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2) 새해, 은혜로 나눔의 풍성을 누립니다
고후8:1-5
신문에서 아주 대조적인 두 기사를 보았습니다. 들어 보시고 어떤 사람이 풍성한 삶을 살고 있는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이는 48세로 서울 명문 사립대학을 나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유한 집에서 자라 결혼하여 딸 둘을 낳고 9천여만 원의 연봉을 받고 살았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거주지의 로망인 서울 강남에 시가 11억 가는 중대형 아파트(44평)에서 살았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차량의 로망인 일제 중형차와 국산차 두 대를 보유하고 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2년 전 실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담보로 5억을 대출받아 주식에 투자했지만 손해를 보고 1억 3000만원이 남았답니다. 아내의 통장에는 3억 원이 있었답니다. 집을 팔면 빚을 다 갚고 남은 돈이 9억여 원은 될 듯한데 실직과 주식 실패, 미래에 대한 불확실을 비관하여 자살을 결심하고 자신이 죽고 나면 남은 가족들이 멸시받을 것 같아 함께 죽으려고 아내와 두 딸을 죽이고 경찰에 체포가 되었습니다.
또 한 사건은 23살인 지방 교대에 다니는 여대생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학업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처했답니다. 그런데 한 장학재단의 도움을 받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대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장학금을 받았답니다. 4년 내내 8학기를 장학금을 받았는데 그것을 다 기부하여 어려운 교우를 도왔다고 합니다. 자신의 집안 형편도 그리 넉넉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항상 '내가 받은 은혜를 어떻게 돌려줄까'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삶의 질은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우리 성도님이라면 두 삶 중 어떤 삶을 택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풍성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까?
2015년 새해가 되어 제가 계속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우리를 지옥 가지 않고 천국 가는 삶으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23살의 젊은 여대생이지만 공부할 수 없는 환경에서 도움을 받아 공부할 수 있게되어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장학금을 어려운 동료에게 학비로 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평생 삶의 중심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인데 이 땅 사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보답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이렇게 살면 얼마나 세상이 아름답고 살만하겠습니까?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나눈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 극심한 가난이 있었지만 넘치는 기쁨과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습니다. 가난한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기 위해 물질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 성도님도 올 한해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나눔의 풍성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꾸는 인생이 아니라 베푸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빚내 사는 인생이 아니라 저금하면서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궁핍함으로 쫓기는 인생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풍요로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옆 사람 보면서 서로 인사합시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나눔의 풍성함을 누립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어떻게 나누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1. 우리는 올 한해 하나님의 은혜로 넘치는 기쁨으로 나누는 삶을 살아야하겠습니다.
2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마게도니아 교인들의 그 당시 형편이 어떻했습니까?
두 가지로 그들의 형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 있었습니다. 둘째는 극심한 가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마게도냐는 그리스의 북쪽 발칸 반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국가입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으로 말미암아 그곳에 데살로니가, 빌립보, 베뢰아 교회 등을 설립하였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란 이들 교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곳은 마치 우리나라가 일제 침략으로 정치적 자유를 잃고 경제적으로 수탈을 당한 것처럼 정치적 자유나 경제적 자유가 있지 않았습니다. b.c. 148년 이후에 로마 제국의 영토로 흡수되었습니다. 36년이 아니라 200년 이상 로마의 속국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이 지역은 땅이 비옥하고 천연 자원이 풍부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마의 지배하에 금은 광의 채굴권이나 기타 권리를 모두 빼앗겨 버렸고 정치적 박해를 받아 거듭되는 로마의 내전에 의해 기근과 경제적 궁핍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받고 있는 고린도시는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도 매우 번성하는 항구 상업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교인들도 부유했고 고린도 교회가 있는 부유한 아가야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게도니야에 있는 교인들은 아주 가난하였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낙심한다면 두 딸과 아내를 죽인 사람보다 훨씬 더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두 가지로 극적 대조를 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극심한 가난 가운데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한 번 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계속 하였다는 것입니다. 왜 구제헌금을 하였습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교인들이 극심한 가난으로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돕기 위해 풍성한 연보를 하였던 것입니다.
