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26) 승리하는 믿음7 선지자들의 믿음
히브리서11:32-34
나무가 흔들리면서 꽃을 피우듯, 인생은 흔들리면서 성장을 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신앙생활도 쉽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믿음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한 때 믿음 흔들리니까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인생도 흔들립니다. 그래도 흔들리다 다시 견고해지면 좋은데 심하면 믿음 흔들리다 아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유다도 믿음 흔들리다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으며,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믿음 흔들리다 성령을 속이다 죽음을 당했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도 어떤 일을 만나면 금방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교회 생활 잘하던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믿음의 흔들리고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대학 때까지 믿음 생활하다 직장에 들어가면 믿음이 흔들려 교회를 떠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신앙생활 잘하다가도 믿지 않는 배우자를 만나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믿음이 흔들이면 인생 전체가 흔들립니다. <믿음과 의심의 대화(윤관희 저)>라는 책에는 게리 하버마스의 세 가지 의심이 소개되었습니다. 사실적 의심, 정서적 의심, 의지적 의심입니다. 사실적 의심은 신앙의 기초가 되는 성경적 사실, 역사적 사실, 또는 이 사실에 기반을 둔 과학적 사실 및 논리에 대한 의심을 의미합니다. 사실적 의심을 품은 사람에게는 믿음의 근거가 되는 역사적 사실 및 논리를 충분히 제시하면, 대개 의심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답니다. '정서적 의심'은 성경의 특정 사실이나 논리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 느낌과 감정에 의심이 생기는 경우라고 합니다. 의처증을 가진 남편처럼 객관적 사실이나 증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느낌으로 증거를 판단한 결과 의심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아무리 객관적 증거, 역사적 과학적 사실 그리고 논리 정연한 설명을 제시해도 당사자가 의심스럽다고 느끼는 한 해결할 수가 없답니다. 교회 다니다가 부모님이 목회자와 관계가 악화되어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은 신앙인의 자녀들 중에 이런 정서적 의심을 가지지 쉽습니다. 의지적 의심은 본인이 의지적으로 믿으려 하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자발적으로 믿지 않으려고 의지를 발동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려고 순순히 선택하지 않는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객관적 증거, 역사적 및 과학적 사실, 양심과 상식에 근거를 둔 논리적 반박이나 증거를 제시해도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답니다. 믿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안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증거가 있어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모든 것을 의심부터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이런 의심을 극복하고 마지막까지 승리해야 합니다. 등산하다 옹달샘을 발견하고 물을 먹으려고 하는데 누군가 그 샘을 먹으면 죽는다고 하면 아무런 증거가 없어도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따지지 않고 잘 믿지만, 누군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에 가니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라고 하면 잘 믿지 않습니다. 단세포에서 인간이 되었다고 진화론은 믿으면서, 작은 힘의 씨앗이 빅뱅에 의해 거대한 우주가 만들어졌다고 빅뱅설은 믿으면서 처녀가 잉태하였다는 사실을 믿는 것은 미신이라고 말하면 얼마나 모순입니까? 물고기 두 마리가 싱싱한 지렁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한 물고기가 그것을 집어삼키려고 하자 다른 물고기가 타이릅니다. "저 지렁이는 낚싯바늘에 걸려 있는 거야. 저것을 잘못 삼키면 바늘에 걸려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신세가 되고 말아." 그러나 다른 물고기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누가 믿어? 아무도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잖아. 어디 사람들의 식탁까지 갔다 온 물고기가 있으면 증명해 봐. 네가 저 지렁이를 욕심내는 거지?" 그 물고기는 덥석 지렁이를 삼켰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얀 눈이 쌓인 산에 호랑이 발자국을 발견한 사람이 호랑이가 이 산에 살고 있다고 말하면 호랑이를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우기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겠습니까? 히브리서 11장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의 삼라만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압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압니다.(히11:3)"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이라는 주파수로 맞추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느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20)"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라고 성경은 누누이 강조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 믿음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기적으로 보여주었고,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믿음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복을 받으며, 믿음으로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사탄의 최대의 전략을 이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믿음을 흔들어 이 믿음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믿음만은 지키고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로마서 14장 23절에서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한 것은 다 죄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도 믿음으로, 기도도 믿음으로, 헌금도 믿음으로, 봉사도 믿음으로, 선교도 믿음으로, 가정생활도 믿음으로, 자녀교육도 믿음으로, 직장 생활도 믿음으로 해야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풍요로운 생활이 되면 될수록 믿음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믿음으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은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들 마지막 부분으로 선지자들의 믿음을 통해 교훈을 받으려고 합니다. 