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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14) 모세의 믿음 1(히11:24-2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028 추천수:7 220.120.123.244
2022-08-28 13:40:14

믿음(14) 모세의 믿음 1

히11:24-26

 

사람은 늘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아이들 중에서는 오늘 교회에 나갈까 집에서 게임을 할까 망설이다 교회에 나온 아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 올 때 어떤 옷을 입을까 선택해야 합니다. 매일 무엇을 먹을까 선택해야 합니다. 어느 학교에 들어갈까 선택해야 하고 결혼할 때가 되면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직장에 들어갈 때는 어느 직장에 들어갈까 선택해야 합니다. <누가 내 생각을 움직이는가>라는 책을 쓴 노리나 허츠는 사람은 매일 1만 가지에 이르는 사소한 선택과 결정을 하는데 음식에 관한 결정만 해도 227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사소한 것 같이 보이지만 이런 선택의 결과가 모여 인생이 됩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인생은 출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는데 그 공간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과 사건일지라도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모세의 믿음에 대한 설교를 합니다. 이 설교를 듣고 믿음이 좋아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예전처럼 그대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인생이 더 나빠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같은 설교지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반응은 달라질 것이고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인생을 달라질 것입니다.

미국의 44대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에게는 고교 시절 단짝 친구였던 가쿠가와가 있었습니다. 같은 혼혈아로 학창시절 단짝이 되어 같은 고민을 안고 성장하였지만 가투가와는 마약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성폭행 범이 되고 LA에서 노숙인으로 살고 있지만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똑같은 나라 똑같은 시간 속에서 살았지만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미국의 22대, 24대 대통령 클리브랜드와 그의 친구는 청소년 시절 똑같이 방탕과 갈등의 세월을 보냈지만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교회당 앞을 지나가다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라는 현수막을 보게 되었답니다. 클리브랜드는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말씀이 그의 가슴을 예리하게 찔러 예배당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고 지난간 죄를 눈물로 회개했답니다. 술 마시자는 친구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고학 끝에 감옥의 간수장이 되었답니다. 시장이 되었답니다. 주지사가 되었답니다. 드디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답니다. 그러나 그날 같이 간 친구는 그의 제안을 뿌리치고 제 갈 길로 가 클리브랜드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날 알콜 중독자로, 범죄자로, 사형수로 교도소에서 클리브랜드의 대통령 당선 신문을 보고 있었답니다. 순간의 선택이 30년 후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 뿐 아니라 인생을 좌우합니다. 더 나아가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 선택과 결정, 결단은 중요합니다.

로저 도슨은 <내 인생을 바꾸는 결정의 기술>에서 선택의 즉 결정의 5가지 유형을 말합니다. ① 기준에 따른 결정 ② 방침에 따른 결정 ③ 분석에 따른 결정 ④ 판단에 따른 결정 ⑤ 종합에 따른 결정 등입니다. 그는 결정 유형을 분석한 후에는 결정의 설계도를 만들라고 합니다. 청사진이 있으면 전체적으로 정확하고 명확하고 간결하게 문제점을 짚어보고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익숙한 것을 좇는 이용성 편향, 자신의 편견을 따르는 경험 편향, 자신의 신념과 다른 것을 거부하는 갈등 편향, 기억에 의존하는 회상 편향, 좋아하는 것에만 치우치는 선택 편향, 맨 처음 것에 비중을 두는 닻 편향, 최신 정보에 얽매이는 최신 편향, 자신의 선택에 구속당하는 선호 편향" 등의 편향 정보를 걸러내야 한다고 합니다. 중요한 선택에 있어서 감정적인 선택보다는 이성적인 선택을 하라는 것입니다.