자신들도 먹기 살기 힘들고, 예수 믿은 것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데 어떻게 남을 위하여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한 구제헌금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비밀이 1절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것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였는지 데살로니가 전서 1장 3절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329쪽) 같이 읽겠습니다. 그렇게 핍박받고 가난하였지만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6절을 같이 있겠습니다.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주를 본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7-8절을 보십시오.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에 본이 되고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것입니다. 올 한해도 우리 열린 교회가 이런 풍성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작년에도 매달 천여만원씩 우리는 세계 최빈국 아이들을 도와 공부를 시켰고, 선교사님들과 어려운 이웃들과 개척교회 목사님들을 도왔습니다. 우리도 힘드는데 뭐 그렇게 하느냐고 반문할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게도냐 교인들과 비교하면 우리의 삶은 참으로 풍성합니다. 올 한 해 우리 성도님들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한 나눔의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들은 삶의 목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에 ‘사람의 제일된 목적은 무엇이뇨’라는 물음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만을 영원토록 즐기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자기 위해 살다 안되면 사기치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자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인생의 목적을 자기 자신의 행복에 두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따분하고 불쌍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사는 삶은 결국 어떤 삶이겠습니까? 에베소서 2장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였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 만난 사람을 외면하는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목표를 “남 주기 위해 공부하자” “남 주기 위해 사업하자” “남을 위해 부자가 되자” “남을 위해 출세하자” “남을 위해 건강하자”라고 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손해가 되고 불행해 지는 것 아닙니다. 오히려 주는 자가 받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고 죽고자 하는 자가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설적 진리입니다.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이 은혜를 깨달으면 우리의 삶의 태도가 바뀌어 집니다. 기쁨으로 이렇게 어려운 이웃을 섬기면 어떻게 됩니까? 9장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합니까? 즐겨내는 자를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쁨으로 남을 도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모든 일에 항상 넉넉하게 됩니다. 9절 보십시오. 타인에 의해 기념되게 됩니다.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풍성한 양식을 주십니다. 그 위에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십니다. 올 한해 공부하는 것도 기쁘게 남을 주기 위해 공부하는 것으로 목표를 세워보십시오. 사업을 하더라도 기쁘게 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사업을 하는 것을 목표를 세워보십시오.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외 선생님이면 10명의 아이들 돈 받고 가르치면 1명 정도는 무료로 가르쳐 보십시오. 환자를 치료하시는 의사선생님이면 한 달에 1명 정도는 무료로 치료해 주어 보십시오. 사업하는 성도님이면 한 달에 한 거래처는 일부러 손해를 보고 그들을 도와 보십시오. 짜증내면서가 아니라 기쁨으로 그렇게 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은 넘치는 풍요가 주어질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올 한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3-4).
마게도냐 교인들의 나누는 삶의 특징은 무엇이었습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힘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런 일을 억지가 아니라 자원하여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득 수준을 고려하여 적절한 분량 액수를 남을 돕는데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인색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다도 어려운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돕고 사느냐고 주저앉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물맷돌과 모세의 지팡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지만 그것을 사용하십니다.
통계청의 가구소득 자료에 의하면 전국의 8700가구를 표본 조사한 결과 국민 6명 중 1명은 연간 1000만원도 안 되는 가처분소득으로 살고, 4가구 중 1가구는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김낙년 교수의 한국의 개인 소득 분포에 따르면 상위 0.01%가 1.74%, 0.1%가 4.46%, 1%가 12.97%, 10%가 48.05%의 소득 점유율을 보이고 하위 70%가 18.87%에 불과하고 하위 40%는 2.05%라고 합니다. 비정규직이 607만 명이나 됩니다. 우리 중에 없어서 주지 못할 정도로 빈궁한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지 않아서 못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까지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제프리 D. 삭스가 지은'빈곤의 종말'에 의하면 인류의 6분의 1인 약 10억 명이 절대 빈곤, 15억 명의 사람들은 '빈곤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1달러 미만 생활자가 12억이나 됩니다. 8억명이 영양실조입니다. 세계 문맹자가 13억입니다. 선진국 20%가 세계 소득의 8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만해도 한해 술갑 14조, 성매매 24조, 애견 비용이 2조나 들어간다고 합니다. 집있으면 3%, 자동차만 있어도 6% 부자 안에 듭니다. 좋은 집, 먹을 것이 있는데다 글을 읽을 수 있고,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면, 아주 엘리트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또 만약에 전쟁의 위험, 감옥에서의 고독, 고문에 의한 고뇌, 기아의 괴로움 등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세계 인구 상류 500만 명 중의 한 사람인 셈이라고 합니다. 