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인재(4) 동기가 분명한 인재
요한복음21:15-17
제가 2월에 “하나님 나라의 인재”라는 주제로 설교하면서 요즈음 뜨거운 이슈가 된 챗GPT를 소개하였습니다. 논문을 써주고, 소설도 써주고, 각종 질문에 순식간에 답을 해줍니다. 10명이 10일에 할 일을 순식간에 해줍니다. 제가 이런 챗GPT를 소개하며 첫주에 <인재의 반격(신태균 저)>라는 책을 소개하였습니다. 21세기는 변혁의 시대, 격동의 시대라고 합니다. 변화의 속도만 봐도 지난 20세기보다 약 3배는 빨라졌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시간혁명, 공간 혁명, 인간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 1년에 걸쳐 일할 것은 한 시간에 하는 시대이고, 인터넷을 통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미국에 있는 사람과 같이 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공 지능 기계 인간이 탄생하여 인간보다 월등하게 일을 잘하여 인간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소수 인간-기계 인간-다수 인간의 계층 구조가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산업혁명은 세상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세계는 1~4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이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졌고, 좀 더 살기 편안한 시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기반의 기계화 혁명"이었습니다. 증기기관을 통한 기계적 동력을 이용하여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공업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게 되면서 생산력에서 기계와의 경쟁에서 뒤진 인간 노동자는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한 대의 기계가 여러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어 실업자가 넘쳐났고, 노동자의 임금은 점차 낮아져 그들의 생활고는 심각해져 '러다이트 운동'이라 불리는 기계 파괴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 에너지 기반의 대량생산 혁명"입니다. 2차 산업혁명으로 기계의 역할은 축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확대되어 헨리포드가 자동차 공장에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하여 대량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을 실현하였습니다. 사람은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지식정보 혁명"입니다.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이라고 했는데 제3차 산업혁명은 사람이 하기 힘든 복잡한 계산이나 판단 작업 등을 컴퓨터가 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정보화 혁명, IT혁명이 시작되어 이젠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닌,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힘을 갖는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같이 예배드리는 우리 어린이들 학생들 청년이 주인공이 되어 살아갈 세상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입니다. "IoT/CPS/인공지는 기반의 만물 초지능 혁명"입니다. 제3차 산업혁명이 IT 혁명이라면, 제4차 산업혁명은 ICT혁명이라고 말합니다. 소통은 인간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물건이 사람에게 말을 걸고 물건끼리 다양한 소통을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재의 반격(신태균 저)>이라는 책을 쓴 저자는 21세기의 첫번째 10년(2001~2010)이 '디지털' 시대였다면, 두 번째 10년(2011~2020)은 '스마트' 시대였답니다. 그리고 다음 다가올 세대는 인공지능과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신, 인간, 자연이라는 세 차원의 존재론적 세계였는데 '인공지능'이 인류의 미래에 제4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기계가 인간의 도구로,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수단으로 존재해 왔지만 앞으로는 인간과 구체적 관계를 맺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제2의 인격체로서 기계가 등장하여 로봇(인공지능) 애인, 로봇 친구, 사업 주체(법인 대표)로서의 로봇, 종교나 신앙 대상으로의 로봇 신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채팅 로봇(챗봇)에게 물어 보는 것입니다. 전지 전능한 척척 박사가 다 가르쳐 줍니다. 인간의 길흉화복이나 미래에 대하여 인공지능이 알려 준다는 것입니다. 삶의 가치관을 온전히 맡기는 신앙 대상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데이터가 암기한 지식을 이기는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 남는 시대에 필요한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저자는 4가지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시력입니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려면 일차적으로 시력이 좋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공부든 운동이든, 사업이든, 경영이든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시야입니다. 남이 못 보는 것을 보려면 좋은 시력뿐 아니라 넓게 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남보다 넓게 보기 위해서는 한마디로 시야가 넓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멀리 보고 넓게 보고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시각이라고 말합니다. 시력이나 시야와 달리 시각은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보는 각도로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되면 입체적 사고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시선입니다. 시선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말합니다. 사물을 올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시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로 가득한 세상에서 모든 것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갈 때 변하지 않는 본질이나 원칙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변할 때 잘못하여 시선을 놓치면, 자칫 무게중심을 잃을지도 모르고 본질에서 벗어나거나 원칙이 무너져 내리는 위험한 판단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4가지 눈이야말로 큰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에게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국가, 기업,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의 눈이 그 집단의 미래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결국 ‘보이는 않는 것을 보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치열한 글로벌 초경쟁 환경에서 승리하려면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첫째 일반인과 아주 다른 특별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상가, 몽상가, 철학자, 극작가, 예술가, 종교인 같은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남이 상상하지 못한 특별한 생각을 스스로 먼저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다른 사람의 특이하거나 새로운 생각을 이론화하고 체계화하는 사람입니다. 