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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분량이 행복의 분량입니다.(시편30:1-1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3725 추천수:31 112.168.96.71
2014-11-16 15:18:26

 

 

몇 년 전 우리가 만만만 생명운동을 통해 후원하여 학교를 세우고 기숙을 시키면서 가르치는 방글레데시 아이들이 우리 교회에 방문하였습니다. 그 때 그들은 참 행복한 모습으로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경배합니다 아버지 채워주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채워주소서 당신의 사랑으로...”라는 찬양을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몇 차례 아이들을 만났는데 가난한 나라, 가난한 집 아이들이지만 어디를 가나 놀라고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 전국 18세 미만 아동을 키우는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3년 한국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아동 청소년들의 ‘삶의 만족도’가 OECD 30개 국가 가운데 가장 낮고, 결핍지수는 가장 높아 최하위였습니다. 그것도 29위 국가와 월등한 차이를 보이는 압도적 1위였습니다. 자살률 1위에서 ‘아동이 불행한 나라’ 1위라는 지표를 하나 더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6년째 OECD 국가 중에서 유니세프가 조사한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교생들이 돈을 행복조건 1위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행복할까요? 그러나 부자가 되면 더욱 부자가 되기 위해 돈에 구속이 되어 행복도가 올라가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행복계량학파는 돈과 행복이 꼭 비례하진 않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선도자 격인 에드 디너 교수는 2004년 포브스가 뽑은 미국 400대 부호와 인터뷰를 했답니다. 응답을 7점 만점으로 계량화한 결과, 부호들의 행복지수는 5.8로 얼어붙은 땅 그린란드의 이누이트 족이나 케냐 사막의 유목 민족 마사이 족과 같은 수준이었답니다. "높은 소득이 좋은 기분을 들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넓게 퍼져 있으나 이는 착각일 뿐"이라면서 "평균 이상의 소득을 가진 사람들은 더 긴장돼 있고 특별히 즐길 만한 행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 일상사에서 일반인들보다 더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1958년부터 1987년까지 소득이 5배 가량 늘었지만 행복의 크기는 소득증가와 상관이 없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행복은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아무리 외부의 조건이 충족된다하여도 부족합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습니다. 빌헤름 웰러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했듯이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하기 보다는 감사에 정비례합니다.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 집니다.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감사는 행복의 씨앗입니다. 결국 행복은 감사한 사람에게 흘러 들어갑니다. 물질도, 건강도, 명예도, 인정도 감사한 사람에게 흘러들어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감사 지수가 아주 높은 사람 두 명을 꼽으라면 신약에는 바울입니다. 구구절절 감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구약에서는 다윗입니다. 시편에 보면 얼마나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았는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은 평생 감사하며 행복하게 산 다윗이 노년에 자신의 생을 뒤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어떻게 시작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이라고 시작합니다. 여기서 주를 높인다(룸)는 것은 감사의 시편에 자주 나타나는 표현으로(118:28; 145:1)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는 말입니다. 문법적으로는 미완료형으로 감사와 찬양을 일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중간부분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성도들에게 찬송과 감사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라”고 끝을 맺습니다. 이기서 사용하는 찬송과 감사도 문법적으로는 미완료형으로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입니다. 감사지수가 높은 다윗의 인생을 짧은 시이지만 이 시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감사 지수가 높은 다윗이 지난 자신의 생을 회고하면서 감사하고 감사하라고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감사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감사지수를 높여 행복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감사지수를 높이려면 고통 중에서도 찬양과 감사를 해야 합니다.

