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믿음(17)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히11:2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822 추천수:7 220.120.123.244
2022-09-25 11:05:57

믿음(17)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

히11:29

 

오래전에 저희 교회에 안수 집사님 부부가 이사왔다고 등록을 했습니다. 부부가 한 2년 동안 찬양대에서 봉사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 좋으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에게 찾아와 교회를 떠나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시냐고 물으시니까 교회에 다니면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말을 하실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다보면 해도 해도 않되는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면 부자도 되고, 건강하게 장수하기도 하고, 자식들이 원하는 대로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이 되고, 직장에서도 승진하고, 사업도 성공하며, 자녀들이 원하는 사람들과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잘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하는데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적당히 어려운 것이 아니라 건널 수 없는 홍해가 다가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을 만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미래가 없는 것처럼 절망적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태풍이 우리 집 사과는 피해가야 할 텐데 우리 집 사과도 태풍으로 다 떨어져 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집은 멀정한데 우리 집 사과만 다 떨어져 버린 경우와 같은 상황입니다. 모든 사람이 코로나에 걸려도 나는, 우리 식구는 걸려야 하지 않아야 하는데 다는 사람은 걸려도 괜찮은데 자신만 코로나에 걸리고 다른 사람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되어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 생활하다가도 갑자기 어찌할 수 없는 경제적인 홍해, 질병의 홍해, 인간관계의 홍해 등이 다가 오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 가지 생각을 합니다.

첫째, “왜 믿음을 가지고 사는대도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가?”라는 생각입니다.

둘째,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라는 생각입니다.

셋째, “이것으로 말미암아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가?”라는 생각입니다.

아마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심각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히브리서를 받는 당시 사람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오늘 우리는 오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1. 믿는 사람에게도 홍해는 다가 온다는 것입니다.

첫째, “왜 믿음로 사는대도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가?”라는 생각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믿고 사는대도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히브리서 11장 3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조롱당하고 채찍에 맞고, 결박당하고, 옥에 갇히는 시련을 받습니다. 믿으면 잘 먹고 잘 살아야 할텐데 이런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37절 이하를 보십시오. 심지어는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습니다.

코로나로 100만 정도가 교회를 떠나고, 그동안 하루에 6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고 하는데 이정도 어려움을 당하면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겠습니까? 요즈음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다고 교회를 떠나려고 하고, 함께 봉사하다 조금만 자존심 상한 말을 들어도, 조금만 상처를 받아도, 손해를 보고, 냉대해도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 동기 목사님의 글을 보니까 집사님의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는데 고등학교 까지는 교회에 잘 나오다가 대학에 들어가니까 교회에 나가면 맨 뻔한 이야기를 하니까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해서 고민이라고 글을 보았습니다. 조금만 배워도 성경 말씀은 너무 고루하게 들리고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익이 없다고 편리하지 않다고 재미없다고 말씀에 귀를 닫는 세상인데 오늘날 이런 불이익과 불편, 고난과 핍박을 당하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현대인들은 이익, 편리, 기쁨 이 세 가지가 없으면 그곳에 오래 머물려고 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이것이 없으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탈 신앙, 탈 교회 형상이 급속도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생의 홍해를 만난 그들에게 오늘 성경을 믿음의 조상들도 홍해를 만났다는 사실을 먼저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고 애굽에서 탈출하던 사람들, 10가지의 재앙을 통해 이미 구원해 준 사람들, 애굽 사람들의 장자와 첫 짐승들이 다 죽는데도 살려준 사람들 앞에서 홍해가 있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능력의 사람 모세 앞에도 홍해가 있는 것이고 모세의 말을 듣고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 앞에도 홍해가 있는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 앞에도 동일하게 홍해가 있는 것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입니다.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하고 앞에는 홍해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홍해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코로나 19에 걸리고, 장애가 생기고, 실패가 있고, 실직이 있고, 부도가 있고, 이혼이 있고, 질병이 있고, 죽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홍해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 홍해가 있는 것은 우연히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이 되는 출애굽기 14장 1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의도적으로 홍해 앞에 이르게 합니다. 쉽고 편한 길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십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바로를 유인하여 함정에 빠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10가지 재앙을 일으켰는데도 아직까지도 바로의 마음이 완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해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 속에 개입하여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시길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다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13장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들은 군사 훈련을 받은 사람들도 아니고 대단한 무기가 있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전투력도 없고 무기도 없었습니다. 한 번도 전쟁 경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블레셋 적들을 만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갈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상태에 맞게, 그 시대와 그 환경과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낼 상황에 맞게 최적으로 상태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왜 아버지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는지 왜 실패하고 고난을 받는지 내게 홍해가 왜 다가 왔는지 잘 모르지만, 우리 하나님은 최적의 상태, 최선의 상태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모르니까 어떻게 반응합니까?

