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1) 노아
창6:1-8
요즈음 담배가 건강에 나쁘다고 담뱃값을 올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도 담배가 건강에 나쁘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지식의 반감기(새뮤얼 아브스만 지음)>라는 책에 의하면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담배가 몸에 이롭다는 게 상식이었답니다. 그래서 담배 회사에서 의사를 모델로 섭외해 "의사들은 우리 담배만 피웁니다"라는 광고를 했답니다. 웨딩드레스 차림의 신부가 등장해 "신혼여행에는 반드시 담배를 챙겨가세요"라고 말하는 광고를 잡지에 실었답니다. 60여 년 후 담배는 '건강의 적'으로 바뀌었고, 흡연자는 죄인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식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도 반절씩 필요없는 반감기가 있다고 합니다. 파리의 한 연구팀이 50여 년 동안 간 질환 관련 분야에서 발표된 500여 건의 논문을 수집해 이들 논문이 사실을 담고 있는지, 낡은 내용을 주장하는지, 틀렸음이 증명됐는지를 확인해 보았답니다. 그 결과, 간 질환 관련 지식은 45년이 지나면 절반이 오류로 판명되거나 낡은 지식으로 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답니다. 논문 인용 통계, 도서관 대출 통계 등을 살펴 각 분야 전문서적의 반감기를 측정해보니 물리학은 13.07년, 경제학은 9.38년, 수학은 9.17년, 심리학은 7.15년이었다고 합니다. 경제학 책이 출간된 지 9년 반 정도 지나면, 절반은 쓸모없는 지식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지식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2주전 60대 중반의 어떤 목사님을 만났는데 목회를 그만 두고 은퇴하여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어째서 그러냐고 물어 보니까 나이 드니까 이제 교인들도 환영하지 않고 자신도 능력 미달이 되어 젊은 담임목사님을 모셔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불러 사용할 때도 한 사람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마다 불러 사용하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 시킬 때는 모세를 부르셨고 이스라엘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데는 다윗을, 멸망해 가는 민족을 눈물로 호소하며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예레미야를, 꿈이 없는 백성에게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에스겔을,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느헤미야를, 죽을 수밖에 없는 민족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에스더를 불러 사용하였습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난 세상을 물로 심판하고 제 2의 창조를 하실 때 부르신 노아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1. 구원에로의 부르심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고 부르시는 것을 소명(召命, calling)이라고 합니다.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쓰시기 위해 부르실 때는 먼저 구원에로의 부르심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외국에 자신을 대신하여 일할 대사를 파견하는데 미국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나 러시아 사람을 택하여 파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나라 사람을 택하여 파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를 시대마다 파송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을 파송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겠습니까?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노아의 족보를 이야기 합니다. 족보란 자신이 어느 집안에 속한 사람인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족보란 “토레다”라는 “후에, 가족”이라는 말로 기원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경에서 자주 상요되는데 본문이 세 번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2장 4절, 두 번째가 5장 1절에 나오고 세 번째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소속을 밝혀 주는 말씀입니다. 결국 노아의 소속이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아담의 후예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노아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노아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헨”의 번역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고 강권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아 홍수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노아만큼은 하나님이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노아에게 무엇이 생겼겠습니까?
히브리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히 11:7)”
은혜로 말미암아 노아에게 믿음이 생겼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라고 말씀합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노아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이었습니다.
