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4)새해, 은혜는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엡2:1-10
2015년 새해 네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저녁에 어느 교회 목사님을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어제 오후 윤집사님의 아버지님이 소천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일정을 바꾸어 5시에 경북 예천에 문상가기로 했습니다. 목회하다 보면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런 저런 일을 많이 겪습니다. 언젠가 임종 예배를 두 번 드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랜 전에 주일 예배가 끝난 후 한 여집사님께서 "시아버지 임종예배를 드려달라"고 했습니다. 처음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갔을 때는 응급실에 계셨습니다.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시면서 지쳐서인지 목에서 피가 넘어오는데도 치료받기를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위에서 출혈이 있는데 바로 수술을 받지 않으면 위독하다고 했습니다. 믿음 좋은 아들은 울면서 아버지를 설득했습니다. 그래도 더 이상 고통받고 싶지 않으니 그대로 놓아달라고 했습니다. 목회자의 말은 그래도 들을 것같아 간곡하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퇴근한 수술 담당 의사가 수술실에 다시 와서 수술을 끝마치고 나니 자정이 훌쩍 넘었습니다. 수술하는 동안 대기실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수술이 잘 되었다는 말을 듣고 안도의 숨을 쉬고 집에 왔습니다. 그 후 입원실에 기도드리러 가니 그렇게도 말씀을 하시지 않던 분이 많은 말씀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병원에 입원했던 일, 가정 일, 아들 며느리 이야기 등 처음 들어 보는 그분의 인생여정이었습니다. 아들 며느리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면서 "아들, 며느리 너무 고생하는 것같아 빨리 퇴원하여야 하겠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아직은 복수가 차 있으니 그래도 의사가 나가라고 할 때까지는 퇴원하시지 마세요."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며칠 후 전화를 해 보니 이미 퇴원했다고 했습니다. 집에 가보니 다시 복수가 차 있었습니다. "더 있다 온전히 회복된 후 퇴원하시지 왜 이렇게 빨리 퇴원했어요?" "손자 손녀들 보려고 빨리 했는데 다시 입원해야 할 것같네요." 결국 얼마 못 가 다시 입원하였습니다. 다시 병원에 찾아가 기도를 하고 퇴원하여 맛있는 것 사서 잡수라고 돈을 조금 드리고 왔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통증도 없었고 말씀도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빠져 통증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진통제도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목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통증을 멈추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아직은 60대이기에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고 새벽마다 그 성도님을 위해 기도드렸는데 "아버님 임종예배를 드려주십시오"라는 며느리의 말을 듣자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통증은 심각하였지만 아직 임종 예배를 들릴 때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부탁을 받았으니 가족과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들 드렸습니다. "천국에서 만나 보자..."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통증도 가시고 잠도 잘 주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기적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한 성도님은 간암으로 대학병원에서 수술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기도한 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완전히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성도님께서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몇 주 지나서 다시 며느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으니 임종예배를 다시 드려달라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서 찬양을 드리고 임종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겨 드렸습니다. 몸은 서서히 식어갔습니다. 의사가 와서 9시에 임종하였다고 임종 선언을 하였습니다. 아들과 딸, 며느리와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읊조리었습니다. 살아 계셨을 때 좀 더 잘 해 줄 것이라는 후회의 말과 함께 흘리는 눈물이었습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한 번은 다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합니다.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디에 가 있겠습니까?
1. 살아 난 우리
1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 우리를 가리켜 “죽었던”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육적으로 죽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으로 분리되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죽었다고 말할 때는 세 가지로 사용됩니다. 육적으로 죽음, 영적으로 죽음, 영원적 죽음입니다. 육적 죽음은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이고, 영적 죽음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이고, 영원적 죽음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지옥가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의 특징은 무엇이겠습니까?
