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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16) 모세의 믿음 3(히11:27-2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290 추천수:4 220.120.123.244
2022-09-18 17:42:16

믿음(16) 모세의 믿음 3

히11:27-29

 

3년 동안 코로나 19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얼마나 감염되었겠습니까? 어제 실시간 상황판을 보니까 6억 1천 5백 47만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중 사망자가 6백 53만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얼마나 감염되었겠습니까? 2천 4백 35만 9천 7백 2명으로 나와있습니다. 그 중 사망자는 27,782명이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유명 정치인도, 수학자도, 운동선수도, 음악가도, 영화인도, 종교인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나이든 사람도, 젊은이도, 남자도, 여자도 차별없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람들에게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놓으십시오 그러면 코로나에 걸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사람들은 미신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맹비난을 할 것입니다. 제 말을 듣고 따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3천 5백 여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상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성경을 찾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2장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사람과 짐승의 초태생이 다 죽을 때 그 양의 피를 문틀에 발라 놓은 집은 사람도 짐승도 죽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출애굽기 12장 21-22절을 찾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모세는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백성들에게 지시를 했습니다.

 

모세의 말을 들은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겠습니까?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니 말같은 소리를 해야지 집집마다 장자와 초태생이 죽는다는 말이 말이 돼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지 않아”라고 말하며 아무 생각 없이 그날 잠을 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만약에 모르니 번거롭기는 하지만 그래도 양을 잡아 피를 뿌려 놓자”라고 마지 못해 피를 뿌려놓고 불안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한 집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 지금까지 내린 9가지의 재앙을 보니 확실히 모세의 말이 맞을 거야.”라고 믿고 양을 잡아 피를 뿌려놓고 편히 잠을 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말에 어떻게 반응했겠습니까?

12장 50,5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온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으며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

이 역사적 사실을 들어 히브리서 11장 28절에서는 모세의 믿음에 대하여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유월절과 피뿌리는 의식을 정하는 것이 믿음으로만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이유는 장자를 살리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히브리서를 받는 그 당신 신앙인과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1. 아직 성취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미래의 일이지만 그것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분명한 기정 사실로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1세기 당시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 때문에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당시 어떤 고난을 당했는지 히브리서 11장 36절 이하를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들이 왜 이런 고난을 받으면서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부활했고 재림한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죽음에서 구원을 받고 재림하실 예수님과 영원히 산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선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고난과 핍박 가운데 이런 믿음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포기했을 것입니다. 다수가 믿지 않는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당장 믿으면 눈 앞에 유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믿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믿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모세 당시에도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계속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9가지 재앙을 내리는데도 더욱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힙니다. 하나님은 10번째 재앙을 통하여 바로에게 경고합니다. 모세에게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를 정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고 실행했고 백성들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믿음입니다. 아직 성취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미래의 일임에도 그것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분명한 기정 사실로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고 약속하셨든지 한 점의 의혹도 없이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위대한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 중의 하나인 여호와라는 말은 언약하시고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모든 약속은 남김없이 반드시 이루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약속대로 이삭을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430년 후에 애굽에서 탈출하겠다고 약속하시고 430년 후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하게 하셨습니다. 이 약속은(베리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이끄시는 방법입니다. 노아와 아브라함과 야곱과 약속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모압 땅에서 레위인들과 다윗과 언약을 맺고 인도하십니다. 성경은 언약을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언약서"(출24:7), "언약의 피"(출24:8), "언약의 말씀"(출34:28), "언약의 두 석판"(신9:15), "언약궤"(민10:33), "언약의 소금"(레2:13), "언약의 사자"(말3:1), "하나님의 언약"(대하34:32), "우리 열조의 언약"(말2:10), "나의 평화의 언약"(민25:12;사54:10), "밤낮으로 나의 언약을"(렘33:20,25) 등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이라고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고 유월절과 피뿌림의 예식을 그대로 순종하여 하나의 절기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정착시킨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세상에 제도를 정착시키고, 무에서 유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20대 초반에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그는 노예무역을 폐지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약속으로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부정부패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정계의 현상을 견디기 힘들어서 의원직을 그만두고 수도원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존 뉴턴 목사님께 상의했는데 목사님은 “당신은 사명 받은 정치인입니다. 당신은 정치가가 될 사람이고 하나님은 당신을 정치가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힘들어도 그 일에 일생을 헌신하십시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는 영국에 당시 150여 년 동안 폐지하지 못한 노예제도를 영원히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160센티미터의 작은 체구인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지 56년 만에 무려 150번의 의회 논쟁을 통하여 노예제도를 영국에서 사라지게 하였습니다. 영국이 진정으로 위대한 나라가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고 설득하였습니다. 두 번에 걸친 암살 위협과 갖은 중상모략과 비방에 시달리면서도 노예제도 폐지법을 만들어 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악한 제도를 없앴고, 무료로 진료 받는 법안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문맹 퇴치를 위해서 힘쓰고, 남자들의 검투 제도를 폐지하는 등, 영국 사회를 개조하는데 엄청난 공헌을 남겼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았던 세브란스라는 사람을 통해 서울에 세브란스 병원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약속을 붙들고 믿음대로 살았던 하버드라는 사람을 통해 세계적인 대학인 하버드 대학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았던 홀트 부부에 의해 홀트라는 기관이 생겼습니다.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하나님의 야속을 붙들로 백화점 왕이 된 존 워너 메이커에 의해 세계 곳곳에 YMCA 건물이 지어져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기관을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하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대로 믿고 나가면 실제적으로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과학이 말하는 이성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은 대단한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은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성취되었듯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신앙 생활하다면 개인 개인들에게 주신 약속들이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어도 그 약속 붙들고 모세와 같이 믿음의 이정표를 만들어야 합니다.

