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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19) 라합의 믿음(히 11:3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940 추천수:7 220.120.123.244
2022-10-09 14:48:50

믿음(19) 라합의 믿음

히 11:31

 

<수술도 없이, 약물도 없이 사라진 암>이는 책을 쓴 한상도씨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몸이 안좋아 병원에 갔는데 전립선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병원치료를 받지 않고 생활습관을 바꿈으로 1년 3개월만에 완전히 암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치유 경험을 바탕으로 병을 사라지게 하는 최고의 명약 2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음식으로 못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지금도 획기적인 약은 음식이라고 합니다. 환자에게 약물보다 훨씬 더 강력한 효과를 지닌 것은 음식이라고 말합니다. 음식이 곧 약이요 약은 음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음식은 생명 활동에 필요한 영양소를 제공하는데 동시에 생명활동을 방해하는 독소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는 몸에 해로운 것을 먹지 말고 몸에 좋은 것을 먹으라고 합니다. 음식 먹는 습관과 방식을 바꿨라고 말합니다. 먹는 양을 줄이고 시간을 늘리라고 합니다. 둘째는 걷기라고 말합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사람에게는 걷는 것이 최고의 약이라”고 했는데 하루에 만보 이상 걸으니까 혈액순환 기능, 호흡기, 면역기능, 허리와 다리의 근력 등 신체의 모든 기능이 증진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음식과 걷기로 암이라는 죽음의 공포에서 치료되어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 분이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받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며칠 전 김동길 교수가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사람은 누구나 병에서 치료되어도 언젠가는 쌓아놓은 모든 것 죽음에게 다 빼앗기고 죽게 되어 있습니다. 많이 쌓아 놓은 사람일수록 박탈감은 심할 것입니다. 부귀, 신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날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음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고 인간은 천국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히 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어떤 사람은 영벌에 처해 지옥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영생으로 천국에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이 영생에 들어갈까요?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어떤 사람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처럼 믿음의 유산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자식들의 입에 조금 오르내리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여리고 성이 멸망할 때 여리고 성 사람들과 함께 죽지 않고 살아난 기생 라합의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그 성의 망함과 동시에 다 사라졌지만 예수님 재림 시까지 그의 믿음을 통해 교훈을 주고 있는 한 여성의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대 모든 사람이 지옥의 멸망을 받는데서 살아나 천국에서 영생을 얻은 한 신앙인의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시대와 함께 멸망하지 않고 사는 라합이 가졌던 믿음은 어떤 믿음이겠습니까?

 

1. 함께 멸망하지 않는 믿음은 말씀을 듣고 믿는 믿음입니다.(믿음의 근거)

여리고 성에 사는 사람들이 다 죽을 때 그때 기생 라합은 죽지 않고 살아났는데 그 근거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믿음으로 기생 라합”이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믿음의 용장들을 소개할 때 아무도 그 앞에 수식어가 없습니다. 족장 아브라함, 총리 요셉, 출애굽 영웅 모세 등과 같은 수식어가 없습니다. 유일하게 라합만 직업과 신분이 기생이라는 말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기생이라는 말은 지금 말하면 창녀입니다. 여성입니다. 여성의 인권이 존중받는 시대가 아닙니다. 이방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을 지옥의 뗄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신분적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믿었다는 말입니다. 당시 관습으로는 하나님의 딸이 되기에는 불가능한 사람이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딸이 되었을까요?

기생 라합이 어떻게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알라 보려면 이 말씀의 배경이 되는 여호수아서 2장 10절을 읽어 보아야 합니다.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었을 때 먼저 싯딤에서 정탐꾼 2명을 여리고 성에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체가 발각되어 체포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전쟁 고급 정보가 유출된 것입니다. 만약 라합이 밀고만 하면 쉽게 잡혀갈 상황입니다. 정탐꾼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게 되었습니다. 라합은 밀고하고 상급받고 출세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점탐꾼을 생명을 걸고 숨겨주면서 라합이 한 말입니다.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로마서 10장 10절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했는데 라합이 믿음의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여호와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시혼과 옥을 치시는 것을 들어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였으며 다시 재림을 한다는 믿음도 들음에서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지옥에 가지 않고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한다는 것도 들음에서 생긴 믿음입니다. 로마서서 10장 17절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기생 라합만 들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들은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공포로 반응하였습니다.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기생 라합만 믿은 것입니다. 어떻게 믿었습니까? 1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신학적 용어로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다 믿은 것입니다.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끼리 살도록 방치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에 개입하여서 섭리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은혜입니다. 라합이 이 사실을 믿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보십시오. 여호수아 2장 9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라는 말은 그 만큼 확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여리고 땅을 밟은 것이 아닌데 완료형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천국에 아직 들어가지 않았는데 마친 천국에 들어간 것처럼 믿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주민들은 심히 두려워 간담이 녹았는데 라합만큼은 하나님이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나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만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9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말씀을 들을 때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믿음이 있다는 것을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이런 믿음이 있는 것을 끊임없이 감사했습니다. 믿어 주는 것이 아니라 믿어진 것이니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우리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날 믿어진 것입니다. 라합이 믿으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라합이 정탐꾼을 보내어 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탐꾼을 보내어 믿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결과로 라합에게 믿음이 주어진 것입니다.

