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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나기(4) 천국 상급에 대한 기대회복(빌3:12-1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7062 추천수:20 112.168.96.71
2014-12-14 07:23:33

 

다시 일어나기(4) 천국 상급에 대한 기대회복

빌3:12-16

 

이제 2014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도 열심히 살아 왔는데 혹시 하나님 일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12월이 되면 교회에서 내년에 교사와 성가대, 주방, 청소, 안내, 전도 등 여러 부서에서 봉사할 자원서를 받고 자원서를 내지 않아도 봉사할 수 있도록 임명을 합니다. 그러면 참 기쁨으로 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피곤해 하고, 실망하고,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며 회피하시는 성도님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내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회 주어졌을 때 한 가지 사역이라도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참으로 신앙인에게는 중요합니다. 우리가 진정 복받는 삶을 살려면 우선순위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너무 세상에 취하여 세상에 쌓는 일만 관심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때가 되면 다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천국을 위해 쌓아 놓은 것은 죽어서도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6:20)”

그러면서 예수님 말씀합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 늘의 백합화를 보아아 다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믿습니까? 참으로 행복하게 사는 법, 참으로 가치있게 사는 것은 천국에 좀도 동록도 해하지 못하는 것을 쌓으며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설거지 한 번 하는 것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청소 한 번 하는 것 결코 허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텔레비전 하루에 4시간 보며 60여 년 동안 꾸준히 90000시간 보아도 천국에 상급으로 쌓이는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을 위해 매일 한 시간씩 운동하는 것은 이 땅에서는 참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나와 청소하면 내 몸과 마음의 건강도 좋고 그것은 다 하늘 창고에 쌓입니다. 요즈음은 너무나 사람들이 현세 중심적이고 물질 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새해 돈 버는 10大트렌드를 발표합니다. 신문에 보니까 올해도 '2015년 소비 트렌드' 전망 10가지를 내 놓았습니다.그 중 제 눈길을 끈 것은 “감각의 향연, 증거 중독, 참을 수 없는 자랑질”이었습니다. 저도 매년 100여권 넘게 책을 보며 살고 있지만 이것은 시대의 흐름인 것 같습니다. 아주 감각적입니다. 증거를 들이대지 않으면 믿지를 않습니다. 참을 수 없는 자기 자랑질로 전세계적으로 셀카 사진이 하루 평균 3억 5000만장이나 SNS에 오른다고 합니다.

시간 지나면 다 살아질 것에 너무 목숨 걸지 말아야 합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다가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것 죽고 사는 것 아닌데 “땅콩 회항”을 시켰다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습니까? 엉덩이 한 번 만지는 감각적 쾌락 그것 아무것도 아닌데 그것에 목숨 걸다 그 좋은 교수 자리 잃고 얼마나 망신입니까? 바로 한 주 전에 동료 교수가 구속되었는데 그 감각의 향연을 참지 못합니다. 그것 권력 순식간인데 본질을 잃어버리고 누구 유출했느냐만 찾으며 아귀다툼하며 자살하고 연말에 이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영원한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평생 동안 참으로 위대한 인생을 산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무엇을 기대하면 인생을 살았습니까?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4)”

