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3) 새해, 은혜를 받는 데는 장애가 없습니다.
출1:20-22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20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은 이 말씀에 근거하여 “새해, 은혜를 받는 데는 장애가 없습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한 번 같이 따라 하겠습니다. “새해, 은혜를 받는 데는 장애가 없습니다.” 가난도, 질병도, 우리의 허물도, 우리의 무능력도, 사탄의 방해도 이 은혜를 받는데는 장애물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은혜”라는 말은 성경 원어에는 여러 가지 말로 되어 있습니다. 신약 헬라어 “카리스”는 값없이 주시는 것으로 “은혜, 친절, 선물, 감사”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구약 히브리어로는 “헨”이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데 '헨'은 “불쌍히 여기다, 아랫사람에게 호의를 베풀다 등의 뜻을 가진 말로 하나님의 사랑, 은총, 긍휼 등을 의미합니다(창 30:27,출 33:12). '헤세드'(렘 9:24)라도 인자하신 하나님의 본성 곧 사랑과 긍휼, 공의를 아우르는 말입니다. ‘라하밈’은 은총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죄사함 받는 것을 의미(출 34:6, 시 51:3)합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값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이 은혜는 언약을 통해 나타났으며,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사용된 은혜는 “헨”도 아니고 “헤세드”도 “라하밈”도 아닙니다. “야타브”입니다. “선대하다(욥24:21), 잘되게 하다, 좋게 만들어 주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으로 이스라엘의 번성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역사에 개입하셔서 하나님께서 뜻을 성취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창12:16 민10:29,32). 하나님께서 결국 은혜를 베풀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을 역사 가운데서 이루어 가십니다. 그 사실을 성경은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고전 8:6)”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 11:36)”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올 한 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면 어떤 장애물도 다 무너뜨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올 한해 성취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선한 계획은 어떤 장애물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1. 하나님의 은혜는 사탄의 장애물을 극복하여 우리를 번성하게 만듭니다.
요셉으로 말미암아 야곱이 아들들이 애굽에 가서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70명이 이주해 400여년 만에 240-300만 명이 되었다면 약 34,000배 내지 43,000배가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증가 속도가 가히 폭발적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12명을 낳아야 복받았다고 생각할 때이기 때문에 아이를 많이 낳았습니다. 그래서 위협을 느낀 새 왕이 인구 억제 정책을 세 가지로 쓰는 것입니다. 어떤 정책을 쓰는 지 출애굽기 1장 11절을 보십시오.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였습니다. 고된 노동과 아내로부터 분리를 통해 출산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9절에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보다 수가 많고 강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들을 배신하고 적과 야합하여 자신들을 치고 도망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구를 억제하기 위해 강제 노동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떤 결과가 일어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합니다. 그렇게 되자 또 두 번째 방안을 강구합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산파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도오주는 척하며 아들을 낳으면 다 죽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 정책을 씁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종청소 명령은 단순히 정치적 이유에서 내려진 명령일까요? 영적 전쟁입니다. 사탄이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는 역사 속에서 사탄의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라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도다(겔32:2)”라고 말씀합니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바로의 인종청소 계획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계시록 12장에서 정확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계 12:1)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계 12:2)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계 12:3)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계 12:4)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계 12:5)”
메시야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방해 공작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창22:18) 하고 언약하셨는데 만민을 구원할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바로 왕으로 대변되는 세상의 왕이, 사탄의 세력이, 뱀의 후손이 이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미 타락하여 죄와 죽음과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을 향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라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미 계시를 통해 알려 주셨는데 사탄은 그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지게 하기 위해 역사 속에서 바로라는 사탄의 하수인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아적 언약을 성취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탄생시킬 유다 지파의 씨를 말려 버리는 계획입니다. 사울이라는 왕을 통해 메시아적 언약을 성취할 다윗을 제거하려고 하고 이세벨이라는 바알신을 섬기는 악한 여자를 통해 다윗의 후손들을 다 제거하려고 하였습니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하만’이라는 자를 통해 유대인을 진멸하려 하였으며, 헤롯이라는 사악한 왕으로 통해 메시아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지 못하도록 2살 이하 어린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탄의 장애물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사탄의 전략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니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20절 보십시오. 그 백성은 번성하였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번성이라는 말은 “라바”라는 말로 “크다, 많다, 무수하다, 증가하다, 크게 만들다, 증대시키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노아의 홍수 이후에 또 다시 이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 9:1)”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렘 33:22)”
