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인재(3) 하나님 나라 인재의 자기 규정
출애굽기4:10-12
2월에 우리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쓰임받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에 대하여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살았던 하나님 나라의 인재인 다니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인재의 독특한 자격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인재를 선택하고 은혜로 시각을 열어 미래를 보게하고, 은혜로 능력을 주어 변화하는 세상에서 쓰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쓰임받은 하나님 나라의 인재인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 인재의 독특한 특징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보화를 품은 질그릇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아도 보배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품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믿음으로 이루며, 사명을 이룬 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급변하는 세상 속에 살았던 하나님 나라의 인재 모세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인재의 자기규정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심리학에서 자기규정 효과(Self Definition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을 누구라고 규정하느냐는 것입니다.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까지도 바뀐다"라고 했는데 이처럼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면 행동과 습관과 인격과 운명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나는 가난뱅이다”라고 규정하면 가난하게 사는 것이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면 무능력자로 살 확률이 높고 “나는 수포자다”라고 규정하면 수학 공부를 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메뚜기같은 존재라고 규정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기규정처럼 한 철 메뚜기같이 불평과 원망을 하며 광야에 살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항상 하나님이 세워주신 사도라는 자기규정을 가지고 세계 복음화를 이루었고,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녀도 하나님이 지켜주는 자로 자신을 규정하였고, 엘리사는 엘리아보다 은사를 갑절로 받은 자로 자기를 규정하며 창조적으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인재로 쓰임받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자기실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규정입니다. 자신의 조건이나 삶의 환경, 타고난 아이큐, 성격, 기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기규정입니다. 자기규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실행이 답이다(이민규 저)>라는 책에서 저자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게 되면 정말 그런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합니다. 생각은 행동을 결정하고 행동은 운명을 결정하는데 자신에 대한 규정이 행동을 결정하고 나아가 운명까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스스로 창조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창의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찾아내기 위해 성장 과정에서부터 교육 배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요인들을 조사한 결과 차이는 딱 한 가지였답니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스스로 창조적이 사람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장사꾼, 봉급쟁이, 내가 어떻게 이 나이에’ 등과 같은 부정적 자기규정은 정신 속에 깊이 박혀 알게 모르게 행동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해 버리면 이와 일치하는 증거를 찾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는데 일관성의 원리에 따라 무의식 중에도 자신의 말과 행동을 자기 규정과 일치시켜야 도덕적이라고 생각한답니다. 학업 실패자들은 마음속으로 ‘나는 멍청인가 봐, 나는 원래 철저히 약해, 나는 수학 개념이 부족해’라고 중얼거리는 습관이 있답니다.
심리학자 콜린스는 학생들의 수학 성적은 수학적 자질보다는 그에 대한 믿음이 더 크게 좌우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했답니다. 그러므로 ‘나는 수학적인 머리가 없다’고 자기를 규정하면 틀림없이 수학을 못하게 된답니다. 저자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다면 그냥 자신을 원하는 모습의 사람으로 규정해 버리면 된다고 말합니다. 책을 많이 읽고 싶다면 ‘나는 일주일에 책을 1권 이상 읽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규정하고 실천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세네카는 “우리가 어떤 일을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은 그 일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일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더 큰 일을 하고 싶다면 자신을 더 큰 존재로 규정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급변하는 세상에서 쓰임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자기 규정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쓰임받았는데 모세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가져야 할 자기 규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시고 하나님 함께 하시는 존귀한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자기규정을 가져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읽은 10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이니다”라고 자기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변화의 시대에 민족을 애굽에서 탈출시키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쓰시려고 하는데 모세는 그 일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본래 태어날 때부터 말하는 재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언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강퍅한 바로를 설득하고 완악한 백성들을 설득하기에 태생적으로 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소명을 주어 부르신 후에도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이 하나님 쓰시기에 부적합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모세가 언어 장애가 있었고 백성을 인도할 만큼 말주변이 없었을까요?
