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인재(2) 보배를 질그릇에 품은 사람
고린도후서4:7-15
오늘은 하나님의 나라의 인재 두 번째 말씀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하나님은 은혜로 선택되어 하나님의 은혜로 시각을 열어주고 하나님의 은혜로 힘을 주어 하나님이 쓰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인재가 될 수 있습니다. 꼭 대단한 일만 해야 하나님의 인재가 아니라 각자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맡겨준 사역을 하나님의 힘으로 감당하면 하나님 나라의 인재가 되는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늙었다고, 병들었다고 하나님 나라의 인재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저도 점점 늙어가고 우리 교인들도 제 나이와 같이 젊은 교인보다 나이드신 분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나이들어간다고 우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은 늙고 병들면 인재의 대열에서 퇴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병들었다고 나이 들었다고, 없다고 퇴출시키지 않습니다. 생로병사는 인간이 당연히 거쳐가야 하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쉽게 죽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는데 늙었다고 하나님의 나라의 인재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기억 장애가 왔다고 해서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종 통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버림받은 것이 아닙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노화로 인해 70대가 되면 10%정도 치매 증상이 나타나고 80대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뇌에 알츠하이머 형 변화가 일어나고 90세면 60%가 95세면 80% 정도 치매 증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50세가 넘어가면 거의 십년만다 배로 늘어나고 여성의 경우는 70대 부터는 골다공증이 급격히 늘어난다고 합니다. 60대가 되면 아직도 많은 일에 의욕이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정년을 맞이하게 되고 부정수소 증후군이 생깁니다. 신경 조화가 깨져 많은 불편한 증상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소화가 잘 안되고, 깊게 자지 못하고 자주 꿈을 꾸게 됩니다. 편히 쉬고 싶어도 쉬는 모드로 전환이 되지 않고 항상 피로감이 쌓입니다. 관절통, 근육통, 두통, 복통 등 각종 통증이 생기고 우울해진다는 것입니다. 이유나 원인이 없는데 잠이 오지 않고 피로에 시달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매사 의욕이 없어진답니다. 대부분 사람은 50대 정도부터 전두엽이 서서히 위축이 되며 감정의 노화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특별한 병이 아니라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나고 모든 것이 순환이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70대 후반에 이르면 치매 증후가 두르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런 상태에서 80대 90대 되신 양가 부모님이 살아 계시면 병드신 부모님을 간병해야 하는 부담을 가져야만 합니다. 개별적으로 조금은 차이가 있지만 어떻든 사람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쳐 가는 것입니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지 사회적 지위나 자산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존엄하고 가치있게 여겨 주시며 끝까지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쓰십니다. 조금 어려움이 온다고 과잉 불안, 과잉 걱정, 과잉 염려, 과잉 고독에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하나님 나라의 인재인지 오늘 성경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를 질그릇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질그릇은 깨지기 쉽습니다. 금그릇에 비해 가치가 없습니다. 항상 젊고 건강하게만 살 수 있는 몸이 아닙니다. 연약하여 쉽게 깨어지기 쉬운 몸입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쉽게 낙심하고 쉬게 포기하기 쉬운 마음입니다.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합니다. 그런데 질그릇 속에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까? 보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보배가 무엇이겠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합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우리는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우리 안에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생로병사 모든 과정에 함께 하시는 우리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어떤 경우도 영원히 우리를 버리지 않는 우리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모두가 다 떠난다 해도 우리 하나님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질그릇 같지만 보배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 마지막까지 우리는 하나님이 쓰시는 하나님 나라의 인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질그릇은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품은 질그릇이라는 사실을 믿습니까? 