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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복(시144:12-15)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7930 추천수:13 220.120.123.244
2023-01-22 13:28:3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복

시144:12-15

 

오늘은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음력으로 한 해가 시작되는 음력 초하루 설날입니다. 전통적으로 설날이면 꼭 하는 것 두 가지를 들라면 무엇인 것같습니까? 첫째는 세배입니다.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는데 설날이면 부모님뿐 아니라 동네 어르신을 다 찾아다니면서 세배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장인 장모님, 처가 큰 아버님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찾아뵙고 설날이 되면 세배했습니다. 어르신에게 세배를 드리고 무릎을 꿇고는 어르신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하면 어르신은 세뱃돈을 주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말씀하시며 덕담을 해 주었습니다. 두 번째는 제사입니다. 저의 가정은 제가 어릴 때 가족 모두가 교회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설날이나 추석에는 꼭 제사 지냈습니다. 제사는 닭이 울기 전에 새벽 일찍 지냅니다. 조상이 죽어도 이 땅에 혼으로 남아 있다고 믿었는데 조상귀신이 닭이 울면 떠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유교에서는 효자로서 어버이를 섬기는 3도가 있는데 그것은 "살아 계실 때에는 봉양하고, 돌아가시면 그 상복을 입고, 상이 끝나면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맹자는 "뒤를 이을 아들이 없이 조상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되는 것은 가장 큰 불효다"라고 했답니다. 왜 가장 큰 불효입니까? 중국인들은 귀신을 인귀, 귀신, 명신 등으로 구분지어 생각하는데 후손의 제사로서 궤양을 풍족히 받은 영혼은 오래동안 살고, 제사가 끊어지면 주림에 못이겨 제 2차 죽음으로 적멸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릴 때는 밥에 수저를 꽂아두고 국에 밥을 말아둡니다. 이런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부모를 영원히 죽이기 때문에 가장 큰 불효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품고 있는 유교 제사가 이조 시대에(13세기 이후) 외래문화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전통적 풍습처럼 정착하였습니다. 제사는 단순히 부모에 대한 공경의 표나 사모의 정이 아니라 부모를 귀신으로 만들어 제사를 잘 드림으로 조상들로부터 복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음력 새해 첫 시간에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한 해 조상들이 도와주어 화를 받지 않고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이런 풍습이 많이 없어졌지만, 오늘 예배에 참여한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께서는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된 현대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대부분 믿지 않지만, 과거에는 그것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에 제사 지내는 것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겼습니다. 1920년 9월 1일 동아일보에 나온 기사입니다. 경북 영주에 권성화씨가 살고 있었답니다. 그의 아내는 효성이 극진하였답니다. 어느 날 모시던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답니다. 그러자 그녀는 살아 계실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아침, 저녁으로 지청에 상식을 차려드리며 지성으로 받들었답니다. 그러던 중 그 남편 권씨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기독교에 입교한 뒤에 그 아내로 하여금 조석 상식을 금하게 하였답니다. 이때 그 아내는 계속해서 자기의 효성을 한국 전통적 방법으로 지속할수 있기를 애원하였으나 거절당했답니다. 그러자 박씨는 남편의 불효한 죄과는 내가 마땅히 목숨을 끊어 사죄를 받아야 한다면서 그 시어머니의 신주를 뒷동산 정결한 곳에 묻고 자기는 즉시 가까운 냇물에 몸을 던져 죽어 버렸답니다. 이 사건을 동아일보는 "애매 무죄한 기독교의 희생자 남편이 예수교를 믿어 상식을 폐한 결과 며느리가 대신 죽어"라는 표제로 특필했답니다. 지금은 그런 사람을 정신 이상자처럼 생각하겠지만 조상이 복을 준다는 것을 사실로 믿었고 제사를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누가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을 하십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44편 15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누가 복을 받는 사람입니까?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입니다.

 

어떤 복을 받습니까? 네 가지 복을 말씀합니다. 그 내용이 12절부터 14절까지 소개되어 있습니다.

