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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빛나게 하는 믿음(딤후4:9-1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6709 추천수:10 112.168.96.71
2015-04-19 08:11:43

 

고독을 빛나게 하는 믿음

딤후4:9-18

 

지난 한 주간 연일 경남기업 전 회장이 자살하며 남기고 간 쪽지 한 장이 정가를 흔들고 있습니다. 마당발이 되어 그렇게도 많이 도와주었는데 막상 위기를 당하자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는 이 없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습니다. 잘 나갈 때는 그렇게도 많이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위기를 당하니까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는 현실 앞에 ‘나는 혼자이며,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줄 사람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배신감과 고독, 소외감과 절망감, 억울함과 슬픈 감정으로 쪽지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현대인의 고독>을 쓴 칼 로저스는 고독을 두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상태라고 합니다. 자신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고독이란 자기를 내어줄만한 상대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타인에게 자신을 내어놓지 못하는 것은 불신과 불안 때문이라 합니다. 이러한 고독이 자기 자신에게 공격이 갈 경우에는 자살이라는 상태로 나타나고 타인에게 공격이 갈 경우에는 과격한 사회적 파괴로 표출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고인은 결과적으로 고독을 그렇게 처리해 버렸습니다. 인간의 삶의 현장에서 수시로 예고없이 고독은 늘 찾아옵니다. 고독을 잘 다루지 못하면 그 고독이 독이 되어 자신과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고독을 잘 다루면 그 고독이 약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빛나게 해 줍니다. 통계에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독의 독을 품고 5시간 마다 한 명씩 아무도 모르게 고독사로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1954년 <노인과 바다>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문호 헤밍웨이도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였습니다. 그는 유서에 "나는 전류의 흐름이 그치고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고독하다."라고 썼습니다. 세계적인 인기 여배우로 명성을 날렸던 마를린 몬노도 인생의 고독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였습니다. 그는 “나에게는 명성, 인기, 돈이 부족하지 않으나,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며,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는 외로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라는 짧은 유서를 남겼습니다.

