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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20) 승리하는 믿음1 기드온(히11:32-34)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486 추천수:6 220.120.123.244
2022-10-16 14:14:58

믿음(20) 승리하는 믿음1 기드온(히11:32-34)

 

요즘 모든 분야를 컴퓨터가 처리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준비하는데도 컴퓨터로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저처럼 그 설교문을 아이패드에 저장해 놓고 그것을 가지고 설교하는 목사님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결혼 중매까지 컴퓨터가 대행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 노총각이 중매 사이트에 접속하고, 다음과 같은 배우자 조건을 입력시켰답니다.

“첫째 : 키가 커야 하고, 둘째 : 몸이 날씬해야 하며, 셋째 : 숫처녀야 하고, 넷째 : 미인이어야 하며, 다섯째 : 가문이 좋아야 하고, 여섯째 : 학벌도 좋아야 하며, 일곱째 : 나이가 젊어야 하고, 끝으로 : 재산도 많아야 한다.”라고 입력했답니다. 그러자 컴퓨터에서 다음과 같은 설문을 보내며, 해당란의 각 문항에 솔직히 답하라고 했답니다.

“첫째 : 당신은 키가 큽니까? 둘째 : 체격이 우람합니까? 셋째 : 숫총각입니까? 넷째 : 미남입니까? 다섯째 : 가문이 훌륭합니까? 여섯째 : 학벌이 좋습니까? 일곱째 : 나이가 젊습니까? 끝으로 : 재산이 풍부합니까?”

노총각인 이 사내는 한참 고민하다가 그래도 컴퓨터지만큼은 진실이 통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난에 '아니오'라는 솔직히 입력했답니다. 그러자,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이 컴퓨터에 뜨더니, 조금 기다리자 다음과 같은 회신이 올라왔답니다. 무슨 회신일까요? 우리 성도님들이 컴퓨터라면 무슨 말을 했을 것같에요. 상상해 보세요. 컴퓨터의 회신은 "정말 꼴값하십니다!!"였답니다. 누가 웃자고 지어낸 유머일 것입니다. 저는 아들, 딸들에게 결혼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하면서 늘 아이들에게 믿음 좋은 사람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보기에 어떤 좋은 조건일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안된다고 못 박아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딸 둘이 결혼했는데 제가 믿고 기도했던 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고 믿음 좋은 총각과 결혼하여 감사하고 마음이 흡족합니다.

 

우리가 믿는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무엇을 보고 흡족해하고 기뻐하실까요? 저는 성경을 보면서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우리 예수님은 우리이 믿음을 보고 흡족해 하며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흡족해 하시면서 칭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흉악한 귀신들인 어린 딸을 둔 여인입니다. 예수님이 거절하는데도 계속 예수님만이 고칠 수 있다고 믿고 간구합니다.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고 모독적인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도 부스러기라고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그 여인을 보면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방인 남자 중에 믿음을 칭찬받은 로마 군인 백부장이 나옵니다. 하인이 중풍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당인 물건처럼 취급하는 하인의 중풍병을 고침 받기 위해 예수님께 나와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고쳐 주겠다고 하자 말씀으로만 해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 한마디로 고쳐줄 줄 믿었습니다. 이런 백부장에게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8:10”라고 칭찬하시면서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과 함께 배를 따로 갈릴리 호수를 가고 있었습니다. 폭풍으로 배에 물이 찼습니다. 