"그가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고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말입니다. 듣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되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10:7)
둘째는 보이지 않는 것을 꼭 보는 것 같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홍수의 징조를 보지 못했습니다. 홍수라는 말을 들어 보지도 못했고 경험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120년이란 아주 긴 기간 후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꼭 자신이 경험하는 것처럼 믿었습니다. 고후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셋째는 자신이 믿는 바를 실제로 행동했습니다.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였다"라고 했습니다. 말만 하였다는 말이 아닙니다. 실행하였습니다. 창 6:22을 보십시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 창 7:5을 보십시오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초청합니다. 부르심에는 사물을 통한 부르심과 말씀을 통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자연과 역사, 그들이 생활하고 있는 환경, 그들의 삶의 경험과 흥망성쇠로써 우리를 부르십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20)”
수많은 선지자를 통하여 시대 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부르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1:18)”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 55: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 6:1)”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마태복음 22장 2-14절에서 혼인 잔치 비유를 얼마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는 것은 회개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죄와 용서와 영생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름받는 사람들을 통해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듣고 회개치 않는 자들이 죽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고 오히려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받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노아 때처럼 사람들이 주님의 초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에로 부르시고 있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진정으로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우리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몇 십 년 지나면 반감되는 지식도 그렇게 잘 믿고 살면서도 만고불변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대학원을 다니고 박사학위를 받은 아주 지식 있는 며느리가 있었답니다. 매사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이치에 맞아야 믿는 며느리였답니다. 그런데 결혼하여 아들이 없는 것입니다. 시험관 시술을 몇 차례 했는데 여전히 아이가 없는 것입니다. 3대 독자로 아들을 기른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졸랐답니다. 시어머니 권사님은 초등학교에 나왔는데 아주 믿음이 좋았답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교회에 나가 목사님의 기도를 받자고 졸랐답니다. 며느리는 무슨 미신적으로 목사님의 기도를 받으면 아이가 낳느냐고 가지 않았답니다. 하도 시어머니가 조르니까 따라갔는데 시어머니 권사님이 신신 당부를 했답니다. "아가야~ 목사님이 기도하실 대 무조건 '아멘' '아멘' 해야 된다. 그러면 원하는 아기를 가질 수 있단다." 목사님의 기도가 이어졌지만 며느리는 "아멘" 이란 말이 나오질 않았답니다. 다급해진 시어머니 권사님이 며느리 대신 연신 "아멘!, 아멘!" 을 외쳤답니다. 결국 기도는 응답이 되어 몇 개월 후......시어머니가 임신을 해버렸답니다.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조금 지나면 효력이 없는 지식도 얼마나 잘 믿습니까? 그러나 유효기간이 없는 복음의 진리는 잘 믿지 않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행 16:31)”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을 가지시고 보이지 않는 것을 꼭 보는 것 같은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바를 실제로 행함으로 믿음을 증명하는 천국 백성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사역에로의 부르심
이 소명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구원에로의 부르심과 사역에로의 부르심(고전7:20)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어 노아에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있는 노아에게 무엇을 시킵니까? 14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방주를 지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규격을 하나님이 정확하게 알려 주십니다. 이 방주는 히브리어로 “테바”라는 단어입니다. 직사각형 모양의 상자입니다. 이 상자는 출애굽기 2:3, 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출 2:3)” 모세가 죽어야 할 형편에 처했을 때 그 상자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또한 원어는 다르지만(아론) 성전의 성전궤나 언약궤를 지칭할 때도 이 상자라는 말씀을 사용합니다.(왕하12:10,11 히9:4)
노아의 방주와 갈대 상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방주에 들어가 노아가 구원받았고 갈대 상장에 들어가 모세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갈대 상자와 방주에 칠한 것이 무엇입니까? 동일하게 역청입니다. 그 원어가 “코페르”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코페르가 다른 성경에서는 어떻게 점진적으로 계시가 되었을까요?
이 말이 다음에 사용된 곳에 출애굽기 21장 30절 말씀입니다.
“만일 그에게 속죄금을 명하면 무릇 그 명한 것을 생명의 속으로 낼 것이요 (출 21:30)”
생명의 댓가로 지불하는 속죄금이 바로 코페르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사용된 곳이 출애굽기 30장 12절입니다.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 함이라 (출 30:12)”
생명의 속전에서 속전이 바로 코페르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욥기 33장 24절, 36장 18절에서는 대속물로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3절에서는 속량물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무슨 그림을 보여 주고 있는지를 우리는 대강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확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신명기 18장 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코페르로 덮여진 테바에 담긴 모세를 말씀할 때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신 18:15)”
나와 같은 선지자가 누구입니까? 요한복음 6장 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오병 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요 6:14)” 바로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가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18장의 '나와 같은 선지자' 즉 모세와 같은 선지자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갈대 상자 속의 모세가 그리스도의 모형이듯이 방주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하나님께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1-4절에서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고전 10:1)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고전 10:2)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고전 10:3)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 10:4)”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넌 것을 세례 사건으로 해석해 주시고 반석을 그리스로라고 해석해 주시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홍해를 건넌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눅 24:44)” 결국 모세의 갈대 상자도 노아의 방주도 예수님의 모형이고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방주의 영적 그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방주가 법궤로 연결되고 방주의 덮개 창문 하나와 법궤의 덮개 속죄소는 바로 오직 양의 문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방주의 구조를 보면 위쪽에 문 하나만 있는데 문이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은 구원의 통로는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직 단 번에 속죄 제사를 드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 10:7)”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2)”
노아가 몇 살에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성취하는 이 구원 사역으로 부름을 받았습니까?