세 가지입니다.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때는” 영적으로 죽어 있을 때를 말합니다. “그 가운데 행했다”는 말은 죄와 허물 가운데 행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말합니다. 첫째가 세상 풍속을 따르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둘째가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를 것입니다. 셋째가 무엇이겠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육체의 욕심에 따라 지내는 것입니다.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본성의 욕망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입니다. 이것이 영혼이 죽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삶의 특징입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했다는 것입니까?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5) ②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고(6) ③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6)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게 하시고. 종노릇으로부터 해방시켰으며, 정죄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죽음의 노예로부터 자유자로 만들었습니다. 살리고- 일으키고- 앉히셨습니다. 부활. 승천,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죽어도 천국에서 눈을 뜰 수 있습니다. 2천여명이 모인 ‘전국청소년성령캠프'에서 구원의 확신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란 질문에 '확실히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617명(56%),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한 응답이 320명(29%)으로 나왔으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응답이 150명(14%), '없다'고 말한 응답은 6명(1%)으로 나왔다고합니다. 절반 가까운 청소년들이 구원의 확신이 없이 교회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이미 우리 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음을 확신합니까?
우리는 죽었으나 예수와 연합을 통하여 영적으로 살아났고 세상과 사탄의 종이었으나 예수와 연합을 통하여 세상을 정복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왕좌에 오른 것입니다. 온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가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2. 은혜로 살아난 우리
무엇으로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살아날 수 있게 되었습니까?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미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은혜를 다른 말로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4절 보십시오. ① 하나님의 긍휼(4) ② 하나님의 사랑(4) 7절을 보십시오. ③ 하나님의 자비(7)입니다. 둘째 믿음이라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에게 믿음을 주어(8) 이 믿음도 내가 믿어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거저 주신 것입니다(1:6) 우리의 노력은 전혀 없습니다. 거저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믿어 주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오해하면 안됩니다. 요한 복음에서 이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11)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3)” 하나님께 난 자들만 믿는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뼈들이 살아나는 것은 뼈들이 능력이 있어서, 뼈들이 믿음이 있어서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사라나는 것입니다. 뼈들이 하나님 알아 사라나는 것이 아니라 뼈들이 살아나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은혜는 사람의 과거 죄나 공적과 관계하여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 때문에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갚음'을 조건으로 붙여서 베푸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의를 자랑할 수도 없고 행위를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8-9)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는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자격이 있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자격이 있는 자에게 주는 것은 은혜가 아니라 대가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대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만큼 사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유명한 성자 성 프란체스코가 제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답니다. "선생님은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자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성 프란체스코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내가 무슨 성자야.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지. 생각해 보게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망극한 은혜를 이 세상의 저 도둑들이나 깡패나 살인강도에게 주었다면 그들은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 하나님께 더 많은 영광을 돌리는 성자가 되었을 것이네. 그러니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았다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가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오늘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영적으로 살아납니다. 영적인 생명뿐 아니라 삶이 살아납니다. 술주정 부린 노아에게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어 제2의 인류의 조상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상 장사 아들 아브라함,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라고 속인 비겁한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형과 삼촌을 속이고 자기 것만 챙기려고 산 사기꾼 같은 야곱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라가 임하면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살인자 모세에게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어 민족 지도자로 삼아 주었습니다. 술집 여자인 라합같은 여인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육신의 갈증으로 이 남자 저 남자를 의지하다 수치스런 인생을 산 수가성 여인에게도 은혜가 베풀어지니까 영생수로 영원한 갈증을 해소받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조건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송구영신 예배 때 묵상한 말씀처럼 올 한해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라는 말씀 붙들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긍휼하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우리의 생명도 살고 삶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3. 은혜로 살아야 할 우리
이렇게 은혜로 살아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어야 합니다.(7)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엡 2:7)”
나를 자랑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꼭 내가 잘 되어서만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연약함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사업이 잘 안된다고, 입시나 입사에 실패했다고, 병들었다고, 가난하다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병들었습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지만 고쳐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강해설교로 유명한 존 맥아더목사님이 있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제자 5명이 중직자와 함께 찾아와 사임을 요구했답니다. 목회 8년째의 일이었답니다. 설교가 너무 길고, 지루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답니다. 온갖 비난과 공격이 있었답니다. 목회 10년이 지난 후 250명의 성도가 교회를 떠났답니다. 상처와 배신감으로 인해서 자신도 교회를 떠나고 싶었지만 당시 갈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머물렀답니다. 존 맥아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갈 곳 없는 은혜가 나를 붙들었다.” 연약함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전달하는 그릇이 된 것입니다.