다윗의 생을 돌아보면 심각한 고통 가운데 처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장인인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 도망자 신세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살기 위해 적국에 도망가서 미친체해야만 했습니다. 노년에 아들이 반역하여 왕궁에서 도망가야만 했습니다. 질병으로 심각한 고통을 해야만 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심각한 고통이 있는데도 다윗은 자신의 생을 회고하며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바로 그 뒤에 나오는 “키”라는 단어를 우리말에서는 번역을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이라는 말입니다. 감사와 찬양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나를 끌어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끌어내다는 것은 우물에서 끌어내는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물에 빠졌는데 하나님이 끌어내었다는 말입니다. 3절에 더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스올”에서 끌어내었다는 말입니다. 스올은 죽음의 세계, 무덤을 말합니다. 즉 다윗이 땅 속에 묻히기 직전까지 갈 지경에 있었는데 하나님이 살려 주어서 무덤에 내려가지 않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위기까지 간 것이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질병일 수 있습니다. 인구 조사하다 백성들이 전염병에 걸렸는데 그 때 7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아마 다윗도 그 때 질병에 걸렸을 지도 모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죽을 병에 걸렸던 것을 봅니다. 아니면 사울이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죽음의 위기까지 간 것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위기 가운데 무엇을 하였습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치열하게 기도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해주었다는 말입니까? 고쳐주었다는 말입니다. 병을 치료해 주었고, 회복시켜 주었고 좋은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1절 하반절을 다시 보십시오.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망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다윗이 죽기를 바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다윗이 비참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기뻐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찬송하며 하나님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찬양하고 감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5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기도 앞에 “키”라는 말이 여기서도 우리말에는 번역이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라는 말로 이유를 설명합니다. 인간들이 잘못할 때 징계로 고통을 주는 노여움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은 평생이기 때문입니다. 저녁에 울음이 깃들 지라고 아침에는 기쁨을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녁이 지나면 반드시 다음날 아침이 오듯이 성도에게 고난은 과정으로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감사지수를 높여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고통을 당할 때, 어려움을 당할 때, 내가 바라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생각을 하고 감사하는 감정을 가지고 감사하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자녀가 시험에 합격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업이 잘 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이 잘 안될 때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예쁘게 보일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처럼 보일 때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되어진 일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되어진 일을 보며 불행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감사는 선택이고 해석입니다. 감사로 선택이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해석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면 불행보다는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장정만 5천명, 아이들과 여자까지 합하면 적어도 2만 여명이 굶주린 때입니다. 겨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입니다. 예수님은 불평거리로 삼은 5천명을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 거리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보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때 불평하지 않고 감사 기도를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12 바구니를 거두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최악을 상황을 맞이하였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것입니다. 그 때 죽은 나사로의 무덤에서도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감사합니다. 실패의 현장에서도 감사합니다(마 11:20-26). 고라신과 벳세다야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이 믿지 않았을 때 절망하고 좌절하며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없다고 자꾸 없는 것 보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면 감사 지수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만큼 불행해집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집에 전기가 들어온다면, 세상에 전기의 혜택 없이 사는 2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집에 식수 시설이 되어 있다면, 그렇지 못해 아무 물이나 마시는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하루 천원 이상으로 생활하고 있다면, 천 원 미만으로 살고 있는 12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하루 한 끼라도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8억 명의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당신의 몸이 건강하다면, 당신은 이번 주를 넘기지 못할 백만 명의 환자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한 번도 전쟁의 위험이나 수용소의 외로움, 고문의 고통, 굶주림의 쓰라림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5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만약 당신의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당신의 몸에 옷이 걸쳐져 있다거나,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의 75%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은행에, 그리고 지갑에 약간의 돈이 있고, 어딘가 작은 접시에 동전을 모아 놓았다면, 이 세상의 8% 안에 드는 감사할 이유가 있는 부자다. 두 부모가 아직 살아 계시고 지금 혼자가 아니라면, 보기 드물게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글을 읽을 줄 안다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20억 명 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감사한다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다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 것이라고 우기면서 불평 불만하지 마시고 그것 하나님께 다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이 다 감사 거리입니다. 자꾸 비교하면서 불평하지 말고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 앞으로 더 좋은 것을 주실 하나님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오히려 하루에 세 번씩 무릎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죽었습니까? 승승장구하였습니다.