행7:22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그는 말과 행사가 능했습니다. 그는 애굽의 학문을 다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궁중에서 왕자 대접을 받으며 차세대 지도자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말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지나친 스스로 자기 비하입니다. 신앙 생활하면서도 때때로 모세처럼 돈이 없어, 인물이 변변치 못해, 가정 환경이 좋지 않아. 태생적으로, 실력이 없어, 시간이 없어 등과 같이 부정적 자기 규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기 규정을 가진 모세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모세의 자기 규정을 수정해 주십니까?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선천적으로 말 못한다고 하는데 너 스스로 말 못한다고 하는 그 입 내가 만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타고난 조건, 환경 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네 입과 함께 있다는 자기 규정을 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규정을 가지고 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들입니다. 사람이 자기 규정을 할 때 자기 스스로 자기 조건을 보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판단하기를 눈이 적으니까 키가 작으니까, 가난하니까 머리가 둔하니까 등과 같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기를 부정적으로 자기를 규정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타인의 말에 민감하여 타인의 말에 따라 자기를 규정해 버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친구 등의 말을 듣고 자기를 규정해 버립니다. 선생님이 학교 다닐 때 “너는 수학을 왜 이렇게 못하니”라는 말을 들으면 그 때부터 자신은 수학을 못하는 사람이고 규정해 버리고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누구의 말을 듣고 자기 규정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누구라고 말씀하는지 그것을 가지고 자기를 규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분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시편16:3)"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거리에서 청소를 하든, 비록 취업을 못해 아르바이트를 하든, 비록 병들었던, 장애를 자기고 있던, 나이가 들어 세상이 외면하든, 투자에 실패해 고뇌하든, 이혼을 해 삶이 위대로운 지경에 있든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모두 존귀한 자들입니다. 믿습니까? 한 번 따라 하겠습니다. “나는 어떠든 존귀한 자입니다.” 왜 존귀한 자입니까? 우리를 존귀케 해 주신 우리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신명기 31:6)”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 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흘린 눈물을 그가 닦아 주셨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우리 주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하나님은 태생적 조건에 따라 아니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평가에 따라 자기규정을 갖기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존귀한 자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존귀한 자라는 자기규정을 가지고 평생 어떤 조건을 만나도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부족하다고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거친 돌도 위대한 조각가가 들어 쓰면 위대한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습니다. 내게 있는 질병도, 내게 있는 장애도, 내가 겪는 실패도 하나님이 쓰십니다. 하나님이 오른손 불능자 왼손잡이 에훗도 하나님 나라 인재로 쓰십니다. 당시 여인으로 물건처럼 취급당하는 드보라도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사용하십니다. 겁쟁이 기드온, 사기꾼 야곱, 아내를 내어놓은 아브라함, 배반자 베드로, 살인 방조자 바울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여 한 시대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쓰셨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산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에 떠밀려 침몰되도록 방치하지 않습니다. 쓰임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모세 이외에도 얼마든지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쓸 수 있습니다. 모세 아니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말고도 얼마든지 하나님이 쓰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받아 쓰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자기 규정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자기 규정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귀한 백성이라는 자기규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우리는 어떤 경우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존귀한 자라는 자기 규정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2. 우리는 홀로가 아니라 아론같은 동역자가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라는 자기규정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데도 모세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합니다. 자신은 보낼 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자격이 없다는 자기규정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은 자격이 없으니까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보내라는 것입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말못한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자기 신분에 대한 부정적인 자기규정을 하고 살면 그 신분을 벗어나기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는 어떤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다 할지라도 내가 함께하는 존귀한 사람이라는 자기규정을 심어 주어도 그는 다시 자기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쓰임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부정적인 자기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서 무자격자라는 것입니다.
대단한 교육을 받은 모세가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서 자격에 대하여 왜 이런 부정적인 자기규정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왜 그런지 4장 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저를 믿지도 않고 제 말을 듣지도 않으며 여호와께서 제게 나타나시지 않으셨다고들 말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세 가지지 이유입니다.