성경에 선지자들은 많이 나옵니다. 선지자(나비)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 계시를 선포하는 자들입니다. 성경 민수기 12장 6절에서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무엘 이전에도 아브라함(창20:7), 모세(신34:10), 드보라(삿4:4)도 선지자라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말씀이 말하는 선지자는 사무엘 이후의 선지자를 말합니다. 크게 두 부류이니다. 성경 책을 남긴 문서 선지자들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같은 대 선지자, 호세야,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같은 소선지자들입니다. 그리고 문서를 남기지 않고 활동한 구전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갓, 아히야, 스마야, 잇도, 하나니, 예후, 엘리야, 미가야, 야하시엘, 엘리사, 엘리에셀, 오뎃, 훌다, 우리야 등과 같은 선지자들입니다. 대부분 이들은 말씀을 전하다가 평생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승리한 선지자들의 믿음은 34절에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라는 말씀으로 요약해 주시고 있습니다. 선지자 중에 믿음으로 칼날을 피한 대표적인 선지자는 엘리야 선지자, 엘리사 선지자,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의 왕비 이세벨이 죽이려고 쫓았고(왕상 19:2) 엘리사는 여호람 왕이 죽이려고 쫓았으며(왕하 6:31) 예레미야는 여호야김 왕이 죽이려고 했습니다(렘 36:19, 26). 이런 위협 앞에서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 그들 모두를 살펴볼 수는 없고 그 중 구약에 가장 대표성을 가진 선지자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선지자 엘리야의 믿음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모세가 제사장의 대표이고, 다윗이 왕의 대표라면,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로 그 사역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나라는 부강했지만 여호와 신앙은 바닥이 난 세상에서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뜻을 가진 엘리야는 믿음으로 대단한 기적을 일으키는 선지자였습니다. 3년 6개월 비가 오지 않을 때 믿음으로 기도하여 비를 내리게 한 선지자이고,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 죽어가는 여인과 가족에게 믿음으로 기름과 먹을 것을 떨어지지 않게 하여 살렸고, 믿음으로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믿음을 통해 불로 심판한 선지자입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한 선지자입니다. 백성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백성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엘리야도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오늘날 문명이 발달되고 풍요로운 세상은 신학자의 믿음도 흔들어 내고 있고, 목회자도, 직분자도, 40년 이상 신앙생활 하신 성도님의 믿음도 마구 흔들어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 흔들리지 않고 인생 마지막까지 든든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1. 믿음 흔드는 사람 말에 민감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승리해야 합니다.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가 왜 믿음이 흔들렸습니까?
열왕기상 19장 2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죽음의 위기가 찾아 온 것입니다. 아합왕은 선지자의 말을 듣다가도 자기 집에 가서 아내 이세벨의 말을 듣고 흔들려 사신을 보내어 내일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북쪽 이스라엘 나라 아합왕을 움켜쥐고 흔들던 아합의 부인 이세벨이 그를 죽이려고한 것입니다. 아합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실권자는 이세벨이었습니다. 그 때 엘리야가 어떻게 합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도망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이세벨의 말을 듣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불같이 담대했던 믿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일에 하나님과 대화하며, 그분의 음성을 따라 살았던 사람입니다(17:2,5,8,10,14,16. 18:1,2). 그런데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도망간 것입니다. 어디로 도망을 갑니까? 유다 땅 브엘세바로 도망을 갑니다. 유다의 남단입니다. 엘리야가 머물렀던 이스르엘로부터 무려 142km 정도나 떨어진 곳입니다. 이세벨의 권세가 미치는 북이스라엘을 떠나 유다의 남쪽 국경 지대까지 멀리 피신해 버린 것입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어떻게 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홀로 하룻길 쯤 광야도 더 들어가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았습니다. 도망하여 엘리야는 무엇을 합니까? 4절에 보십시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라고 믿음 없는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조상보다 못하다고 자기 처지를 비관하며 낙담하고 자살 지향적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패배감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우울증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한때 갈멜산에서 불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던 기도의 영웅이, 용맹스럽게 왕의 수레보다 앞서 달리던 엘리야가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민망한 헛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다스리는 이런 불의한 세상, 이런 모순된 세상,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과를 인정해 주지 않는 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이 세상과 이별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믿음이 강한 것같지만 위기를 당하면 대부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킨 모세도 그랬습니다(민11:15).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도 그랬습니다(렘20:14-18), 고난의 종 욥도 그랬습니다(욥3). 단 순간에 12만명을 하나님께 돌아오게한 요나도 그랬습니다(욘4:3). 구약 시대 최대의 영적 부흥을 일으킨 주인공도 깊은 침체에 빠져 죽여달라고 했습니다.