예수님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급히 깨웁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기도하시러 산 위에 올라갔고 제자들만 밤에 갈릴리 호수를 노저어 가는데 광풍이 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인 줄 모르고 유령 소동을 벌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라”하니 베드로가 잠시 걷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갔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들고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라고 꾸짖으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을 보시고 칭찬도 하시고 꾸짖기도 하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고 지금도 우리에게 예수님이 우주를 다스리는 분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고 말씀 한 마디로 폭풍을 잔잔케 하시는 분이신 것을 믿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천국에 갈 수도 있고 믿음 없이 지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폭풍을 뚫고 일어날 수도 있고 믿음 없이 폭풍과 함께 죽을 수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질병가운데 치유받을 수도 있고 믿음 없이 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1세기 갖은 핍박 가운데 믿음이 약해진 성도들에게 히브리서 11장을 통해 믿음으로 산 신앙의 선조들을 말씀하면서 그런 믿음의 선조들과 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을 마감하면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라는 말로 시작을 합니다. 이제까지 아벨부터 시작하여 여호수아 시대까지 여러 믿음의 사람을 소개했는데 ‘그리고 내가 그 위에 또 무엇을 계속 말하겠는가’라고 하는 말입니다. 아벨로부터 라합에 이르기까지 말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말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사 시대 이후 믿음에 대한 예증의 대상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의 증거들을 구체적으로 모두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사사 시대와 그 이후의 믿음이 인물로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는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이 산 시대는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믿음으로 ‘믿음으로 말미암', ‘믿음을 통하여’, ‘믿음에 의해서’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믿음에 근거한 삶이었고, 믿음으로 특정지워지는 삶이었으며, 믿음의 증거가 드러나는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의 믿음의 첫 번째 특징은 승리하는 믿음이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라고 그들의 믿음의 특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3-34절까지는 믿음의 선진들이 믿음으로 승리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5-38절까지는 그 믿음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난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나오는 기드온이 어떻게 승리한 믿음을 가졌는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기드온은 가문이 뛰어난 가문이 아닙니다. 사사기 6-9장까지 사사 중 가장 많은 기록을 해 놓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요아스는 집에 바알신과 아세라 신의 단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무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의심도 많았습니다. 그때 나라는 7년 동안 미디안 나라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로 어떤 일을 하려면 신분과 권위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는 인간적으로 그런 조건을 충족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이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기드온을 사사로 세워 미디안 연합군 135,000을 300의 군인으로 승리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승리한 것이 순전히 믿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어떤 믿음으로 승리했습니까? 우리가 삶의 전쟁터에서 어떤 믿음을 가져야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1. 승리를 위해서는 삶의 중심 축을 나에게서 하나님께 옮겨 하나님께서 승리케 해 주신다는 확신있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2-8).