첫째,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자손들이 잘 되는 복을 받습니다.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라는 말에 우리 성도님들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복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사는 우리 성도님들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이런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가정적인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장성한’이란 ‘자라다. 커지다. 중요해지다. 강하게 만들다’라는 뜻을 가지고, ‘나무들’이란 재목을 의미하는데 이는 자식을 잘 키워서 유능한 인재로 배출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아들들이 어릴 때부터 나무처럼 튼튼하게 자라 아들이 어릴 때부터 벌써 강하고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딸들은 궁정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이 되는 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모퉁이 돌’은 벽의 모퉁이에 위치하여 이어지는 벽의 기준이 될 뿐 아니라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돌입니다.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이라고 했는데 이는 장인들이 모든 솜씨와 기교를 동원하여 가장 예쁘게 모양 낸 것을 뜻합니다. 딸들은 화려한 궁전을 지탱하는 아름다운 모퉁이 돌에 비유함으로 딸들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을 말합니다. 내 자식만큼은 잘 키우고 싶고 마지막 죽을 때도 자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고, 자식이 나보다 더 잘되기는 바라는 것이 보모의 마음이고 무엇보다 이런 복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인데,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에게 이런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들딸들이 하나님을 우리 아들딸의 하나님으로 삼아 이런 복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대로 하나님의 복이 단절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처럼 아들딸들도 기도하며 살고, 우리가 헌신하는 것처럼, 우리가 찬양하는 것처럼 우리의 자녀도 찬양하고 헌신하는 삶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의 복을 받습니다.

13절부터 14절 하반절까지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말씀도 ‘우리’라는 말 대신에 우리 성도님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의 경제적인 복, 산업의 축복, 기업의 축복을 말씀합니다.

‘백곡’은 모든 종류의 산물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가득하며’는 곡간에 차고 넘친다는 말입니다. 온갖 종류의 산물들이 우리의 곳간에 꽉 들어찼다는 말입니다. ‘천천과 만만’은 수천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목축 산업으로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크나큰 축복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수소는 무겁게 실었다.’는 말은 소가 무겁게 곡식을 실은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로 풍요로운 소출을 많이 얻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김으로 이런 경제적 풍요, 산업의 풍요를 누리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는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국가적으로 평화의 복을 받습니다.

14절 중반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기에서도 우리 대신에 성도님들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이 누리는 평화의 평안의 복, 국가적 축복을 말합니다. ‘침노’는 ‘분열, 갈라진 틈, 부서진 벽, 파괴’의 뜻이 있습니다. 치열한 전투로 말미암아 성벽이 파괴되는 일이 없음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나아가 막은 일’은 전투로 말미암아 벽이 파괴되어 방어하러 나가는 일이 없음을 말합니다. 전쟁은 인간의 모든 삶을 파괴해 버립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십시오.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남편을 잃고 아내를 잃고 자식을 잃어버립니다. 만약 핵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남아 있는 자들도 지옥 같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전투가 없고 평화로운 축복을 누릴 것을 말씀합니다.

 

넷째는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는 복지의 복을 받습니다.