왜 엘리야가 이렇게까지 믿음이 흔들리고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권력자 여인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지 않고 자신을 죽이려고 한 여인에게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전부로 생각하는 왜곡된 현실인식을 하게 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께 하시는 예수님을 보아야 하는데 잘 못된 것을 보며 집착하면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병이 들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전능하심을 믿지 않고 의사의 말에 더 집착하여 곧 죽겠구나 하고 침체에 빠져 버립니다. 현실 경기를 보고 내 사업 망하겠구나 하고 깊은 슬럼프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엘리야를 보고 어떻게 하십니까?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천사를 보내어 지친 육신을 만져 주십니다. 육체적 탈진과 정신적 우울증이 극에 달해 깊은 잠에 빠져있는 그를 깨우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실패와 좌절로 죽기를 원하는 그를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준비해 놓고 일어나 먹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음식을 먹지 않고 죽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일어나 먹고 다시 누웠습니다. 영육간에 지치고 지친 상태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시 어떻게 하십니까?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시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고 합니다. 왜 일어나 먹으라고 했습니까? 죽지 않고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살아서 갈 길을 가게 만들기 위해섭니다. 그 갈길이 어디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산 호렙입니다. 그는 그 음식물을 먹고 일어났습니다. 이 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말 듣고 믿음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말씀 듣고 담대히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9절 보세요. 여호와이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1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도, 15절 여호와께서 그이게 이르시되 계속 반복하는 것입니다. 사람말에 귀를 기울이며 믿음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귀울이며 든든한 승리하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믿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는 믿음입니다. 12절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세미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은 침묵이라고 보기에는 소리에 가깝고 소리라고 보기에는 침묵에 기깝다고 해석했습니다. 소리와 침묵의 중간이고 있음과 없음의 중간이고 들림과 안 들림의 중간이라는 특이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세미한 소리이기에 엘리야가 자칫하면 못들을 수도 있는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듣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은 그 화려한 기적에 비하면 보일까 말까하는 세미한 것입니다.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소리로 지나치는 듣지 못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설교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여기서 죽은 자가 살아나면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전하는 말씀은 귀 기울이지 않으면 단지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 불과합니다.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 있습니다. 현실에 너무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 언어일 수도 있습니다. 재미도 맛도 즐거움도 편함함도 주지 못하는 말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초라하게 보이고 말씀이 미미하게 보일지라도 세상의 모든 것을 때가 되면 살아집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영원합니다. 말씀대로 세상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 가지 기적, 강한 바람, 지진, 불의 시위는 여호와의 현현 때 수반되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출19:16-20).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고 세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미한 말씀 가운데 계신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믿음 흔들리지 않고 영적 전투에서 말씀의 검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떠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쉽게 믿음이 흔들립니다. 믿음 흔드는 사람 말에 민감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 우리는 홀로라고 믿음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 믿음으로 승리하여야 합니다.
