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22) 승리하는 믿음 3 삼손
히11:32-34
제가 한 사람을 소개할 텐데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평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본받아야 할 사람인지 본받지 말아야 할 사람인지, 믿음이 좋은 사람인지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 평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머니가 결혼했지만 오랜 세월동안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천사가 어머니에게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하며 아들은 낳으면 첫째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둘째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며, 셋째 머리를 자르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 아이는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될 것이고 이 아이는 40년동안 블레셋의 노예생활을 했는데 블레셋의 지배로부터 나라를 구원할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아버지에게 나타나서도 어머니에게 말한 내용을 동일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결혼할 때가 되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자기를 지배하는 불레셋 딸을 보고 오더니 그를 아내로 삼게 해달고 부모에게 말합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여자라고 반대를 합니다. 그러자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데 왜 반대하느냐고 우겨 결국 제멋대로 결혼합니다. 이런 아들 좋은 아들입니까? 나쁜 아들입니까?
결혼식에 참여했는데 딸의 아버지는 결혼식을 해 놓고 딸을 그의 친구에게 주어 버립니다. 그러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여우 삼백마리를 잡아 그 꼬리에 횃불을 달아 곡식밭으로 몰아 곡식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사적인 보복을 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건달 깡패처럼 행동합니다. 은사와 능력을 개인적인 보복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 사건으로 블레셋 사람이 화가 나 유다를 치러 오자 겁을 먹은 유다 사람 3천 명이 그를 결박하여 적들에게 내어 줍니다. 그러나 대단한 힘을 가진 그는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여 버렸습니다. 그가 한 행위가 올바른 것입니까? 그릇된 것입니까? 분노를 잘 참은 사람입니까?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살인한 사람입니까? 사적인 보복을 하는 것일까요? 공의를 위한 정의로운 행동일까요?
부모에게 자신은 하나님께 드려진 나실인이라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들었지만 결혼에 실패하니까 기생을 찾아가 바람을 피웠습니다. 영적으로 둔감해졌습니다. 본받을 좋은 사람입니까? 본받지 말아야 할 나쁜 사람입니까?
그 후 블레셋 마을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 여자는 불레셋 방백들로부터 은 천백 개를 약속받고 그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물어보게 합니다. 그는 세 번이나 속이면서 비밀을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조르니까 죽을 것같이 고민하다 결국 힘의 비밀을 알려 줍니다. 그는 나실인으로 날 때부터 머리를 밀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들릴라는 그가 잠들 때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을 밀어버렸고 그는 힘을 잃고 불레셋에게 잡혀 눈을 빼임당하였습니다. 놋줄에 매여 옥에서 맷돌을 돌리다 마지막에는 다곤 신전에서 구경거리가 되었는데 그 신전 두 기둥을 껴안고 무너뜨려 그를 구경하던 블레셋 사람 3천명과 함께 죽었습니다. 요물 같은 들릴라를 멀리하지 못하여 비참하게 죽었는데 그는 본받을 만한 사람입니까? 교훈을 받을 사람입니까?
이 사람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들어왔던 장사 삼손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그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은 실패한 영웅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한한 자원을 받았는데도 그것을 잘 사용하지 못한 바람둥이, 불량배, 건달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도 사명도, 거룩함도 잃어버리고 한 평생 성적 욕망과 복수의 열망으로 살아간 자신만 아는 나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 어린이와 학생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삼손처럼 살고 싶은 사람 있습니까? 부모님이 반대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겠습니까? 자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분을 참지 못하고 남의 밭에 불을 지르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까? 기생과 놀아난 바람둥이가 되고 싶습니까? 이방 여자를 사랑한다고 비밀을 다 폭로하고 비참하게 죽고 싶습니까? 절제하지 못했고, 규칙을 쉽게 깨뜨리고, 분노를 참지 못했으며, 대단한 힘이 주어졌는데 공공의 이익, 공동의 선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해서만 살고 싶습니까? 결국 사랑에 눈멀어 실제 눈도 빼앗기고 노예가 되어 적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적들과 함께 죽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누구도 그의 실패한 삶을 통해 교훈을 받고 싶지만 이런 삼손을 본받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삼손처럼 살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11장 32절은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라고 믿음의 영웅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 다윗과 사무엘 반열에 당당하게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33절에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34절에서는 전쟁에 용감하게 이방 사람들을 물리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약 3만여명의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 중에 히브리서 11장에는 16명의 믿음의 영웅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 삼손이 믿음의 영웅 16명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철저히 나실인의 규례를 지키지 않고, 이방 여인과 결혼하고 이방 여인과 바람피우다 실패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의 어떤 믿음을 보고 승리한 믿음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본받으라고 말씀할까요? 삼손을 통해 보여주는 승리하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1.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사기 13장 5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40년 동안 괴롭히는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삼손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이고 평생 사명으로 붙들어야 할 핵심 사명입니다.