첫째, 백성들이 지도자로 자격 문제를 거론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종으로서 공인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 이유가 다 무엇입니까? 백성들이 여전히 그의 권위를 부정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실패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자신을 믿어주고 따를 자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재가 어떤 일을 하는데 인적 자원은 필수적인데 같이 일할 만한 인적 자원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그런 이적 자원이 있는 사람을 보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출애굽기 2장 14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민족애와 의협심을 가지고 자신의 민족을 괴롭히는 애굽사람을 죽이고 이스라엘 민족끼리 싸울 때 그 일에 개입할 때 그들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출 2:14)"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로 믿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로서 자격문제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의 말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로에게 밀고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쓰라린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도 똑같이 “나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십이오”라고 말합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은 안되는 존재로 자기규정을 해버립니다. 과거의 쓰라린 실패의 경험으로 이렇게 자기 규정을 해 버리면 “나는 이제 해도 안되, 나는 자격없는 존재야”라고 자포자기 해 버리게 합니다. 다시 사업해도, 다시 공부해도, 다시 시험을 보아도, 다시 남자를 만나도, 다시 여자를 만나도 안된다고 자기규정을 해버리면 결국 안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의 그릇된 자기 규정을 어떻게 고쳐 주십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다 너의 권위를 거부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 너를 무자격자라고 배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 잘하는 아론이 너를 만나러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나옵니까? 죽이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밀고하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나온다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너를 대적하는 백성들에게는 누가 말한다는 것입니까? 아론이 대신 말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너 돈 없다고 돈 줄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하는데 사업하는데 자금을 투자할 한 사람이 있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너 컴퓨터 못한다고 컴퓨터 잘 하는 사람 한 사람을 보내어 너 대신 하게 해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 병 못고친다고 할 수 없다고 하는데 네 병을 고치는 한 사람 의사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너 기도 응답되지 못한다고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데 한 사람이 기도응답받는 사람을 너에게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아론이 비록 육신적으로는 형이지만 모세의 권위와 자격을 인정하여 하나님처럼 모세를 섬겨 주겠다는 것입니다. 다 그의 권위를 부정해도 한 사람이 그를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아론을 붙여 주어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사용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기 규정이 필합니다. “다 나를 도와 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아론같은 사람이 내게 보내주신다”라는 자기규정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홀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일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모두가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지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와 함께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한 사람을 보내어서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나님 나라의 인재들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합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홀로 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칠천인을 동역자로 남겨 놓았습니다(왕상19:18).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그를 위해 기도한 이사야가 있었습니다. 요나단이 적들과 싸울 때 다 떠났지만 끝까지 목숨을 걸고 요나단과 함께한 하나님의 사람 부관이 있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헬렌켈러를 쓰시기 위해 하나님은 설리반 선생님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바울을 홀로 사역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순간 순간 수많은 사역자를 붙여주었습니다. 바나바, 디모데, 에바브로 디도, 등 여러 동역자와 함께 일하게 하였습니다. 부족함을 보완해 주고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동역자를 주십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수많은 위기를 만나지만 돕는 자를 붙여 주셔서 결국 사명을 이루게 하십니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것만 보고 포기하면 하나님의 나라 인재가 세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늘 대적자와 경쟁자와 방해자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합니다.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사업이 안된다고 자식들이 잘 안된다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안된다고 자기규정해 버리고 주저 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래전에 충청도에 있는 한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교인 수도 많지 않은데 교회를 참 아름답게 잘 건축하였습니다. 어떻게 교인도 많지 않은데 이렇게 아름답게 건축했냐고 물어보니 한 분의 집사님이 건축 비용을 거의 다 감당하였다고 했습니다. 아론같은 한 사람이 있으면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안되는 일처럼 보이는 것도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집사님인데 사업하는 목적이 교회를 섬기기 위해였답니다. 서울에서 목회하다 충청도에 가서 개척을 했는데 목사님을 따라 내려가 교회 근처에 가계를 내고 교회를 도왔다고 합니다. 사업이 번창되어 당시 십일조를 한 달에 2 천만원 씩 했답니다.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쏟아 부어 주시어 교회를 건축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집사님은 아직 자신의 집이 없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 안된다고 40년 동안 안되었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아론 같은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만나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인재로 사용하십니다. 세상을 경쟁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대적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아론같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하나님의 사람을 멀리하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할 뿐입니다. 요즈음 우리 아이들이 자꾸 교회를 멀리하는데 얼마나 훌륭한 교역자들입니까? 얼마나 좋은 선생님들입니까? 어릴 때부터 아론같은 훌륭한 교역자들, 좋으신 선생님을 만나면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한 평생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만남이 전부라고 할 정도로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한 경제 연구소에서 한국의 최고 경영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인지능이 그들을 그 자리에 오르게 한 제 1 요인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특히 급변하는 시대에는 만남이 더욱 중요합니다. 똑같은 만남이라고 바람이 꽃을 만나면 향기를 내지만 오물을 만나면 냄새를 냅니다.