가난하여도, 지식이 없어도, 병들었어도, 성숙하지 못하였어도, 실수가 많아도, 계획한대로 잘 지키지 못해도, 외모가 출중하지 못해도, 능력이 없어도, 은퇴하여 집에 있어도, 늙었다고 누구도 환영해 주지 않아도, 병들었어도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우리는 보배를 품은 질그릇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부자로 살았는냐? 얼마나 권력과 명예를 누렸느냐? 얼마나 많은 배움이 있느냐?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건강하게 살았느냐?와 상관없이 보배를 품은 질그릇은 그 보배를 품었다는 자체로 가치있고 고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사는 삶은 그 가치가 빈부귀천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릇의 가치는 그 그릇 안에 무엇을 품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술을 품으면 술그릇입니다. 오물을 품으면 오물 그릇입니다. 독을 품으면 독그릇입니다. 약을 품으면 약그릇입니다. 보배를 품으면 참으로 가치 있는 보석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보배를 품은 질그릇인 우리는 한평생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1. 보배를 품은 질그릇으로 하나님 나라의 인재인 우리는 불굴의 의지로 마지막까지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8-9)
오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지 8-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사방에 우겨쌈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즙을 짜기 위해 포도를 짓누르다'는 뜻으로 바울이 당한 당시의 고난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면에서 닥치는 고통에 짓눌릴 수 있습니다. 공간적으로 압박을 당하여 궁지에 몰린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부채 때문에, 질병 때문에, 인간관계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처할 수 있습니다. 갭 투자했다 어찌할 수 없는 경우를 당할 수도 있고, 장애 있는 자녀들 문제로 무거운 짐을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처럼 답답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빠져나갈 길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면초가의 상태입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태입니다. 해결하라 수 있는 어떤 수단이나 방법이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핍박을 받았습니다. 박해를 받은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꺼꾸러뜨림을 당하였습니다. 핍박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죽음의 고비를 당하는 것입니다. 얻어맞고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보배로운 복음을 전하다가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고린도 후서 11:23-27절에 옥에 갇히고, 수없이 매를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다고 했습니다. 39대의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 했습니다.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다고 했습니다.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였다고 했습니다.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갖가지 장애물을 만났지만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런 장애물 앞에서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우겨쌈을 당하도 싸이지 않았습니다. 사단을 바울만 제거하면 복음의 문이 닫힐 줄 알고 우겨쌉니다. 목회도 만찬가지입니다. 목사만 제거하면 교회는 흔들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은 영적 전쟁터에서 우리만 제거시켜 버리면 제 마음대로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사면에서 닥치는 고통에 짓눌렸지만 움츠러들지도 쓰러지지도 않았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에 당황할 때도 있었지만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핍박을 받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버리지 않았습니다.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그것으로 망하지 않습니다. 얻어맞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달려갔습니다. 결국 주어진 복음 전하는 사명을 다 이루었습니다. 바울은 인생 말년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바울에게 복음 전하는 사명이 주어졌듯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크게는 두 가지입니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 전하는 사명입니다. 둘째는 각자 주어진 개인적인 사명입니다. 가정과 직장과 사업과 교회에서 주어진 각자에게 맡겨준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어떤 어려움과 역경과 유혹이 있어도 넘어지고 쓰러져 포기하면 안됩니다. 