선을 행하면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능력없다고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전도하면서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다니엘 12:3)”라는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겸손하게 사는 것이 손해라고 겸손한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5,6)”라는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염려 가운데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말씀을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남을 섬기면서 억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10:42)”라는 약속의 말씀은 그래도 이루어집니다. 능력의 한계 앞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라는 약속을 붙들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과학과 이성만 중요시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힘을 믿고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약속의 믿는 믿음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믿음이 마음을 지배하고, 몸을 지배하고 믿음이 행동을 다스리며 믿음이 미래를 만들어 냅니다. 믿음은 강력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신앙인의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자라나게 됩니다. 보이지 않지만 믿음이 삶과 세상을 바꿉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 주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믿고 바라보면 믿음은 힘이 있어 언젠가는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라고 믿음의 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인의 믿음은 자기 최면이나 긍정적인 사고 훈련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믿음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에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죄악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 육신의 정욕을 이길 수 있는 힘, 안목의 정욕을, 이생의 자랑을, 갖가지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믿음에 있습니다. 죄를, 죽음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절망과의 싸움에서, 질병과의 싸움에서, 고독과의 싸움에서, 유혹과의 싸움에서, 분노와의 싸움에서, 증오와 미움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 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2. 죽음에서 구원을 받는 길을 예수님을 믿는 것 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모세를 통해 유월절과 피뿌림의 예식을 정하였습니까?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이(히나)는 이라는 말은 “왜냐하면”이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12장 23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라는 말씀을 염두해 준 말입니다. 출애굽 그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스치고 지나가면서 만지기만 했는데도 애굽 전역에서는 사망으로 인한 호곡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온 대지를 잠들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출12:29,30). 그런데 믿음으로 인방과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재앙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피를 문지방에 바른다고 하나님의 사자가 넘어간다고? 이건 미신이야’라고 생각하고 문지방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은 장자가 죽게 됩니다. 그러나 그 피가 죽음에서 건져줄 것을 확실하게 믿고 피를 바른 집은 죽음에서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성경을 읽어보면 인간이 범죄하기 시작한 창세기 3장부터 하나님은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피를 요구하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입혀 준 가죽옷은 짐승의 피가 흘려진 것을 말합니다. 아벨이 드린 제사도 피의 제사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실 때에도 그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피를 문에 바르는 것입니다. 그 피를 볼 때 죽음의 사자가 그냥 넘어가셨습니다. 이것을 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실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성경을 짜 보아라 피가 나올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여 피에 관한 이야기로 끝나고 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피라는 단어는 362회 정도 나오고 신약에서는 97회 정도가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피에 대한 내용의 요지는 구약에서 103회, 신약에서 25회가 죄를 용서받는 희생 제사 제도와 관련된 것이고 어린양의 피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시작의 책인 창세기 3:15을 보면 "여자의 후손을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상하게 한다"는 것은 피를 흘린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후손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고 있습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3:16)"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다 쏟으시고 인간 구속 사역을 마치면서 "다 이루었다(요19:30)" 라고 말씀하셨는데 구약의 속죄와 화해, 칭의를 위한 피에 대한 예언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다 성취되었습니다. 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7:14을 보면 천국에 들어가는 백성에 대하여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고(벧전1:18), 죄사함을 받으며(마26:28), 깨끗함(요일1:7)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에서 해방되고(계1:5), 의롭다함을 받으며(롬5:9),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고(히10:19), 서로 화목할 수 있으며(엡2:13), 성령의 능력을 얻게 된다(요일5:5-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나의 삶에 효력을 갖게 하려면 이 사실을 믿으면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인인 나를 대신하여 대속물로, 속건 제물로, 화목제물로 피를 다 쏟으시고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됩니다. 그러며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효력이 개인의 삶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요 6:54)." 인간이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받는 길은 예수님을 믿는 길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가 잡고 있는 세상, 네로가 잡고 있는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러시아의 푸틴이, 중국의 시징핑이 자기의 통치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같은데 오래 가지 못합니다. 세상의 권력은 다 무너졌습니다. 바로의 나라 바벨론의 나라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19의 등장은 앞으로 다가올 재앙의 서막으로 전염병이 일상화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진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 빙하가 녹고 그 속에 얼어있던 미지의 박테리아들이 전 세계로 퍼질 것이고,