<카인드니스(브래드 애런슨 저)>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윌슨 구드는 14살 때 아버지가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윌슨의 어머니는 필라델피아로 이사했는데 그곳에서 한 남자가 매일 저녁 양복을 입고 어디로 가는 걸 보았습니다. 어느 일요일 남자에게 어디에 가냐고 물었습니다. 남자는 성경 공부하러 가니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윌슨은 그 사람을 따라가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윌슨은 그 남자를 따라가면서도 모임을 이끄는 그녀의 아내와 남편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부부는 윌슨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중요한 고비마다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시기가 다가오자 윌슨은 학교 상담교사에게 대학 지원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상담 교사는 공장 일이나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윌슨은 공장에서 일을 찾았습니다. 뮤리얼과 레몬 목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고집대로 그를 모건 주립대학교에 지원하게 하였고 윌슨의 생활비를 신도들에게 모금하여 지원했습니다. 윌슨이 집에 오면 레몬 목사는 미국방부에서 빌린 대출금으로는 충당할 수 없는 윌슨의 생활비를 신도들에게 모금했습니다. 부담이 점점 커졌지만 “어떻게든 해나겠다”고 뮤리얼 선생님이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윌슨은 점점 나은 학생이 되어갔습니다. 마지막 학기에는 전과목 A를 받았고 마침내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필라델피아 시장이 되었습니다. 윌리 윌슨 구드는 두 번의 시장 임기를 마친 후에도 어린이 돕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백악관 비서실에서 수감자 자녀의 멘토링 프로그램인 ‘아마치’의 자문관 자리를 제안했을 때 그는 직접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아마치’는 나이지리아에서 쓰는 이보어로 “이 아이를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가져다줄지 누가 아는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수감자 자녀의 70%가 교도소에 들어가는데 자신도 수감자의 아들이었던 윌슨 구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아마치’를 통해 19년 동안 어린이 30만 명을 도왔답니다. 그는 뮤리얼을 기려 딸의 이름을 똑같이 지었답니다. 그가 81 세라는 나이에도 아마치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하며 어린이들이 부모를 따라 교도소로 가는 운명을 피하도록 쉬지 않고 노력하는 것도 “과거의 잘못이 미래의 가능성을 망치게 놔둬서는 안 된다”라는 교훈 때문입니다.
“나는 홀로야, 모두가 다 나를 대적해, 나는 할 수 없어”라고 자기규정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아론같은 동역자를 보내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게 하신다는 자기규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3. 우리를 하나님의 지팡이가 손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라는 자기규정을 가져야 합니다.
다섯 번이나 거절하는 모세에게 이렇게 자기 규정을 바꾸어 준 후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7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이때 모세가 처한 상황이 어떠했습니까? 모세는 살인자로 도망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가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나이 80입니다. 그를 지지해 주고 환호하는 사람들 없습니다. 40년 왕궁 생활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광야의 목동에 불과합니다. 엄청난 상실의 고통에 처한 것입니다. 다 잃은 것같고 아무 것도 없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지팡이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지팡이로 이적을 행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00만 이라는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미사일이 필요하고 전차가 필요하고 대단한 재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네 손에 있는 지팡이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지팡이도 아닙니다. 지금 들고 있는 지팡이입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지팡이입니다. 익숙한 지팡이입니다. 한 번도 기적을 일으켜 보지 못한 지팡이입니다. 전쟁에는 아무 쓸모없는 지팡이 입니다. 백성들을 이끄는 데는 아무런 가치 없는 지팡이입니다. 양치는 데는 필요하지만 전쟁을 하는 데는 오히려 거침이 되는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익숙한 지팡이를 용도만 달리하여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양을 기르는 지팡이가 아니라 이적을 행하는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지팡이가 하나님이 들어 쓰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모세의 지팡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말씀합니다.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사용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일상의 기도, 일상의 예배, 일상의 찬양, 일상의 봉사가 누구에게는 기적을 체험받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누구나 하나님의 지팡이가 있습니다. 능력없다고 포기하거나 좌절하면서 자신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쓰임받을 아무것도 없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익숙한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 하는 것, 내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을 붙들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팡이기 되면 내가 할 수 없는 이적이 일어납니다.