출애굽기 14장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심히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부르짖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합니까?

11절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또 그랬다는 것은 전에도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여호수아 24장 14절에 보면 고별 설교를 하면서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라고 말씀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애굽에 살 때 애굽신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430년 동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은혜를 부어 주어 유월절 어린양의 믿음을 통해 구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잘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하느냐는 것입니다. 심각하게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이나 모세가 이끌어 냈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는 것인데 그것을 맑은 믿음의 눈으로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을 만나면 하나님을 보지 않고 남편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아내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교회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목사님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결국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줄 알아야 믿음으로 대처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니까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원망과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아벨을 죽인 가인 같은 사람들이 늘 있습니다. 문화는 믿는 사람들에게 적대적입니다. 그 속에 살아야 합니다. 세상은 무균실이 아닙니다. 밝은 믿음이 없으면 죽을 때까지 불평과 원망 거리만 보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은 보이지 않고 원망과 불평거리만 크게 보이게 됩니다. 죽게 하려고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들을 그곳에 인도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해서입니다. 홍해를 만났을 때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디딤돌이 됩니다. 그러나 불신의 분으로 보면 거침돌이 되어 불평과 원망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자신들을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지 않도록 했으면 이런 홍해를 만나지 않았을 텐데 당신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왜 간섭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내 인생에 개입하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느냐는 것입니다.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노예로 사는 것이 훨씬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홍해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미래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으로부터 자유, 죄로부터 자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10번이나 기적을 이미 베풀어 주었는데 그 과거의 교훈은 현실의 홍해 앞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약속하였는데 그 약속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뜻과 의지대로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우리도 홍해 앞에서 이렇게 원망하고 불평하지만 하나님 선택한 백성 끝까지 버리지 않고 홍해를 건너가게 합니다.