학자나 교수 또는 전문 연구자 같은 이론가들입니다. 세 번째는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생각을 먼저 하거나 이를 이론화 또는 체계화하는 데 탁월하지 않아도, 이를 기술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여 마침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을 기술자, 설계자, 개발자, 현장 전문가라고 합니다. 네 번째는 새로운 생각도, 이를 이론화하는 능력도, 또한 이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능력도 부족하지만, 이를 값싸게 만들어 상용화하거나 사업화하여 많은 사람이 직접 소비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로 제공함으로써 대중을 기쁘게 하고, 이로써 돈을 버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들을 투자자, 후원자, 사업가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상상가도, 이론가도, 기술자나 개발자도, 사업가도 아니라 남이 만들어준 제품이나 기술이나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같은 생활 문명을 앞서 즐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네 부류는 창조적 소수자가 될 수 있지만 다섯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기동력, 유연성, 순발력이 없어 변화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는데 그 변화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인재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십니다. 아무리 과학 기술 문명이 발달되고 시대는 변해도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인재를 통해 역사를 주관해 가십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신앙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말씀을 통해 지난 3 주간에 살펴보았습니다. 기억을 다시 해 보기 위해 다시 정리해 보면
첫 주에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살았던 하나님 나라의 인재인 다니엘을 통하여 세상 인재와는 다른 하나님 나라의 인재의 독특한 자격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인재를 선택하고 은혜로 시각을 열어 미래를 보게하고, 은혜로 능력을 주어 변화하는 세상에서 쓰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대 속에 쓰임받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하나님의 나라 인재를 선택하고 은혜로 시각을 열어주며 은혜로 한 시대 하나님 나라을 이끌어갈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나 노인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여자나 남자나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다 하나님 나라의 인재입니다. 어떤 환경의 변화에서 은혜를 받으면 그 시대 속에서 인재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주일에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쓰임받은 하나님 나라의 인재인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 인재의 독특한 특징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보화를 품은 질그릇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아도 보배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품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믿음으로 이루며, 사명을 이룬 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게 됩니다.
세 번째 주일에는 급변하는 세상 속에 살았던 하나님 나라의 인재 모세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인재의 자기규정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면 행동과 습관과 인격과 운명이 바뀌는데 우리는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시고 하나님 함께 하시는 존귀한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자기규정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홀로가 아니라 아론같은 동역자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쓰임받는 사람이라는 자기규정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능력없다고 핑계대지 말고 하나님의 지팡이가 손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라는 자기규정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도 나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그래도 나에게는 한 사람 아론이 있다. 나에게는 아직도 하나님의 지팡이가 있다”라고 자기규정을 하며 모세처럼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귀하게 쓰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대변화의 초석을 이룬 베드로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동기가 분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느 시대나 인재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동기가 분명해야 합니다. 동기가 없으면 목적 지향적인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동기란 사람들이 어떤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원인을 제공하는 동력입니다. 비행기를 만든 나이트 형제처럼, 전구를 만든 에디슨처럼 윈도우를 만든 빌게이츠처럼, 아이폰을 만든 잡스처럼 동기가 분명해야 새로운 세계의 인재가 되는 것입니다. 동기는 나는 하고 싶다라는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불꽃이 동기입니다. 동기(motivation)란 인간 행동을 일으키는 근원적인 힘으로 어떠한 행동을 계속해서 지속시키는 원인이 되는 요소입니다. 어떤 행동을 발생시키고, 그 행동을 유지시키며 그 행동의 방향을 정해주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학문적으로 동기는 ‘인간 행동의 방향과 힘, 그리고 지속성 여부를 결정짓는 의도체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동기는 인간의 행동을 특정한 목표로 이끄는 힘으로 인재가 끝가지 어떤 일을 해 내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동기에는 선천적 동기와 후천적 동기가 있습니다. 선천적 동기란 타고난 1차적 동기로 식욕, 성욕, 수면욕 등과 같이 인간 행동을 유발하게 하는 선천적 동기, 본능적인 동기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밥을 안 먹으면, 잠을 자지 않으면 죽으니까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밥을 먹고 죽을 때까지 잠을 자는 것입니다. 후천적 동기는 자라면서 학습하는 2차적 동기입니다. 이 후천적 동기는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외재적 동기와 내재적 동기가 있습니다. 외재적 동기는 ‘~하면 ~하겠다’라는 조건부 동기입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가 “이 번 시험에 90점 이상 맞으면 10만원 줄게” “너 이번 시험에서 90점 이상 맞지 않으면 용돈 한 푼 없다”라고 하는 것처럼 어떤 행동을 할 때 과제 해결이 가져다 줄 보상이나 처벌에서 비롯된 동기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외재적 동기는 결과에 대하여 보상이나 처벌이 주어질 때만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결정감이 위축되어 지속력이 없습니다.
