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하늘의 신령한 복(엡1:3-14)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7022 추천수:10 220.120.123.244
2023-01-29 13:25:19

하늘의 신령한 복

엡1:3-14

 

지난 설 명절 때 아들딸과 일가친척들을 만나 서로 복을 빌어 주었을 것입니다. 어떤 복을 빌어 줍니까? 일반적으로 다섯가지입니다. 첫째는 수(壽)입니다. 장수, 오래 사는 복입니다. 누구나 빨리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부(富)입니다.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재물이 많고 넉넉하게 사는 것입니다. 셋째로 강령(康寧)입니다. 육체가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입니다. 넷째는 유호덕(攸好德)입니다. 덕을 갖고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고종명(考終命)입니다. 일생을 건강하게 명대로 살다가 고통 없이 평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이러한 복을 누리기를 원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런 복은 다 유효기간이 있고 상대적인 것입니다.

올해 우리는 신년 첫 예배를 드리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복을 받자는 말씀을 붙들고 한 해를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어떤 것인지 그 복을 어떻게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하여 4주간에 걸쳐 말씀을 들었습니다. 올 한 해 어떤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떤 가뭄이 올지라도 걱정하지 않으며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잎이 청청하며 결실이 그치지 않는 복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기대하고 사는 사람과 그저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은 삶이 질이 다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즐거이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수, 부, 강령, 유호덕, 고종명의 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있습니다. 유효기간이 없고 절대적인 복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3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잠깐 있다가 살아지는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복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하늘에 속한 절대적인 영원한 복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서신을 쓸 때 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도둑질해서, 뇌물 받아서, 폭력으로, 사기로, 경제 사범으로 감옥에 간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3:1)" "주안에 갇힌 내가(4:1)" "쇠사슬에 매인 사신(6:20)"으로 감옥에 가 있는 것입니다. 당시 감옥은 대부분 지하에 있어 습기가 차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고, 공기의 순환이 없어 냄새가 나고, 각종 피부 질환이 걸리기 쉬운 곳이었다고 합니다. 쇠사슬에 매여 움직임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굶주림과 헐벗음, 추위와 건강의 위협과 죽음의 두려움과 육체적 고통과 싸워야 하는 곳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에베소에 있는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할만한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거나 좌절하거나 불평과 근심에 쌓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육체 건강이 주어진 것도 아닌데 왜 바울을 이렇게 감격하며 찬양을 외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9대의 태장을 다섯 번 맞으면서도, 돌에 맞아 죽을 뻔하기도 하면서도, 동족, 이방인의 위협과 광야, 바다, 시내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핍박받는 가운데서도 바울을 굴하지 않게 만들었고, 불평과 염려와 원망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었던 신령한 복이란 무엇입니까? 갖은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그 누구도 빼앗지 못했던 행복감과 만족을 누리게 만들었던 신령한 복이란 무엇입니까? 가난과 질병, 핍박과 환란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열정적으로 감당하게 만들었던 신령한 복은 무엇이겠습니까?

 

1. 신령한 복이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4-6)

4,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삼기로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아들로 바뀐 것입니다. 단회적으로 한 번에 하신 것입니다.

1) 언제입니까? 창세전입니다(4).

사람들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세상이 만들어 지기 전에 우리를 택하였습니다.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택했습니다.

2) 어떻게 택하였습니까?(방법 4) "그리스도 안에서"

3) 왜 택하였습니까? (이유 4)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고"

거룩하고 흠이없게 하시려고입니다. 더럽고 추하고 마땅히 책망받고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탐욕, 모순, 부조리, 이중 인격자인 사람, 공허하고 만족함 없는 사람, 시기하고 분노, 질투하기 좋아하고 쉽게 노하고 쉽게 배신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들기 위하여 택하였습니다.

4) 근거는 무엇입니까?(5,9) "하나님의 깊으신 뜻"

우리의 재물, 능력, 외모, 재능, 신앙 생활, 성품, 경력 등을 보고 택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얼마나 조건적입니까?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선택해 주신 것입니다. 조건 때문에 기죽지 말아야 합니다.

5) 내용은 무엇입니까(5)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택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과거 하나님이 예정하고 택함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선택하고 고아처럼 버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살게 하였습니다.

6) 목적은 무엇입니까(6)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조건없이 예정에 따라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지옥의 형벌로부터 면죄된 사람들입니다. 이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당신을 향한 계획 있어죠.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사랑해요 축복해요 당신의 마음에 우리의 사랑을 드려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사43:1)"

야곱같은 사기꾼을 선택하여 축복의 아들로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같은 우상 장사의 아들을 선택하여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모세와같은 살인자를 선택하여 민족 지도자로 만들었습니다. 다윗같은 목동을 선택하여 위대한 왕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시22:10)"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조성한 나 여호와(사44:2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상을 만들기 전에 우리가 선택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이것이야 말로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복 중의 복입니다.