그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바로 앞에서 지팡이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줍니다. 바로 앞에서 지팡이를 던지니까 뱀이 됩니다(출 7:9) 지팡이로 하수를 치니까 피로 변합니다.(출7:17) 지팡이로 개구리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합니다(출 8:5) 지팡이로 땅의 티끌을 치니까 이가 됩니다(출8:16)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으니까 뇌성과 우박이 내입니다.(출9:2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으니까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들입니다(출10:13) 강퍅한 마음을 녹이는 도구가 됩니다.
홍해 앞에서 200만 명의 백성들이 원망하며 절망할 때 홍해를 가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합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하나님이 주신 것 아무것도 아닌 지팡이지만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홍해를 가르게 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불을 피우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 앞에 막힌 담이 무너지게 하고 큰 산이 넘어지게 하며 인생의 홍해를 가르는 도구가 됩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도구가 됩니다.
또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 광야에 왔습니다. 물이 없습니다. 기갈로 죽을 지경입니다. 백성들이 모세와 다툽니다. 모세에 대하여 원망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팡이를 들고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그대로 순종합니다. 기갈을 해소 받습니다. 광야에 서도 물이 나오게 합니다. 내게 이미 익숙한 것 붙들고 순종하면 광야 같던 가정이 오아시스로 변합니다. 메마른 마음이 옥토로 변하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남을 비판하며 잃어버렸던 사랑이 회복되어 풍성한 영적 생활이 이루어지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또 보십시오. 아말렉과 전쟁이 벌어집니다. 이 때 어떻게 합니까? 모세가 지팡이를 붙들고 산꼭대기에 올라갑니다. 지팡이를 들고 기도합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아말렉과 전투에서 승리하게 됩니다.(출17:9) 아론과 훌이 붙들어 주니까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익숙하고 보잘 것없은 것 같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 받으면 승리의 도구가 됩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지팡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쓰시는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지팡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팡이를 전능하신 하나님이 쓰셔야 합니다.
모세의 손에 40년 동안이나 습관적으로 손에 들려 있던 마른 막대기가 민족 해방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라고 자기 규정을 가지면 그것들이 기적을 일으키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질그릇같은 나를 하나님이 붙들어 쓰시면 "내게 능력 주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무식하고 다혈질이고 실수 잘하고 배신하고 저주하고 도망간 베드로도 하나님이 들어 쓰시니까 앉은 뱅이를 일으키고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오고, 오천 명 돌아옵니다. 어린 소년의 손에 있었던 도시락,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가 5천명을 먹였습니다. 아무 가치 없게 보이는 모래와 흙과 불이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히게 될 때에 사파이어가 될 수 있습니다. 모래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게 될 때에 오팔이 될 수 있습니다. 맨 흙이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히게 될 때에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지고 있는 조건보다 예수님의 피값으로 구속받은 우리 자신을 사용하시길 원하십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재능 작은 것같지만 우리를 인재로 부르신 우리 하나님이 쓰시면 되는 것입니다. 너무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과소평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열등의식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보고 비관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어진 자그마한 재능을 하나님이 사용하면 그 재능이 극대화되어 그의 인생 전체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모세를 변혁의 시대에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사용하신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다.(11) 우리가 해야 할 말을 가르쳐 주십니다. 할 말을 가르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2). 우리의 행할 일을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5). 우리가 일할 수 있는 권위를 주시는 분이십니다(16). 우리가 일할 수 있는 도구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7).
모세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셔서 변화무쌍한 오늘 이 시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불러 쓰시길 원하십니다. 자기 규정을 바꾸길 원합니다.
우리는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시고 하나님 함께 하시는 존귀한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자기규정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홀로가 아니라 아론같은 동역자가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라는 자기규정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를 능력없다고 핑계대지 말고 하나님의 지팡이가 손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라는 자기규정을 가져야 합니다. 깨진 거울로 자신을 바라보면 깨진 자신이 보일 뿐입니다. 우리는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자기규정을 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도 나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그래도 나에게는 한 사람 아론이 있다. 나에게는 아직도 하나님의 지팡이가 있다”라고 자기규정을 하며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귀하게 쓰임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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