소설<25시>를 써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기우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고독이다... 고독은 죽음과 같다"라고 썼습니다. 세계적인 정신의학자 Paul Tournier는 “외로움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절망적인 만성적 질환이라”고 했습니다. 심장병 환자의 50% 이상이 그들이 병을 갖기 전에 외로움과 낙담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또 정신과적 심리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80%는 외로움 때문에 불면증과 신경쇠약 증세가 있다고 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고독을 파괴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면 건강에 많은 피해를 준다고 합니다. 미국 시카고 대학 사회심리학과의 존 카치오포 교수는 고독이 고혈압을 유발할 수 있는 동맥경화, 신체의 염증과 관련이 있으며 심지어는 학습 및 기억력에도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외로운 사람은 면역 체계가 장기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보이는데, 항바이러스 반응과 항체생산에 이상이 생기는 등 바이러스에 대한 방어망이 약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암 발병률, 전염병 감염률, 심장질환 위험 등에서 높은 수치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날파리를 관찰해 본 결과를 보더라도 홀로 떨어진 날파리는 건강이 좋지 않고 수명도 짧다고 설명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고독도 파괴적으로 사용하면 인생을 망하게 하는 것이지만 창조적으로 사용하면 인생을 빛나게 합니다. 고독이 독이 되어 자신을 병들게 하고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히려 고독이 약이 되어 자기를 성찰하게 하고 창조적 에너지로 사용하여 세상에 값진 창조물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고독은 창조와 자기성찰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위대한 문학가, 예술가, 학자, 종교인들은 공통적으로 오랜 고독의 시간 속에서 그들의 창조적 업적과 자기성찰을 이루어냈습니다. 고독이 약이 되어 오히려 자신의 삶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고 그 빛으로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변화시킨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고독을 약으로 만들어 자신을 빛나게 할 수도 있고 고독이 독이 되어 자신을 파괴하고 세상을 어지럽힐 수도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고독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빛난 보석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대표적인 사람 바울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고독이라는 재료를 통해 우리 인생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1. 우리는 어려울 때, 떠난 사람보며 고독을 독으로 만들지 말고 함께 있는 사람과 같이 하여 고독을 재료로 하여 우리 인생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왜 “외로워 외로워서 못살겠어요”라고 하며 죽습니까? 마를린 몬노에게, 헤밍웨이에게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아무도 돕는 이 없고 찾는 이 없다고 고독으로 죽어가는 유명인에게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고독합니까? 친밀한 인간관계를 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 내 뜻을 알아주고 진정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많지만 진정 낭만적 동반자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과 애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사교적 동반자가 없는 것입니다. 우정을 느낄 수 있는 친구, 부담없이 만나서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는 것입니다. 작업적 동반자가 없는 것입니다. 진정 어려운 문제를 같이 풀어갈 동지가 없는 것입니다. 가족적 동반자가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 받아주고 내 사정 헤아려 줄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동반자가 없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있어도 이런 사람들이 없으면 군중 속에 고독을 느끼며, 외로움과 고독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바울을 보십시오. 노년에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4:6;1:8,16). 죽음의 순간이 다가 온 것입니다. 순교의 제물로 자신이 드려질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위기를 당한 그 때 바울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같이 일했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요즘 말하면 정치자금을 주고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변화시킨 사람들, 많은 도움을 주었던 그의 동역자들이 바울을 떠나갔습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그레스게와 사랑하는 아들처럼 생각했던 디도마저 떠나 버렸습니다.(딛 1:4) 우리 성도님의 그레스게는 누구입니까? 데마는 누구입니까? 디도는 누구입니까? 국무총리입니까? 비서실장입니까? 목사님입니까? 장로님입니까? 아내입니까? 남편입니까? 부모입니까? 자식입니까? 여기에 집중하며, 실망하고, 배심감의 노예가 되고, 억울해 하면 결국 그 고독을 보석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배신감과 서운한 생각으로 더 고립되어 버립니다.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도와주기는커녕 몹시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구리 세공을 하는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해를 끼쳤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나에 대해 많은 악한 것들을 밀고했으며"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주석가들은 이가 바로 바울이 두 번째 체포되는데 결정적인 밀고자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고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어려울 때 도와주고 돈을 주었던 동료입니까? 사촌입니까? 장인입니까? 목사입니까? 여기에 집중하면 증오와 원한이 가중되고 더욱 자신을 고독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 고독이 독이 되어 자신을 해치고 사람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한 때 당한 어려움 때문에 인간관계를 더 수렁으로 빠져들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재판을 받는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변호해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16)

현대어 번역 "내가 처음 재판관 앞에 끌려 나갔을 때 나를 변호해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나를 버리고 가버린 것입니다."

혹 이런 소외감과 이런 외로움에 처하신 분은 없습니까? 나만 남았구나?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 없구나? 요즈음 정가를 흔드는 사건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막상 어려우니까 그렇게 돈을 주었는데 아무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같이 죽자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너 죽고 나죽자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고독이 약이 되지 않고 독이 되어 같이 죽게 됩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 있을 때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내가 자신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면 자식도 부부도 싫어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욥의 부부를 보십시오. 동방에서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자식들은 다 사고로 죽고, 욥은 심각한 악창에 걸렸습니다. 이 때 부인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욥2:9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남편도 귀찮은 존재입니다. 빨리 죽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40년 동안 입법 행정 사법권을 한 손에 쥐고 휘두른 다윗 역시 어려움을 당하니까 따르던 사람들이 배신합니다. 그 때 그는 "시25: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심지어는 예수님도 마찬가지 일을 당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지시자 다 도망갔습니다. 막14: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이 때 이 고독에 지며는 결국 질병에 걸리고 자살을 하게 됩니다. 정서적 고독, 사회적 고독, 실존적 고독을 극복하지 못하면 인생은 비참하게 끝나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이 때 바울은 고독이 독이 되지 않고 약이 되게 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고독을 파괴적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풀었습니다. 오히려 고독이 재료가 되어 더 바울의 인생을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자신을 떠나 버리고 자신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서운생각하며 자살하지 않습니다. 정죄하며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집착하지 않고 누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까?