팡세를 쓴 철학자 파스칼은 천제였다고 합니다. 그는 대단한 천재 수학자 물리학자였습니다. 참으로 휘귀한 천재였습니다. 12세 때 논문 쓰기 시작하였고 15세 때 유럽의 지성 감동시켰습니다. 32세 때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을 때 고백한 글을 평생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철학자나 과학자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확신, 확신. 사랑, 기쁨, 평화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당신을 알지 못했어도 나는 당신을 알았습니다.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이렇게 썼다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순간에 이 세상 일체의 사물을 망각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수저까지도 다른 사람들에게 다물려 준 다음 39년의 생애를 뜨겁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다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영국의 버틀란트 럿셀은 그가 쓴 철학사에서 파스칼을 가리켜 "참으로 아깝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몰랐더라면 인류에 공헌한 것이 얼마나 많았을지 모른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러셀은 신령한 복을 몰랐지만, 파스칼은 알았습니다.

 

2. 신령한 복은 성자 예수님이 우리의 구속을 성취시어 죄를 사해주신 것입니다(7-12)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우리가 창세 전에 선택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게 만들어 주었습니다(7). 죄의 노예로부터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겠습니까? 경제문제, 환경 문제, 질병 문제, 인권 문제이겠습니까? 근본적으로 죄의 문제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비극이 다가온 것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생명의 단절, 교제의 단절이 된 것입니다. 생명의 단절로 영적 죽음, 육적 죽음, 영원적 죽음이 다가온 것입니다. 교제의 단절로 영적 소경, 죄의 지배, 친죄 성향의 인간이 된 것입니다. 죄를 사함받는 것이야 말로 인생의 진정한 복입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롬 4:7-8)"

무엇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1) 방법이 무엇입니까(7) "그의 피로 말미암아"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 1:18-19)"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인간의 근본적인 삶의 질의 변화는 수양으로, 훈련으로, 배움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 밖에 없습니다.

2) 동기가 무엇입니까?(7)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른 것이 아닙니다.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준 것이니라." "새벽기도 잘 나왔다고, 헌금 많이 했다고, 구제 많이 했다고, 예배 잘 참석했다고, 교사, 성가대 봉사했다고, 성경 많이 봤다고. 전도 많이 했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값없이 은혜로 구원 받았으니 그 은혜에 감격하여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구속받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이 얼마나 복스러운 것입니까?

3) 목적은 무엇입니까(10,11)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그 안에서 기업"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한다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똑같이 하나님의 나라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로는 우주 안에 불일치가 있지만 때가 차면 이 불일치는 종식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어 통일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업은 천국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확실하게 우리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할 때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까? 육신이 이 땅에 살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얼마 전 JTBC에서 신년 대기획 “세 개의 전쟁”을 방영했는데 늘 이 땅에서는 욕심이 충돌하여 크고 작은 전쟁이 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범하여 세계는 심각한 경제적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민족주의 노예가 되어 패권 전쟁을 치열하게 치루고 있는데 대만을 놓고 치루는 전쟁이 도화선이 되어 어쩌면 세계가 불바다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인류의 최후의 날로 달려가는 환경과 이후 온난화의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날이 도래한다면 인간이 그렇게 매달렸던 세상의 복은 어느 날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은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신령한 복을 누리는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자유함을 얻었다 하지만 그러나 아직은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아직은 우리 심령은 하늘나라를 향하지만, 우리의 발과 손은 땅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순과 갈등이 있습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나라는 동서로 분리되어 통일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상은 분리되어 통일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한 자와 가난한 자의 갈등과 고통이 있습니다. 지식이 있는 자 지식이 없는 자가 있어 갈등과 고통이 있습니다. 아름다움과 추함이 동시에 존재하여 갈등과 고통이 있습니다. 양심은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사이에 갈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완전한 더 이상 불확실과 불일치 갈등이 존재할 수 없는 통일의 때가 다가오고야 맙니다.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보이나 직접 볼 날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으로 신령한 복을 영원히 누리는 완성될 날이 올 것입니다. 통일 되게 할 때가 옵니다.

(1) 이런 우주적인 계획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예정하신 것입니다.(9)"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한 것이니"

(2) 누구의 뜻으로 하였습니까?(9) "하나님의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3)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9) " 그 뜻을 우리에게 알리셨음으로(8)" "하나님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었음으로"(하루살이, 메뚜기, 개구리 예화)

4) 왜 우주적 계획을 성취해 주십니까?(12)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여" 우리의 의를 자랑하고, 우리의 가짐을 자랑 하고, 우리의 신앙 자랑을, 우리의 직분 뽐내고, 우리의 지식을 선전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들이면 유업을 줍니다.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 4:7)"

아들이면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11)"

언젠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은 다 씻어 줄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 7:17)"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

 

3. 신령한 복은 성령 하나님이 믿음을 주어 우리에게 구속을 적용해 주시는 것입니다(13-14)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기업에 우리가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습니까? 그 객관적 사실이 어떻게 내 일이 되고 내 사건이 되었습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어떻게 나온 것입니까?