끝까지 복음 전하는 사명과 아버지로서의 사명, 어머니로서 사명, 사장으로, 직장인으로, 삶의 현장에서 주어진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주어진 사명을 이루는 사람이 진정한 인재이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미국에서 군인으로 최고의 인재를 기르는 미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가 있습니다. 해마다 14,000명이 지원해서 1,200명 정도가 선발된다고 합니다. 웨스트포인트의 입학 전형은 미국 유수의 대학들만큼 엄격하다고 합니다. 아주 높은 SAT 또는 ACT(미국대학입학자격시험) 점수와 뛰어난 고등학교 성적은 필수라고 합니다. 11학년부터 지원 절차를 밟아야 하고 하원의원이나 상원의원 또는 미국 부통령의 추천서까지 받아야 한답니다. 하버드대학교 입학 전형에도 없는 항목들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턱걸이를 포함한 체력 평가에서도 최고점을 받아야 한답니다. 해마다 1만 4,000명 이상의 11학년생이 지원 절차를 밟고 그중에서 필수 서류인 추천서를 받는 데 성공한 4,000명이 추려진답니다. 다시 절반이 약간 넘는 2,500명이 웨스트포인트의 엄격한 학업과 체력 기준을 통과하고, 그렇게 선발된 집단에서 1,200명만이 입학 허가를 받아 등록한답니다. 웨스트포인트의 남녀 입학생 거의 전원이 학교 대표팀 선수 출신으로 대부분 주장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도 다섯 명 중 한 명이 졸업 전에 중퇴하고 더욱 놀라운 점은 중퇴생의 상당수가 입학한 첫해 여름에 ‘비스트 배럭스(Beast Barracks)’ 7주간의 집중 훈련을 받는 도중에 그만둔다고 합니다. 어떤 학생들이 입학하려고 2년 동안 준비한 학교를 2개월도 채 다니지 않고 그만둔답니다. 일과는 오전 5시에 시작 밤 10시까지 똑같은 일과가 반복되고 주말은 물로 식사 시간 이외의 휴식시간도, 가족과 친구와의 연락도 단절된다고 합니다. 웨스트포인트에서 어떤 애들이 그만두는지 알고 싶어 다양한 연구를 해 보았지만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는 정확한 기준을 발견하지 못했답니다. <그릿(grit) 앤절라 더크워스 저>이라는 책을 낸 저자는 그만두는 사람의 특징이 SAT 점수나, 체력점수, 리더십 등의 요소와 관계가 없고 오히려 '그릿'의 존재 여부에 따라 버티는 것에 차이가 난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성공의 요인으로 말하는 그릿(GRIT)은 투지, 끈기, 불굴의 의지 등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G는 Guts(인내력), R은 Resilence(회복탄력성), I는 Intrinsic Motivation(내적 동기), T는 Tenacity(끈기)의 첫 자를 따서 만들어낸 조어입니다. 성공한 사람은 회복력이 강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한 동기와 내적 인내력 끈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재능이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재능X노력이 기술 향상을 이루어 준다고 합니다. 성취는 기술X노력이고 그릿은 열정X끈기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높은 수준의 목표가 열정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불굴의 투지를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적 용어로는 높은 수준의 목표가 바로 사명입니다. 인재가 성공하려면, 사명을 이루려면 재능보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결합된 끈기, 투지, 불굴의 의지인 그릿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사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학생이 끝까지 경쟁에서 살아남을지에 대해서 예측도 열정과 끈기에 있다고 합니다. 문제학교에 배정된 초임교사들 중 누가 학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교사로 남을 것인가도 마찬가지고, 회사에서 어떤 세일즈맨이 끝까지 살아남을지, 그리고 누가 제일 판매 성과가 좋을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것은 좋은 지능도 아니었고 좋은 외모, 육체적 조건도 아니었고, 아이큐도 아니었고 목표를 향해 오래 나아갈 수 있는 열정과 끈기 즉 그릿이였다고 합니다. 내 통제 밖에 있는 장애물에 집중하지 말고 통제 가능한 것을 관리해야 합니다.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인생을 바꾼다(페니 맬러리 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나귀가 우물에 풍덩 빠졌다 농부는 고민하다가 이런 결론을 내렸답니다. 당나귀가 어차피 늙었고 우물도 곧 덮으려던 것이니 힘들게 고생할 필요는 없겠고 생각한 농부는 이웃 주민들에게 우물을 메워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흙을 우물에 던지기 시작했답니다. 당나귀는 자기 등 위로 흙이 쌓일 때마다 그것들을 툭툭 턴 다음에 받고 올라섰답니다. 오래 지나지 않아 흙 위에 올라설 수 있어 우물을 폴짝 넘어 걸어나왔답니다. 저자는 멈추지 말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 가장 깊은 우물에서도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온갖 종류의 흙을 던져 질 때 우물을 나오려면 그 흙을 털어내고 밟고 일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각종 문제거리가 오히려 받침대가 되어줄 것이라고 합니다. 문제를 독약으로 삼지 않고 보약으로 삼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문제는 어느세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몸이 약하면 팔굽혀 펴기 하루에 한 번이라고 해 보는 것입니다. 만성 통증이 있다면 하루에 한 번이라고 찬양해 보는 것입니다. 하루에 5천보라도 걸어보는 것입니다. 긴긴 장애물이 있으면 포기하지 말고 하루에 한 번이라고 기도해 보는 것입니다. 사명이 있다면 행동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사명을 행해 걸어가야 합니다.
