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21) 승리하는 믿음(2) 바락의 믿음
히브리서 11:32-34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을 통하여 믿음을 묵상하고 있는데 32절에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할 때 사사인 기드온, 삼손, 입다를 소개합니다. 기드온 다음에 사사가 아닌 장군이 바락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때 사사는 드보라입니다. 그런데 드보라 대신 바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의 기록자는 바락을 통하여 당대나 오고 오는 시대에 교훈하길 원하는 믿음의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했을 것입니다. 바락의 믿음의 특징은 무엇이겠습니까? 33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는 믿음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이었겠습니까?
1.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다시 일어나는 믿음입니다.
바락에 대한 이야기는 사사기 4장과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락의 승리하는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가 사사기 4장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드보라가 바락에게 일어나라고 하니까 그는 일어나 만 명을 거리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락의 믿음입니다.
1) 당시 이스라엘은 일어나지 못하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몇 년 입니까? 4장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무려 20년 동안입니다. 누구에게 쓰러졌습니까? 야빈왕에게 쓰러졌습니다. 애굽의 왕을 바로라고 하는 것처럼 야빈도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가나안 왕의 공식 명칭입니다. 그는 여호수아 시대 때 전멸하다시피 격파당하였습니다(수11:1-15) 그런데 여호수아가 완전히 진멸하지 않아 잔존 세력들이 다시 일어나 이스라엘을 쳐 20년 동안 점령해 버렸습니다. 무엇에 의해 쓰러졌습니까? 철병거 900대입니다. 병거는 여호수아 때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수11:4,6). 그런데 철병거라는 현대식 무기를 개발하여 무장하고 쳐들어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꼼짝없이 압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애굽의 노예 살이에서 자유를 찾아 가나안 땅에 들어왔는데 다시 가나안 땅에서 노예살이를 한 것입니다. 우리도 쓰러질 수 있습니다. 넘어지지 않고 걷기를 배우는 아이는 없습니다. 아이는 혼자 걷기 위해 3000번은 넘어진다고 합니다.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자라는 나무는 없습니다.
2) 왜 쓰러졌습니까?
1절에서 그 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매”라고 말씀합니다. 왼손잡이 에훗이 모압 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해 80년 간 태평한 기간을 누리다 보니 또 범죄하였습니다. 사람이 잘 될 때 하나님을 멀리하기 쉽습니다. 건강할 때 범죄하기 쉽고, 잘 나갈 때 교만하기 쉽고, 부자로 살 때 신앙에서 멀어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이 신앙 성숙의 기회가 아니라 방종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3:8,12) 죄악은 재앙과 환난을 불러 온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지만 오랜 세월 태평을 누리다 보니 완전히 망각해 버린 것입니다. 풍요와 평강의 기간을 말씀을 가르치며 되새기는 신앙의 기간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기간으로 삼아 영적으로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갈5:13) 여호와의 목적에서 악을 행했다는 것은 가나안의 우상을 숭배했다는 것입니다. 3장 7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10:6).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이 신은 농경 신이고, 경제 신이고, 성의 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징계로 그들을 하솔의 손에 파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이방 족속을 통해 징계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2:3,20).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나 심판의 약속은 정확합니다. 소홀이 하거나 농담으로 여기면 안됩니다. 불순종의 댓가였습니다. 하나님께 반역한 댓가였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 대가였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죄를 짓고 참 자유를 잃어 버린 것처럼 이들이 가나안 땅에서 또다시 참 자유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처참했는가 5장 30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 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 놓은 채색 옷이리로다 곧 양쪽에 수 놓은 채색 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그들이 이스라엘 처녀들을 한 두 명씩 잡아갔다는 것입니다. 농산물을 빼앗기는 것도 그렇지만 전쟁으로 딸을 빼앗긴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죄의 뿌리를 뽑지 않으면 반드시 죄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를 발간해 화제를 모았던 세계적 경제학자 짐 콜린스는 2010년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How the Mighty Fall)>라는 책에서 위대한 기업이 어떻게 몰락하는지에 대해 추적했답니다. 로마의 1000년 제국도 해가 지지 않는다던 대영제국도, 휴대폰 시장을 좌지우지했던 노키아도, 필름시장의 대명사였던 코닥도, 전자 왕국을 구축했던 소니도 위대한 기업같았는데 망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학자들과 함께 6000년에 해당하는 기업의 흥망성쇠 역사 빅 데이터를 5년의 장시간에 걸쳐 철저하게 조사 분석하여 위대한 기업의 몰락과정을 '몰락의 5단계'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 단계는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라고 말합니다. 그는 "운과 기회는 성공의 중요한 요인인데, 자기 능력과 장점을 과대평가하면서 자만에 빠진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라고 합니다. 3단계는 자만심과 섣부른 욕심은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한다고 합니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다는 것입니다. 4단계는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라고 합니다. 