9절을 보십시오. 너는 어서 속히 오라고 말씀합니다. 너가 누구겠습니까? 아들처럼 생각하는 디모데입니다. 거짓없는 믿음 신실한 믿음을 가진 디모데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누가 바울 곁에 있습니까? 누가입니다. 누가는 의사입니다. 아마 바울의 주치의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마가가 있습니다.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두기고를 에베소에 보내었습니다.

 

홀로 고독할 때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교제함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들처럼 생각하는 디모데 때문에 디모데 전후서가 남겨졌습니다. 바울과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의사 누가로 말미암아 누가복음, 사도행전이 남겨져 바울의 삶이 생생하게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가에 의해 마가복음이 기록되었습니다. 고독이 재료가 되어 오히려 빛나는 인생을 만든 것입니다.

 

어려울 때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이 없다고 자학하며 파멸적인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고독할 때 함께 할 사람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붙여 주십니다(11,12,)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다 떠나 버리는 것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함께 할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다 떠나 버린 것 같지만 누군가 남아 있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주치의입니다. 자신의 일에 유익한 마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에베소에 보내어 자신을 대신하여 사역을 할 신실할 두기고가 있습니다. 나이 들수록, 실패할수록, 잃어버릴수록 남겨 놓은 자, 남은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남겨 놓은 자들이 있습니다.

 

어제 중학교 동창의 문자를 보았습니다. 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위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답니다. 직장에서 벚꽃 축제가 있었고 사회를 보았는데 위암 판정을 받은 그날 오후 아픔을 숨기고 떠들고 놀았답니다. 5년을 넘기며 산다고 했기에 빌고, 빌고, 또 빌었답니다. 처음에는 원망도 하고 자책도 많이 했답니다.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당하여야 하나” 잃어버린 것만 생각하면 분통이 터졌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깨닫지 못할 뿐 역시 공평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 결국 지금은 10년을 넘겼답니다. 그러면서 질병치유에 결정적 도움을 준 몇 명의 동창생 이름을 적으며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다 떠난 것같이 보이지만 그래도 아군이 있고 남은 자가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함께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고독 가운데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 19:18)"라고 말씀합니다. 실패한 모세가 바로에게 갈 수 없다고 했을 때, 입술이 둔하다고 거절했을 때 하나님은 네 형 아론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요셉이 홀로 팔려가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보디발을 준비시켜 놓았고 보디발의 아내와 술 맡은 관원장, 떡 맡은 관원장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보디발의 아내 같은 사람은 왜 만나야 하는가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위해 준비해 놓았습니다. 만약 그 아주머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감옥에 갈 수 없었을 것이고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왕을 만나게 하는 관원장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에게는 국무총리가 되는 사다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외로움도 고독도 아픔도 슬픔도 고통도 때로는 우리에게 사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떠난 사람보며 고독을 독으로 만들지 말고 함께 있는 사람과 같이 하여 고독을 재료로 하여 우리 인생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2. 우리는 어려울 때 변하는 사람보고 고독을 독으로 만들지 말고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고독을 재료로 하여 우리 인생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고독은 근본적으로 인간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죽음까지 같이 하겠습니까? 실존적 고독을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같이 하지 않으면 죽고 못사는 남편과 아내일지라도 시간 지나면 변합니다.

어느 분이 “마누라는 듣거라~~~ ”라는 글을 문자로 보내 주어 읽어 보았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없으면 죽는다고 사랑했던 사람도 나이 들면 이렇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니는 아프면 제발 병원 먼저 가거라. 내가 의사도 아닌데 나한테 자꾸 아프다 그러면 나보고 우짜라고. 내가 병원 가보라 그러면 '사람이 아픈데 관심이 있네 없네' '남 아픈데 짜증내네 우짜네'... 나는 죽을병 아니면 아파도 얘기 안한다.

