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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15) 모세의 믿음 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434 추천수:6 220.120.123.244
2022-09-11 07:03:00

믿음(15) 모세의 믿음 2

히11:27-29

 

오늘은 모세의 믿음 두 번째입니다. 27절부터 29절까지는 모세가 80살 때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7은 모세가 바로 앞에 가서 백성을 해방시킬 때 믿음을, 28절을 그 때 대표적인 사건이 유월절 사건 때 모세의 믿음을, 29절은 홍해를 건널 때 모세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27절을 통해 모세의 믿음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교훈받으려고 합니다.

 

1. 믿음은 애굽을 온전하게 떠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을 살았습니다. 그동안 70여명이 이민을 가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장정만 약 60만이니까 전체 인구는 적어도 250만은 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노예로 살지만 오랜 세월 동안 기름진 고센 땅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말씀대로 때가 되니까 모세라는 믿음의 사람을 통해 언약의 백성을 애굽에서 떠나게 합니다. 믿음이 개입하지 않고는 이스라엘은 애굽을 떠나지 못합니다. 자신의 의지로는 애굽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이 땅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지만 떠나야할 땅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몸도 마음도 애굽의 노예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은 외부의 힘을 통해 그들을 떠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자유와 해방을 의미하고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모세 한 사람만의 구원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적 자유와 해방,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에 있는 모세에게 나타나 말씀합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출애굽기 3장 7,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신약적인 용어로 말하면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나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의 노예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이 자녀로 죄로부터 용서받고 죽음의 노예에서 벗어나 천국 백성으로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고 살라는 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그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떠났다는 말은 과거의 단호한 행동을 나타내는 말로 모세가 애굽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 믿음에 의한 것이었고 믿음으로만 가능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장애물이 있습니다. 첫 번째 장애물은 떠나야 할 자기 백성들입니다. 모세가 자기 백성을 구출하려고 할 때 백성들이 좋아합니까? 40살 때도 그랬지만 80살이 되었을 때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5장 2절을 보십시오.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보내라고 했다고 하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보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짚도 주지 않고 벽돌을 만들게 합니다.

그때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무엇이라고 합니까?

5장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인정해주고 따라주어야 할 자기 백성들이 원망하고 저항합니다.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백성들이 원망하여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에게 벌을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장애물을 건너뛰어야 합니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두 번째 큰 장애물인 대적자 바로는 어떻습니까? 쉽게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내어놓겠습니까?

물이 피가 되는 재앙이 임합니다. 개구리 재앙이 임합니다. 그러자 바로가 어떻게 합니까? 출애굽기 8장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보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강퍅하여 보내지 않습니다. 티끌이 이가 되는 재앙이 임하고, 파리가 가득한 재앙이 임하자 바로가 어떻게 합니까?

출애굽기 8장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너희가 가서 하나님을 섬기되, 이 땅을 벗어나지 말고, 제사를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통치권 안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끊임 없이 우리가 사단의 통치권 안에 머물길 원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도 자신의 통치권을 받으라고 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님을 믿되, 생활은 바꾸지 말고, 예배만 드리라는 말입니다. 모세가 만약 이 땅에서 예배드리면 애굽 사람들이 자신들을 미워하여 돌로 칠 것이라고 말하며 광야로 보내달라고 합니다. 지금 말하면 회교 사원 앞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도 돌에 맞아 순교당합니다.

그러자 바로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출애굽기 8장 2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자신의 노예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멀리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양다리를 걸치며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가축이 죽고, 악성 종양이 생기고, 우박이 내리고 메뚜기가 땅을 덮으니까 바로가 뭐라고 말합니까? 출애굽기 10장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중국 공산당들이 오늘날도 써 먹는 방법으로 아이들을 믿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너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왜 아이들까지 왜 남편을, 왜 아내를, 왜 부모를 데리고 교회에 나가가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너나 잘 믿으라는 것입니다. 흑암의 재앙이 내립니다. 그러자 바로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출애굽기 10장 2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오늘날로 말하면 믿어도 물질이나 재능, 시간을 헌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당히 믿으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반대와 바로의 반대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백성을 이끌고 떠납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단호하게 모든 장애물을 뛰어 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기 위해 단호하게 떠나야할 것을 떠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복음 안에서 온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단호하게 온전히 사탄의 지배권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의지로 잘 되지 않습니다. 환경을 완전히 바꾸어 버려야 합니다. 믿음은 기꺼이 버릴 것을 과감하게 버려 버리는 것입니다.

 

2. 믿음은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이 바로는 신적 존재입니다. 절대 통치자로 그에게 불복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가 애굽을 두 번 떠납니다. 애굽 사람을 죽이고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때 출애굽기 2장 14,15절을 보면 모세가 두려워하여 떠납니다. 40대 때 그는 바로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죽는 것이 두려워 40년 동안 정든 땅, 출세와 명예와 부가 보장된 땅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보면 80세 때 모세는 왕의 노함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백성을 이끌고 80세에 애굽을 떠날 때 모세는 바로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출11:4-8). 이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으로 모세의 믿음이 성장한 것입니다. 거절 당할까 봐, 상실될까 봐, 자존심 상할까 봐, 죽을까 봐, 미움받을까 봐, 자존심 상할까 봐, 조롱당할까 봐, 배신당할까 봐, 고독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장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면 회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가지 않으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출4:19절에서 “애굽에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너 가도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회피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너 목숨 보장해 줄터이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믿음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놓아주기를 완강히 거부했던 바로 왕의 진노를 두려워했더라면 그는 자기 백성을 이끌고 과감히 애굽을 떠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사람 중에 당시 가장 힘있는 사람 바로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바로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노함은 인간의 악한 본성에서 나오는 바로의 분노로 노함을 받은 대상은 죽음과 직결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이런 강퍅한 인간을 만나는 것은 참 힘이 들고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모세는 그런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히브리민족을 거대한 건축 · 토목 공사의 노예로 부려 먹었는데 그 많은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 하려 한 모세와 아론에 대해 악한 분노를 발산하였던 것을 말합니다(출 5:2).