마지막 5단계는 유명무실해지거나 자금력이 떨어져 생명이 끝나는 단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일어나는 기업이 있다고 합니다. 제록스나 IBM, HP, GE, 보잉 등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기업들은 몰락 직전에 새로운 선장을 교체하는 과감한 개혁으로 응전하여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앨런 케이는 자본 대비 부채율 900%에 달하는 제록스를 살려냈고, 루이스 거스너는 거대한 기업 IBM을, 잭 웰치는 유명한 에디슨이 세운 기업 GE를 침몰직전에서 과감한 구조조정을 거쳐 살려냈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 투수로 드보라라는 여사사를 세웁니다. 4절을 보십시오. 당시 여성은 사람의 수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매울 실망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강력한 압제자를 물리치려면 대단한 장군이 필요합니다. 애굽에서 출애굽 시킬 때도 그들이 부르짖을 때 80세 된 노인 모세를 보냈습니다. 그것도 대단한 무기가 아니라 지팡이 하나 들려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도 베들레헴이 어린 아이를 보냈습니다. 당시 여성은 독립적 인격체로 존경을 받지 못했고, 여성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때입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였습니다.
3) 드보라가 쓰러져가는 민족을 다시 세울 사람으로 누구를 세웁니까? 6,7절에 보십시오.
바락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첫째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1만명을 이끌고 다볼 산으로 가라고 합니다. 둘째는 적들은 네 손에 넘겨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락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하나님이 함께 하여 승리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믿는 것보다는 인간 드보라는 의지합니다.
그런데 다신 14절에서 드보라가 일어나라고 하니까 그 말씀 붙들고 일어나 다볼 산에서 내겨 갑니다. 이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철병거를 가진 정예군대이고 철병거와 싸우려면 산악지형이 훨씬 유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일어나 내려갑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승리하게 할 때 일어나라고 명령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죽어있는 소녀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40년 앉은 뱅이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실망한 엘리아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낙심한 다니엘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실패한 여호수아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쓰러지는 믿음으로 살지 말고 일어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나이들면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더 일어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의 일을 하다가 영적으로 지쳐 있습니까 기도하는데, 전도하는데, 봉사하는데, 선교하는데, 예배드리는데 오랜 코로나로 지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로뎀나무 아래 지쳐서 쓰러져 있는 엘리야에게 천사를 시켜서 떡과 물을 주시며 "일어나 먹으라" 고 하셨습니다((왕상19:5절) 병으로 쓰러져 일어날 수 없는 상황입니까? 심리적인 병입니까? 육체적인 병입니까? 마음의 병입니까? 영혼의 병입니까?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였습니다.(요한복음 5:8)
능력 부족으로 일어서지 못하고 지쳐 쓰러져 있습니까? 은과 금이 없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다가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그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포합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고 하였습니다.(사도행전 3:6절) 그 때 평생 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못한 그가 일어났 습니다. 앉은뱅이와 같은 신앙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구걸하는 신앙에서 주는 신앙으로 일어 서시기 바랍니다. 경제도 일어나고, 가정도 일어나고, 실력도 일어나고, 신앙도 일어나고, 사업도 일어나고, 자녀도 일어나는 승리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존 맥스웰은 인생의 전환점에서 꼭 가져가야 할 한 가지가 '다시 일어서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한 번에 완벽한 성공을 거두기란 불가능하므로 그럴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기 책 <다시 일어서는 힘>에서 그 힘을 '자각, 능력,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자각+능력+선택=역량"이라는 공식을 말합니다. 다시 일어서는 힘 첫째가 자각이라고 말합니다. 내 안의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는 힘을 자각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역량이 정해져 있다고 단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가능성을 제한하는 남들이 끼워 놓은 마개, 스스로 끼워 놓은 마개를 뽑아내면 성장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힘 둘째가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내 안의 가능성을 100퍼센트 끌어내는 힘을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역량은 인생을 쌓아 올리는 데 튼튼한 토대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자신에게 다양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선택 안 중에서 제일 좋은 답을 찾고, 탁월하게 잘하지 못하는 것 대신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하며, 성공하고 싶다면 미래를 생각하되 오늘 행동하라고 말합니다. 다시 일어서는 힘 셋째가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행동의 힘을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선택을 실천하고 사랑하게 되면 그만큼 역량이 커지고, 그만큼 더 큰 성공을 이룰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믿고 나가라고 말합니다.
