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이사야61:1-3
가끔 무속인이나 역술인이 예언한 것이 성취가 되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때도 있습니다. 김일성 사망 날짜를 예언하고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예언하여 그대로 맞게 되어 세계 3대 예언가 중 한 명이라고 불리우는 무속인 심진송씨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서라벌 예대를 나왔는데 신 내림을 받아 무당의 길을 거부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신이 선택한 여자>라는 책을 쓰고 무녀로써 대학 강단에 서기도 한 그녀는 신내림을 받는 과정에서 사후세계를 경험하고 남들한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것이 들렸다고 합니다. 이분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도가 있는가 한 언론이 그녀의 예언을 검증했다고 합니다. 정확도는 50%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정일이 그대로 정권을 넘겨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김정일의 망명지는 일본이 결코 아니며 유럽의 어느 국가"라고 했는데 김정일이 물려받았고 김정일도 죽었고 김정은이 권력을 물려받았습니다. 가끔 보면 예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가 예언한 것이 100% 맞는 것은 없습니다. 과학자들의 예측보다 확률이 떨어집니다. 세계미래학회에서 늘 예측 발표를 하는데 과거 그들이 낸 예측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30년 후 조사를 해 보았답니다. 1967년 세계미래학회의 잡지 <퓨처 리스트> 1 호에서 행한 60여 가지 예측 가운데 68%의 정도가 예측대로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예언이나 예측은 그대로 100%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100% 그대로 실현되는 예언이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입니다. 역사를 움직이시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에 대하여 가장 많이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7:1-25)하였는데 그대로 유다와 이스라엘이 멸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주변의 여러 나라의 멸망을 예언하였고 그 예언대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유다가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될 것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에 대하여 많이 예언했는데 그대로 역사 속에서 성취가 되었습니다. 메이아는 이상적인 왕으로 오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사11:1-5).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그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어 예수님이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메시아가 여호와의 종으로 오실 것을 예언했는데 (사42:1-9; 49:1-6; 50:4-9; 52:13-53:12) 그대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메시아는 중보자로 오실 것을 예언했는데 (62:1-5; 65:19, 23; 66:10-14) 그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중보자로 오셨습니다. 특히 이사야 53장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을 예언했는데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라고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이 말씀도 예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약 700여전 전에 메시아이신 예수님께 대하여 어떤 예언을 하시는가를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의 영은 성령을 말씀합니다. 그 성령이 누구에게 내리셨다는 말씀입니까? “내게”입니다. 이 분은 누구이겠습니까?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이사야를 말씀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여기서 “나”가 누구인가 누가복음 4장 17절을 같이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날 예수님이 자란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 늘 하시던 대로 성경을 읽으시려고 일어서서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그 때 읽은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다 읽으시고 두루마리 성경을 시중들던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고 자리에 앉아 말씀합니다. "이 성경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예언의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것이고 예수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나”는 이사야 선지자가 아니라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어린 아이로 이 땅에 오셨습니까?
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기쁜 소식,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이라는 말은 “야안”이라는 말로 이유나 원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은 “바싸르”의 번역으로 “기쁜 소식”, “좋은 소식”을 말합니다. 즉 복음입니다.(사40:9; 41:27; 52:7) 누구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것입니까? “가난한 자”에게입니다. 이 가난한 자는 어떤 사람을 말하겠습니까? 돈이 없어 가난한 사람도 물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8복을 말씀할 때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6:20)”라고 말씀합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때때로 배부르고 풍족한 자들에게는 나무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은 초라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2014년 성탄절 신풍속도를 말하면서 “20대 아들딸 불타는 클럽의 밤… 50대 아버지 나홀로 거룩한 밤”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난 것을 보았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크리스마스란 종교나 가족보다는 육체적인 사랑과 유흥의 의미가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취재진이 서울에서 모텔이 가장 많이 있는 지역 중 하나인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 근처 모텔 10곳에 문의한 결과 5곳은 24, 25일 객실과 파티룸 예약이 이미 끝났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니까 성탄절은 죄용서를 받는 날이 아니라 죄를 더 짓는 날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가난도 복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오는 가난한 자는 마태복음에서 8복을 말씀하실 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 5:3)”라고 하신 것처럼 육신적 배고품보다는 영적인 배고품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는 심령의 가난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사모의 정으로 가득찬 가난한 상태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의 공포로 말미암아, 영적 기갈로 말미암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영적 배고품의 상태에 있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하나님 없이는 만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죽음과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다고 직접 말씀하고 있습니까?