모세가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떠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모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고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말로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헬라어에서는 ‘톤 가르’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왜냐하면 그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을 계속해서 보는 것처럼 견디어내었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가르’는 이유의 의미를 나타내는 말로 모세가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믿음으로 애굽을 떠날 수 있었던 구체적인 이유를 말해줍니다. 모세가 눈에 보이는 바로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했던 이유는 모세가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믿고 견디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함께 하여 건져 줄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되어졌습니다. 풀무불에 죽는다고 해서 하나님 안 계신 것이 아닙니다. 설령 순교를 당한다 해도 하나님의 선한 뜻의 결과임을 믿는 것입니다.

 

모세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보이지는 않지만 떨기 나무 불 가운데 모세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출3:6)”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에게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 3장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 사명을 받고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이 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장 12절 같이 읽어 보겠씁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영안이 열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모세와 함께 하여 10가지 기적을 읽으켜 주셨고, 홍해를 가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앞에서 애굽 군대 앞에서(출14:11) “모세여,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 파묻으려 하느냐?”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백성들에게 (출14:13)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죽음 앞에서도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함께 담대하게 가나안을 정복하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신명기 31장 6-8절까지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이 말씀을 믿습니까? 믿음이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고 세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시 히브리서를 받고 있는 유대인 신앙인들이 얼마나 로마 황제를 두려워했겠습니까? 바로를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통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종교 개혁자 존 낙스는, 영국 왕 메리 1세가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위협도 두려워하지 않고, 종교개혁을 계속하였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무덤에는 이런 묘비가 썼다고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한 나머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던 자가, 누워 있다.” 시27:1에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 3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또한 히브리서 13장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아람 왕이 말과 병거와 많은 군대를 보내어 밤에 엘리사가 있는 성읍을 에워쌌습니다. 아침에 그 모습을 본 엘리사의 사환은 엘리사에게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라며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하고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사환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영의 눈으로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왕하 6:14-17).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사람은 마귀가 마치 굶주린 사자처럼 다가와 위협한다 해도 절대로 두려워 떨지 않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한 나그네가 천국을 행해 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한 번은 길가에서 으르렁거리며 위협하는 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그 사자를 살펴보니 줄에 묶여 있었고, 이빨이 빠져 있고 발톱도 빠져있었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 언덕에서 그 사자의 이빨과 발톱을 뽑아 버리신 것입니다(창3:15). 하나님은 예수님의 보혈로써 사탄을 무력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3.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참았다는 말은 ‘견디다. 끝까지 버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40대 때 모세는 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을 죽이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80대 때 모세는 끝까지 참고 견디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였습니다.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자크)’했습니다. 아들이 죽기까지는 그 많은 재앙을 내리는데도 너무도 완고하여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가 노예로 부려먹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을 놓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인간이 그런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까지는 쉽게 깨닫지도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바로가 그렇게 한 것처럼 모세 역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을 끝까지 지켜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모세의 믿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내를 통해 드러냈다는 말입니다. 참된 믿음은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눈으로 볼 수 없고 믿음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그것에 대해 증거하기가 불가능함에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모세의 인내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완전한 신뢰와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참으시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출34:6)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참고 견딘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희망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오래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하여 참고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희망의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래 참고 기다니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오래 참고 기다렸습니다. 노아는 산 위에 배를 만든다는 조롱에도 불구하고 120년 간을 참고 기다리며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많은 자녀의 복을 준다는 약속을 받고 25년을 참고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13년을 참고 기다렸습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했습니까? 믿음으로 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믿고 참고 견디며 기다렸습니다.

 

바로와의 영적 전쟁에서 10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린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게도 사랑하고 위하여 살았던 민족은 어떻습니까? 광야 생활의 이스라엘 백성의 특징은 원망과 불평입니다. 홍해가 있으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는데도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왜 계속해서 같은 음식을 주느냐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목말라 죽을 지경인데 쓴물이라고 물만 있으면 되지 쓴 물 나온다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가데스 바냐에서 적들을 염탐하고 오라고 하니까 적들이 강하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모세를 죽이려고 합니다. 차라리 애굽 땅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끝까지 참고 견디었습니다. 모세가 재혼했다고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합니다. 다 모세의 편이 되어 주지 않아도 형과 누이는 내 편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모세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모세는 인내하며 참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비방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남의 비방도 참기 힘들지만 가족의 비방은 더욱 참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런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참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의 온유함이 온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낫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믿음으로 참고 견디었다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것이 결국 믿음의 온전한 인격을 만들어 줍니다. 성경은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딛2;2)라고 말씀합니다. 아고보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도 인내하면 온전한 삶이 됩니다. 참지 못 하는 삶은 온전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히브리서를 읽는 최초의 독자들은 어떻했겠습니까?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매일 매일 도망을 다녀야 합니다. 언제 자식들이 잡혀 죽을지 모릅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 2년도 아니고 40년을 그렇게 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은 견디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라고 찬양하며 흔들리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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