사지가 없는 아이로 태어난 닉 부치치(Nick Vujicic)의 일어날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이었습니다. 다시 일어난 자신의 삶을 알리기 위해 여러 학교에 전화를 걸었지만 52번이나 거절당했답니다. 그런데 53번째 학교에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가보니 청중이라고는 학생 열 명이 전부인 데다가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에 불과했답니다. 지금은 1년에 3만 5,000건의 강연 요청이 쇄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이사야 60:1)"
2.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신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드보라가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을 믿고 내려갔다는 말입니다. 믿음이란 나의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드보라의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모험을 하는 것입니다. 불가능에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5장 9절을 보십시오. 위험을 무릅쓰고 즐거이 헌신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죽음을 무릎쓰로 그 전쟁터에서 희생을 각오하고 헌신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5장 18절을 보십시오.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에브라임, 베냐민, 스불론, 잇사갈 사람들은 저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참전하였습니다(14-15). 그러나 15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르우벤 지파는 전쟁에 가담하지 않기로 큰 결심을 합니다. 위대한 결의라고 가담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을 비꼬는 말입니다. 전쟁의 칼과 창 대신에 그들은 목자의 피리를 잡았습니다(16) 시냇가에서 큰 결심을 합니다. 형제들은 생명을 걸고 싸우는데 그들은 생업에만 종사합니다. 길르앗은 어떠했습니까? 5장 17절을 보십시오. 협조하지 않습니다. 단은 해상 무역에 몰두하고, 아셀은 지중해에서 고기잡이 생업에만 몰두하며 협조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어떻게 되든, 회사는 어떻게 되든, 교회는 어떻게 되든, 가정은 어떻게 되는 자기만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보고 불평하거나 망설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보며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이들과 싸우면 결국 싸워야 할 적에게 결국 지고 맙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사람이 승리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게 해 주셔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세상은 우리가 좋은 일 한다고 100%로 모든 사람이 지지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지지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과 무관심한 사람은 있습니다. 그런데 지지자가 많을수록 좋은데 좋은 일 할 때 지지자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편리, 기쁨에 맞지 않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반대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기와 관계가 없으면 무관심합니다.
요나단처럼 비록 칼 한 자로 자신을 따르는 충성스러운 부하 한 명 있어도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면 적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같이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바락의 믿음입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시스라는 병거에 내려 걸어 도망갑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려 전몰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5장 4절을 보십시오. 폭우가 내린 것입니다. 그러니 강변에서 철 병거가 진흙에 파묻혀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5장 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친히 강림한 싸움입니다. 5장 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물을 쏟아 부어 표류시켜 버린 것입니다. 철병거를 쓸모없는 무기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무기가 아니라 오히려 짐 덩어리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결국 누가 승리하게 해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승리케 해주신 것입니다. 요셉이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승리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여 승리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창 39:23)" 바울이 죽음 앞에 이르렀을 때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려버렸고 그레스게도 디도도 다 제 갈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와 함께 하였습니다. 바울은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후 4:17-18)"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종교 개혁 당시 많은 적들 가운데서 홀로 고전분투하던 마틴 루터가 하루는 극히 낙심한 모습으로 기운을 잃고 집에 돌아왔답니다. 기운을 잃고 낙심해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본 그의 아내 캐더린은 얼른 안방에 들어가 검은 상복을 입고 나와 남편을 맞이했답니다. 뜻밖에 상복을 입고 나오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루터는 깜짝 놀라 아내에게 물었답니다. "여보, 이게 웬일이오? 상복을 입고 있다니, 도대체 누가 죽었단 말이오?" 머리를 수그린 채 이 질문을 받은 캐더린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남편에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으셨단 말입니다. "라고 대답했답니다. 이 말을 들은 루터는 더욱 깜짝 놀란 기색으로, 흥분한 어조로 반문하였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떠나시다니, 그런 법이 어디 있소! 하나님이 어떻게 죽으실 수 있단 말이오 ? " 그때 캐더린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남편에게 되물었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당신이 그렇게까지 용기를 잃고 낙심할 수 있단 말입니까 ? " 루터는 힘을 얻어 종교개혁의 대업을 잘 완수했다고 합니다. 384장은 루터가 지은 찬송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384장 1절)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384장 2절)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384장 3절)”
물질이 없어 살기가 힘겹습니까? 능력이 없어 일에 지쳐 있습니까? 고아처럼 버려져 혼자라고 생각하며 고독해 하십니까? 취업이 안되고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끝없는 패배로 패배의식 속에 절망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할 것이니라." 이 시간 한번 마음 속 깊이 외쳐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다" 외쳐 보시기 바랍니다.