내재적 동기란 어떤 과제에 대하여 본인이 가지고 있는 흥미, 호기심, 자기 만족감, 성취감 등에서 비롯된 동기를 말합니다. 내적 동기는 호기심, 모델에 대한 동일시, 도전 의식, 통제력, 의미의 추구, 흥미, 소명감 같은 자발적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는 동기입니다. 이것은 보상이나 처벌에 상관없이 자기 효능과 자기 목표 성취, 자기 흥미 등 활동 그 자체나 그로 인한 성취감이 보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지속력이 강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되었을 때 사람들의 성당 출입을 막고 무려 4년 동안이나 성당에 틀어박혀 그림에만 매달렸답니다. 어느 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 구석구석에 정성스레 그림을 그려가던 미켈란젤로에게 한 친구가 물었답니다. "여보게, 그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뭘 그렇게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리고 있나? 완벽하게 그려졌는지 누가 알기나 한단 말인가?"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무심한 듯 한마디를 던졌답니다. "내가 안다네." 이런 내적 동기를 '미켈란젤로 동기'라고도 부릅니다.
시대 마다 인재로 쓰임받은 사람들은 칭찬이나, 이익이나, 출세 등 외적인 보상에 의한 동기보다는 무엇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고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자신 안에 있는 내적 동기가 분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일대학 연구팀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9년간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한 사관후보생 11,320명을 대상으로 입학 지원동기를 조사하고, 이들의 5년간의 의무 복무기간과 이후 6년간의 군생활을 추적 관찰했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학비 지원 같은 외적 동기를 가진 후보생들보다 훌륭한 장교가 되겠다는 내적 동기를 가진 후보생들의 임관 비율은 물론 의무복무기간 이후의 근무 비율이 훨씬 높았답니다. 내적 동기를 가지고 입교한 생도들이 더 높은 성과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군 생활에 대한 만족감도 높게 나온다는 것입니다. 기업들은 핵심 인재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데 LG경제연구원이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보통의 인재를 보유하고 있으나 동기부여를 잘 하는 기업(7.9%)이, 우수 인재를 보유하고 있으나 효과적으로 동기부여 하지 못하는 기업(6.9%)에 비해 높은 영업이익률과 성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인재의 중요한 요소가 동기부여라는 말입니다. 또한 뉴질랜드 오타와 대학의 제임스 플린(James Flynn) 교수의 동기부여에 관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일반 직원들의 직무수행이 20~30퍼센트 수준으로 발휘되고 있음을 때, 이들에게 강한 동기가 부여되면 그들의 능력이 80~90퍼센트까지 상향된다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변화하는 시대에 쓰임받기 위해 내재적 동기 하나만 말하라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급변하는 세상에서 한 시대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쓰시기 위해 베드로에게 어떤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있습니까?
15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냐라고 물어 보십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필레오)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죄송합니다. 부끄러워서 뵐 낯이 없습니다.'라고 말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아마 이것이 베드로의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연약하여 배신하긴 했지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을 때 베드로는 인간적인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실수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인지라 부끄럽고 예수님께 죄송하기 그지없지만 제가 예수님이 사랑하는 아가페적 사랑으로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인간적인 필레오의 사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 줄을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라는 말입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내 어린 양을 먹이라”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의 양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양입니다. 예수님의 양을 먹이려면 무슨 동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까? 사랑의 동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양을 먹이는 것 결코 쉽지 않습니다. 생명을 양육하는 것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자녀 하나 잘 양육하는 것 얼마나 어렵습니까? 사랑의 동기로 하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사랑의 동기로 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랑의 동기로 예수님 대신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 좌편 우편에 앉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출세의 동기로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 동기로 예수님을 따라다녔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자 배신하고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은 배신하고 도망간 베드로를 찾아가 앞으로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사용하기 위해 사랑의 동기를 부여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동기로 목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사랑의 동기를 가지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 사랑의 동기가 강력하며 강력할수록 어떤 경우도 주어진 사명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말하면 우리에게 사랑의 동기로 자녀를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동기로 부부생활, 가정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동기로 교회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동기로 사람을 만나고 직장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봉사할 때도, 전도하고 선교 사역에 동참할 때도, 사업을 할 때도 강력한 십자가 사랑의 동기로 하면 어떤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주님이 주신 사명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계속 강조합니다.