말씀이 전파되는 은혜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노아시대에는 120년 동안 홍수를 예고했지만 믿지 않다가 노아와 노아의 가족 외에는 그 시대와 함께 다 망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할 때 롯의 사위는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다가 그 시대와 함께 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20명의 이스라엘 왕에게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말씀을 전했는데 한 사람도 믿지 않고 그 시대와 함께 다 망하다 결국 앗수르에게 패망하여 나라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신앙인을 핍박하던 네로의 시대 영원할 것같지마는 결국 망하였씁니다. 지금 미국이 달러로, 러시아가 무력으로, 중국이 인구로 패권 경쟁을 버리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은 수많은 강대국들이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앗수르가 그랬고, 페르시아가 그랬고, 바벨론이 그랬고, 로마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말씀을 믿은 라합은 달랐습니다. 당시 라합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약자 중의 약자인 기생이었습니다. 기생이라는 말은 몸을 파는 창녀였다는 말입니다. 당시 사람취급 받지 못하는 여성이었고, 그것도 인격적인 인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노리개 거리로 취급되는 창녀였습니다. 출신지가 여리고입니다.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에는 최악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나같은 것이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느냐고 말할 법한 여인입니다. “나는 죄가 많다, 나는 바쁘다. 나는 환경이 좋지 못하다, 나는 가난하다. 부모님이 반대한다. 아내가 반대한다. 나는 장애가 있다” 등과 같은 조건을 내세우며 믿지 못하겠다고 할만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신분과 상관없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과 상관이 없습니다. 사회적 직위나 직업과 상관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겔 37:4-6절을 보면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마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생기고 가죽으로 덮여서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마른 뼈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 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할 수 밖에 없는 일입니까? 우리는 이런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함께 멸망하여 지옥에 가지 않고 영원한 천국에 갑니다.

 

2. 함께 멸망하지 않는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믿음의 증거)

오늘 본문이 라합의 믿음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자기 나라에 멸망시키려고 온 이스라엘 정탐꾼을 믿음으로 평안히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정탐꾼들을 영접하는데 있어서 라합의 태도를 말합니다. “평안히”라는 말은 “호의를 가지고, 친절하게, 전혀 마음의 동요가 없이, 자기 편인 것처럼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녀는 적이라고 크게 당황하지 않았고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영접하고 보호하여 다시 평안히 돌려 보낸 행위까지를 말합니다. 이것은 그녀의 목숨을 담보로 한 행위였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간첩을 숨겨둔 것이 발각이 되면 라합은 민족 반역자로 처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 가족도 위태로웠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녀의 신앙 고백이 진짜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인 줄 알고 그렇게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고 진짜 믿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선택해야 했습니다. “정탐꾼을 숨겨 주어 조국을 배반할 것인가? 그들의 위치를 알려 주어 자신이 신앙고백한 하나님을 배반해야 할 것인가?” 라합은 어떻게 합니까? 여호수아 2장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라합 집에 간첩이 있는 것을 알고 왕이 군인들을 보내었는데 죽음을 무릎쓰고 숨겼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창문에 줄을 달아내려 도망하게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피신할 방법을 알려 줍니다.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뒤쫓는 사람들이 너희와 마주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서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뒤쫓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의 길을 갈지니라”

 

후일에 야고보서는 이러한 라합의 목숨을 건 행동에 대하여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야고보서 2장 25-26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기생 라합은 행함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증거했다는 말입니다. 행함은 믿음의 열매이고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야고보서는 믿음의 사람을 대표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소개합니다. 유대인 남자 대표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행함 있는 믿음을 대표하는 이방인 여성을 소개합니다. 그게 바로 라합입니다. 라합이 정탐꾼을 보호한다고 당장 얻어질 이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분명한 희생의 결단이고, 고독한 결단이며, 어리석을 결단일 수 있습니다. 당시 히브리서를 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은 자신의 민족을 배반하는 행위이고 당장 아무런 유익도 없고 손해만 보는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라를 버리고 터전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부 크리소스톰은 "온 세상이 나를 반대한다면 좋다. 내가 온 세상을 반대하리라."라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라합은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편안히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멸망의 나라에서 벗어나 생명의 나라에 참여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모험적 신앙을 감행한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의 편에 거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것입니다. 라합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라합의 믿음이 라합으로 하여금 참된 길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그 길로 가도록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에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을 이단들처럼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를 믿기 위해서는 부모 형제, 아내와 자식까지 모두 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당시 히브리서를 받는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믿는데도 이런 고난과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고 질문했을 것입니다. 믿으면 평안하고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데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갈등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신자들에게 믿음이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길로 인도하는가를 보여줌으로 고난은 믿음의 당연한 결과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고난과 고통, 어려움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영원히 사는 길이고 하나님과 관계 안에 머무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멸망을 바라보는 신자라면 멸망의 세계 속에서 함께 파묻혀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큰 은혜이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이 행함있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세상의 망함과 함께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소자 하나에게 물한 그릇 대접하는 것은 그 상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가 떠나도 그의 믿음의 행위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계속 세워가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신앙인들이 죽음을 무릎쓰고 전한 행함 있는 믿음이 그 시대는 여리고 성처럼 무너졌지만 그 행함있는 믿음은 지금도 역사하고 우리까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래도 세상을 살만하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3. 함께 멸망하지 않는 믿음은 상급이 따르는 믿음입니다.(믿음의 결과)