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 왜 오신 것입니까?(마 9:13)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그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성탄절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산타크로스가 아닙니다. 선물이 아닙니다. 유희가 아닙니다.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헐벗고 굶주리고 소외되고 삶의 의미를 모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대해서 구약에는 350여 가지의 예언이 있습니다. 동정녀에게 나실 것,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유다 지파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 등 아주 구체적으로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청춘 남녀들이 모여 불륜의 아이들을 낳으라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백화점에서 여러 가지 상품을 진열해 놓고 예수를 이용하여 장사하라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가 구원하심"이라는 말씀입니다. 구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위험에서 구한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로부터 구원하다는 말입니다. 성탄절에 더 많이 죄를 지라는 말이 아니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17-19세기를 거치며 자유를 챙취하기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20세기에 와서는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아마 21세기는 박애, 복지가 우리 인류의 이슈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류 역사와 개인의 삶에 암적 존재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류의 미래는 보장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죄가 왕노릇하지 못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예언하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죄의 문제, 죄의 삯으로 주어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다시 예언합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사 1:18)"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사 43:25)"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성탄절 예수님을 통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죄의 싹인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복을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보내사” “그가 나를 보냈다”는 말입니다. 그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절에 3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첫째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기 위해서입니다. 상하다(샤바르)는 “깨뜨리다. 산산조각내다”라는 말로 세상적으로나 영적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상처를 치유시켜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올 한 해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습니까?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치유받으시길 바랍니다. 나 혼자 꽁꽁 붙들고 암덩어리 만들지 마시고 치료자이신 예수님께 내어 놓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 15:26)"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렘 30:17)"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렘 33:6)" 대인관계를 통하여 받은 상처, 일을 이루지 못하여 받은 상처, 감정적 자극을 통하여 받은 상처, 죄로 말미암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한 상처, 감정의 상처, 마음의 상처, 영혼의 상처 모두를 하나님은 다 치료할 수 있습니다.
한국 대학생 선교회(CCC)를 이끌시다 천국에 가신 김준곤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은 어머니와 사랑하는 다른 세분의 형님들이 차례로 급사한 것을 보았답니다. 6.25때는 아버지와 가족들이 눈앞에서 공산당에게 학살당하는 것을 목격했답니다. 어린 시절 사랑하던 동생이 불놀이 하다가 불에 타서 죽던 날 밤, 그는 그 죽어 가는 동생이 당하는 고통과 숨막히는 슬픔을 그 자리에서 체험을 했답니다. 또 다른 동생 하나는 집 근처 벌목하는 현장에서 놀다가 나무에 치어 죽는 것을 보았답니다. 고등학교 교감으로 봉직하던 착하디 착한 동생이 10살에서부터 16살까지 딸 네 명을 남겨놓고 간암으로 죽는 고통을 겪었답니다. 자기 딸이 위암으로 157일간의 고통을 겪다가 두 어린 딸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죽는 참혹한 비극을 당했답니다. 동생과 제수가 죽고 막내 동생은 간 경화로 시한부 인생을 살다 갔답니다. 고아원을 차려야 할 정도로 모두가 부모 없는 유자녀들을 떠맡기고 떠났답니다. 얼마나 기막힌 상황입니까? 얼마나 무거운 짐입니까? 얼마나 큰 상처가 남겠습니가? 우리가 김목사님이 겪었던 것 하나만 겪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힘겨워 할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정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하나의 얼굴로는 웃고 다른 얼굴로는 운다. 내 영은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깊은 곳에서 샘물같이 환희가 솟는다. 그러나 다른 마음의 하늘에서는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한해 한해를
사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도 아니다. 한 발짝, 한 호흡, 주님을 사랑하며 창세기 첫날처럼 날마다 영원한 첫사랑으로 살자. 주님을 호흡하며 살자. 내게 깊은 위로와 감사와 찬송과 평안이 있다. 그것은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은혜로 내게 주시는 것들이다." 이게 바로 주님을 구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무거운 상처가 있다할 지라도 주님께 나오면 우리 주님은 모든 상처를 치유시켜 주십니다.
둘째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포로(쉬브임)은 전쟁에 패한 나라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소유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죄의 지배하에 사탄의 종노릇하여 자유가 없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셋째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갇힌자(에수림) 묶다 감금하다 어떤 일에 대한 처벌로 감옥에 감금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전 관습과 중독에 벗어나지 못하고 노예된 상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오신 것입니다.