미디안 군대가 7년 동안 이스라엘을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사사가 된 후 그들에게 대항하였습니다. 그들의 섬기던 바알신과 아세라 신을 제거해 버리고 백성이 힘을 모아 그들에게 대항하였습니다. 그러자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의 모든 사람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사사기 8장 10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135,000 명입니다. 사사기 7장 12절에 보니 사람들이 메뚜기처럼 중다하고 약대의 수가 해변의 모래같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의 군대를 몇이나 됩니까? 사사기 7장 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32,000명이 모였습니다. 고대의 전쟁은 수의 전쟁인데 승리하기에는 역부족인 인원이었습니다. 전쟁에 이기려면 3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수의 우위, 전술의 우위, 무기의 우위입니다. 수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께서 작전 사령관인 기드온에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들은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워하는 자들은 떠나라는 것입니다. 4.2대 1일입니다. 이스라엘 군인 한 사람이 미디안 군인 4명씩을 감당해야 합니다. 22,000명이 기회는 이 때이다 라고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이제 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기드온에게 말씀하십니다. 4절을 보십시오. 아직도 백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남은 사람이 몇입니까?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손으로 움켜 물을 먹는 자 300명만 남겨 두고 다 보내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300명만 남겨 놓았습니까?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3백명으로만 그 일을 이루는 명백한 이유를 하나님이 설명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그 일을 이루었다고 자랑하고 교만해질 것같으니까 작은 인원으로 135,000을 물리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삶의 전쟁터에서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삶의 태도의 문제입니다. 이런 인간의 삶이 태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삶의 축으로 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느냐 인간을 삶의 축으로 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궁극적인 승패는 결정됩니다. 히브리서를 받는 1세기 당시에도 신앙인들은 지극히 소수였고 삶의 현장에서 인간적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살았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과 미디안의 전쟁처럼 135,000 대 300의 전쟁을 치르고 살아야 합니다. 450:1의 전쟁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삶의 전쟁터에서 이기는 믿음을 가지려면 삶의 축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힘을 삶의 축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인적자원관리 전문가인 앨런 짐머맨 박사가 지은 <피봇(PIVOT) 틀고 바꾸고 비틀어라>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피봇은 스타트업이 신제품을 출시 한 이후 시장의 반응을 체크하고 문제가 있을 시 다른 사업모델로 전환하는 것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유튜브가 초기 온라인 비디오 데터터 웹사이트로 출발했지만 피봇을 통하여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로 방향을 전환하여 크게 성공하는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그는 자연을 지배하는 모든 현상에는 그 중심이 되는 '축'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삶의 중심 축을 크게 '사고의 축', '변화의 축', '지속의 축'의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공하고 싶다면, 삶의 축을 틀어 바꾸라고 말합니다. 먼저 삶의 태도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자리는 그 사람의 태도가 만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패라는 것은 부정적인 태도를 먹고 자란다는 것입니다. 빛나는 하루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말하면 나 중심의 태도에서 하나님 중심의 태도로 바꾸는 것입니다. 저자는 태도는 인간의 건강 뿐 아니라 인간의 평균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태도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1975년 오하이오주 옥스퍼드 시에 사는 50대의 사람들 60명을 대상으로 했던 조사는 이들에게 나이를 먹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답니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과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을 분류하고 23년 후 1998년에 다시 아직 생존 중인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추적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긍정적인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보다 평균 7.5년 이상 더 생존했다는 것입니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는 첫 번째로 손꼽이는 요인이 바로 태도라는 것입니다. 선천적 재능이 있든 없든 태도가 바르면 강인한 신체를 갖거나 좋은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도 있고, 큰돈을 벌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승자는 언제나 해결책의 일부가 되려 하고 패자는 항상 문제의 일부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승자는 늘 계획을 만들고 패자는 항상 핑계를 만들며 승자는 언제나 '도와주겠다'고 하고 패자는 늘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승자는 모든 문제점의 해답을 추구하고 패자는 모든 해답에 문제점이 없는지를 찾고 승자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확실성을 찾고 패자는 확실성 근처의 함정부터 찾는다는 것입니다. 승자는 '어렵긴 해도 할 수 있다'고 하고 패자는 '할 수 있지만 너무 어렵다'고 한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의 태도로 바꾸는 것입니다. 나는 무능력하고 나는 구원받을 수 없고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구원할 수 있고 하나님은 내 능력을 사용하여 기적으로 일으키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깊은 수렁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시면 나의 능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생의 축을 나에게서 하나님께 옮겨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비록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환경과 조건을 보면서 늘 낙심하고 비관하고 부정하는 사고를 전환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우리는 얼마든지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진흙밭에 버려진 돌이라도 위대한 예술가가 다듬으면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의미없는 말도 시인이 사용하면 위대한 시가 되는 것입니다.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인 "황소의 머리"도 자전거의 좌석과 손잡이로 만든 것입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을 지라도 피카소의 손에서는 가치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아무 쓸모 없는 돌일지라도 미켈란젤로에게 가면 걸작「모세」와 같은 작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쓸모 없는 것이라도 누구 손에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집니다.