왜 능력의 사람이었던 엘리야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10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나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홀로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홀로 있어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를 도와주고 이 힘든 시기에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반복합니다. 나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굴에 들어갑니다. 현실을 도피하고 은둔생활을 합니다. 이세벨과 바알선지자 아세라 선지자들이 주도하는 현실을 피하여 동굴로 숨어 들었갔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가도 목사님과 교회 주도적 일을 하는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까지 열심히 했던 모든 것을 그만 두고 싶은 것입니다. 그냥 도피해 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sns도 끊어 버리고, 전화도 꺼 버립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습니다. 그냥 화장실에 들어가 목을 맬 생각을 하고 옥상에 올라가 뛰어 내리면 평안할 것같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천사표 음식을 먹고 새 힘을 얻어 호렙산에 갔는데도 그런 것입니다. 요즈음 언어로 말하면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는데도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실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영적 침체에서 일어나는 것을 쉽지 않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어떻게 합니까? 9절 하반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합니다. 아무도 없는 굴에 자기 홀로 있었던 것같았는데, 자기 홀로 라고 생각하고 골방에 처박혀 죽을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에게는 없었던 것같은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현실을 도피하고 떠나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물어보십시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 여기 있느냐"입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물어보는 말이 아니다. 네게 있어야 할 곳이 이곳이냐는 말입니다. 한강 다리가, 술집이, 도박장이, 아무도 볼 수 없는 깊은 산속이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때 엘리야는 무슨 말을 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라고 말씀합니다. 자기만 특별히 하나님을 잘 섬겼고 자기 백성들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알아 주지 않고 자신을 이렇게 방치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다는 것입니까? 주의 언약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주의 제단을 헐었다는 것입니다. 주의 선지자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만 남았는데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세벨의 포악한 박해도 힘들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신과 변절이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갈멜산에서 능력이 나타날 때 분명히 엘리야를 환호하며 하나님은 여호와라고 외쳤지만, 힘 앞에서 엘리야를 배척하고 하나님을 떠나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세벨이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이 더 그를 침체하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의 믿음을 흔들어댄 것입니다. 이 말 속에는 하나님도 없고 사람도 없고 나 홀로 있다는 말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 흔들리고 우울증에 빠지고 침체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나 홀로 남아 일이 계획대로 잘되지 않기 때문에, 나 홀로 남아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비난을 받기 때문에, 나 홀로 남아 능력의 부족을 절감하기 때문에, 나 홀로 남아 부정적인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에 침체 되고 우울해 지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를 찾아 가서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나만 남았다고 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15절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며 광야을 통하여 다메섹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우울한 현장에, 침체의 동굴에 있지 말고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너를 통해 하고자 하는 사명의 땅으로 하나님과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에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어떻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안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남은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7천'이라는 수는 문자적 의미로 볼 수도 있지만 완전수인 7의 배수로서 미래의 이스라엘 역사를 담당하기에 충분한 숫자를 의미하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만 남은 것같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남겨 놓고 일을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이 역사는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갈멜산 전투에서도 아합과 이세벨의 박해에 대항하여 엘리야 홀로 남아 있었던 같았지만 그 때에도 오바다가 숨겨둔 100명의 선지학교 생도들이 있었습니다(18:4). 우리는 결코 홀로가 아닙니다. 모세가 홀로 인 것 같았지만 그에게 하나님의 아론을 준비시켜 주었습니다. 비록 형이지만 비서처럼 그의 일을 도와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늙어 감옥에 있을 때 홀로 인 것같았지만 디모데 같은 아들이 곁에 있었고 자신의 주치의인 누가가 같이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였습니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이 홀로인 것 같았지만 만군의 여호와가 다윗과 함께 하여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순간까지 결코 홀로가 아닙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우리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홀로라고 믿음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아직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광야를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행하여 하나님은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명기 31:6)" 이 말씀을 우리에게 유효한 말씀입니다.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평생 살면서 믿음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 든든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3. 원하는 성과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음 흔들리지 말고 말씀대로 사명 붙들고 든든한 신앙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왜 엘리야의 믿음이 흔들렸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이 형편을 보고’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성과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자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비일희하면 믿음이 파도를 치게 되어 있습니다. 