삼손은 이 일을 어떻게 이루었습니까?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이 도덕적으로 당시 율법적으로 잘 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율법에 의하면 잘 못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려고 했습니까? 사사기 14장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블레셋의 딤나 여인과 결혼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이 딤나 여인과 결혼하도록 함으로써 블레셋 사람을 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율법으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13장 25절을 보세요.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삼손이 자기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였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그 일이 여호와로부터 나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삿13:24). 부모님은 삼손의 사명을 그렇게 이룰 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정욕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외모에 반해서 제멋대로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믿음으로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블레셋 여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당시의 율법과 당시의 제도와 당시의 상황으로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믿음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호세아 선지자에게는 창녀와도 결혼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삼손의 결혼으로 하나님은 어떻게 삼손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게 합니까? 15장 8절을 보십시오. 블레셋 사람을 치게 합니다. 이것은 단지 사적인 보복이 아닙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일로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를 치러 왔습니다. 이 때 유다 사람 3천명은 삼손을 잡아 그들에게 바칩니다. 삼손은 죽어도 괜찮고 자기들만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꼴을 당하면 사명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왜 홀로 고생을 하느냐며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때 삼손은 어떻게 합니까? 15장 15절을 보십시오.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적을 이기고 승리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룬 것입니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과의 결혼으로 인해 생긴 문제들을 통해 블레셋의 불법을 징벌하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삼손이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였는데 이 일로 인해 블레셋은 삼손이 살아 있는 한 이스라엘을 건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삼손의 마지막 죽음도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배신당했다고 사명을 포기한 것 아닙니다. 노예가 되었다고 억울하다고 사명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비참하게 노예 시각 장애인으로 죽은 것 같지만 믿음으로 사명을 이룬 것입니다. 16장 3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그곳에 블레셋 모든 방백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20년 동안 그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죽음으로 마지막까지 이룬 것입니다.
이와같은 삶을 산 삼손을 믿음의 영웅들의 전당에 올려놓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당시 1세기 핍박받은 성도들에게 믿음으로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라고 교훈하는 것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명따라 가고 사명을 이루어드리는 삶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서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마지막까지 이루어 드리는 것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입니다. 바울도 험난한 세월을 살았지만,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이루고 믿음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33살에 이 땅을 마감하면서 다 이루었다고 사명을 완수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삼손은 예수님의 모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태어날 때 천사가 하는 말씀이 꼭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태어날 때 주신 말씀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다곤 신전을 무너뜨린 것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악마의 세력을 물리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구원사역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삼손의 희생 사역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아말렉이라는 대적자를 진멸하라는 사명을 이루지 못해 실패했지만 삼손은 블레셋이라는 대적자를 20년 동안 물리쳐 승리하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에훗이 모압을 대적하고, 바락이 가나안을 대적하여 승리한 것처럼 삼손은 블레셋을 대적하여 믿음으로 승리하여 믿음의 영웅의 전당에 오른 것입니다. 사사 시대 때 다 회개하지만 삼손 시대 때는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런 시대 때 삼손이 마지막 죽음으로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모두가 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와 한통속이 되었을 때 삼손 혼자 계속해서 사명을 붙들고 그들과 싸워 믿음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각자 주어진 삶을 믿음으로 이루어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2. 믿음으로 승리한다는 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승리하게 하는 삼손의 힘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머리에서 왔을까요? 그것은 상징에 불과합니다. 결국 삼손의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삼손이 들릴라의 무릎은 베고 자다 머리털을 깎였습니다. 그리고 힘을 다 잃어 버리고 블레셋 군인들에게 붙잡혔습니다. 마치 머리털에 힘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사기 16장 20절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하나님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초능력을 발휘할 때는 어느 때이니까? 사사기 14장 6절을 보십시오. 사자를 염소 새끼처럼 다루는 것도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힘의 근원이 여호와의 영입니다. 블레셋 사람 30명을 이기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사사기 14장 1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힘하시매”입니다. 나귀 뼈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이기고 승리한 것도 그 비결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5장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이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입니다. 삼손은 유혹에 쉽게 넘어지는 연약한 질그릇과 같은 사람입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른 막대기일지라도 쓰시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면 얼마든지 난공불락의 전쟁에서도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승리하는 것이 믿음의 승리입니다. 비록 허물많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힘으로 우리는 삶의 전투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내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져야 결국 우리는 이 땅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삼손의 이름의 뜻은 태양입니다. 들릴라의 이름의 뜻은 밤입니다. 태양도 밤이면 잠들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떠나버리면 아무리 밝은 태양도 어둠에 포위되고 말지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면 아무리 어두운 밤일지라도 밝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여야 은사와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믿음으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 우리의 재능, 우리의 물질도 하나님께 쓰임받을 때 아름답고 승리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아무리 값진 음식도 유통기한이 지나면 쓰레기 처리됩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쓰시길 원하십니다.
3.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은 기도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삼손이 노예가 되어 적들의 노리갯감으로 그들의 신전에 붙들려 있을 때 삼손은 무엇을 합니까?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의 최후를 믿음으로 승리하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사기 16장 28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절망적 상황에서 얼마나 애절한 기도를 드렸겠습니까?
삼손이 기도가 두 번 나옵니다. 삼손이 나귀 뼈로 홀로 1천 명과 싸움에서 승리하고 목이 말라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그는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사시 15장 1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물을 내어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습니다.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부르짖는 자의 샘이 되어 주십니다. 기도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심한 경련으로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지 못한 제자들에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마가복음 9:29)”라고 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기도입니다. 삼손은 전쟁 중에 죽은 유일한 사사이지만 마지막까지 믿음의 기도로 승리한 사람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사명을 이룸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주어진 사명을 이루는 것이 승리하는 믿음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승리하는 믿음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도 기도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기도로 승리하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기도로 이루는 것이 승리하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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