설탕을 조금 가지고도 유명한 조리사에게 가면 음식 맛이 달게 되고 비누를 조금 가지고도 어머니 손에 가면 아이의 몸을 깨끗이할 수 있고 조금의 햇볕으로도 조경사는 새싹을 자라게 할 수 있고 조금 남은 몽당연필로고 위대한 작가는 책 한 권을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쓰시니까 300: 135000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수가 문제가 아닙니다. 나의 능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처한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느냐 안하시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니까 1세기의 변화는 12명의 제자의 믿음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는 성령 충만한 베드로 한 사람의 믿음의 설교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유럽을 복음화시킨 안디옥 교회의 교인은 성경에 나와 있는 인물은 10명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통해 세계 선교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300명의 믿음의 용사로 미디안을 정복합니다. 하나님은 10명이 부정한다해도 2명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이 전쟁을 통하여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한 후 어떤 고백을 합니까? 8장 22-23을 보십시오. 겸손하게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기도온처럼 믿음으로 삶의 전쟁터에서 승리하시고 이런 고백을 하시길 바랍니다.

 

2. 승리를 위해서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변화의 축을 가지고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감을 가지고 전진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9-14).

이제 병사는 3백명 밖에 없습니다. 적은 135,000입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 가지 사실만 명백합니다.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승리케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날 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9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용기를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적진을 뛰어 들 것을 생각하면 무섭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막상 우리도 어떤 일을 당하면 마찬가지입니다. 기질적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드온도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고 두려움 때문에 저녁에 신상을 부수고 두려움 때문에 계속 하나님께 징표를 요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을 기드온 자신보다 더 잘 아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합니다. 정 그렇게 두려움이 있으면 내가 승리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줄터이니까 부하를 데리고 진으로 들어가 보라는 것입니다. 정탐을 하는 것은 장군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하를 시키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 성격상 직접 목격해야만 그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기 위해서 부하 부라를 데리고 적진을 정탐하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이 부하를 데리고 적진에 들어갔습니다. 수많은 군대가 있었습니다. 약대가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 밤에 기드온이 적진에 이르니까 적들이 꿈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 무너뜨렸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한 병사가 꿈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이 손에 붙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현실을 보며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신감을 주신 것입니다. 이 전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증거를 보여 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신감이 없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32,000의 군대 중에 어떤 사람을 돌려 보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성공하고 승리하기 위한 중요한 마음의 자세입니다. 환경을 중심으로 한 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중심으로 축이 변화되면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피봇>에서는 변화의 축으로 자긍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격려가 되는 사람을 만나고 실망을 주는 사람을 피하라고 합니다. 진정 성공하고 싶으면 그런 척이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추락을 걱정하는 사람은 결코 비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감을 주는 사람을 만나 비상하라는 것입니다.

나폴레옹 힐은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하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모든 열성을 지워버리며,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과 불행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워즈워드는 "두려움은 수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힌다" 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조직 심리학 박사인 앨런 다운스는 <리더여, 두려움을 극복하라>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인생 성공의 핵심이 바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은 인생을 꽃피우게 하는 씨앗인 재능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재능을 개발하는데 가장 커다란 적이 바로 공포 즉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재능의 숨통을 죄는 공포는 특질공포라는 것입니다. 어떤 위험이 실제 자신에게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위험이 일어날 것으로 추측하여 두려워하는 공포입니다. 이것은 '실재로서의 어떤 것'이 아니라 '만약으로서의 어떤 것'을 생각하는 마음으로부터 자란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지배하는 7 가지 공포로부터 해방되라고 그는 말합니다. 재능의 숨통을 죄는 공포는 무능의 공포(만약 실패한다면?), 거부에 대한 공포(핵심에 끼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결핍의 공포(내 성과를 훔쳐 가면 어쩌나?), 현실의 공포(어디 손쉬운 해결책이 없는가?), 미지의 공포(저기 뭐가 숨어있지?), 권위의 공포(규칙을 어기면 어떻게 될까?), 나이의 공포(퇴물이 되면 어떻게 하지?) 등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전쟁터에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신 31:8)"

<사연 많은 거위가 황금알을 낳는다>라는 책의 저자 쥬디스 브릴스는 "실패와 성공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감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J. 하드필드 박사가 자신감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넌 틀렸어. 이젠 끝났어!"라고 자괴감을 줄 때 우리는 실제 가진 능력의 30%도 채 발휘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넌 할 수 있어! 넌 특별한 사람이야! 저 사람은 하는데 왜 니가 못해!"라고 자신감을 줄 때, 우리는 무려 능력의 500%까지 발휘할 수 있고 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예수님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며 일평생 맡겨준 일을 사명으로 감당한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믿음으로 싸우는 사람들은 환경을 바라보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환경에서 하나님의 약속으로 축을 바꾸고 믿음으로 삶의 전쟁터에 나아가면 우리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승리를 위해서는 배신이 아니라 충성이라는 지속의 축으로 순종하는 믿음을 통하여 결국 고지를 점령해야 합니다(15-25)