만약 고통, 체포, 고문, 혹은 심지어 죽음의 공포 없이 매주 교회를 다닐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는 곧 지구상 30억 인구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누리는 행운아라는 것입니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몸엔 옷을 걸쳤고, 머리 위로는 지붕이 있는데다 잘 곳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 75%보다는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은행에 돈이 있고, 지갑 속에도 있고, 어딘가 잔돈만 모아 놓은 동전통도 있는 사람이라면, 지구상에선 상위 8%의 부자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나눌 것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탐욕이 나눔의 강을 막고 홍수를 내는 것입니다. 제프리 삭스는 0.6%만 나누어도 인류는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신문에 보니까 자식도 없이 홀로되어 동사무소에서 주는 생활비를 지급받으면서도 매일 동네를 돌며 폐지와 빈병 등을 모아 고물상에 팔아 기부한 할머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반지하에서 살았지만 자신의 전세금 2천 만원과 그동안 폐품을 수집하여 모은 1천 2백만원 총 3천 2백 만원을 내 놓아 동사무소에 30석의 청소년 공부방을 만들게 하고 자신의 몸까지 의학 실습용으로 장기 기증본부에 내어놓고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가 기사로 적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은 남을 도와줄 것 전혀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담배 안 피우면 술 안 마지면, 비싼 커피 한 잔 안 마시면 최빈국 아이들 한 아이를 한 달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6:38)"
마게도냐 교인들은 자신들의 경제 수준 넘어서 다른 사람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쉬운 것이 아닙니다. 주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억지가 아니라 스스로 원하여 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원하여 생명까지 바쳤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지셨습니다. 옆구리에 창을 받았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썼습니다. 조롱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구약에 보면 예물을 드릴 때 비둘기, 양, 염소, 소 등 다양합니다. 능력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충만하면 힘에 지나도록 헌신하였습니다. 이것은 억지가 아닙니다. 자원하여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으로 어려웠습니다. 그 때 그들은 자기 교회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교회도 가난하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성도 섬기는 것 자신의 교회만 생각하는 개교회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의식을 가지고 어려운 교회를 위해 구제헌금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매"라는 말은 바울이 받는 것을 꺼리는데도 간절히 요구했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했다는 말입니다. 신앙인은 노예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섬기는 일에 자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원하여 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9장 7절을 보십시오. 마음에 정한대로 자원하라는 것입니다. 인색함으로,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정 자원하여 드리길 원합니다.(출애굽기35:5,21,22,29)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을 때도 자원하는 사람, 자원하는 예물, 자원하는 사역으로 성막을 짓는 것을 봅니다. 성막 짓는 것에 참여한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자원하여 참여해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남에게 보이기 위해 억지로 다른 사람을 도우면 안 됩니다.
오연호씨가 '한국이 미국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미국이 한국에서 잘못한 것들을 취재하여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좀 더 알아야 하겠다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러나 오연호는 미국 현지에서 중요한 것들을 깨닫습니다. 소련도 망하고 사회주의도 망하였는데 미국이 호황을 누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연구한 결과가 바로 그 책입니다. 그는 결론적으로 미국은 발런티어(volunteer)정신이 있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발런티어'는 자원봉사자를 의미합니다. 미국인이라면 일주일에 몇 시간, 한 달의 며칠은 자원 봉사를 해야 되는 줄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원봉사를 안 하면 사람 구실을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게시판이 있고 거기다 자원지망을 기록한다고 합니다. 자원봉사를 위해 며칠씩 훈련을 받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일 년에 4천만명이 자원봉사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자원봉사 성적이 없으면 대학에 못 갑니다. 이것이 미국이 결코 망하지 않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내게 있는 지식, 건강, 물질, 재능, 시간을 가지고 자원하여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가르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벧전 5:2)”라고 말씀합니다.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의사요 사상가요, 신학자요, 음악가로서 존경받는 인물이었지만 그는 아프리카로 가서 병원을 세워 헌신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왓습니다. 77세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그 상금으로 나환자촌을 세워 많은 이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슈바이처 박사에게 동료 교수가 이러한 질문을 했답니다. "자네는 가만히 있어도 생활이 보장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왜 아프리카로 가서 그렇게 고생을 하려는가?" 그러자 슈바이처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답니다. "이게 뭐지?" "뭐긴 뭐야. 자네 손이지" 그러자 그는 "이 손은 내 손이 아니네. 이 손은 하나님의 손이야.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손 노릇을 하는 거야. 자네 지금 나를 동정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를 절대로 동정하지 말게. 나는 행복해. 보람이 있어. 나는 무척 기쁘다네. 나는 자원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했답니다. 남을 섬기는 것은 억지가 아니라 자원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올 한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건강, 물질, 재능을 통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나누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올 한해 먼저 나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이웃을 섬기는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5).