니는 동창회나 모임 갔다 오면 뭐가 그리 없는 것도 많고 해야 될 것도 많노? 입을 옷이 없다, 신발이 없다.. 신발장, 옷장 열어봐라 다 니끼다.

보톡스? 그거 니가 알아서 맞아라. 친구 예뻐졌다고 열 받지 말고 얼굴이든 궁디든 아무데나 제발 맞아라 날도 더분데 사람 볶지말고... 내는 동창회 갔다 오면 술취해 조용히 누ㅡ잔다.

니는 외식가면 갑자기 요리연구가가 되노? 맛이 있네 없네, MSG가 들어갔네 우짜네...

제발 사줄 때 맛있게 무라. 집에서는 아무거나 넣고 비벼서 잘만 묵더구만.. 내는 니 반찬 맛없어도 조용히 묵는다.

니는 밥먹고 나서 '나 살쪘지' 하고 묻지 마라. '안쪘는데' 하면 관심없다 짜증내고 뱃살이 좀 붙었네' 하면 살찐 게 아니라 배에 가스차서 그렇다 하고.. 야~! 무슨 배에 가스가 10년 이상이나 차 있냐? 전부다 살이구만..

결혼하기 전 그렇게 친절하던 남편도 나이들면 이렇게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독해집니다. 그 때 대용품에 돌리면 고독이 오히려 독이 되어 자신을 파멸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모님 사모님 대접하는 제비찾아가면 그건 고독이 독이 되는 것입니다. 고독할 때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용품을 찾으면 자살하는 유명인들처럼 인생은 파멸로 치닫게 됩니다. 성경학자 워랜 위어스비는 "고독은 대용품에 의존하여 사는 삶에서 오는 영혼의 영양실조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해결될 수 있는 고독을 하나님 대신에 다른 대용품으로 그 자리를 메꾸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그 고독을 풀기 위해 사치하고, 제비를 찾아가고, 달콤한 말만 해주는 술집 아가씨를 찾아가고, 알콜중독에 빠지고, 환각제를 마시고, 그러다 고독은 해결되지 않고 고독이 독이 되어 정신질환과 불면증, 우울증에 시달리고 인생이 파괴되고 가정이 파괴되어 버립니다. 고독할 때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질 때 그 때 시선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서운할 때, 배신을 당했을 때, 따돌림을 당할 때, 인정을 받지 못할 때, 실망할 때, 소외될 때, 고독할 때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면 고독이 재료가 되어 인생을 빛나게 만들어 줍니다. 고독은 독약이 아니라 보약이 되는 것입니다.

 

왜 고독할 때 시선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까?

왜 그렇습니까?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 떠난다 하여도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17)

우리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따돌림 받고 외로워 할 때, 우리 곁에 끝까지 계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때가 되면 다 떠납니다.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부모도 때가 되면 우리 주변을 다 떠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십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눈물 흘리는 골짜기에도, 실직했을 때도, 실연을 당했을 때도, 아무도 나를 환영해 주지 않을 때도, 아무도 내 문제를 풀어주지 않았을 때도, 실패와 절망 가운데 울부짖는 순간에도, 질병가운데 있을 때도, 실직할 때도, 자식이 아플 때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고난을 받을 때(행18:9-10) 함께 하셨고, 바울이 공회에서 잡혀 죽음의 위험에 처했을 때(행23:11)도 함께 하셨으며 파선의 위험을 당했을 때(행27:23), 감옥에 갇혀있을 때도, 억울함을 당했을 때도 함께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홀로 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였습니다. 다윗이 음식 먹을 기력까지 잃었을 때도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였습니다.(시102:1-7) 모세가 실패하여 광야에 쫓겨나 절망가운데 처했을 때도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였습니다. 야곱이 형을 속이고 도망자로 불안과 초조에 떨고 있을 때에고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의 현장에, 외로움의 현장에, 실패의 현장에 함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다윗은 시32에서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나 홀로 남았다고 생각하며 홀로 외롭게 싸워 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있습니까? 가정에서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부모도, 나의 외로움 나의 고통을 몰라준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환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 있습니까? 나만 외롭게 홀로 신앙 생활하신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질병 앞에서 다 떠나고 내 마음 알아주는 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 있습니까? 항상 우리 곁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바울과 함께한 하나님, 다윗과 함께한 하나님,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함께하신 하나님, 모세와 함께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 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 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잖아요))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커다란 희망입니까? 내가 걷고 있는 이 삶의 여정에서 오늘의 고통이 아무리 심각하고, 오늘의 방황이 아무리 어렵고, 오늘의 아픔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오늘의 좌절이 아무리 눈물겹다 하더라도, 오늘의 아픔이 아무리 힘겹다고 하더라도 하나님만 떠나지 않으신다면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는 홀로가 아니다