기드온은 자신의 손에 붙여 주었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진중에 돌아 와서 300명의 군대를 깨웁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바로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눕니다. 각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게 하고 항아리 안에 횃불을 감추게 합니다. 이상한 전쟁입니다. 칼과 창을 든 것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닙니다. 이해가 되지 않고 수적인 열세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이 일을 자신에게 맡기고 지시하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 순종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 전쟁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이 왜 충성스러운 3백명만 남기라고 했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한 사람이라고 기드온의 말을 어겼다면 이 전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미친 짓같지만 기드온이 하라는 대로 충성스럽게 순종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외치라는 것입니다. 이 때 3백의 용사는 어떻게 합니까? 19절 이하를 보십시오. 밤에 보초를 바꿀 때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밝히며 소리칩니다. 장군의 명령에 그대로 충성을 다하여 순종합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일제히 소리를 지릅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놀란 그들을 자기들끼리 칼로 치며 자멸해 버렸습니다. 그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충성을 다해 순종한 기드온, 그리고 한 사람도 예외없이 기드온에 명령에 충성스럽게 따른 군인들에 의해 신비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성공하려면 충성도가 중요합니다. 전쟁을 하고 있는데 기드온의 방법이 비 이성적이고 상식에 벗어난다고 반기를 드는 사람이 있다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충성도가 중요합니다. 지속적인 충성이 중요합니다. 중간에 배신하고 그만두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이룰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비록 조금 모자라는 것같아도 충성도가 높고 지속력이 있는 사람이 결국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피봇(PIVOT)>이라는 책에서는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삶의 중심 축을 크게 '사고의 축', '변화의 축', '지속의 축'이라고 말했는데 성공하려면 지속의 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쓸데 없는 걱정은 고금리의 이자와 같다고 말하며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충성하는 지속력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생활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있습니다. 지속적인 사람이 결국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부족해도 충성도가 높은 사람이 결국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삶의 전쟁터에서 하나님께 충성함으로 승리하시길 원하십니다.

전쟁에서는 죽음이 두려워 지휘관의 말을 듣지 않고 배신할 사람 1000명 보다 목숨을 걸고 충성할 사람 1명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신임해 주고 회계를 맡겼지만 배신의 의지를 꺽지 않고 악한 마음의 계획을 바꾸지 않는 가룟 유다같은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용모와 지략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아버지를 배신한 압살롬이나 압살롬을 배후 조정하여 구데타를 음모하는 아히도벨같은 사람은 필요없는 것입니다. 수많은 적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내부에 있는 한 명의 간첩입니다. 성경을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마지막 하나님이 무엇으로 평가합니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성경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눅16:10-11)"라고 말씀합니다. 충성은 반드시 대가가 있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절)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기도온은 믿음으로 노년에까지 계속 충성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사사기 8장 24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기드온은 멋지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돌렸는데 24절에서 백성들에게 한 가지를 요구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귀고리를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뭐 필요하겠습니까? 그들은 즐거이 귀고리를 기드온에게 줍니다. 금 일천 7백 세겔이라고 했습니다. 노획물입니다(25). 그것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에봇은 대제사장이 입는 조끼 모양의 상의(上衣)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할 때에 대제사장은 이 옷을 입고 우림과 둠밈으로 판결을 구하였습니다(출 28:6-30). 이것은 실로에 가서 대제사장을 만날 필요없이 자기 처소에서 하나님의 뜻을 편하게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월권이었습니다. 분수를 모르는 행위였습니다. 믿음 없는 행동입니다. 중심 축을 자기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모든 결제는 다 자기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 뿐 아니라 종교까지도 모두 자기 손아귀에 들어오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역할까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들어 고향 오브라에 비치해 놓습니다. 실로로 갈 것이 아니라 다 자기를 통과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다 자기를 통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2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었습니다. 기드온이 사는 날 동안 평안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평안이 결코 평안이 아닙니다.(28) 33절을 보십시오. 기드온이 죽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백성들은 기드온이 죽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알을 열렬히 숭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33절). 하나님을 기억하지도 않았습니다(34). 그의 가계를 후대하지도 않았습니다.(35)

기드온은 이성의 유혹에 무너졌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태평의 시기가 계속되자 향락에 빠져 처와 첩을 많이 거느렸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9장 5절을 보십시오. 그 가정에 처절한 비극이 찾아옵니다. 패가 망신이 되는 것입니다. 첩의 아들 아비멜렉이 폭력배들을 돈을 주고 사 자기 형제 70인을 다 몰살시켜 버렸습니다. 막내 요답만 숨어서 겨우 살았습니다. 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죄의 씨가 결국 불행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믿음의 중심 축을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배신이 아니라 충성에 두고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감 있게 삶의 전투에서 끝까지 충성스럽게 순종하여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승리케 해 주신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2-8). 삶의 축을 뒤집어야 합니다. 삶의 축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불안한 삶에서 평온한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자신감을 가지고 전진해야 합니다(9-14). 생각의 축을 바꾸어야 합니다. 환경이 아니라 약속을 붙드는 축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인생 전쟁의 현장에서 배신이 아니라 충성으로 결국 고지를 점령하는 것입니다(15-25). 약속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배신의 축에서 충성의 축으로 행동을 바꾸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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