2절에서는 한 가지를 더 첨부하고 있습니다.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하여 슬픈 자를 위로합니까?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서입니다. 예수님으로 오심으로 자기 백성에게는 은혜를 베풀고 자기 백성의 원수에게 보복하심으로 하나님은 핍박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3절에서는 또 3가지를 첨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또 주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슬퍼하는 시온의 백성들에게 재 대신 화관 쒸워 주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발라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셋째는 근심 대신에 찬양의 옷을 입혀주기 위해서입니다. 성탄절이 되었는데 되는 일 없다고 걱정하고 근심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니 J 젤린스키는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그리고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이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들"이라고 말했습니다. 96%의 염려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귀중한 인생을 황폐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무엇들 말씀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삶이 질의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만 줄 뿐 아니라 더 풍성하게 주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에 대하여 직접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구원만 받고 끝나는 삶이 아닙니다. 더 풍성한 삶을 이 땅에 살게 하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하시길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함께"라는 의미의 "임"과 우리와 라는 의미의 "마누"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엘"이 결합된 말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는 자, 가난한 자, 병든자, 희망이 없는자, 위로를 원하는 자, 고독한 자, 절망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실패한자, 병든자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전도하여 우리로 하여금 전도자가 되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오셔서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기쁨을, 근심 대신 찬양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그 이하 번역을 쉬운말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시온의 백성들로 하여금 주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와 같게 하여서 그들이 ‘주의 영광을 들러내는 자들’이라 불리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의의 나무,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들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오심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4절 이하에서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영원한 기업의 회복입니다(4,5) 둘째는 세계 만민에 대한 제사장 신분의 획득(6)입니다. 셋째는 풍부한 물질적 축복과 영광의 획득입니다(7-9) 이 말씀은 1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론에서 돌아 올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예언이고 2차적으로 메시아를 통하여 회복될 하나님의 나라 교회 공동체에 대한 예언입니다. 뿐만 아니라 3차적으로는 예수님을 통회 구원받은 우리와 우리가 가서 살 영원한 천국에 대한 예언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들에 대한 적용입니다. 6절에 보십시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변하였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무엇이라고 말씀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여호와께 복받은 자로 인정할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해 주십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열방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만 구원받고 복된 삶을 살게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열방이 구원받고 복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지난 주 윤집사님 어머니 천국에 가시고 신앙으로 장례를 잘 치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요즈음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니라 집에서 장수하시다 천국 가시는 분도 흔하지 않습니다. 아들로서 며느리로써 끝까지 신앙으로 효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자손들에게 큰 유산이고 얼마나 일가친척, 친지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일이겠습니까? 아들이 믿음 안에서 잘 되니까 장례식이 초라하지 않고 오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전도가 되고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발휘하게 됩니까? 탐욕스런 악덕 자본가로 불렸던 록펠러를 보십시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현재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 재산의 3배가 넘는 돈을 번 사람입니다. 그의 재산에는 항상 '더러운 돈'이란 꼬리표가 붙어 다녔습니다. 그러나 록펠러는 '악덕 기업가'라고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오히려 '세계 최고의 위대한 자선 사업가'로 칭송 받습니다. 그는 "내 재산은 인류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하며 세계 최대의 재단인 록펠러 재단을 설립하여 엄청난 재산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쏟아 부어 교육·의학·과학·문화·예술 분야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냈습니다.
우리가 의의 나무가 되고 기업이 회복되고 신분이 상승되고 물질적 풍족을 누리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들러내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나 때문에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지옥 갈 인생이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거지처럼 살 인생이 이 땅에서 왕자처럼 사는 인생으로 바뀌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값진 선물은 없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 내 안에 있는 복음의 효과가 다른 것입니다. 내가 어떤 매개체가 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똑같이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하나님처럼 섬기면 변화되고 복음을 받아들여 새로운 삶을 삽니다. 그러나 총독과 왕은 바울의 복음을 듣고 바울을 미쳤다고하고 우매자라고 합니다. 왕이고 총독이니까 죄수의 몸으로 쇠사슬에 매인 바울이 복음을 전하니까 똑같은 복음인데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사단장이 되어 복음을 전하면 그 효과가 병사로 복음을 전하는 것과 다릅니다. 내가 가난뱅이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과 사장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은 효과가 다릅니다. 내가 무식한 자로 복음을 전하는 것과 학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 효과가 다른 것입니다. 복음의 차이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매개체의 차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사야의 약속의 복을 받아 진정 복음 전하는 자로 성탄절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 스스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 6:38)” 인류 구속사역을 성취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열방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구속 사역을 성취하여 무엇을 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막1:38)” 전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요 12:47)”
이것이 예수님이 직접 밝혀 주시는 예수님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류의 역사가 BC와 AD로 나누어진 것처럼 예수님을 모시고 우리도 우리의 인생과 가족사의 전환점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불신 가정에서 신앙의 가정으로 방향을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저주받은 인생에서 축복받은 인생으로 방향을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꾸임받는 인생에서 베풀어 주는 인생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슬픈 인생에서 기쁜 인생으로, 번민하는 인생에서 기대하는 인생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보십시오. 돈으로 명예로, 학식으로 권력으로 환락으로 아무리 채워도 만족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깨어진 마음 상처난 마음이 뒹굴어 다니는 시대입니다. 중독으로 감옥같은 인생을 사는 시대입니다. 진정한 위로도 기쁨도 없는 물질에 노예가 되어 버린 시대입니다. 예수님을 이들에게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통해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복된 소식을 듣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상처란 자들이 그 상처를 고침받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포로된 자가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갇힌 자에게 놓임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슬픔과 근심에 빠진 자에게 위로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영원한 기업의 회복시켜 주십니다. 더 나아가 물질적 축복과 영광 획득하도록 합니다. 우리는 성탄절 나만의 성탄절이 아니라 이웃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주인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4.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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