1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물어 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아가페)하느냐." “그래 이 사람들 보다는 더 사랑하지 못하지만 이 사람들과 같이 똑같이 어려우니까 나를 버리고 물고기 잡으러 갔는데 그러면 어떤 경우도 배신하지 않는 사랑으로 나는 사랑할 수 있느냐?”라고 물어 봅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필레오)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는 여전히 “절대적 십자가를 지고가는 아가페의 사랑으로는 못하지만 좋을 때 좋아하고 싫을 때 싫어하는 친구 간의 사랑 거래의 사랑인 필레오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수준에 이르는 사랑의 동기가 아닐지라도 사랑의 동기로 주님이 주신 양을 치라는 것입니다.
17절 읽어 보겠습니다.
다시 예수님은 세 번째 다시 물어 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필레오)하느냐." 여기서는 예수님이 아가페가 아니라 필레오 사랑으로 물어옵니다. “그래 아가페 사랑으로는 못할지라도 필레오 사랑으로는 사랑할 수 있다”고 라고 물어 보는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필레오)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말을 듣고 주님은 다시 “내 양을 먹이라”라고 사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요13:1)"셨는데 그 사랑으로 사역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한 동기로 자기 성취, 자기 출세, 자기 욕구 충족, 자기만족, 자기 명예를 위한 동기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의 동기로 사역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순교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랑의 동기로 주님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사랑의 동기를 부여해 주시고 있습니다. 갈리리 바다는 그를 처음 사람낚는 어부로 부르신 장소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이 이름 지어준 베드로라고 부르시지 않습니다. "너 내가 잘 알아 어떤 사람인지. 그러나 시몬아 낙심하지 말아 다시 출발해, 실패 했어 다시 일어나"라는 예수님의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불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는데 불을 피워놓고 베드로에게 물어봅니다.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한 베드로에게 세 번 다시 물어 보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예언하시자, 베드로는 "나는 주님을 위하여서는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13:37)라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 사람들 보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실패하면 사람들은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실패한 사람을 찾아가 다시 한 번 성취동기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교육학에서 성취동기 이론이 있습니다. 성취동기란 우수한 결과를 얻기 위해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요구를 말합니다. 조금 어려운 말인데 앳킨슨(Atkinson)는 성취동기 이론에서 성공추구동기가 높을수록 성취동기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성공추구경향성= 성취동기×성공확률×성공의 유인가”라는 공식을 말합니다. 성취동기는 도전적이고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요구를 말합니다. 성공확률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지적 기대를 말합니다. 여기서 성공기대치와 유인가의 값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상황과 유사한 상황에서 과거에 개인이 경험했던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과거의 경험이 성공을 추구하려는 강도나 실패를 피하려는 강도를 결정짓는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성공하고자 하는 희망 때문에 항상 동기화되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때는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동기화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성취동기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많은 결과를 성취하는데 성취동기가 높은 사람은 과업지향적이고, 모험성이 강하며, 처음 해보는 일에도 높은 자신감을 가지고, 책임감이 강하고 미래 지향적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일을 이룩하기 위해 언제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현재에 열중한다는 것입니다. 수행하는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예상되는 결과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개관적인 정보를 계속 추구하며 정확한 판단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결과를 알려는 성향). 성취동기가 낮은 학생들은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외적 원인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성취동기가 높은 학생들은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내적 원인에서 찾습니다. 성공추구동기가 높은 학생들은 과제 실패 시 성취동기가 증가합니다. 성취행동은 성공추구동기와 실패회피동기의 절충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을 학문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사랑의 동기를 회복함으로 성취동기를 높여주고 성취확률을 높여 줄 뿐 아니라 과거의 실패 경험을 통해 성공의 유인가를 높여 성공추구경향성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아담, 실패한 아브라함, 실패한 모세, 실패한 다윗, 실패한 베드로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찾아가 내적 동기를 주고 외적 소명을 주며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한 시대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변혁시키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에게 필요한 동기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아가페 사랑의 동기입니다. 베드로는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여 십자가를 지신 그 예수님의 사랑의 동기로 사역하였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베드로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광장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눅이 들지 않습니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패배 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십자가의 사랑의 동기로 십자가 사랑을 전합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1절을 보십시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여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무조건적 사랑의 동기로 일하니까 사업에 기억이 일어나고 가정에 기적이 일어나고 건강에 기적이 일어나고 인간관계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됩니까? 42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합니다. 44절을 보십시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줍니다. 47절을 보십시오. 온 백성의 칭송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십니다.
