우주과학자가, 양자 물리학자가 진리라고 그들의 말을 믿으라고 합니다. 그 분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을 발견하고 체계적으로 인간의 언어로 보여줄 뿐입니다. 생물학자가 생명을 만들고, 우주과학자가 우주를 만들고 양자 물리학자가 물질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꽃은 분해하고 조화는 만들 수 있지만 생명있는 꽃은 만들 수 없습니다. 과학으로 하나님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지금 우리는 탈이념을 표방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절대 진리가 없다고 말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공감하고 내 마음에 와닿는 말씀, 실제 입증되어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겠다는 태도를 가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내게 이익을 주고 편리와 기쁨을 주면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이고 그렇지 못하면 관심도 가질 필요 없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 말을 들으라” 소리 전쟁터에서 살고 있습니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고 미래가 달라지고 영혼이 달라집니다. 가정 생활이, 교회생활이, 사회생활이, 대인관계가, 부부관계, 자녀관계가 달라집니다.
딤후3:15-17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 어떤 책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 어떤 책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겠습니까?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고 성경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합니다. 그 어떤 책이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어 주겠습니까? 성경 말씀이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타락한 어거스틴이 성경을 읽으니까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방탕하게 살던 부시가 성경을 보고 새사람이 되어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깡패 대장이었던 김익두가 성경을 읽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나라의 어두움이, 가정의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성경이 해적나라를 신사의 나라로, 황무한 나라를 기름진 나라로 만들어 줍니다.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살인자도 성자가 되고, 무능한 자도 유능한 자가 됩니다. 성경은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입니다. 고독하고 지칠 때, 불안하고, 힘들 때, 권태롭고, 불행할 때, 실패하고, 소외되고, 희망이 없을 때 성경을 읽으면 새롭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시편 19편 7-12절까지를 찾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부와 권력을 가진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우리 성도님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성경 없이는 세계를 올바르게 다스릴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성경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책이다. 거기에는 온 세계의 도서관보다도 더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라고 했습니다.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성경은 세계의 사람들을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는 "성경은 무한하고 고귀한 지식과 덕을 간직한 거대한 광산이다."라고 했습니다.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햄 링컨은 "이 책이 없었으면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믿기로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다."라고 했습니다. 32대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성경은 힘의 샘이다. 내가 느끼는 것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교양 교육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가장 정확한 의미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있어서 영원한 영적 진리를 보관하고 있는 유일한 보고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09:105)”라고 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을 무시하고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성경을 읽은 사람은 1/3이며 성경을 한 번도 완전히 읽지 않은 사람은 2/3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영적 건강과 마음의 건강 육체적인 건강을 선물해 줍니다. 영구불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말씀대로 이루어 가신다는 말씀에 대한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이 말씀을 통에 부어주시는 복을 평생 누리는 우리 성도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마을 모임(2023. 3월 첫주)
삶의 격차를 만드는 태도(1) 성경 말씀을 대하는 태도
읽을 말씀: 창19:14
태도는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를 대하는 마음 가짐 또는 그 마음 가짐이 드라난 자세”입니다. 나의 태도는 긍정과 부정, 적극과 소극, 낙관과 비관 중 어느 쪽에 가까웁니까?
말씀에 대한 태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롯의 사위들은 말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까?(14)
왜 그런 태도를 가졌을까요?(창18:32; 18:20; 19:13) 아브라함과 소돔 사람들의 사람에 대한 태도를 비교해보십시오(18:1-4; 19:5). 다음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 세속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면 성경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될까요? 롯은 사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14,-16) 우리가 다음 세대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록 바르게 갔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롯의 아내는 말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졌을까요?(17, 26)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롯의 아내를 통해 어떤 교훈을 주시고 있습니까?(눅17:31-32)
롯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졌습니까?(12,15,16) 롯은 어떻게 이런 태도를 가졌을까요(19,29).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까요(딤후3:15-17; 시편19:7-11) 매일 성경 읽기, 듣기, 묵상하기, 암송하기 등에 대한 계획을 서로 이야기 하고 실천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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