마게도냐 교인들의 나누는 삶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어려운 예루살렘 성도들을 섬길 때 어떻게 섬겼습니까?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먼저 자신을 주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제헌금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성도를 도와주는데 먼저 물질을 드리는 것보다 자신을 주께 드리는 헌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먼저라는 말은 다른 무엇보다 앞서서 즉 동기가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림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질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드리는 것이 우선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기주의적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교회만 교회가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마게도냐 교회는 비교가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게도냐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 당할 때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물질의 헌금보다 먼저 우리 자신을 드리길 원합니다. 남은 돕는 것은 물질의 문제이기 전에 헌신의 문제입니다. 나에게 있는 것이 다 주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적신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가는 것입니다.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면 나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대로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전제로 드린 것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나의 다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 자신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 어떻게 번돈인데, 어떻게 얻는 기술인데, 어떻게 마련한 명예인데, 어떻게 오른 지위인데 하면서 자신에게 집착하면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를 이렇게 힘에 진하도록 돕겠습니까?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을 전환할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하면 인간은 지극히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절대 남을 도울 수 없습니다. 이미 내가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로 건강도 주시고 직업도 주시고 좋은 여건도 주시고 돈도 주었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하겠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기쁨으로 힘에 넘치도록 남을 도우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카네기는 "성공한 사람일수록 사회에 큰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죽은 후에도 부자인 것처럼 부끄러운 일은 없다"는 말했습니다. 기부 동기에 대하여 빌 게이츠는 "가진 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조지 소로스는 "돈은 좋은 곳에 쓰여져야 하기 때문", 워런 버핏은 "자신에게 온 행운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겔바움(65), 프레더릭 테일러(54), 앤드루 셰히터(54)가 20년 동안 신원을 숨긴채 인권, 환경, 희귀병 치료를 위해 13조여원을 기부하다 20년만에 신원이 밝혀졌습니다. 그 때 그들은 기자들에게 "내가 남들보다 5000배 열심히 일하거나 5000배 더 똑똑한 것이 아니라 기회가 있었을 뿐"이라며 "많은 돈을 갖고 있고, 또 많은 돈을 기부했다고 해서 남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과학 연구 분야의 개인 기부로는 역대 최고액인 7천 100억을 기부한 스탠리는 아들이 정신병에 걸려 대학을 다닐 수 없게 되었고 정신 치료를 받아 치료를 받고 변호사가 되었답니다. 그 때 그는 아들이 치료되는 것을 보고 돈이 없어 정신병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거금을 정신병 치료를 위해 기부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기부하면서 "삶이 회복된 아들처럼 정신 질환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한 결말을 선사하고 싶어 기부를 마음먹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청지기 정신입니다. 은혜입니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 번에 두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 없는 것입니다. 움켜쥐면 잡힐 것 같지만 다 빠져 나가버리는 것입니다. 물을 흐르지 않게 막아 놓으면 홍수가 나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함께 더불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9장 13-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새해 둘째 주일입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삶을 살겠습니까? 아직도 남은 것이 많은데도 은혜를 모르고 상대적 발탈감에 사로잡혀 아내도 죽이고 딸도 죽이고 자신도 죽이는 길을 걷겠습니까? 작은 것이지만 은혜에 보답하여 그 은혜를 나누는 풍요로운 삶을 살겠습니까?
1. 우리는 올 한해 하나님의 은혜로 넘치는 기쁨으로 나누는 삶을 살아야하겠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올 한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3-4).
3.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올 한해 먼저 나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이웃을 섬기는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5).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5.1.11.
열기 닫기
| 쪽지 보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