부름의 상입니다. 천국을 구경한 사도 바울은 천국에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고 그 상급을 바라보고 일어나 달려갔습니다. 차원이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굼벵이와 유충과 나이는 삶의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기록하고 있을 때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까?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으면서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1:7,13,17을 보세요. 이때가 어느 때쯤 되었겠습니까? 1:19,20; 2:17절을 보세요. 죽음을 눈앞에 놓고 있는 때입니다. 자신을 전제로 드릴 수 있는 때였습니다. 바울은 67년경 로마에서 네로 황제에 의해 참수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는 로마 감옥에서 60-62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바울을 위로해야 할 로마에 있는 복음의 동지들이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1:15절을 보십시오.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습니다. 1:17절을 보십시오. 감옥에 있는 바울의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순수한 동기가 아닙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복음을 도구화한 것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내가 가장 큰 목사다. 나는 위대한 목사다. 우리 교회가 가장 큰 교회다”등과 같은 현세적 이익을 위해 복음을 상품화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자신이 바울보다 더 명성이 높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빌립보 교회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루디아라는 여인과 감옥의 간수의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세울 때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렇게 어렵게 세운 교회인데 거짓교사들이 있었습니다. 1:28절을 보세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3:3을 보세요. 개들과 행악자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주의 자들입니다. 3:19절을 보세요. 자유 방임주의 자들입니다. 육체의 욕망에 빠진 쾌락주의 자들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지도자들은 어떠했습니까? 4장 2절을 보십시오. 여인들이 서로 권력다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오다아와 순두개가 한 마음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이 빠지고 낙심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교회일 하다가 이런 일을 만나면 당장 그만 두고 싶고 교회일 개입해 보았자 나만 손해고, 교회 일 깊이 들어가면 회의만 더 생긴다고 가나안 교인들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만두고 낙심하고 포기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도피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달려가겠다는 것입니다.

“달려간다(디오코)”는 말은 경기장에서 달리기 하는 선수가 열심히 추적하며 달려간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주자에게는 “상(브라베이온 prize.)”이 있습니다. 고전 9:24에서 나오는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가 받는 상도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선수에게는 그의 성과에 따라 금메달이 있고 은메달이 있고 동메달이 있는 것입니다. 천국 상급에 대한 갈망, 기대, 소망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만 있다면 금방 실망하고 좌저러할 수 있지만 천국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을 만나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다 살만하니까 너무나 이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차등상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천국의 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달려간다(디오코)”는 말은 “얻으려고 열심히 쫓아가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인데 상을 구원으로 보면 구원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말이 되어 버립니다. 구원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칸트 철학에 의해 상급이나 보상을 바라보고 선행을 행하느냐는 것입니다. 덕은 덕 자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지 상급을 받기 위해 덕을 행하는 것은 비열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아주 하나님보다 더 고상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많은 교훈이 공로와 보상에 대한 교리를 많이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지 교육적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이라 해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상이 있다면 똑같은 상이지 천국에 무슨 차등상급이 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천국이겠냐는 것입니다. 상급은 하나님의 주권에 위배되고 상급은 공로사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미스도스”, “아포디도미”같은 상급용어는 차등 상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 번역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보상의 의미이지 상급의 의미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차등상급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합니다. 마 5장 11절에도 예수님께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12절에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님을 위해 핍박당한 자에게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차등 상급에 대한 약속을 분명히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큰상을 주시는 것이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신다고 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또한 선지자를 영접한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을 영접한 자는 의인의 상을 받고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들도 역시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10: 41-42)”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마 16:27에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금세에 있어 백배를 주시고 내세에 영생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막10:30; 마 19:29; 눅 18:30).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우리가 이해는 못하지만 의의 면류관(딤후 4:8), 생명의 면류관(약 1:12) 영광의 면류관(벧전 5:4) 등이 있는 것입니다.

이 상급은 공로 사상과는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벽기도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헌금도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방봉사도 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청소도 하게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전도도 하게 하고 하여 받는 상급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선행으로 상급받는데 그 선행의 근거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 은혜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가끔 페이스 북에 올라가 보는데 금요일 잘 아시는 목사님이 의자에 앉아 잠을 청하는 모습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매주 몇 차례 투석을 합니다. 세월이 흘러 누울 수 없어 의자에 앉아 잠을 청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잠을 잘 자는 것도 축복이지만 누울 수 있다는 것도 축복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고였습니다.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 자체가 은혜이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조건이 주어진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그래서 그렇게도 상급을 사모하며 상급받을 일을 많이 한 사도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상급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 상급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사는 우리는 우리 인생의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분명히 바라보고 일어나야 합니다.