번성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백성의 충만한 수가 돌아 올 것이 하나님 설계도에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을 번성하게 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바다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자손을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어떻게 약속하시는지 창세기 15장 5절을 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3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방의 객으로 400년 동안 괴롭힘을 당하지만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설계도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기 위해 바로가 남자들을 다 죽이려고 덤비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결국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올 한 해도 영적 전투 현장에서 살아갑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지 못하도록 때로는 우는 사자로 우리를 핍박하고 때로는 광명의 천사로 우리를 유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이 모든 영적 전쟁에서 넉넉히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여 번성의 축복을 누릴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노아가 물에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롯이 유황불에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오미가 이방의 객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올 한 해 사탄의 어떤 방해도 넉넉히 이기도 번성의 복을 누릴 줄 믿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는 무능력의 장애물을 극복하여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백성은 번성할 뿐 아니라 매우 강해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매우 강하여 지는 것입니다. 힘이 없으면 애굽에서 탈출하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탈출할만한 능력을 그들에게 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수만 많다고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예로부터 탈출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강하게 했다는 말은 “아짬”이라는 말인데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창 26:16)”라고 사용할 때 쓰인 말입니다. 이 말은 결국 이삭을 대적했던 아비멜렉 왕이 이삭을 향하여 자신들보다 크게 강하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농사를 한 번도 지어 보지 않는 이삭이 농사를 지어 그 해 백배나 수확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어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삭이 우물을 파면 파는 곳마다 물이 나옵니다. 당시 우물은 참으로 중요한 자산인데 대적들이 그 우물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우물을 팔 때마다 물이 나오자 대적들이 우물을 빼앗습니다. 우물을 빼앗기면 양보하고 다시 거주지를 옮겨 또 우물을 팝니다. 무려 6개나 팝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창 26:29)”
결국 아비멜렉 왕이 이삭에게 항복 선언을 합니다. 인정해 줍니다. 출1:7에서도 똑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강하에 하여 바로의 항복 선언을 받을 만큼 힘 있는 백성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미 400여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입니다.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창 15:14)”
지금 경제력이나 군사력을 비교하면 그들은 노예에 불과하고 군대가 없는 백성입니다. 힘이 없습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경제적 힘도, 정치적 힘도, 군사적 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아무리 연약한 것 같이지만 그들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뛰어넘는 강력한 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으면 이런 강력한 힘이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나타내는 것입니다. 결국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을 힘으로 밀어 붙여 광야로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결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열 가지 재앙을 내립니다. 결국 바로가 항복 선언을 합니다. 출애굽기 12장 31절 이하를 찾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가축뿐 아니라 애굽 사람들의 재물을 가지고 해방됩니다. 41절을 보세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 약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시행하는데 무능력 때문에 그것을 이루지 못할 것같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 주어 우리에게 강력한 힘을 주어 이루시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힘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 가는 것도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면 병든 자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38년된 병자도 치유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혈루증을 앓은 여인도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어떤 태생적 위기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주어진 신체적 장애, 정신적 장애, 경제적 장애, 인간관계의 장애 등 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장애물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선천적인 시각 장애인이 치유를 받습니다(요9:1-41). 간질에 걸린 아이가 치유를 받습니다. 중풍으로 누워 있는 자가 치유를 받습니다. 선천적 지체장애인이 치유(행3:1-4:22)를 받습니다. 18년 동안 허리를 펴지 못했던 여인(눅13:10-17)이 치유를 받습니다.
연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무능한 자들도 힘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평생 목동으로 살아야 할 다윗같은 사람도 쓰임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우상장사의 아들 아브라함, 여러번 실패한 어부 베드로, 저주까지 한 베드로, 기생의 아들 입다, 기생 라합, 성중독자 바람둥이 삼손, 겁쟁이 기드온, 농사꾼 아모스, 소모는 엘리사, 장애인 에후, 주부 드보라도 강하여져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성취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태생적 장애물을 넉넉히 극복하게 합니다. 야곱은 태생적 위기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넷입니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의 은혜로 쓰임 받아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역사상에 이름을 남긴 링컨, 헬렌켈러, 칼빈, 루터, 처칠, 워싱턴 모두 다 좋은 가정환경, 좋은 조건을 갖추고 태어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초등 학교도 못 갈 정도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고,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고 조롱 받을 정도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은혜로 한 평생 위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첩의 딸로 태어난 김활란 여사는 이대 총장을 지내다 63세때 총장을 그만 두고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강원도, 충청도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한평생 맹인으로 은혜로운 영혼의 찬송가 10,000여 편을 쓴 분 페니 크로스비는 생후 6주만에 맹인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한 시대 강력하게 쓰임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7)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8)”라고 말씀합니다.