갈멜산의 기적이 계속 일어났다면 승승장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기도하니까 3년 6개월 동안 가물었던 대지가 단비를 내리는 것같은 기적이 계속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영원한 대통령이 될 수 없습니다. 장관이 영원한 장관이 될 수 없고, 담임목사가 영원한 담임목사가 될 수 없고, 부자가 영원한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10대의 건강을 죽을 때까지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나 갈멜산의 기적만 바라보고 그것이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믿음 흔들리고 믿음이 침체 되어 버립니다. 이제 내 능력의 한계는 왔고 더 이상 미래를 좋아지지 않을 것으로 단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더 심해지면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게 났겠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한 때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무엇입니까? 지금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죽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배척입니다.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먼저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서라고 말씀합니다. 너가 이렇게 인생의 깊은 골짜기에 쳐 박혀 있다고 해서 내가 너를 폐기 처분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골방에 쳐 박혀 있지 말고,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 빠져 있지 말고 동굴에서 나와 서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서라는 것은 여호와의 종으로 하나님께 헌신과 충성과 복종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임재와 위엄을 체험하고서도 아직도 자신의 소명을 깨닫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사명을 붙들고 일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죽기 전에 해야 할 세 가지 사명을 말씀합니다. 세가지 해야 할 사명 첫째는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아람왕 벤하닷의 군대 장관을 아람 나라 왕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북 이스라엘을 징계하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에후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호와의 심판의 도구가 되어 악한 왕 아합의 가문을 멸할 왕입니다. 셋째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할 선지자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말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앞으로 일어날 일이지만 이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 가와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자들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사명의 땅으로 갑니다. 당장 내게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믿음 흔들리지 말고 사명 붙들고 끝까지 일어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신앙인도 살다보면 믿음 흔들려 깊은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침체에서 벗어나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약물을 먹고 운동을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근육이완이나 스트레칭, 유산소 운동, 달리기, 수영과 같은 운동 요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심호흡, 단전 호흡과 같은 명상 요법으로 완화할 수도 있습니다. 감사 일기 쓰기, 불안과 분노 등 감정을 다스리는 마음 훈련으로 잠재울 수도 있습니다. 호르몬을 조절하는 비타민, 미네랄 등을 섭취하는 음식 요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에 근거하여 사명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 처해 있다고 해도 사명을 다 이루기까지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사명을 붙들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격 갈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하고 침체된 부부도 어느 날 아이가 교통사고 당하면 아이 살리는 일이 중요하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것을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부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칵테일 파티장에서는 음악소리와 시끄러운 잡담들, 현란한 불빛, 여러 가지 냄새와 예쁘게 입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감각은 자극을 받지만 그 중 한 사람과 대화하면 다른 것은 들어오지 않고 그 사람의 목소리만 들리고 그 사람에게만 반응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망각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사명에 붙들리면 다른 요소는 스트레스 요인도, 우울증 요인도 침체 요인도, 믿음을 흔드는 요인도 될 수 없습니다. 불이익도, 불편도, 불쾌도, 불인정도, 가난도, 질병도, 미래의 불확실성도, 격변하는 정국도, 불안한 경제 상황도 일어나는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폐증 청소년 가수 크리스토퍼 더플 리가 있습니다. 그는 26주만에 500g도 못 미치는 미숙아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모의 집으로 입양되었다고 합니다. 앞을 볼 수 없고 자폐증을 앓은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고모는 이런 장애를 가지고 있는 조카를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며 정성을 다해 길렀답니다. 더플리는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말을 하지 못했답니다. 그래도 그에게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고모는 그런 조카가 음악에 흥미를 보이는 것을 알고 피아노를 가르쳤답니다. 더플리는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고 그렇게 말문을 텄답니다. 그는 지난해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앨범을 내고 미국의 교회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장 내가 원하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믿음 흔들리며 낙시하지 말고 사명을 붙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당장 돈이 없다고, 재능이 없다고, 아이큐가 높지 않다고, 기업 환경이 좋지 못하다고, 아름다운 외모가 없다고 불평과 원망을 하며 믿음 흔들리지 말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떠나고, 있는 재물이 사라지고, 건강마저 흔들린다고 하여도 영원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붙들고 끝까지 믿음으로 그 사명을 이루어 드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노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고, 감옥에 외로이 있을 때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4:17-18)"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 일어난 일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믿음 흔들리지 말고 사명 붙들고 든든한 믿음으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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