라합의 믿음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입니다. 라합은 위험을 감수한 믿음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1)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 2장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라고 말합니다. 13절에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라고 요구합니다. 그때 정탐꾼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아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정탐꾼이 무엇을 요구합니까?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라합은 그대로 행합니다. 붉은 줄은 약속의 징표, 신앙 고백의 표시, 순종의 표시, 십자가의 모형이었습니다. 21절을 읽겠습니다.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마치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양의 붉은 피를 문설주에 바른 가정은 아들이 죽지 않은 것처럼 그들은 살았습니다. 여리고가 멸망할 때 라합 가정이 어떻게 되어는지 여호수아 6장 25절을 같이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실제로 여리고 전쟁은 정탐할 필요가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결국 정탐꾼을 보낸 것은 라합과 그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여리고 전쟁은 믿음의 사람 라합과 가족을 구원하는 전쟁이 되었습니다.

2)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마태복음 1장 5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남편이 살몬입니다. 라합이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습니다. 보아스는 사사시대의 암울한 역사에 빛을 비췄던 믿음으로 산 사람입니다. 기업 무름이라는 손해를 아무도 감당하지 않으려는 그때 룻과 나오미를 기꺼이 섬겨 사사 시대의 등불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자기 소견대로 살았던 시대에, 변절하고 믿음으로 살기를 꺼렸던 시대에 라합은 그 믿음을 보아스에게 승계시켜서 메시아의 계보를 잇는 역사적인 인물이 된 것입니다. 복음의 명문 가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 46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데 공헌한 5대 여걸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3) 믿음의 조상들의 명예의 전당에 기록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조상들의 명예의 전당에 당당하게 기록되었습니다. 믿음의 영웅이 대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가 자랑스런 훈장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믿기에는 최악의 조건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이요, 이방인이요, 직업이 창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악족건을 믿음으로 뛰어 넘어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세리 마태처럼 기생 라합이라고 칭함 받아 변화된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떤 사람을 살았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돈이 많은지, 그 사람이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인지, 그 사람이 어떤 권세를 가졌고 어떤 혈통에서 태어났는지... 등과 같은 것으로 평가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기준은 그 사람이 얼마나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찾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같이 멸망하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라합의 이름의 뜻은 ‘광대하다. 넓다’는 말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처지에서도 자신도 살고 가족도 살리고 나아가 이웃과 교회와 민족을 살리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858년 뉴욕의 어느 가정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고 시력도 극도로 나빴답니다. 게다가 천식까지 앓아서 앞에 있는 촛불조차 입으로 불어서 끌 수 있는 힘도 없을 만큼 호흡 곤란을 겪고 있었답니다. 가까스로 생명을 연장하면서 살았답니다. 그러다가 열한 살이 되던 날이었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답니다. “아들아, 네가 가진 장애는 장애가 아니란다. 네가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고 믿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너와 함께 한다면, 오히려 너의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주목할 것이고 너는 진실로 역사에 신화 같은 기적을 남기는 놀라운 삶을 살 수 있단다.”

그 후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도전했답니다. 그리하여 23세가 되던 해에 뉴욕 주를 대표하는 주의회 의원이 되었답니다. 28세에는 뉴욕 시장 선거에 출마했답니다. 얼마 후에는 뉴욕 주지사가 되었고, 부통령을 거쳐,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미국의 경제공황 때 미국을 재건하는 대통령이 되었답니다. 그는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였답니다. 이 사람이 미국 역사상 대통령을 세 번씩이나 했던 바로 데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입니다. 여리고 성처럼 시대와 함께 무너지는 인생이 되지 말고 시대는 무너져도 말씀을 믿고 행함있는 믿음으로 역사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 쓰러진다고 해도 믿음으로 일어나는 성도님들이 되시고, 언제가 이 땅이 무너지는 날 함께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모두 천국에 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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