출애굽기 13장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의도적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그들을 잘 아니까 피할 길을 아애 주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만 의지하고 전적으로 믿음으로 앞으로만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이란 나의 이익에 따라 믿고 믿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믿어지고, 믿어지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믿고 사는 것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귀스타브 르 봉이라는 사람이 지는 <군중 심리>라는 책이 있습니다. 군중이 되면 똑똑한 사람도 군중의 일원이라는 하나로 집단 정신을 가지고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대단한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결단하면서 바른 선택을 하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는 군중의 심리적 특징을 첫째 충동성, 변덕, 과민성이라고 말합니다. 군중은 사전 계획이 없고 외부 자극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군중의 피암시성과 맹신이라고 말합니다. 군중은 다른 사람의 암시에 따라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군중 속에서는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세째, 군중은 단순하고 과장된 감정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군중들의 감정은 단순해 지고 감정이 항상 과장되거나 강화되어 나타나게 된답니다. 넷째는 군중의 편협성. 독선. 보수성을 말합니다. 군중은 다른 집단(사람)의 반대 의견을 허용(수락)하지 않는 경향이 농후하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집단 정신은 진화론과 유물론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고유한 인격자가 아니라 단지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황금이 인간의 노후와 인생의 행복을 보장한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자리를 황금으로 대체해 버렸습니다. 오늘의 타락한 사상과 문화는 하나님의 자리에 진화와 물질을 가져다 놓고 선전 선동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면 불신자들의 정치 선동과 문화 선동, 사상 선동의 먹이감이 되어버립니다. 홍해가 없으면 인생은 이런 군중 심리에 의해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 생명의 한계를 피부로 느끼게 하는 홍해가 다가 오면 홍해를 통해 인생은 새롭게 변화가 됩니다. 때로는 홍해도 하나님께서 강퍅한 인생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도구입니다. 인생의 홍해가 다가 올 때마다 우리를 위해 구원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홍해를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비로 물병풍이 옆에 있다할지라도 마른 땅처럼 홍해를 건너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상황과 환경을 보며 이성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생의 홍해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한 길로 인도했다는 약속을 믿고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2. 인생의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걸어가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인생의 홍해가 다가 오면 둘째 질문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입니다. 하나님의 답은 믿음으로 마른 땅처럼 건너가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른 땅처럼 건너가고 어떤 사람은 홍해에 수장되어 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홍해가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인생 앞에 홍해가 다가 오는 것은 믿음이 있고 없고를 구분하는 구분점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 앞에도 갖가지 홍해가 다가 올 수 있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갖가지 홍해가 다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홍해를 지날 때 믿는 사람인지 믿지 않는 사람인지가 드러납니다. 똑같은 홍해지만 홍해를 건널 때 믿는 사람과 믿음 없는 사람은 차이가 납니다. 믿음으로 마른 땅처럼 건너는 사람이 있고 시험하다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는 홍해 앞에서 어떤 반응을 합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홍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어떻게 대처하는냐에 따라 믿음으로 문제보다 더 큰 사람으로 우뚝 서게됩니다. 장애의 홍해를 모세처럼 대처하는 사람은 장애를 뛰어 넘어 장애보다 더 큰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이 믿음은 구원얻는 믿음을 말하기보다는 능력을 행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홍해 앞에 몸부림 치면 칠수록 더욱 수장됩니다. 몸부림은 더욱 혼란스럽고 절망하게 하고 초라하게 합니다. 수영하다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면 더욱 깊이 빠지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바라보고 잠잠히 있으면 아버지가 구해 주러 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노력하여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잠잠히 믿는 믿음을 통해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면 어떤 홍해가 다가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모세에게 분명하게 하나님은 약속했습니다. 13장 11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것은 이미 43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했고 모세에게 누누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결국 하나님이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문제되는 것은 홍해라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거대한 홍해라고 해도 그 앞에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홍해를 보고 홍해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허둥 거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신뢰하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잠잠히 서 있으면 구름 기둥과 불기붕이 보입니다. 애굽의 군대와 전차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개입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싸우신다는 것입니까? 출애굽기 14장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싸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그 하나님이 개입하여서 우리를 위해 싸워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고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밀자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불게 하여 홍해가 갈라져 마르게 합니다. 모세가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다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 없던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9절을 바로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때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양쪽으로 물벽이 있는 그 바다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의 말을 듣고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가 전해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절박한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 바다를 마치 마른 땅을 지나는 것처럼 건너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의 믿음은 백성들이 믿도록 영향력을 행한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인데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붙들고 홍해로 들어간 것입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믿도록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 한 사람의 믿음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돌아왔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가족을 변화시키고 민족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믿음의 거인들은 수 많은 사람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의 믿음이 그들의 믿음이 되게 합니다.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어머니의 믿음이 남편과 자녀에게 믿음을 주어 가정의 홍해를 건너게 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목사님의 믿음이 교인들에게 믿음을 주고 그 믿음이 교회를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장님의 믿음이 사원들에게 사장님같은 믿음을 가지고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홍해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게 해야 합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인생의 홍해가 다가오면 셋번째 질문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가?”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어떤 결과가 이루어집니까?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이 언약을 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 인줄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인 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려 주기 위해 홍해를 우리 앞에 놓게 하는 것입니다. 홍해는 불신자를 심판하는 도구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9절을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는 불평과 원망이 변하여 찬양하고 간증하게 하는 것이 홍해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13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홍해는 이와 같이 찬양과 간증의 자리가 되시길 바랍니다. 믿음이 있을 때 홍해는 찬양과 간증의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가르고 마른 땅처럼 지나게 하시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간증합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홍해는 불평과 원망의 자리가 됩니다. 궁극적으로 믿음이 있는 자는 인생의 마지막 홍해를 건너 천국에 가지만 믿음이 없는 자는 홍해에 수장되어 지옥에 갑니다.

우리는 믿음 생활하다가도 갑자기 어찌할 수 없는 경제적인 홍해, 질병의 홍해, 인간관계의 홍해 등이 많은 홍해가 다가 옵니다. 그를 때 우리는 “왜 믿는대도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가?”라고 원망과 불평을 하며 죄의 노예 죽음의 노예로 있었던 옛 삶으로 돌아가지 말고 믿는 사람에게도 당연히 홍해는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홍해를 건너가시기 바랍니다. 홍해가 있느냐 없느냐가 믿음의 기준이 아니라 홍해를 믿음으로 건너가느냐 시험하느냐가 믿음의 기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믿음을 가지고 반드시 홍해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능력있는 믿음으로 홍해를 건너 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건넘으로 말미암아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인생의 홍해 사건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찬양하고 간증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9.25.
 
 
 
 
SNS 공유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