3. 하나님의 은혜는 허물의 장애물을 극복하여 우리를 흥왕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번성하고 매우 강해질 뿐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야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였습니다. 구속사를 이룰 이스라엘 민족만 벙성하고 매우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집이 흥왕하게 된 것입니다. 흥왕이라는 말은 “아싸”를 번역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싸”하는 것입니다. “행하다, 만들다, 성취하다, 생산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7)”할 때 그 “만드사”와 똑같은 말입니다. 창1:25,26, 31; 2:4 하나님이 창조할 때 사용한 똑같은 말입니다. 무슨 뜻이겠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신다는, 만들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를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막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부어주시면 엎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들의 가정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어 가업을 번영케 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산파직을 그만 두고 후손들은 다 죽임을 당하는 가정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어 그 집안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떻게 거짓말을 한 산파들에게 이런 복을 줄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왕이 산파들을 불러 왜 남자들을 살렸느냐고 심문을 합니다. 그 때 산파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19절을 보십시오. 히브리 여인들은 애굽 여인들과 달라 자신들이 가기 전에 이미 해산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거짓말을 보면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남을 해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거짓말입니다. 둘째는 농담으로 하는 거짓말입니다. 작가나 코미디언이나 연극인이 하는 것처럼 말장난으로 즐거움을 주기 위한 거짓말입니다. 유희적 언어입니다. 언어는 유희적 기능과 교시적 기능이 있는데 유희적 기능으로 하는 말들입니다. 셋째는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짓말입니다. 백색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 주고 성문 밖으로 나갔다고 하는 거짓말이나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쫒길 때 바후림 여인이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우물에 숨기고 시내로 건너갔다고 속이는 것이나 이런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이런 것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 집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왕하게 되었습니다. 기생 라합이 망한 것이 아니라 다윗왕의 족보에 들게 되고 예수님을 탄생하는 메시아 족보에 들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라합의 행위에 대하여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히 11:31)”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5)” 이런 구절을 보면서 사랑이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상황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황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 진리, 절대 선인 하나님 편에 서냐 거짓의 아비 사탄의 편에 서느냐는 문제입니다. 소속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는 편에 서는데 인간적이고 상대적인 허물은 얼마든지 그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장애가 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반대편에 서면 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인간적 허물이 하나님 편에서 은혜 앞에서는 흥왕하는 데 장애물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우선순위의 윤리 문제입니다. 거짓말 하지 말라는 계명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같이 걸릴 때 생명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입니다. 공산당이 집안에 들어와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면 정직하게 하기 위해 “아버지 안방에 숨어 있습니다.”라고 정직하게 말함으로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믿음의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자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부득이하게 사람들 보기에 허물할 만한 일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 5:20)” 세상 사람들은 죄가 있고 허물이 있으면 상종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던 것도 거두어 버립니다. 비행기도 회항시켜 버리고 사장 자리에서도 하루아침에 내려오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녀인 라합같은 사람도 은혜를 베풀어 예수님의 족보에 넣어 줍니다. 은혜는 내가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시아버지를 범한 다말이라는 여인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릅니다. 이방 여인 룻이라는 예수님의 족보에 오릅니다. 다윗과 간음한 우리의 아내가 족보에 오릅니다. 간음한 다윗도, 배신한 베드로도, 거짓말한 아브라함도, 사기치고 자기 욕심만 챙긴 야곱도, 살인자가 되어 도망간 모세도, 연약하여 선교에 중도포기한 마가도, 성중독자가 되어 버린 삼손도, 술주정뱅이가 된 노아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고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의 허물을 다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은혜 아니면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은혜는 신분 앞에서는 신분도, 지위도, 가난도, 죄도, 허물도, 실수도, 질병도 장애물이 될 수 없습니다. 은혜는 사람의 계산을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삭개오같은 민족 반역자도 은혜를 받으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여럿의 남편을 바꾸어 가면 살았던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님을 만나 은혜를 받으면 그의 삶이 변하여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라고 말씀합니다. 올 한해 어떤 허물이 우리에게 있다하여도 하나님의 은혜는 허물의 장애물을 극복하여 우리를 흥왕하게 만들 것입니다. 은혜를 어떤 인생의 가뭄에도 마르지 않습니다.
새해, 은혜를 받는 데는 장애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은혜로
1. 하나님의 은혜는 사탄의 장애물을 극복하여 우리를 번성하게 하시는 은혜를 누려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는 무능력의 장애물을 극복하여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은혜는 허물의 장애물을 극복하여 우리를 흥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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