천국상급을 기대하면 산 바울은 어떻게 일어나 달려갑니까? 이 땅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인간적으로 보면 바울을 이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노년의 때입니다.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금을 받고 편안하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보장된 노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안정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 한 채도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때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인간적으로 볼 때는 파산되고, 부도나고, 실패한 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고하고 노력하였는데 결과는 실망스런 것이었습니다.

이 때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14절을 보세요. 확실한 상급을 바라보며 무엇을 향해 달려가겠다고 합니까? “푯대를 향하여”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일어나 달려가는 것입니다.

목표물입니다. 그 목표물이 무엇이겠습니까? 출세하는 것, 사업에 성공하는 것, 부자가 되는 것, 건강, 명예, 권력이겠습니까? 궁극적으로 그 푯대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가장 고상한 지식으로 생각하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상급이 무엇이겠습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죽음에서 살아나고 예수님을 통해 죄를 이기고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바울이 감옥에서도 견딜 수 있고, 희망과 기쁨에 부풀어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예수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울함 당할 때, 우리가 외면받았을 때, 우리가 자존심에 손상이 왔을 때, 우리가 수치를 당했을 때, 우리가 실패했을 때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도 기쁨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과 고난, 실망할 일이 있는데 바울은 그 감옥에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빌립보서 1장 3,4절을 보십시오. 감사하며 기쁨으로 기도합니다. 순수하지 못하게 자신의 명예와 욕심을 위해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을 보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1장 18절을 보십시오. 기뻐합니다. 서도 다투고 보기싫은 성도가 있어도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2장 17,18절을 보세요. 자신의 인생을 다 쏟아 부어도 기뻐하고 기뻐합니다. 우리가 천국 상급을 기대하며 이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상급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사는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사는데 필요 없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일어서야 합니다.(13b)

바울은 지나온 과거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겠다."고 말씀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지나온 과거는 잘 된 일도 있고 잘못된 일도 있습니다. 잘 된 것에 집착하면 자랑이 되고 교만이 됩니다. 과거 잘못된 일에 집착하면 올무가 되고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감옥이 됩니다. 지난 세월은 잘되었던 잘못되었던 다시는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단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시간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입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자는 신앙의 경주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할 사람이 살아 온 뒤를 자꾸 본다면 어떻게 제대로 경주를 할 수 있겠습니까? 출애굽 후 이스라엘 사람들의 잘 못 중 하나가 무엇이겠습니까? 시시 때때로 과거 애굽 생활에 집착하며 불평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예수 안 믿었을 때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차라리 주방, 성가대, 안내 안 맡았으면, 차라리 목자, 구역장, 권찰, 교사 안 맡았으면 하며 후회하고 그것으로 인해 평생 상급을 받을 기회를 잃게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차라리 결혼하지 않았을 때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롯의 아내를 보십시오. 우리 주님을 위해 사는데 필요 없는 과거를 잊어야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는데 방해되는 걸림돌은 다 잊어 버려야 합니다. 바울도 과거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데 가담한 사람인데 그것에 집착했다면 그의 인생은 하늘 창고에 상급이 쌓이지 않는 인생으로 마감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과거에 집착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우상 장사의 아들입니다. 자기 부인을 두 번이나 비겁하게 이방 왕에게 내어 준 자입니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형과 아버지와 삼촌을 속인 사기꾼입니다. 이삭을 어떻습니까? 그도 아버지를 본받아 아내를 외간 남자에게 내어 준 사람입니다. 모세는 어떻습니까? 살인자입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간음한 사람입니다. 과거의 아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역사 속에는 밑바닥 인생에서 시련을 이기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셰익스피어가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비천한 신분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목축업과 도살업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빵집 아들이었으며, 천체 망원경을 발명한 케플러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선술집에서 종업원 노릇을 하였습니다. '전기분해의 법칙'으로 유명한 패러데이는 대장간 집 아들이었습니다. 프랑스가 낳은 천재적인 물리학자이자 대수학자인 라그랑주의 아버지는 투기에 손을 댔다가 실패한 빈털터리였습니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 때문에 성공했다면서 "만약 내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아마도 오늘날의 위대한 수학자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이들이 과거의 올무에 잡혔다면 역사 속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맛있는 과일은 빛만 있어도 안 되고 빛과 어둠이 적당히 조화되어야만 합니다. 몇 번 실패했다고 실패한 과거에 집착하여 의지를 꺾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9:62)"