인생의 장애물이 거침돌이 되어 넘어지는 우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장애물이 다가와도 디딤돌로 삼고 일어나야 합니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은 것입니다. 오래 불에 달구면 그만큼 가치 있는 금이 되는 것입니다. 장애물을 도피의 수단으로 삼아 핑계거리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장애물로 오히려 보배를 드러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골리앗을 만났기 때문에 다윗은 백성들에게 만만이라는 소리를 듣고 결국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억울함이 포기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인신매매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핍박이 도피와 포기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나를 브닌나의 핍박 때문에 기도하는 여인이 되었고 민족의 지도자 사무엘을 낳아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늙음이 포기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안나는 가난하고 늙었지만 성전에서 기도하며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다시 시작하였고 모세는 80세에 갈렙은 85세에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장애가 핑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삭도 시력 장애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지체 장애인을 사용하셨습니다. 40년 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못한 사람도 일어나 쓰임받았습니다. 질병이 포기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히스기야도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었도 바울도 고질적인 질병을 달고 산 사람입니다.
고통도 사명을 이루는 재료가 될 수 있고, 질병도, 실패도, 박해도, 비난도, 장애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사명을 이루는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보배를 품은 질그릇으로 하나님 나라의 인재인 우리는 불굴의 의지로 마지막까지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8-9)
질그릇 같은 우리가 무슨 힘으로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쓰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2. 보배를 품은 질그릇으로 하나님 나라의 인재가 된 우리는 믿음으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7, 10-14).
우리가 쉽게 무너지고 쉽게 깨어지지 잘하는 연약한 그릇인데 어떻게 움츠러들지도 쓰러지지도 않고 마지막까지 주어진 사명을 이룰 불굴의 의지가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정말로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애매하게 비난의 말을 들으면 분노가 치밀고 밟아 주고 싶은데도 당황하지도 않고 절망하거나 자포자기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쓰러진 남편과 아내를 어떻게 10년 넘도록 끝까지 놓지 않고 붙들고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장애로 힘들어 하는 아이를 마지막까지 붙들고 용기를 가지고 함께 살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가난하면 움츠려 들고, 핍박받으면 넘어지고, 힘겨우면 쓰러져 포기하고 싶은데 우리가 무슨 힘으로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 다시 뛸 수 있습니까?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이기 때문에 장애물이 크면 클수록 쉽게 깨어지고, 넘어지고, 포기하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 질그릇입니까? 대단한 건강을 가진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도 무너집니다. 병든 작은 세포 하나에도 육체는 쉽게 무너집니다.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것 같지만 남의 말 한 마디에 기분은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합니다. 대단한 신앙을 가진 것 같지만 작은 유혹으로 얼마나 쉽게 우리의 신앙은 흔들립니까?
우리는 다 연약합니다. 쉽게 감정이 상합니다. 쉽게 감정이 늙습니다. 쉽게 사명을 잃어버립니다. 쉽게 복음 사역을 포기할 수 있고 쉽게 넘어질 수 있습니다. 힘이 없고 무능한 질그릇같은 우리가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사명을 이룰 수 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멘탈력이 강한 사람이 무엇이든지 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멘탈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멘탈력이야 말로 유효기간이 길고 깁니다.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면 조건이 나빠지면 나빠질수록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영광스러운 힘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고난을 받은 것이 예수님의 생명을 나타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10-11) 10절을 현대어 번역은 이렇게 하였습니다. "우리 몸은 예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부단히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살아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 속에 예수님께서 살아계십니다. 내 힘이 아니라 그 예수님의 능력으로 장애물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죽음의 장애물까지 넘어가게 만듭니다.