주님께서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그러면 우리 곁에 서 계신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저 외로움을 홀로 감수하도록 고통을 홀로 안고 살도록 관망하시는 방관자이십니까? 아니면 우리의 고통과 외로움을 보고도 어쩔 수 없으신 무능한 분이십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여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17)

곁에 서서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힘을 주십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힘이 없을 때, 재력이 없을 때, 능력이 없을 때 소외당하고 따돌림 받고 고독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우리 인생에 개입하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초가삼간에서도 만족할 수 있고, 실패의 현장에서도, 질병의 고통에서도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힘을 주십니다.

바울은 이것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행9:22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을 굴복시키니라."라고 했습니다.

살전2:2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새 힘을 얻습니다.(사40:27-31)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어떤 경우도

곤비치 않고 피곤치 않습니다.(31) 힘을 다 잃고 죽기를 자청하기까지 하였던 엘리야 40주야를 달리 수 있는 새 힘을 얻었습니다.(왕상19:1-8)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맥이 빠졌던 다윗이 (삼상30:40)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을 때(삼상30:6) 이틀을 계속 싸울 새 힘을 얻었습니다.(삼상30:17)

 

고난과 능욕, 많은 싸움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계속 할 수 있습니다.(17,살전2:2)

다니엘 데포가 쓴 소설의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는 배가 난파되어 무인도에 좌초하게 되었습니다. 살기가 너무나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했을 때 그는 소망과 위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크루소가 말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매우 슬퍼서 성경을 폈을 때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라는 구절을 보게 되었다. 즉시 이 말씀은 나에게 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 떠올랐다."

"나는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세상이 모두 나를 버릴지라도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라고 중얼 거렸다. 그 순간부터 나는 버려지고 고립된 상태에 있지만 세상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마음으로부터 결론을 내렸고, 그래서 이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로 했다."

우리는 어려울 때 변하는 사람보고 고독을 독으로 만들지 말고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고독을 재료로 하여 우리 인생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3. 우리는 어려울 때 상실로 고독을 독으로 만들지 말고 고독을 재료로 하여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어 우리 인생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고독을 독으로 만든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 잃어 버린 것, 없는 것, 상실된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의 노예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아이가 병이 들면 그 병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재산을 잃어버리면 잃어버린 재산을 하루 종일 묵상하며 삽니다. 건강을 잃고, 명예를 잃고, 권력을 잃으면 그 상실된 것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고독은 깊어지고 고독은 깊은 수렁이 되어 남아 있는 모든 것을 삼켜 버립니다. 고독이 수렁이 되면 고독은 결코 자신의 인생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지 못합니다. 고독이 독이 되어 더 일에서 멀어져 버리고 방콕족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인간을 폐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족을 '히키코모리'라고 한다고 합니다. 방안에만 콕 박혀 있는 '방콕족' 소위 ‘은둔형 외톨이’ 들입니다. 일본 인구 1억 2000만명중 1%에 해당하는 120만명이 히키코모리라고 합니다. 사회학자 리즈먼(Riesman, D.)은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젊을 때 화려한 경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수많은 세월을 지내면서 축적한 경험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고독이 독이 되어 일로부터 자신을 더욱 단절하여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바울을 보십시오.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홀로 있으면서도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외롭게 홀로 있는 감옥에서도 함께 하시고 곁에 서서 힘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 증거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모두가 다 바울을 버리고 갔을 찌라도 하나님이 친히 바울과 함께 있어 바울에게 힘을 주어 결국 바울에게 맡기신 일을 다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도록 어떻게 해 주십니까?