 

3. 상급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사는 우리는 안주하지 않고 일어나 열정으로 전진하여야 합니다(3:12-13a).

바울은 수많은 곳에 교회를 세웠고, 수만은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12a, 13a). 그는 계속 기록 향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12b). 12, 1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미 얻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다 알았다고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준 이방인과 임금들과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 다 이루었다고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올해까지 만 이정도 했으니 내년부터는 그만 두어야 하겠다고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성숙과 성취에 만족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물은 머물 때 썩게 되어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이제 내년에는 그만해야 하겠다고 자꾸 회피하고 싶은 경향이 있습니다. 환경이 따라 주지 않는다고 상급받는 일에 자꾸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의 환경을 보십시오. 감옥에서 꼼짝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4장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빌4:11,12절을 보세요. 있다고 교만해져 포기하고 없다고 원망하며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족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끝까지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죽는 순간까지 열정적으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복음을 전할 수 없으면 기도하여 기적을 일으켜 간수를 변화시켰고, 편지를 통하여 양육하였습니다. 마지막 사도행전을 마치면서도 셋방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의 열심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고후11:2)"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열정을 보십시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 1:29)" 힘을 다하여 복음 전하는 일, 말씀을 가르치는 일, 상담하는 일에 수고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려면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21번의 법칙이란 말이 있습니다. 무엇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하면 최소한 21번 연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군 조종사가 모의 훈련을 몇 번 하는 것이 실전에서 가장 효과적인가를 알기 위한 조사에서 나온 법칙입니다. 늘 남보다 뒤떨어진다는 의식에 발목 잡힌 사람에게는 100번의 법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안 되어도 100번 반복하면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거머리가 달라붙으면 전류를 흘려보내 감전시키는 실험에서 거머리는 떨어지고 붙고를 반복하다가 100번째에는 안 붙는다고 합니다. 기억력이 없는 거머리도 100번이면 학습이 되는 것입니다. 거머리도 100번에 통했다면, 사람이 100번 반복하면 통한다는 것입니다. 습관과 관련하여 "10년 법칙"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성취에 도달하려면 최소 10년 동안 집중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고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성공하는 사람들의 열정 포트폴리오"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들은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넬슨 만델라, 지미 카터, 달라이라마를 위시한 세계적인 기업가, 정치가, 학자, 작가, 음악가, 크고 작은 기업의 CEO들, 퓰리처상이나 아카데미상 수상자들, 교사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 노벨상 수상자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성공한 전 세계 200여 명의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지속적인 성공 비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0년에 걸쳐 이들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행동과 사고방식의 패턴을 찾아냈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점을 도출해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열정'이었다고 합니다. 지속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자신에게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열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추구한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이루는 사람들은 대부분 열정의 사람들입니다. 열정을 가지면 절망적 상황도 희망의 거름이 됩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환난을 당해도 곤경에 빠지지 않으며, 난처한 일을 당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을 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고후4:8-9표준)

 

천국이 있고 천국 상급이 분명히 있습니다.

1. 상급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사는 우리는 우리 인생의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분명히 바라보고 일어나야 합니다.

2. 상급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사는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사는데 필요 없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일어서야 합니다.(13b)

3. 상급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사는 우리는 안주하지 않고 일어나 열정으로 전진하여야 합니다(3:12-13a).

김필곤목사/열린교회/201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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