1) 복음을 듣고(13)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객관적인 말씀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2)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13)

듣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인쳐 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

 

이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11) 너희에게(13)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신령한 복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삼아 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고,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 영원한 천국을 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6, 12, 14) 영광의 찬송,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하여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찬양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선택해 주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었습니다. 우리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감옥에 있는 바울을 통하여 찬양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신령한 복을 받았기 때문에 감옥에서도 찬양합니다. 이 편지를 쓸 당시 바울은 이 땅에서 오복을 받았습니까? 감옥에 있었습니다.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대형 교회를 이룬 원로 목사가 된 것도 아닙니다. 평생 나그네처럼 살면 복음을 전하며 사도행전 마지막 부분에 보면 셋방에서 목회했습니다. 변호사를 사 주고 영치금을 넣어 줄 자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몸이 건강한 것도 아닙니다. 질병 치료를 위해 하나님께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네 은혜가 족하다고 하나님은 고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래 산 것도 아닙니다. 수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39대의 태장을 다섯 번 맞았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뻔하였습니다. 동족, 이방인으로부터 위협을 받았습니다. 광야, 바다, 시내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이 땅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복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신령한 복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수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평생 찬양하며 살았습니다.

신령한 복을 받은 우리는 고난에 처했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에 처했다고 원망하며 탄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에 처했다고 힘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고난에 처했다고 핑계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에 처하면 처할수록 더욱 찬양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선택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죽음에서도 참 자유를 누리는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주신 믿음을 통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조건에서도 천국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조건에서도 이 땅에서 바울처럼 천국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초가 삼간도 나는 만족하네 값진 재물도 내겐 없지만 내게 주어진 하늘나라에 가면 내게 황금과 은만 있네 내게는 하늘 저 위에 집 있네 햇빛 비치고 찬란한 그곳 그 날이 오면 다시 방황치 않고 순 황금길을 거닐겠네. 나 가난해도 외롭지 않네 천국길 가니 실망없다네 나 은혜로서 면류관 쓰며 거문고 타는 천국가네 내게는 하늘 저 위에 집 있네 햇빛 비치고 찬란한 그곳 그날이 오면 다시 방황치 않고 순 황금길을 거닐겠네.”

우리는 신령한 복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처치, 어떤 환경에서도 찬양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말씀합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찬양받으시기 위해 지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모진 고문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무엇을 합니까? 찬양합니다(행 16:25).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의 문을 찬송으로 열었다오....울고 있는 형제여 왜 찬송을 잊었는가 어둠 속의 찬송은 기적을 부른다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의 문을 찬송으로 열었다오 고통의 문을 찬송 찬송으로 찬송 찬송으로"(복음 찬송1129) 그렇습니다. 신령한 복을 받은 우리는 고난이 있을지라도 찬송해야 합니다. 그럴 때 기적이 읽어납니다. 옥문이 열리고 간수장과 그의 가족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찬양하는 바울 그 고난으로 낙심하며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고난으로 죽지 않았습니다. ① 행 23 : 12-35에서는 그를 죽이려고 맹세한 40명의 손에서 건져 주었고, ② 행 25 : 1-5에서는 그를 죽이려고 길에 매복한 자들의 손에서도, ③ 행 27 ; 30-32에서는 난파한 배에서도 ④ 행 27 : 41-44에서는 바울을 죽이려고 하던 군사들의 손에서도, ⑤행 28 : 1-6에서는 독사의 독에서도 그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이 찬양하면 우리의 마음이 바뀝니다. 찬양하면 우리의 삶이 바뀝니다. 찬양하면 우리의 표정이 바뀝니다. 찬양하면 우리의 언어가 바뀝니다. 찬양하면 우리의 앞길이 바뀝니다. 언젠가 우리는 고난 많은 이 세상 다 끝내고 모든 고통을 잊고 하나님 앞에 영광의 찬양을 드릴 때가 옵니다. 계시록에 보십시오. 천군 천사들과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계시록 4장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을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여야 합니다.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계5:12)"

이 땅의 복을 받지 못하고 감옥이 있습니까? 질병의 감옥, 경제의 감옥, 습관의 감옥, 죽음의 감옥, 죄의 감옥, 불신의 감옥, 걱정의 감옥, 중독의 감옥이 있습니까? 걱정하며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안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부유한 사람, 세상 건강한 사람 부러워하며 우울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매일 매일 힘있게 찬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1.29.

 
 
 
 
SNS 공유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