14절 하반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우리의 거리’는 공공의 장소 즉 광장을 의미합니다. ‘슬피 부르짖음’은 비명, 울부짖다는 말입니다. 공동체에 슬피 부르짖음이 없다는 말은 전쟁의 고통이 없을 것이라는 말도 되지만 공동체에 억울함을 당하여 슬피 부르짖는 자가 없을 것을 말씀합니다. 요즈음 말하면 억울해 거리에 나와 데모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회 정의가 확립되어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이 없고 정당한 분배가 잘 이루어져 억울하게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장과 분배가 조화로운 복지 사회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15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하나님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이런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렇게 성경에 약속해 주어도 많은 사람이 믿지 않습니다. 예전에 조상들이 복을 준다고 철석같이 믿고 살던 유교 문화권에 살던 사람들이 지금은 믿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살았던 신앙인들도 과학문명이 발달된 현대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이 이런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점점 믿지 않고 있습니다. 믿음의 부모를 둔 자녀들도 점점 실제로는 이 사실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 광야 이스라엘 사람들도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시 78:19-20절을 보면 "하나님이 무슨 능력으로 이 광야에서 먹거리를 공급할 수 있으랴? 그가 바위를 쳐서 물이 솟아나오게 하고, 그 물이 강물이 되게 하여 세차게 흐르게는 하였지만, 그가 어찌 자기 백성에게 밥을 줄 수 있으며, 고기를 먹일 수 있으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자체가 이미 어마어마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믿은 것도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닙니다. 복받은 자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죽음에서 살아나는 영생의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지옥에 가지 않고 믿음으로 모두가 천국에 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믿고 회개함으로 죄용서의 복을 받았습니다. 죄로부터 해방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무엇으로 이런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돈으로 지식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절대 이런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막상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현실적으로 쓴 물이 나오고 홍해가 다가오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하면서 왜 자녀가 장성한 나무나 궁전의 아름다운 모퉁잇돌은커녕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취업에 실패하느냐는 것입니다. 결혼에 실패하고 교회를 떠나 버리느냐는 것입니다. 왜 백곡이 가득한 곡간은커녕 날마다 오르는 은행 이자 때문에 마음 조여야 하는 것입니다. 왜 삶의 전쟁은 계속되고 평안도 평화도 없이 사느냐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정의는 외출하고, 공평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 버렸냐는 것입니다.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아도 이런 복이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의 주인공이 다윗은 보십시오.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혹은 암몬과 아람 연합군과의 큰 전쟁과 같은 일을 앞에 두고서도 이런 고백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다윗은 분명하게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백성은 복이 있도라”라고 믿었습니다. 다윗도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자식들이 다 잘 된 것이 아닙니다. 첫째 아들 압논은 배달은 동생 다말을 겁탈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이 자기 형을 살해했습니다. 아버지를 배반하고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다윗의 부하인 요압에서 비참하게 살해되었습니다. 넷째 아들 아도니야는 왕이 되려고 음모를 꾸미다가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장인의 시기로 수없이 미친체 하며 고난을 당하며 도망다녔습니다. 물질의 복을 받기는커녕 모든 것을 다 잃고 잡류들과 함께 이방 땅 블레셋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평안도 평화도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골리앗을 쳐서 민족을 구했는데 오히려 핍박과 죽음의 위기를 당했습니다. 정의도 공정도 없습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 않기 때문이 아니라 지도자나 당사자들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 주시길 원하는데 복받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당했는데도 다윗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었습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 7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 요새, 산성, 건지시는 분, 방패, 피난처, 복종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7가지의 고백은 전부 ‘나의, 내’ 등으로 표현되는 ‘1인칭’ 고백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사랑으로 다윗을 완벽하게 보호하시고 책임을 져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에게 어떤 자격이나 가치,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본래 어떤 존재인지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3-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다윗은 초라한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헛것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말합니다. 제로 포인트 사고를 가지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nothing 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복을 주었습니다. 헛것이라는 것은 공허 텅빔이라는 말로 인생의 덧없음과 연약함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지나가는 그림자는 그 존재 자체가 실체가 아닌 허상 같은 것으로 무가치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대단한 것같지만 잠깐 살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아 주었습니다. 인정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기름을 부어 주었습니다. 생각해 주었습니다. 은혜받은 자격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세상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우리기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할지라도 우리를 세밀하게 알아주시고 인정해주시고 보살펴주시고 있습니다. 받은 복을 세어보면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자꾸 없은 것을 바라보고 잃은 것을 헤아리고 상대적으로 평가하여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화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낫씽에서 생각하면 모든 것이 복입니다. 예수 믿은 것도, 자식이 있는 것도, 교회 다니는 것도, 죄용서 받은 것도,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진 것도, 직장이 있는 것도, 아직 남아 있는 건강이 있는 것도, 숨쉴 수 있는 것도, 말할 수 있는 것도, 걸을 수 있는 것도, 부채가 있는 것도 다 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희 집도 어머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어제 형제들이 모였습니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어렸을 때 어려웠던 과거사들을 이야기했습니다. 똑같이 자란 형제들이지만 다 자기 해석들이 있습니다. 똑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들이만, 어떤 형제는 불행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어떤 형제를 행복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복으로 해석을 합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10절에 보면 하나님은 구원을 베풀어 주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을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생각해보면 아무리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내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세상 근심 걱정 너를 누르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갈 때 주가 네게 주신 복을 세어라 두렴없이 항상 찬송하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세상 권세 너의 앞길 막을 때 주만 믿고 낙심하지 말아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하리니 염려없이 앞만 보고 나가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그래서 다윗은 그 전쟁 중에서도 무엇을 합니까?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반석되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대적들로부터 건지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싸우게 하시고 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결국 인생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