일당 5천원을 받던 한 청소년이 나중에 5조원 규모의 대기업 총수가 된 분이 있습니다. 10억 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웬디스 햄버거의 창업주인 데이브 토마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932년 미국 뉴저지 주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답니다. 입양됐지만 5세 때 양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양아버지는 떠돌아 다녔기 때문에 양할머니 밑에서 자랐답니다. 12세 때부터 종일 식당에서 일했고 15세 때에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말았답니다. 전혀 가망이 없는 아이같이 보였는데 그는 나중에 전세계에서 1만 개가 넘는 체인점을 거느린 웬디스 햄버거의 총수가 되었습니다. 데이브 토마스가 10억 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물론 성실하게 일했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실했다고 해도 남들보다 2-3배 더 잘 살면 되었지 10억 배의 축복을 누리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 성공하려면 노력과 능력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행운이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믿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던킨 도넛의 창업주인 로젠 버그는 72회 생일 잔칫상을 받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몹시 가난하게 자라났고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내가 지기 버거운 짐을 대신 짊어져 주셨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십일조를 드렸고 거의 하나님과 싸우듯이 치열한 인생을 살았답니다. 그러나 아무리 치열한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성공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미국 전역에서 3400여 개의 체인점을 거느릴 정도로 성공을 거둔 것은 최우선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렘33:2)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우리는 내 자랑하려고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연약한 그릇이지만 그 그릇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면 됩니다. 부족해도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오는 세대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어 건강 주고 아름다움 주고 신앙 주고 자녀 주고 물질 주고 지식주고 명예 주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전하는 사람들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랑하지 말고 우리가 받은 은혜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보답의 책임은 큰 것입니다(눅12:48) 어떤 사람들은 받은 은혜를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욘2:8).
한 때 요나 선지자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어 선지자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도망갔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존심을 끝까지 꺾지 않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야 그는 고백합니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욘 2:8)"라고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히스기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죽음의 질병에서 고침 받았습니다. 그런데 질병에서 고침받으니까 교만해졌습니다. 그는 외국인에게 무기를 자랑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대하 32:25)" 은혜를 받고도 보답하지 않으면 은혜를 빼앗길 수 있습니다.(삼하7:15)
엘리와 사울을 보십시오. 은혜를 저버린 삶을 삶으로 자신과 가족이 망하였습니다. 은혜를 망각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 (신 28:47-48)" 하나님이 은혜를 거두시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보십시오. 한 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매장되었습니다. 인간의 문명이, 인간의 지혜가 대단한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1도만 올라가도 1도만 내려가도 지구는 심각한 문제가 초래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무거운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받았다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뿐만 아니라 가정의 문제를 해결 받고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고질적인 질병도 고침 받았고 기업도 잘 되고 자녀도 건강하게 공부도 잘한다고 전해야 합니다. 이제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려 세대에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우리를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말과 우리의 걸음걸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야 합니다.
둘째는 선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성취해 드려야 합니다.(10)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
구원받기 위해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선하게 사는 것입니다.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왕자가 되었으니 이제는 왕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 큰 사랑을 입은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셨습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우리의 재능이나 우리의 부나 우리의 명예나 우리의 인기나 우리의 건강이나 우리의 아름다움은 결국 이 선한 일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상 풍속을 쫒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악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선한 일에 쓰임 받아야 합니다.
지난 주 신물을 보니까 불법 주차 문제로 교회가 비난받는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노상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에 차를 주차해 놓고 예배드리러 갔다고 합니다. 주인이 자신의 차를 주차하려고 하자 다른 차가 세워져 2번 전화했다는 것입니다. 전화를 받지 않자 시설관리공단에 신고했고 그 차는 견인되었답니다. 집사님이 예배를 마치고 이런 꼴을 당했을 때 얼마나 당황하고 화가 났겠습니까? 전화하여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것입니다. 문제는 다음날 같은 교회에 다니는 장로님이 그에게 전화를 해 구청에다 민원을 넣어서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을 없애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협박하는 거냐"고 따지자 장로님이 "그런 줄 알라"면서 전화를 끊어 버렸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온라인 커뮤니티 이 사실을 게시판에 글을 올렷고 조회 수 15만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서 누리꾼들이 '개독'이라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글이 올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위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전 3:12)"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에 부하라(딤전6:18; 행9:36)"고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는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8-19)" 선한 일을 하는 데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희는 힘써 행하라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 하니라 (대하 19:11)"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롬 2:10)"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선한 사람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잠 14:19)" 하나님께서는 말씀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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