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2) 아브라함
창세기22:1-14 26:1-5
성경에는 인류의 조상 세분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인류의 최초의 조상인 아담입니다. 둘째는 홍수로 모든 인류가 다 죽었을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아와 그 가족입니다. 셋째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지난 주 제 2의 인류의 조상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의 종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첫 째 구원에로의 부르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부르심에는 외적인 부르심과 내적인 부르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내적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사역으로 부르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사역에로의 부르심에는 직업으로 부르심과 직분으로 부르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거룩에로의 부르심입니다. 오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부르심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이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떠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오는 본문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창12:1; 창22:2) 보여주실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합니다. 이것은 원어로 “ 레카”입니다. 이 땅은 결국 어디로 연결됩니까? 2절을 보십시오. 모리아 땅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야할 땅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모리아라는 지명이 이곳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이곳은 역대하 3장 1절에 다시 한 번 언급되는데 그 곳이 다윗의 시대에 오르난의 타작 마당과 연결됩니다. 모리아는 후에 다윗이 준비하고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의 터가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리아가 있는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역대하 3장에 다시 설명되는 모리아 땅에서 그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사가 드려지는 성전이 건축되었고, 더 나아가 인간이 준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준비하시는 놀라운 구속사역사 일어난 곳입니다. 이 땅이 아브라함이 중심을 두고 가야할 땅입니다.
인간은 끝없이 이곳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아담 이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창세기 3장 15절부터 이미 밝혀 주시고 있습니다. 노아를 통해 새 창조를 하였는데 결국 또 어떻게 되었습니까? 11장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자신들이 이름을 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아니라 인간이 왕노릇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어떻게 합니까? 9절 보십시오. 흩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무엇이 나옵니까? 족보입니다.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계보가 나옵니다. 10절부터 보세요. 26절을 보세요. 아브라함으로 연결되는 족보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을 아담-셋-노아-셈-데라-아브라함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9장 26-27절을 통해 셈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가정이 어떤 가정입니까?
여호수아 24장 2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수24:2)" 아버지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셈의 후예였지만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숭배한 사람입니다. 외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우상 장사였다고 합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게 만들기 위해 어떻게 부르십니까?
창1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떠나 가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모리아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부르신 것입니까? 11장 32절을 보십시오. 데라가 205세에 하란에서 죽었을 때입니다. 언제입니까? 데라가 죽었을 때입니다. 어디입니까? 하란입니다. 하란은 국경도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처음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불렀을까요? 아닙니다. 사도행전 7장 2-3절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행 7:2-3)" 어디에서 말씀하셨습니까? 아브라함의 고향 메소보다미아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무엇에서 떠나라는 것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입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고향 떠나라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깊은 영적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고향 또는 본토는 히브리어로 ‘에레츠’라고 합니다. 이것은 땅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흙에서 나온 존재입니다. 창세기 3장은 인간을 흙이라고 말씀합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3장19절)”
우리는 땅에서 취함을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아담이고 땅이고 먼지입니다. 땅은 우리의 근본을 말합니다. 여기서 고향이란 흙 즉 우리의 근본을 의미합니다.
친척은 ‘몰레덴’이라고 하는데 혈연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혈연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입니다. 아비 집은 ‘벹 아브’라고 하는데 앞의 두 개의 개념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즉 고향, 친척, 아비 집은 모두 인간의 삶의 근본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주가 되는 삶을 위해 그 근본을 ‘떠나라’라는 것입니다. 바벨탑의 역사는 인간이 스스로 영존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스스로 구원하려는 인간의 역사였습니다. 자신이 주가 되는 인생에서 하나님이 주가 되는 인생으로 떠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되어 바벨탑을 쌓은 인생에서 떠나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인생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그 은혜 속에 머무는 삶으로 떠나라는 것입니다.