저는 속마음을 잘 내비치는 사람은 아니고 하나님께 불평 원망을 자주 하지 않는 목사입니다. 그러나 참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하나님 너무 힘듭니다.”라고 속으로 말합니다. 그런 말을 하고나면 제 마음 속에 이런 마음이 듭니다. “뭐가 그렇게 힘들어. 나는 십자가를 졌어. 너 십자가 지고 죽어 보았어. 십자가 지는 믿음을 가져 봐. 그래야 사명을 이루지”
예수님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믿음의 기도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인생을 바꾸는 것입니다. 정말로 힘들 때는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처참한 고통을 다 참고 견디며 마침내 인류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며 순교의 자리에까지 갈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십니다. 상황은 똑같아도 믿음으로 그 상황을 대처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인생을 바꾼다(페니 맬러리 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직장에 다니는 딸이 어머니에게 와서 인생이 너무 힘들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포기하고 싶다고 털어 놓았답니다. 그 때 어머니는 딸을 부엌으로 데리고 갔답니다. 세계의 냄비에 물을 채운 다음 첫 번 그릇에는 당근 두 번째 그릇에는 달걀 세 번째 그릇에는 커피 원두를 넣었답니다. 물이 끓자 불을 끄고 어머니는 당근과 달걀을 꺼내 각각 접시에 담고 커피도 국자로 떠서 접시에 놓았답니다. 그러고는 딸에게 당근을 만져보라고 했답니다. 딸은 당근이 부드러워졌다고 했답니다. 이번에는 딸에게 달걀을 가져가 깨뜨려 보라고 했답니다. 딸이 껍데기를 벗기자 단단하게 삶은 달걀이 나왔답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커피를 맛보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딸이 이게 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답니다. 어머니는 세 가지 음식은 똑같은 역경을 겪었지만 반응은 다 달랐다고 설명했답니다. 단단했던 당근은 끓는 물을 만나자 부드러워지고 약해졌고, 연약한 내부를 지키던 얇은 달걀 껍데기는 끓는 물 안에서 안을 단단하게 바꾸었고, 커피 원두는 끓는 물을 변화시켰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당신은 당근인가 달걀인가 커피인가”라고 질문하며 “가장 행복한 사람은 모든 걸 가진 사람이 아니다 자신에게 오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통하여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12). 죽음에서도 살리시는 것을 알았습니다(14). 알 뿐 아니라 그것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는 장애물이 있다고 하여도 담대하게 말하였습니다(13). 현대어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을 믿고 그 믿는 것을 담대하게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장애물을 재료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 수 있었던 비법은 바로 앎을 수반한 믿음에 있었습니다.
<그릿>이라는 책에 어떤 것을 끝까지 이루어내는 그릿을 기르는 네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열정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열정이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관심사를 계속 파헤치고 인내심을 가지고서 그런 것들을 접할 때 생긴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연습이라고 말합니다. 에릭슨의 연구에 의하면 바이올리니스트든 피아니스트든 무용가든 어떤 일이든 유능한 인재가 되려면 10년간 1만 시간을 그 분야에 투자하여 연습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연습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연습으로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식적인 연습이 아닌 무의식적 연습은 발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연습해야 향상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목적의식인데,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에게도 중요하지만 타인에게도 중요하다는 목적의식을 가져야 그 일을 오래 지속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일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 가치가 있는지 자꾸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네 번째로 말하는 것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건 이래서 안 돼, 저건 저래서 안 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성장형의 사람들은 '이건 이래서 안되니깐 그럼 이렇게 해 보자', '저건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으니 이걸 개선해서 이렇게 해 보자'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 책에서는 스텐포드 대학의 드웩박사가 말한 고정형 사고방식과 성장형 사고방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지능은 근본적인 개인의 특징으로 변화시킬 수 없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지적 능력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지능은 변할 수 있고 언제라도 지적 능력은 크게 변한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성공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재능보다 노력과 학습을 칭찬해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한 번 실패해도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련에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강화해 주라고 말합니다. 할 수 있는 힘은 믿음에서 나오고 그 믿음은 자부심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자부심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심어 주는지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자녀 교육을 시킬 때 그릿을 키워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 일로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성장 마임드셋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2000명이 넘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보니 고정형 사고방식의 사람보다 성장형 사고방식의 사람들이 그릿이 훨씬 높았다고 합니다. 졸업 후 대학 진할 뿐 아니라 학위를 받을 가능성도 높았다고 합니다. 학교생활도 더 잘하고 정서적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며 타인과 굳건하고 긍정적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한 평생 쓰임받고 그 무수한 고난과 핍박에서도 사명을 다 이룬 바울은 무엇으로 그 사명을 이루었다고 말씀합니까? 바울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능력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재에게 있어서는 승리와 패배를 판가름 하는 것은 믿음에 있습니다. 질그릇같은 나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보배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할 수 없다고 믿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수많은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 받은 사람입니다. 루스드라에서 믿음으로 앉은 뱅이를 일으켰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혔지만 믿음으로 찬송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기적적으로 풀려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독사에게 물려 서도 죽지 않았고, 광풍 속에서도 죽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는 것을 체험받았습니다. 무엇으로 그런 일을 극복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는 어떤 장애물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말년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라고 유언적 고백을 합니다.