창6:3절을 보십시오.
480살 때입니다. 그런데 홍수가 내릴 때가 언제입니까? 7장 6절을 보십시오. 몇 년동안 방주를 짓는 사역을 했다는 것입니까? 120년 동안입니다. 120년 동안 당시 사람들에게는 말도 않되는 방주 짓는 본업으로 인생을 산 것입니다.
이 사역을 감당할 때 무슨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집 한 채 짖는 것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입니다. 1규빗이 45cm쯤 되므로 노아의 방주는 길이 1백35m, 너비22.5m, 높이 13.5m에 이르는 거대한 배입니다. 오늘날 살고 있는 육상 생물은 1만 7천 6백종, 쌍으로 계산하면 3만 5천 2백 마리인데 방주는 12만5천 마리 이상을 수용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그리고 거기에 40일 양식을 실어야 합니다. 홍수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햇볕 쨍쨍 내리쬐는데 방주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가 당한 수모를 당했겠습니까? 성경 벧전3:16-20에 이것을 우리에게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 보다 나으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만들 때 그들은 노아를 비방하며 핍박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끝까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결과가 이루어졌습니까?
7장 23절을 보십시오. 자신뿐 아니라 그 집을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잘 믿어 그 후손이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고, 기생 라합이 믿어 그 가정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가버나움의 가나안 여자의 간절한 믿음으로 그 딸이 병을 고침받았고 백부장의 신앙으로 종이 고침받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경고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 누구든지 이 방주에 들어오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으리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히 11:7)” 그 집만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삶으로 전도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사건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벧후 2:5)"
오직 의를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사역에로의 부르심은 교외내의 직분에로의 소명과 교회 밖의 직업으로의 소명이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교사로,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는 것 다 소명입니다. 직장에서 사장으로, 부장으로, 사업으로, 가정에서 주부로 섬기는 것 다 소명입니다. 그 사역의 중심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업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시길 바랍니다.
3. 거룩에로의 부르심
노아가 살 당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첫째는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1절) 그들이 나은 아들은 건강하고 씩씩한 용사였고 사회적으로 이름있는 유명인 이었습니다(4) 이것은 창세기 1:28에서 하나님께서 축복한 축복의 결과입니다.
둘째는 이들은 하나님의 법, 규범,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육체의 해방을 부르짖었습니다.(2)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공경하는 하나님의 아들들, 즉 언약의 자손 셋의 후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버린 사람의 딸들, 즉 가인의 후손들과 결혼한 것입니다. 그들의 가치관을 보십시오.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 단지 눈으로만 곧 외모로만 상대를 택하였다는 말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2)로 아내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충고나 의논도 없이 자신의 타락한 욕정이 시키는 대로, 두명, 세명, 네명도 상관없이 자기 좋은 모든 자를 아내로 거느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셋째는 사람의 죄악이 온 세상에 가득 찼고, 겉모습만 악하게 보인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생각과 계획까지도 일시적이 아니라 항상 악한 시대였습니다(5).
'총체적 난국' '총체적 타락'입니다. 사회가 암이 걸렸는데 암 덩어리가 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안, 소장, 대장, 간장 등 전신에 퍼져 있어 도대체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정상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11절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패괴하여 강포가 충만한 땅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완전히 썩어 버린 사회였습니다. 악한 자가 그 사악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사악함으로 가장 추앙을 받는 사회였습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가 도덕적 규범을 잃어버린 사회였습니다. 더욱이 마음속의 계획과 생각들이 모두 정당하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과 기쁨 만을 추구하는 사회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는 사람과 권력, 돈을 믿으며 사는 사회, 선보다 악이 추앙받는 사회, 온갖 횡포와 압제 온갖 향락과 방종이 판을 치는 사회, 정직이 행하는 자를 융통성이 없다고 고지식하다고 비난하는 사회, 적당히 부정축제를 하고 적당히 타협하여야만 하는 사회, 하나님의 말씀을 신화처럼 취급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로 생각하는 사회, 선과 악의 구별이 없는 사회였습니다. 황금만능주의, 쾌락 지상주의, 인본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은 노아를 거룩한 사람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은혜를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노아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세 가지로 노아의 삶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망각한 시대에서 의롭게 살았습니다.