찬양한 후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5,6,7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며 산들에 접촉하사 연기를 내게 하소서 번개를 번쩍이사 원수들을 흩으시며 주의 화살을 쏘아 그들을 무찌르소서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 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시요 그의 종 다윗을 그 해하려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시니이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는 살면서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인 것을 믿고 살지만 사다보면 복이 아니라 화같은 것이 배달됩니다. 원치 않는 택배에게 배달됩니다. 때로는 자녀문제, 때로는 실패, 때로는 질병, 때로는 사고, 때로는 장애, 때로는 가난, 때로는 억울함, 때로는 불안, 때로는 전쟁의 위험, 때로는 불공평 등이 다가 오면 하나님은 복을 주시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심하면 하나님을 떠나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끝까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복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빛”에 이런 간증이 나옵니다. 우리 나라 일반외과 여성전문의 제1호는 영락교회 민병운 권사님이라고 합니다. 권사님은 기도를 많이 하셨던 분인데 잊지 못할 환자가 있었답니다.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 시급히 수술해야할 환자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당시 수술비 50여만 원이었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500만 원 정도의 수술비였답니다. 그런데 환자의 남편은 이 돈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통사정을 하며 다음 날 아침까지 틀림없이 수술비를 가지고 올 테니 우선 입원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답니다. 그런데 저녁에 병실을 돌다가 그 내외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답니다.

남편이 “여보, 당신 죽어야할 것 같아."라고 했답니다. 환자에게 무슨 말인가 하여 가만히 들어보니 환자와 남편은 예수님을 신실히 믿는 사람들이었답니다. 돈이 없으니까 돈을 빌리기 위해 돈이 있는 친척을 찾아갔답니다. 그런데 그 친척이 “네가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돈을 빌려주겠다.”고 말하더랍니다. 그 말에 남편이 너무나 고민이 되었지만, 도저히 예수님을 돈 50만 원에 팔 수는 없었답니다. 그래서 빈손으로 병원에 돌아와 아내에게 ‘당신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잘하셨어요. 예수님을 돈으로 팔다니, 그건 말도 안 돼요. 집으로 가요, 천국 갈 준비 할께요.”라면서 남편에게 오히려 고마워하더랍니다. 의사인 권사님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굳건한 믿음을 가진 두 사람 앞에 절로 머리가 숙어져 나중에 돈이 생기면 갚으라고 한 후 수술을 해주었답니다. 수술은 잘되어 아내 되는 분은 건강한 몸이 되었는데, 몇 개월 후 그 부부가 선물 꾸러미를 들고 찾아왔답니다.“선생님, 오래 기다리셨지요? 전에 제 아내의 수술비를 드리지 못했는데, 오늘 드리려고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을 정말로 믿습니까? 지도자가 된 다윗은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인 것을 확신하고 살았습니다. 다윗이 지도자가 된 것은 백성을 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나라에 다윗같은 하나님을 복으로 삼는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나라의 지도자나 기업의 지도자나 가정의 지도자나 교회의 지도자나 자신이 잘나고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우리를 세워주시면 나로 말미암아 가정이 복을 받고 자손이 복을 받고, 사업과 회사가 복을 받고, 교회와 나라가 오늘 주신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자손의 복과 경제의 복과 마음의 평안의 복 관계이 평화의 복과 공의와 공정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나 때문에 복의 문이 닫히면 안 됩니다. 내 사리사욕 때문에 공동체가 저주를 받으면 안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세상에서 모두가 크고 작은 지도자들입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을 확실히 믿고 백성에게 복의 통로로 사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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