실락원의 작가 밀턴은 40세 한 참 일할 만한 나이에 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어떤 상황에서도 목자가 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소경이 되었을 때 이렇게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육의 눈은 어두워 보지 못하지만 그 대신 영의 눈을 뜨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감사를 아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1914년 발명왕 에디슨의 실험실에 화재가 났습니다.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실험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1914년도의 돈으로 2백만 불 상당의 실험실 기구가 몽땅 불에 탔습니다. 평생 연구한 기록들이 몽땅 불에 탄 것입니다. 이때 에디슨의 나이는 67세 였다고 합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에디슨이 아들 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를 모셔와라." 자신의 부인이 보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과오를 다 태워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하나님께 감사하자" 오히려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세계인의 존경을 받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은 무려 27년 간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출옥할 때 7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취재를 하러 나온 한 기자가 물었답니다. "다른 사람들은 5년만 감옥살이를 해도 건강을 잃어서 나오는데, 어떻게 27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서도 이렇게 건강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답니다. "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며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며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고난 가운데 감사하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의 기준점은 감사이고, 성공과 실패의 기준점도 감사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어려울 때 감사함으로 감사지수를 높이면 인생은 더욱 행복해질 것입니다.

 

2. 우리는 감사지수를 높이려면 형통할 때 더욱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다윗은 형통할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형통할 때 더욱 겸손하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하는데 다윗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고 교만해진 것입니다. 자신의 나라라 승승장구하고, 자신의 위치가 계속 지속 될 것이고, 평화와 번영이 지속될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자만심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누가 세워주었다는 것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주님의 은혜로 자신을 산같이 굳게 세워주었다는 것입니다. 목동으로 살아야 할 그를 하나님의 은혜로 중앙 무대에 세워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가려 버리면 근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자신이 그렇게 교만해 졌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살만하니까 자신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습니다.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이웃집 여인이 목욕을 하는 것을 보다가 그 여인을 불러 간음하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남편까지 전쟁터에서 죽게 만듭니다. 사람이 돈 있고 시간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올챙이 때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번성하자 사무엘하 24장에 보면 다윗은 인구를 조사합니다. 사람 수를 세어 보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다윗 왕국의 모든 성취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요 도움이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되어진 일이 자기 자신의 노력과 기지에 의해 된 것인 양 착각하고 백성의 숫자를 세어봄으로써 자기의 자부심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 없이도 지속적으로 번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다윗에게 진노하여 예루살렘 땅에 전염병이 만연하게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 다윗은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사람이 조금 사회적 지위를 얻고, 부를 축적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면 감사를 잃어버립니다. 그러면 그 주어진 것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주어진 것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차라리 권력이 없고, 돈이 없고, 건강하지 못했다면 바람은 안 피웠을 텐데 어떤 것이 주어지면 감사의 조건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범죄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는 물고기 도마에 먼저 오른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8:12)"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로(출5:2), 웃시야(대하26:16), 히스기야(대하32:25), 하만(에3:5), 느브갓네살(단4:30), 벨사살(단5:23), 헤롯 등은 많은 것 받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가문과 지위(마13:55), 재물(눅9:58), 존경(요1:46), 풍체(사53:2), 신앙 경륜, 평판(눅7:34), 학식(요7:15), 성공(사53:3), 능력(요5:30) 등이 감사의 도구가 될 때 감사지수는 높아지고 행복지수는 더 높아지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주어지면 불평거리로 삼아 불행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어진 것으로 교만하거나 불평함으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범죄거리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자매가 부자집에 시집을 갔답니다. 남편도 직장 생활을 잘하고 자신을 끔찍이 사랑해 주었답니다. 시어머니가 시장에 다니라고 승용차도 사주었답니다. 아이들도 잘 자라 주었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가끔 잔 소리를 했답니다. 동창회를 나가면 친구들은 시어머니 없는 집에 가서 행복하게 사는데 자신만 시집을 잘 못 와서 시어머니를 잘못 만나 고생만 지긋지긋하게 하고 있다고 불명과 원망을 했답니다. 남편은 효심이 강해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섬겼답니다. 그런 남편을 보고 감사하기는커녕 불평과 원망을 하고 점점 보시 싫어졌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불평과 원망으로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밖에 나갔는데 이상한 풍경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상복을 입은 여인이 맹견을 데리고 두 개의 관을 앞세워 가고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를 100명 쯤 되는 여자들이 줄줄이 따라 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상복입은 여인에게 물었답니다. "누가 돌아 가셨나요?" "제 남편이에요." " 무슨 일로요 ? " " 우리 개, 바로 이놈이 물어 뜯었어요 ." " 두 번 째 관에는요 ? " " 우리 시어머니에요. 남편을 구하려다 그만 같이 물려 죽었지요." 이러자 이 주부가 "이 개를 빌려주실 수 있나요 ?"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상주가 하는 말이 "줄을 서세요!"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100여명이 그 개 빌려가려고 줄을 서 따라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일 지라도 부모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셨습니다. 감사하면 행복해 집니다.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의 직장도, 가족도, 교회도, 나라도, 우리의 삶의 조건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하면 행복해 집니다. 특히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은혜로 죄를 사해주셨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었습니다. 건강을 가지고 태어난 것, 좋은 머리를 가지고 사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울은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늘 감사했습니다.