왜 떠나라고 합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을 만들기 위해 그 땅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분명한 목표를 설정해 주신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첫 번째 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우상으로부터 “떠나 가는” 것입니다. 자기 우상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노아 홍수이후 4세기 동안 노아의 아들들은 수많은 족속들로 성장하였습니다. 민족들의 분산은 언어와 생활 방식, 습관이 다르고, 서로 엉켜진 여러 나라를 필연적으로 발생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우상숭배로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 버린 이방주의의 다신교적 종교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여 언약의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시면서 그것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오염되고 더러워진 사회로부터 구별되라는 것입니다. 달과 별을 숭상하는 우상 종교로부터 떠라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는 “빛”혹은 “불”이라는 뜻입니다. 불을 숭상하는 우상하고 빛을 숭배하는 종교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이러한 우상을 사고 팔았으며 이 다신교는 아브라함이 어렸을 때의 가정환경입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해 이런 환경으로부터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떠나갔습니까? 고향을 떠나는 것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약속 붙들고 본토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모시고 하란까지 옵니다. 아버지를 떠나지 못합니다. 국경도시입니다. 그곳을 떠나지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휴머니즘입니다. 주도권을 아버지 데라가 가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란은 ‘교차로’란 뜻입니다. 이 지역은 교통의 요충지로 번성했던 곳이고 상업과 문화가 발달한 지역으로 갈대아 우르와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가 성행했던 곳입니다. 이 두 지역에 공통의 신이 있었는 데 그게 달신(月神)입니다. 이 달신의 아내 이름이 ‘사라이’, ‘사래’입니다. 아브람의 아내 이름이 ‘사래’입니다. 이것은 달신의 아내의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우상 숭배 가문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아브람 가문은 우상 숭배 문화에 깊숙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란은 갈대아 우르와 너무 비슷해 편안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지 못하고 지체하니까 하나님은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셔서 아버지 데라를 데려가셨습니다. 데라는 ‘지연시키다’, ‘지체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별이라는 슬픈 방법으로 아브라함을 재촉하신 것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를 거두어 감으로서 모든 의존을 의도적으로 끊으신 것입니다.
데라가 205세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떠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같은 조카 친척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 75세였는데 아이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175세에 돌아가셨으니 지금으로 말하면 중년기입니다.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롯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어떻게 합니까? 13장에 보십시오. 소유로 말미암아 서로 싸우게 됩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오늘 본문이 떠남의 절정을 이루는 장면입니다. 이삭을 바침으로 철저히 떠나는 것입니다. 택함 받은 백성을 결국 항복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부르시고 떠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결국 떠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어도 끝까지 우리를 붙들고 떠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과감하게 떠나 버려야 합니다. 떠나지 않아도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게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 숭배가 부르심을 방해한다면 과감하게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자아실현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데 방해가 된다면 단호하게 내려놓아야 합니다. 담배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떠나 버려야 합니다. 도박이 부르심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절단하는 것입니다. 스마트 폰 중독이, 컴퓨터 게임 중독, 텔레비전 중독이, 스크린 중독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단호하게 떠나 버려야 합니다. 과소비가, 낭비가, 게으름이, 술중독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미련두지 말고 떠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본토를 떠나고 아비를 떠나고 친척을 떠난다고 불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머뭇거리고, 우물쭈물 하고, 주저 할 때 빨리 결단 내리고, 한발 앞서 가고, 용기 있게 일어서서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고기를 잡고 있는 베드로 형제에게 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까 그들은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했습니다. 바로 버려야 할 것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출발한 것입니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가 외롭고 고달픈 삶을 살았습니다. 그 때 여주인이 하룻밤 같이 자자고 유혹합니다. 이 때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우물쭈물하지 않습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버려버리는 것입니다.
엘리사를 보십시오. 밭을 갈며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와서 "나를 따르라" 고 합니다. 이 때 어떻게 합니까? 그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집으로 가서 쟁기를 부수고 소를 잡아서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베풀고 엘리야를 따라 나섭니다. 그리고 끝까지 따라 다닙니다. 롯의 부인을 보십시오. 떠나지 못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십시오. 떠나지 못합니다. 신앙의 역사는 떠남과 분리의 역사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죄악된 이 세상에서 분리되어 의와 거룩을 좇는 순례의 길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어차피 떠날 것들이라면 과감하게 떠나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떠나지 않으면 죽이고 싸워서라도 떠나게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2. 약속하시고 성취하심으로 부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부르실 때 그냥 부르시지 않습니다. 약속을 주시고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12장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은 '내가 네게 보여 줄 그 땅'. 여기서 '보여 줄' 은 미래 미완료형으로 아직까지는 보여지지 않으나 미래에는 구체적으로 보여질 것을 의미합니다. '그 땅'은 아브람으로서는 불명확 하나 하나님으로서는 이미 작정해 놓은 가나안 땅을 의미합니다. 땅을 약속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약속한 땅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입니까? 구체적인 하나님의 약속 세가지는 무엇입니까? 12장 2절 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세 가지를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첫째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후손도 땅도 없는데 큰 민족을 이루는 씨앗이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둘째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유명케 하여 그 이름이 길이 회자(膾炙)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열국의 아비(17:4, 5), 선지자(20:7), 하나님의 방백(23:6), 여호와의 종(시 105:5, 6) 하나님의 벗(약 2:23)으로 살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시조(始祖)로서, 또한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믿음의 조상으로서 길이 남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 말미암는 영적 축복이 단지 아브라함 개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의 통로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삭을 제물로 바치하는 것이 그 약속이 산산이 부서지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윤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고, 신앙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도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이성적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은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믿고 순종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미 잘 알 듯이 이삭이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주신 처음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첫 번째, 후손에 대한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으니까 롯을 붙들고 갑니다. 롯을 자식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창세기 13장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자손이 땅의 띠끌같게 하니니” 누가 주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아들이 없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됩니까? 15장 2절을 보십시오. 자신의 종을 상속자로 생각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5장 4-5절을 읽어 보십시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의로 여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믿음의 의의 증표로 무엇을 합니까? 