아예 존재 자체를 몰라서 걱정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질병이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2050 거주불능 지구>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달궈지는 지구는 30년 후엔 사람들을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2050년 기후난민이 최대 10억 명에 이르고, 여름철 최고 기온이 평균 35도 이상인 도시는 970개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에서 25만5천 명이 폭염으로 죽고, 50억 명 이상이 물 부족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합니다. 기온이 1℃ 상승하면 미국과 같이 기후가 온화한 국가에서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감소하고, 4~5등급 허리케인 발생 빈도가 25~30% 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합니다.

2℃ 상승하면 적도의 주요 도시가 거주불능 지역으로 변화하고, 북극의 빙상이 붕괴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 평균 온도가 4도만 올라도 아프리카, 호주, 미국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으며 5도가 오르면 전 지구가 거주 불능 지역이 된다는 것입니다.

영구적인 가뭄 띠가 온 지구를 둥글게 포위하고, 북극의 일부는 열대지역으로 바뀌고 만다는 것입니다. 결국 지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이 살아갈 수 없는 죽음의 행성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종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때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인 데 예수님 재림할 때 태양, 달, 별들이 제 위치에서 벗어남으로 인해 상상할 수 없는 대변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사13:10; 암3:15 계8:12; 벧후3:10; 사34:9.).

계시록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계 8:12)"

이사야는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사 13:10)"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0)"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각 사람이 자기의 행한 대로 심판을"(계 20:13) 받는다고 했습니다.

재림하신 주님은 알곡과 가라지를 가려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집니다. 많은 사람이 크고 흰 보좌에 앉으신 주님 앞으로 나올 때에 주님께서는 오른편의 양과 왼편에 염소를 분명하게 나누실 것입니다(마 2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를 불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계 20:15).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 37절-42절에서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런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홍수를 대비하여 깨어서 방주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깨어 있지 못한 자들은 세상의 향락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장가 들고 시집 가는 이 세상의 모든 즐거움에 도취되어 살면서 방주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홍수 심판의 날이 왔습니다.

깨어서 방주를 준비한 노아는 구원함을 받았지만 세상 향락에 도취되어 깨어 있지 못한 자들은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과 함께 심판을 받았습니다. 문설주에 피를 발라 놓은 사람들은 살았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산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역사의 종말을 보지 못했도 언제가는 개인적인 죽음을 맛보게 됩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유월절 어린양의 피, 십자가에 흘리신 예수님을 피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죽음을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리고 돌아가신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유월절은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어린 양을 잡는 것, 피를 바르는 것, 양의 고리를 먹는 것으로 되어 있는 데 어린 양을 죽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출애굽기 13장 15절에 보면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속적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적 죽음을 죽으실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모형으로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죽음을 잠자는 것이고 또 다른 세계로 가는 과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 후에 가는 지옥과 천국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6장에서 탐욕에 가려진 휘장을 젖히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지옥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최종 지옥인 불못에 던져질 것이고 거기서 통곡하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3:50). 그래서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마10: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은 비이성이나 비논리, 비과학이 아니라 초이성, 초논리, 초과학의 세계입니다.

 

미국의 무신론 단체는 "안심하세요. 지옥은 없습니다. 천국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즐기세요."라는 글귀를 적은 현수막을 내걸고 무신론 단체의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산소와 질소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 존재를 부인할 수 없듯 하나님의 존재가 가시적인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람이 진화되었고, 우주가 빅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했다는 것보다 더 합리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원인이 없이 결과가 있을 수 없습니다. 책상이 우연히 존재했다고 하면 비이성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보다 훨씬 정교하고 신비한 인간이나 우주가 우연히 존재했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일종의 그들의 믿음입니다. 성경은 이런 자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시2:4)"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죽음 이후에 또 다른 내세가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한 해의 끝이 있듯이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끝 후에 일어날 일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46)" 애벌레가 고치에서 부화하여 나비가 되듯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생과 영벌의 관문입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 핍박이 있어도 천국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집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오 주님 같은 친구 없도다 저 천국 없으면 난 어떻게 하나 저 천국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 이 사실을 믿습니까?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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