다윗도 가진 것으로 은혜를 모르고 교만하다 넘어진 것으로 끝났다면 그의 인생은 불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이 때 다윗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고통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것입니다(6) 참회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기도할 때 고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24장 17절을 보면 인구 조사로 어려움을 당했을 때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라고 회개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9절을 보십시오. 여기서 피는 생명을 말합니다.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덤에 들어가 썩어지면 주님을 찬송할 수도 주님의 진리도 선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그렇게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면 어떻게 됩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됩니다. 베옷을 벗기고 잔치 옷을 입힙니다. 우리가 잘 될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인줄 알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만지수는 떨어지고 감사지수는 올라가 행복지수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잘 될 때 감사지수를 높여야 더욱 행복지수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3. 우리는 감사지수를 높이려면 어떤 경우도 찬양과 감사로 반응을 해야 합니다.

다윗은 이 시를 마감하면서 어떤 다짐을 합니까?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죽어서 아무 말고 하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고 오히려 살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자신의 비참한 삶을 영광스럽게 변모시킨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으로 찬양과 감사를 잠잠하지 않고 평생토록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소원이 성취되지 않을 때 찬양하고 감사할 수 없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성전 낙성가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데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로 끝나버렸습니다. 부하가 언약궤를 만져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다윗은 커다란 낙심과 슬픔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찬양과 감사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인간관계로 배신을 당하며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 때 찬양과 감사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병들었을 때 감사하기 힘듭니다. 시편에 보면 다윗은 심각한 병이 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지난 날을 생각해 보니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을 영광의 자리에 오르게 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을 하나님의 아들로 다윗되게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오직 주 만을 찬양하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5절 11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고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감사로 해석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찬양과 감사는 해석이고 우리의 마음의 표현입니다. 우리 앞길에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감사로 해석하여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 때 감사 지수는 높아지고 감사 지수가 높아진 만큼 인생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 성향(gratitude diposition)이 높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 성향이 높은 사람은 일상에서 더 강한 수준으로, 더 자주 감사를 경험하며, 다양한 대상에 대해 감사를 경험하고, 한 가지 사건에 대해 더 많은 대상에게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초기 아동기에 발달하기 시작하지만 발달적 관점에서 보면 감사반응이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것은 아동기 중기부터라고 합니다. 6세 이하의 아동들은 10-16세 아동에 비해 어른이 사탕을 준 것에 고마움을 현저하게 덜 표현한다고 합니다. 사탕을 준 어른에게 6세 이하의 아동들은 21%만이 감사를 표시했지만, 10세 이상의 아동들은 대부분(80%)감사를 표현했다고 합니다. Grief와 Gleason(1980)은 2-5세 아동 중에서 감사를 표현한 아동의 86%가 부모의 격려가 있었다고 합니다. 격려가 없는 경우 감사의 표현은 최소 빈도로 줄었는데, 단지 7%의 아동만이 자발적으로 감사를 표현하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아이들의 감사는 성인의 격려가 없으면 감사의 자발적인 표현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Froh& Bono). 