언약을 하시는 것입니다. 삼년된 암소와 암염소, 수양을 가져다 반절을 쪼갭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이렇게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를 누가 지나갑니까? 언약 당사자들이 지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만 지나가십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형식은 쌍방 언약이지만 내용은 하나님 스스로 절대주권을 가지고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나이 85세가 되었습니다. 10년을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아이가 없는 것입니다. 16장 2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하와의 말을 듣고 넘어진 것처럼 아브라함도 똑같이 사래의 말을 듣고 첩을 얻습니다. 이 후로 13년 동안 하나님이 침묵하십니다. 아브라함 99세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17장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영원한 언약을 이룰 이삭을 낳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누가 “내가”입니다. 약속하시고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땅에 대한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약속된 땅입니다. 창세기 12:1에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 속에는 땅에 대한 약속이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이 약속 붙들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아브라함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12:7). 막연히 보이던 땅에 대한 약속이 확실한 하나님의 언약에서 구체화시켜 주고 있습니다. 롯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 롯과 헤어져 돌아오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의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4,15) 창세기 15장에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4대 후에는 차지하라 것을 공식적인 언약으로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17장 19절에서는 그 유업의 영원함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후 야곱의 후예들이 애굽에 건너갔다가 거대한 민족이 되어 애굽을 나와서,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그 땅에 정착하게 됨으로 언약이 성취되었습니다.
신명기 30:19-20에 의하면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강 건너 가서 땅을 정복할 때 아브라함의 언약이 이루어진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느헤미아 9:7,8에서도 같은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복의 근원이 되는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인간들은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명성”,“신망”,“우월”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기 위해 창세기 6:1-4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설쳤고 창세기 11:4에서는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라고 약속해 주었고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언약해 주었습니다. 모든 민족을 위한 복의 근원,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해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22:16-18에서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축복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그의 가계(家系)에서 약속된 '여자의 후손'(창3:15)인 메시야가 나오리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누구를 말씀할까요? 갈3:16절을 보십시오(신약 305쪽).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 3:16)"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음의 백성 많아지고 예수님을 통하여 복의 근원이 될 것을 말씀합니다.
갈3: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갈 3:8)"
결국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입니까? 부름받은 성도의 순종을 통해서입니다.
이것은 당시 아브라함에게 너무나 현실성이 없는 약속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허왕된 꿈일 수도 있습니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은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시고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약속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천국에 대한 약속, 부활에 대한 약속, 재림에 대한 약속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목동인 다윗을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는 약속을 주시고 결국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살인하고 도망간 모세를 찾아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결국 그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어 롯이라도 붙드는 상황입니까? 종이라도 붙드는 상황입니까? 첩이라도 붙드는 상황입니까? 앞이 안보입니까? 약속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시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시라 약속 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 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라고 말씀하십니다.
3. 순종케 하심으로 구속사를 성취하기 위해 부르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약속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십니다. 내용이 담기려면 형식이 필요합니다. 어떤 것이 전달되려면 통로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과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이루어 가시는데 일방적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인간의 순종을 통해 이루어 가십니다. 순종이라는 형식, 순종이라는 통로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모리아 산에서 약속하시고 인류 구속사를 이루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는데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22장 1절을 읽어 보십시오.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아들입니다. 복덩어리가 되게하겠다는 아들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어 주겠다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윤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고, 신앙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도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이성적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은 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신앙을 갖게 만드는 하나님의 시험이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을 믿게 만드는 시험이었습니다. 생명의 주인,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인류 구속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다는 하나님의 예표였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믿고 순종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망설이지 않고 즉각적으로 순종을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같이 돌아 올 것을 확신하고 순종합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으신 하나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하게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어린양이 어디있느냐고 물어 봅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할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평가해 주고 있습니다. "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히 11:17)"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11:19)" 부활시키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의 세계를 보는 것처럼 믿는 것입니다. 바라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성숙한 믿음이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입니다. 꼭 보아아 믿겠다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 20:2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가 만져 보고 믿으니까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20:29)"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의 모든 이성적인 생각이나 어떤 희생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기 버림의 믿음입니다 (눅9:23-27; 롬12:1).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믿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믿음입니다(요7:37-39; 행1:8).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살아가는 믿음입니다(롬8;29; 창1:26-28). 아브라함은 이방 신을 버리는 단계, 자기중심적 삶에서 말씀을 믿는 순종하는 아멘 신앙의 단계, 감사함으로 단을 쌓는 단계, 위기 가운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보고 믿는 단계, 부활의 하나님을 믿는 보지 않고 믿는 단계를 거쳐 37년 만에 믿음의 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순종으로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결과가 무엇입니까?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제야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합격 점수를 맞은 것입니다.