5장 3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우리 성도님들도 이런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삶의 현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신앙의 승리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낙엽도 바람 타면 큰 강을 건너갈 수 있습니다.
다윗이 승리한 것은 다윗의 힘이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힘으로 골리앗을 이긴 것입니다. 바울이 승리한 것은 바울의 힘이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바울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상담하면서 각사람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것은 자기의 힘이 아니라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하나님이 승리케 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의 5확신을 공부했을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 기도 응답의 확신, 사죄의 확신, 인도의 확신, 승리의 확신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지금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을 확신하는 삶의 현장에서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3.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드보라가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나가신다고 말했는데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다볼 산에서 내려 갔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드보라의 부름을 받을 때 그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드보라와 함께 가야 전쟁에 참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 드보라가 무슨 말을 합니까? 4장 9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하나님이 앞서가셔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바로 11절에 누구를 소개합니까?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을 소개합니다. 전혀 예기지 않은 이름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전쟁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께서 앞서가셔서 예비해 놓은 사람입니다. 이 전쟁을 결정적으로 승리하게 해 주실 사람을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에 내려가라고 말씀할 때 두려워 가지 않겠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아론을 준비해 놓았고 너를 죽이려고 찾는 자들이 다 죽었다고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앞서 가서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자기만 혼자 남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할 때 하나님이 남겨 놓은 하나님의 사람 7000명이 있다고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앞서 가셔서 일하니 너는 미래를 스스로 판단하고 예측하면서 망설이지 말고 하나님이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믿고 담대하게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준비된 사람,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게 하셔 최종적인 승리를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4장 17절을 보십시오. 시스라가 홀로 걸어 도망가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 아내가 어떻게 합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적장을 죽입니다. 고대 전쟁은 적장을 죽여야 진정한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적장을 죽이기 위해 바락이 추격하였습니다. 22절을 보시시오. 여인이 이미 죽인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앞서가시는 하나님이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 앞서가시면서 승리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만 따라가면 결국 평생 승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승리하는 믿음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을 옆에 끼고 가려고 하고 하나님을 뒤에 끌로 다니려고 하고, 자신이 하나님을 이용하여 무엇인가 하려고 하니까 끝까지 승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 마지막까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믿음으로 승리하여야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미래에 승리할 것을 확실하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신 31:3)" 이 말씀이 저와 우리 성도님에게 주시는 말씀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미래의 불확실 성 앞에서 하나님은 너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용기의 근거를 자신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5장 2절에서는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라고 했습니다. 너무 미래를 불안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안할수록 더욱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더 믿어야 합니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이제 하루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나 이제 주를 따라 가려네 나 이제 주를 따라 가려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앞세우고 뒤에서 따라오시며 뒤치다꺼리는 분이 아니시고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하나님이 앞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주권적으로 인도하십니다. 시스라를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지시하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는 분별하도록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 가운데 성령님을 통해 인도합니다. 다윗이 불레셋과 싸울 때도 사무엘하 5장 24절에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넘겨주시는 시스라는 무엇입니까? 새로운 사업입니까? 진학입니까? 성공입니까? 노후입니까? 질병입니까? 결혼입니까? 잉태입니까? 직장입니까? 우리 하나님이 앞서 가시며 승리해 주실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미래의 불확실 성 앞에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앞서 인도하시는 믿음마저 잃어버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라는 책을 쓴 존 파피가 있습니다. 그는 양팔이 없는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매일 수많은 절망에 부딪쳤답니다. 옷입고 용변을 보는 사소한 일도 그에게는 절망적인 것이었답니다. 그러나 그는 상실의 아픔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을 붙들었답니다. 앞서가신 하나님을 따르기로 믿었답니다. 그는 결국 우등생으로 공부하였고 박사학위를 받아 회사를 경영하는 전문 강사가 되었답니다.
4장 2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인생 살면서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는 신앙 길에 실패하게 하는 세력들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인생의 마지막 날 승리의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가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쓰러진 삶에서 다시 일어나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다시 일어나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신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앞서가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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