감사 표현이 저절로 키워지기보다 부모의 격려 등 교육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행복한 사람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는 매사 아이들에게 언어적 감사로 감사를 말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환감사로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답례로 물건을 주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결감사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게 교육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정론적 감사로 소망이 실현된 것에 대하여, 개인이 성장을 진전시키는 행동으로 보답하는 경향성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축구팀에 들어가고 싶은 아이가 만일 그 목적이 이뤄진다면 집에서 항상 반복연습을 하고 훈련과 경기에 일찍 나감으로써 감사를 표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고 감정 행동을 하게 하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켜야 평생 감사지수 높은 아이로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면 감사지수는 높아질 것이고 감사 지수가 높은 만큼 행복 지수도 역시 높아질 것입니다 하버드대학에서 행복학을 가르치는 탈 벤 샤하르는 '하버드대 52주 행복 연습'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우리 교회도 구입하여 1층에 비치해 놓았습니다. 그가 첫 번째로 가르쳐 주는 것이 "감사하는 마음 갖기"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감사하는 법을 배웠을 때, 기회, 사람들과의 관계, 심지어 부까지도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책에서 심리학자 로버트 에먼스와 마이클 맥컬로의 실험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실험 그룹을 세 그룹으로 나눈 뒤, 그들에게 세 가지 말과 행동에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기분 나쁜 일, 둘째는 감사할 일, 셋째는 일상적인 말과 일에 집중하게 했습니다. 일주일간의 짧은 실험이었지만, 두 번째 그룹이 가장 행복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뒤 두 교수는 감사할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1년간 심리 조사를 벌였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하루에 1-2분 정도 투자해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한 사람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했을 뿐 아니라 행복한 삶과 긍정적인 감정을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렸답니다.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은 더 큰 행복을 느끼고 결단력 있게 행동할 줄 알며, 활력이 넘치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답니다. 또한 친절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도움이 되고자 하는 태도를 보였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잠을 더 잘 자고 운동을 많이 하며, 질병도 잘 걸리지 않았답니다. "운명을 바꾸는 기술 감사"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감사하면 병에 대한 면역력도 높고, 같은 스트레스의 상황에서도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나며, 그러지 않는 사람에 비해 평균 10년 이상 장수한다고 합니다. 감사할 거리를 적극적으로 찾으라고 합니다. 스스로에게 감사하라고 합니다. 감사 일기를 쓰라고 말합니다. 매일 적어도 다섯 가지 정도씩 감사할 일을 적어도 인생의 행복과 만족도는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감사하면 인생이 비상합니다. 감사는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사회적인 성공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강화하고 변화나 위기에 대한 대처할 능력을 높여줍니다. 감사는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고, 면역력을 높여주며, 가정이나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향상시켜 줍니다. 인간관계의 갈등을 해소시켜 주고, 직업 환경을 향상시켜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뇌 속에 시냅스라는 회로가 있습니다. 비가 오면 마당이 패이게 되고 계속 흐르다 보면 골이 나고 그것이 물길이 되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로 반응하는 시냅스가 생기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체질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체질화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감사의 체질화가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비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남편 잃은 목사의 아내는 좌절하지 않고 늘 감사하며 아들을 공부시켰습니다. 어머니로부터 감사를 배우면 자랐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 고생하는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답니다. 열심히 공부한 아들은 명문 프린스턴대학에 합격하였답니다. 그리고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답니다. 졸업식장에서 수석 졸업자에게 주는 금메달을 받을 때, 아들은 어머니를 연단으로 불렀답니다. 아들은 연단에 올라온 어머니에게 메달을 걸어드렸답니다. "이 메달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7년 동안 내게 감사를 가르친 어머니의 것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이 사람이 바로 1920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미국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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