한 마디로 조건없는 사랑의 공동체가 만들어집니다.
수천년 동안 지켜왔던 유대인들의 생각을 변화시켰고 삶을 변화시키고 제도를 변화시켜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유대교인들이 기독교인들이 되었습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변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왔고 날마다 믿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사도행전 3장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2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입니다. 장애인입니다. 구걸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40년동안 걷지 못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장애인을 부정을 탄다고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무조건적 십자가 사랑의 동기로 그를 대합니다. 아무런 조건이 없는 십자가 사랑의 동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대하는 것입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7절 이하를 보십시오. 오른손을 잡고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성전에 들어가면서 하나님께 찬송하였습니다. 무조건적 십자가 사랑의 동기로 살아가는 공동체가 점점 확산되어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남자만 약 5천 명이 되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 의해 예수님처럼 포박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 담대히 말합니다.
사도행전 4장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2절을 보세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동기가 되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경고하며 예수님을 전하지도 가르치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때 어떻게 합니까?
사도행전 4장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담대하게 말합니다. 무조건적 십자가의 사랑이 동기가 되면 이렇게 담대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마지막까지 십자가 사랑의 동기로 살았을까요? 우리는 자료가 많지 않아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베드로가 기록한 베드로 전후서를 보면 매장 마다 아가페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뜨겁게 사랑하라” “무엇보다 뜨겁게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사랑으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등 계속 아가페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베드로처럼 이 시대 부름 받은 하나님 나라의 인재들입니다. 우리도 사랑의 동기로 한 시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동기가 얼마나 중한지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1-7)“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사회학과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과제물을 내었습니다. 그것은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로 가서 그곳에 사는 청소년 2백 명의 생활환경을 조사하는 일이었습니다. 조사를 마친 뒤 학생들은 그 청소년들 각자의 미래에 대한 평가서를 써냈습니다. 평가서의 내용은 모두 동일했습니다. "이 아이에겐 전혀 미래가 없다. 아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또 다른 사회학과 교수가 우연히 이 연구 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에게 그 2백 명의 청소년들이 25년이 지난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추적 조사하라는 과제를 내었습니다. 학생들의 조사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사망을 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20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80명 중에서 1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직업도 변호사와 의사와 사업가 등 상류층이 많았습니다. 교수는 놀라서 그 조사를 더 진행시켰습니다. 다행히 그들 모두가 그 지역에 살고 있었고, 교수는 그들을 한 사람씩 만나 직접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답은 모두 한결같았습니다. "여 선생님 한 분이 계셨지요." 그 여교사가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교수는 수소문 끝에 그 여교사를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기적적인 교육 방법으로 빈민가의 청소년들을 이처럼 성공적인 인생으로 이끌었습니까? 늙었지만 아직도 빛나는 눈을 간직한 그 여교사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었지요. 난 그 아이들을 사랑했답니다.” 인생의 미래와 삶의 질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랑입니다. 죽음도, 원수도, 욕심도, 경쟁심도, 이기심도, 증오도, 가난도 수치도, 창피함도, 수모도 사랑의 용광로에 들어가면 다 녹아 버립니다. 일생동안 인간과 사건에 관해 연구한 월 듀란트는 "이 천년 동안의 역사가 지니는 교훈을 한마디로 요약하기를 서로 사랑하십시오. 역사에 관한 나의 최종적인 교훈은 예수의 교훈과 같습니다. 당신네들은 이 말을 막대에 달린 사탕 정도로 여기시겠지만 한 번 시도해 보십시오.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실제적인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조건적 십자가 사랑의 동기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베드로처럼 좀더 나은 세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해도 사랑의 동기로, 자녀를 양육해도 사랑의 동기로, 부모님께 효도해도 사랑의 동기로, 직장을 다녀도 사람을 동기로, 부부생활을 해도 사랑의 동기로, 목회를 해도 사랑의 동기로, 기도해도 사랑의 동기로, 헌금해도 사랑의 동기로, 전도해도 사랑의 동기로, 사업해도 사랑의 동기로, 선교해도 사랑의 동기로, 예배를 드려도 사랑의 동기로 사역하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가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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