둘째는 완전한 자였습니다. 죄 없이 완벽하였다는 것보다는 성실성에 있어서 완전하였다는 말입니다. 신실성이 파괴된 시대에서 신실성을 지켰다는 말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 잃은 시대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예수님 재림의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37)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마 24:38)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39)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마 24:40)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마 24:41)”
우리를 하나님께서 왜 불렀습니까?
바울 사도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 4:1)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엡 4:2)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
베드로 사도는 말씀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오늘 설교를 처음 시작 할 때 담배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담배 이야기 하나 더 하겠습니다. 옛날에 평안도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젊은 목사님이 부임하여 왔답니다. 온 교인들이 새 목사 오셨다고 즐거워하며 교회를 섬기고 교회는 활기가 넘쳤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청년들이 교회 마당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한 청년이 볼일이 급하여 화장실에 노크도 안 하고 문을 활짝 열었답니다. 청년은 깜짝 놀랐습니다. 화장실에서 볼일 보던 분은 다름 아닌 그 교회 목사님이신데 담배를 피며 볼일을 보고 있었답니다. 안에서도 놀라고 밖에서도 놀랐답니다. 소문이 곧 바로 온 교회에 퍼지고 교회가 왈칵 뒤집혔답니다. 이럴 수가, 목사님이 담배를 피다니, 그러면서 강단에서 설교를 해, 거짓 된 목사, 위선자, 당장 쫓아 보내야 된다고들 난리였답니다. 그 일로 제직회를 열었답니다. 온 제직들이 한 목소리로 저런 가짜목사 삯군목사 당장 보내자고 동의하고 재청하고 일사천리로 회의가 진행되어 가결 직전에 이르자, 아무 말씀 없이 침묵만 지키시고 계시던 장로님이 입을 여셨답니다. "여러분의 뜻을 저도 동의합니다. 목사님을 보냅시다. 담배 피는 목사 보내야지요. 하지만 목사님도 가족이 있으시고 집도 없는데 당장 어디로 가며 또 담배 피다 쫓겨난 목사를 어느 교회서 모셔가겠습니까? 내 생각은 목사님을 담배 끊을 때 까지만 모시고 담배 끊으신 다음에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 합니다."
듣던 모든 제직들은 그 장로님의 고고한 신앙과 인격에 감복되어 그렇게 담배 끊을 때 까지만 모시는 것으로 하고 결의하였답니다. 이제 공은 목사에게 넘어갔답니다. 당장 쫓겨나지 않아 우선 살길은 얻었는데 다음 주일부터 설교할 일이 난감 하였답니다. 그는 고민에 빠졌답니다. 고민 끝에 교회에 가서 밤을 새며 기도하기를 시작하였는데, 무슨 기도를 하였는지는 모르나 벼랑 끝에 선 자의 절규였답니다. 그는 기도하다가 놀라운 성령의 불을 받았답니다. 콧물 눈물 흘리며 밤새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주일날 강단에 섰답니다. 그의 설교는 지난날의 설교가 아니었답니다. 설교는 회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저는 가짜 목사입니다. 먹고 살기위하여 목사가 된 삯군 목사입니다. 그리고 내 죄는 담배 피는 죄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죄를 숨어서 지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이중인격자요 위선자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강단을 모독한 죄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하면서 설교가 아니라 회개의 통회였답니다. 온 교인들도 감동을 받아 같이 울며 자기들도 죄를 회개하며 온 교회가 성령의 역사로 변화가 일어났답니다. 몇 달후 장로님이 제직회에서 “우리 목사님 이제 담배 끊었으니 결의 한대로 보냅시다.”하였더니 모두가 “안 됩니다. 저런 훌륭한 목사님을 어디서 모셔 옵니까?” 하면서 붙들기로 하여 그 목사님을 모시고 교회를 잘 부흥시켰답니다.
하나님은 저와 우리 성도님을 이 시대에 부르셨습니다.
구원에로의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통해 부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부르십니다. 아직 이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했다면 아집과 교만을 다 내려놓고 십자가 사건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구원에로의 부르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사역에로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교회 내 직분과 교회 밖 직업으로 부르심입니다. 우리의 직분과 직업이 복음 증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세상과 구별된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4.9.21.
열기 닫기
| 쪽지 보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