우리도 장애물을 믿음으로 뛰어 넘어야 합니다.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을 보면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남의 힘으로 장애물을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힘으로 장애물을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힘으로 장애물을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하나님의 힘으로 장애물을 극복하며 사명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보배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을 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면 하늘로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평양을 헤엄쳐 건널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배를 타면 태평양을 건널 수 있습니다. 우리가 멀리 있는 별을 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망원경으로 보면 멀리 있는 별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세한 세균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미경을 가지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힘이 없다고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전폭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믿음은 보배를 담은 질그릇인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선물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능력을 행합니다. 믿음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위대한 선물을 받고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 잃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습니까? 건강을 잃고, 재산을 잃고 친구를 잃고,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아직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만큼 위대한 재산은 없습니다. 믿음만큼 힘이 있는 것이 없습니다. 중풍병자의 친구의 믿음을 보시고 일어나게 하신 예수님, 폭풍을 보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라고 꾸짖으시며 믿음을 가지라고 하신 예수님, 열두해 혈루증 앓은 여인이 믿음을 가지고 옷자락을 만질 때 낫게 하신 예수님, 많은 군중들의 식사 때문에 염려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꾸중하시던 예수님, 예수님은 오늘도 믿음으로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며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가난을, 믿음으로 질병을, 믿음으로 장애를, 믿음으로 노년의 위기를, 믿음으로 상실을 아픔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믿음으로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 20:27)”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 15:28)” 성경은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14:23)”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큰 일 위대한 일을 한다 해도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재능도 시간도 물질도 믿음으로 쓰임받을 때 하나님 나라의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쓰임받지 못하는 것들은 그저 바람에 날아가는 안개와 같은 것들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나라의 인재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그 믿음으로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주신 사명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명을 이룬 후에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3. 보배를 품은 질그릇인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룬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15, 7하)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자신이 고난받는 것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였지만 고린도 교인들이 얼마나 바울을 비난했습니까? 서로 파당을 나누어 시기심으로 경쟁합니다. 타락한 세상을 그대로 교회에 끌어들여 부도덕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은 말씀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설교를 못한다고 바울을 비난합니다. 돈을 좋아한다고 비난합니다. 이중인격자라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당하는 모든 고난은 고린도 교인들의 유익을 위해 당하는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유익으로 받는 고난이다면 마땅히 감당하겠다는 자세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결국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과 같이 연약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옴으로 그것이 연약한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세상 인재들은 큰 업적을 이루면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 영광을 자신만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당한 고난을 통해 이루어낸 업적을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과 함께 누리고 그것으로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바울은 나이들면 들수록, 업적을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교회를 더 많이 세우면 세울수록 더욱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낳은 자와 같고,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이며, 교회를 핍박한 자고,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한 자이고,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합니다(고전 15:8; 고전 15:8-9; 딤전 1:15).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도 자기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전 9:16)"
오히려 연약함을 자랑하였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기를 원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1:20)“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권면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바로 바울처럼 사명을 이룬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자기 자랑하며 교만 떨지 말아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질병에 걸렸습니다. 죽을 병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열심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적들로 물리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축하 사절단이 왔습니다. 그 때 히스기야는 군납고를 보여 주면 자신의 능력을 자랑합니다. 하나님이 고쳐 주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히스기야의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대하 32:25)" 헤롯은 교만하다 충으로 죽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재인 우리는 어떤 일이 잘 되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 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도저히 인간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장애물이 있어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극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일 수 있겠습니까? 기업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질병으로 쓰러질 것 같습니다. 인간관계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복잡한 문제로 깊은 수렁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것 같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재료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보배를 품은 질그릇으로 하나님 나라의 인재인 우리는 불굴의 의지로 마지막까지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8-9)
질그릇 같은 우리가 무슨 힘으로 하나님 나라의 인재로 쓰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보배를 품은 질그릇으로 하나님 나라의 인재가 된 우리는 믿음으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7, 10-14).
이렇게 믿음으로 사명을 이룬 후에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배를 품은 질그릇인 하나님 나라의 인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룬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15, 7하)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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