16절 이하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큰 복을 주고, 씨를 번성하게 할 뿐 아니라,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고, 천한 만민이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보여주는 근본적인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한 족장의 이야기이겠습니까?
모리아라는 어원은 “마르에”에서 파생된 단어로 “라아” 즉 ‘보다’라는 말입니다. <라아>의 어원은 2,4,8,14절 총 4번 나옵니다.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창22:4)” 바로 그곳이 모리아입니다. 이 <라아>의 어원은 8절의 ‘엘로힘 이르에’와 14절의 ‘아도나이 이르에’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르에”는 ‘준비하시리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어원적으로 볼 때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보실 것이다”로 해석이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피조물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늘 보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이 부족한 지를 늘 예비해 두신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고백은 마치 예언과도 같이 그대로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준비하셨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준비한 것입니까? 언약을 성취할 제물입니다. 언약을 어김으로 마땅히 죽어야 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언약을 성취할 예수님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3일의 여행과 순종 이후 아브라함은 먼저 그가 준비하지 않은 양으로 첫 제사를 드렸습니다. 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경배하러 3일 길을 광야로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원했습니다.(출 3:18 4:27; 5:3) 그들의 출애굽 이후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법을 주시고 법을 지키는 자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아버지들은 그의 장자를 동물로 대체하는 것으로 변제받았습니다(출 13:12-13) 마치 주의 사자가 유월절에 장자를 지켰던 것처럼 그들의 장자는 지켜진 것입니다.(출 12:12-13)38)
이렇듯 모리아의 제사는 시내산의 제사로 연결이 되고 신약성경을 보면 시내산에서 다시 골고다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8절에서 주님이 준비하신다고 말한 고백은 세상을 구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양의 제사’를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막 10:45, 요1:29,36 고후5:17-21 벧전1:18-19 ) 하나님의 숫양을 모리아에서 예비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의 예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마땅히 서야할 자리에 흠없는 어린양을 세웠습니다. 어린양은 택한자들을 위해 대신 죽었고 그로인해 그들은 살게된 것입니다. 이삭과 아브라함의 순종은 고통받는 종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모형인 것입니다.
이삭처럼 그리스도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희생적으로 그리고 순종적으로 이삭을 제단에 올렸듯이 그리스도는 희생적으로 순종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롬8:32, 빌2:6-8, 벧전2:21-24) 받아들였습니다.
독생자를 내어 주신 아브라함으로 통해 예수님을 번제단으로 보내시는 성부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요1:14;3:16; 창 21:1-7;22:2,16) 죽음 직전의 이삭을 다시 되돌려 줌으로(창22:9-12)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해 주시는 것입니다(요 20:17;고전15:20;히7:25). 임신이 불가능한 할머니에게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이삭을 낳게 함으로(창15:4,5;17:15-22;21:1-7) 임신이 불가능한 처녀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을 예표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마1:18-25)
죽기까지 순종하는 이삭을 통해(창22:1-12) 십자가에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의 제물로 드려지시는 예수님을 그림으로 그려 주시는 것입니다.(빌2:6-8)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모든 소유를 다 물려받는 이삭의 모습을 통해(창25:5) 죽음에서 삼일만에 부활하사 하나님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만물을 다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예표해 주시는 것입니다(마28:18;요3:35) 아브라함의 시험과 순종은 단순히 한 개인사가 아니라 범세계적인 구원 계획 속에서 인류 구원의 전체를 대표하는 하나의 표징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속계획을 가지시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구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언약을 맺어주셨는데, 그 언약의 핵심은 그의 씨를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씨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 3:16)”
지금 다가온 시험이 무엇입니까? 순종하기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어떤 시험이 다가와도 순종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드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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