사자의 입에서 거짐을 받게 하십니다.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주십니다.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해 주십니다. 이 일을 하게 하기 위해 과거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에서 건져 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영원한 천국에 이르도록 보장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고독이 오히려 약이 되어 더 하나님께 집중하게 하고 사명에 집중하게 하는 것입니다. 본질에 집중하게 하는 것입니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은 흔히 혼자서 이루어 내야 합니다. 고독할 때 오히려 본질에 충실하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80세가 넘으신 조교수님께서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를 하셨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조 교수님만큼 성서문학에 대한 책을 쓰신 분이 없으십니다. 저에게 본인이 쓰신 많은 책을 가져다 주셨는데 그 연세에도 밤새워 책을 쓰신다고 합니다. 앞으로 계속 쓰실 것이라고 합니다. 괴테는 “인간은 사회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영감을 받는 것은 오직 고독에 있어서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토저는 “큰 독수리는 홀로 날아간다. 큰 사자는 홀로 사냥한다. 위대한 사람들은 홀로 간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함께 가며 홀로 있음을 즐거워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역사 속에 진정 위대한 일을 펼친 신앙인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어떤 자세로 일했습니까? 4장 7-8을 보십시오.

그는 선한 싸움에 진력했습니다. 욕심을 위한 투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선한 싸움에 일생을 투자한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의 순간까지 졸업장이 없습니다. 인생 마지막까지 ① 반대 세력과 싸웠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 로마인들은 법, 헬라인들은 문화를 자랑하였습니다. 바울은 나무 십자가를 자랑하였습니다.(고후11:23-27) 때로는 옥에 갇힘, 39대의 매 5번, 태장 3번, 돌에 맞아 죽을 뻔 함, 세 번의 파선, 강도의 위험, 동족, 이방인의 위험 등을 당했습니다.

② 자신과의 싸웠습니다.

롬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23절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도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라고 절규하였습니다.

③ 질병과 싸웠습니다.

그에게 육체의 가지가 있었습니다.(고후12:7) 기도하였습니다.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자고 하지 않도록 평생 주었습니다.

그는 이 싸움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오직 이 땅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 만난 그 날에 주실 부르심의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상실로 고독을 독으로 만들지 말고 고독을 재료로 하여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어 우리 인생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질병가운데, 실패 가운데, 실직 가운데, 원하지 않는 사건으로 고독하십니까? 외롭습니까? 홀로라고 생각합니까?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낄 수 없습니다. 바쁜 사람에게는,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사람에게는 고독이라는 이끼가 낄 수 없습니다. 바쁜 꿀벌에게는 슬퍼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사명을 이루는 사람에게는 외로움은 사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내게 맡겨준 사명을 따라 사는 길입니다. 리빙스턴은 정글에서 수많은 난관과 위험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기 전까지 나는 죽지 않는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자기연민 속에서 고독을 느끼면서 자기를 학대하고 자기 감상 속에 빠지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고독하십니까? 외롭습니까? 홀로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베토벤은 보청기를 사용해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귀가 먹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고독을 극복하고 제9번 "영광의 합창"을 작곡했습니다. 윌러 스코트는 어려서부터 절름발이었지만 세계적 작품을 만들었고, 월트 디즈니는 젊은 시절 교회창고에 절망의 나날을 보내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속에서 미키 마우스를 그려 디즈니랜드를 만들었습니다. 로버트 스티븐슨은 14년간 앓아 누워있으면서도 "보물섬"을 썼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능력을 주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이미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믿음이 있고, 능력의 통로인 기도가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돕는 자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칠천 명을 준비해 놓았듯, 요셉에게 보디발과 술맡은 관원장을 예비해 놓았듯 우리 앞길에 함께 일어설 사람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합니다.

사58: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곳 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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