선택과 결정, 결단에는 기준이 중요한데 선택의 기준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감정적인 선택입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의해 선택하는 것입니다. 개에게 소 뼈다귀와 보화를 놓아 두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소 뼈다귀입니다. 보화의 가치를 모릅니다. 인간도 이처럼 감정적으로만 선택하면 동물처럼될 수가 있습니다. 오바마도 힘겨운 가정 생활 때문에 친구와 함께 마약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망하는 길인 줄 알고 과감하게 끊어 버리고 공부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는 감각의 쾌락을 위해 계속 마약을 선택하다 감옥에 가고 노숙자가 된 것입니다. 둘째는 이성적인 선택입니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좋은 선택은 이성적인 선택입니다. 나물과 고기를 놓고 선택하라고 하면 사람은 둘 다를 선택할 수도 있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필요한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에 유익한 것을 미래를 예측하여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성적 선택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입니다. 좋은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신앙적인 선택입니다. 믿음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선택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선택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모세는 어떤 선택을 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선택하고 결정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으로 어떤 선택을 하였습니까? 오늘 말씀은 세 가지 결정적인 믿음의 선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모세는 믿음으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24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모세는 남자로 태어나면 다 죽어야 할 시대적인 상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살아나 바로왕의 딸의 양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당시 최첨단 교육인 궁중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공주의 아들로 애굽왕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유대인 역사학자인 요세푸스에 의하면 바로의 공주는 무남 독녀였다고 합니다. 바로의 공주가 나일강으로 목욕하러 간 것도 나일강에 가서 목욕을 하면 아이가 생긴다는 그들의 신앙 때문에 갔다는 것입니다. 당시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을 생산의 신으로 섬겼다고 합니다. 공주는 모세를 나일 강 신이 자기에게 준 선물로 생각하고 후계자로 삼기 위해 애굽의 왕자로서 40년 동안 최고의 교육을 받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7장 22절을 보면 “모세가 애굽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0살이 되었을 때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왜 거절했습니까? 오늘 성경은 믿음 때문이라고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공주의 아들이 되는 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상주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모세는 어머니의 품에서 잘 자랐습니다. 모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품에서 신앙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3절에서 모세 부모의 신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모세의 어머니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모세에게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심어 주었습니다. 결국 어려서 가진 그 믿음이 모세가 장성하여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 권세를 거절하는 큰 믿음으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그의 소속이 애굽인이 아니라 선민 이스라엘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과 애굽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의 편을 들어 그를 죽이고 광야로 도망을 갔습니다.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소속의 문제입니다. 누구에게 속했느냐는 문제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모세는 하나님께 속했음을 믿고 과감하게 광야로 떠난 것입니다. 과감하게 하나님의 백성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존재의 문제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누가 되라고 만드셨는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선택과 결정이 미래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애굽사람으로 살 것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것인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을 과감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귀 영화가 보장된다고 해도 사탄의 종이 되는 것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데 방해되는 것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no라고 해야 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 요셉을 보십시오. 보디발의 집에 관리책임자가 되어 출세의 길에 접어들었을 때, 보디발의 아내가 청년 요셉을 유혹합니다. 장군의 아내이기 때문에 미인이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젊은 청년의 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절하면 그의 자리가 무너질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두마음을 품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보디발의 아내가 그의 옷을 잡고 늘어질 때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득죄하리이까’ 하면서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다윗 상을 만든 미켈란젤로가 다윗 상을 만드는 데 필요 없는 돌을 다 버린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확실히 알고 있는 것들, 하지 않아야 할 것들, 피하여야 할 것은 분명하게 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이 제시된다고 해도 그 길이 도덕적으로 불의한 것이라면 선택에서 제외시켜 버리면 됩니다. 성경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라고 말씀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을 보십시오. 금 신상 앞에서 절하라고 했을 때에 ‘아니요’라고 과감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 하실 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1924년 파리올림픽에서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주었던 육상 선수 가운데 ‘에릭 리틀’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발탁이 되어 100미터 경주에 가장 유망한 금메달 후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100미터 경기를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경주가 있던 날이 주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 오전에 예배를 포기하고 경기에 임할 수 없다면서 거절한 것입니다. 영국의 많은 사람들과 언론은 그를 비난했지만 그는 주일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신앙양심을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기자가 그에게 아쉬움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물론 아쉬움은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세계에서 가장 잘 뛰는 선수들과 겨룰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자신의 국기가 올려지고 국가가 스타디움에 울려 퍼질 때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의심은 없습니다. 내 거절이 옳았다는 데에 의심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영국 정부는 워낙 이 사람이 뛰어난 선수라서 며칠 뒤에 그의 주 종목이 아닌 400미터 경주에 출전할 기회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경기에서 사람의 예상을 깨고 금메달을 땁니다. 그가 경주하기에 앞서 준비하고 있을 때 그의 손에는 마태복음 10장 32, 33절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믿음으로 거절한다고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40년 동안 광야 훈련을 받고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는 민족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공주의 아들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광야의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모세에 대하여 신34:10에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모세는 믿음으로 죄악의 낙을 누리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무엇을 더 좋아하냐 이것 인생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술 좋아하는 사람은 술꾼 되는 것입니다. 노름 좋아하는 사람은 노름꾼 되는 것입니다. 이성 좋아하는 사람은 난봉꾼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즐거움을 찾아 떠나는 세대입니다. 죄악의 낙을 누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면 인생은 불행해집니다. 무엇을 더 좋아하느냐는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위대한 선택>의 저자 다니엘 R. 카스트로는 '위대한 선택을 위한 7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1) 선택의 순간에는 한발 물러서서 전체 그림을 보라. (2) 항상 여러 각도에서 상황을 살피고 분석하라. (3)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반복 효과'에 속지 말라. (4) 보고 싶은 것만 보지말고 꼭 보아야 할 것을 보라. (5) '지도'에 얽매이지 말고 끊임없이 '지형'을 관찰하라. (6) '닭의 30cm 시야'를 버리고 '독수리의 3km 시야'를 가져라. (7) '과거를 향한 창문'을 닫고 '미래를 향한 창문'을 열어라." 등입니다. 신앙적 선택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말씀에 근거한 가치관을 가지고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뜻(주권적, 도덕적, 개인적)에 따른 선택이 궁극적으로 미래를 보장해 줍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선택을 하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모세는 무엇이 더 큰 것인지 무엇이 더 가치있는 것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모세는 믿음의 눈으로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은 선택하고 결정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과 결정일 수 있습니다. 참으로 바보짓일 수 있습니다. 각종 향락을 누릴 수 있는 길을 놓아두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당하는 광야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믿음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명을 붙들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는 선택입니다.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는 결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고 선택입니다. 향락 본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라는 언약 공동체를 위해 고난에 대하여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앞서서 영국의 육상 선수 ‘에릭 리틀’을 소개했습니다. 주일이라는 이유 때문에 뛰기를 거절했던 그에게 하나님은 더 큰 영예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단지 거절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올림픽이 끝난 뒤, 다시 탁월한 선택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는 올림픽 경기로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부귀와 영예를 버리고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는 유명선수의 화려한 명성이 중국의 무지한 농부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에 비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12년 간 톈진에서 교사로 봉사하며 복음을 전했고, 그 후 7년 동안 산둥반도의 농촌 지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몇 년 간 1,800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본군 치하 웨이시엔의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거기에서도 그는 함께 고난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거기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그가 죽은 뒤에 함께 수용소에 있다가 나중에 풀려나 대학교수가 된 랭던 칼키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우리가 한 평생을 살면서 성자를 만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인생에는 성자를 만나는 복을 받았습니다. 에릭 리틀은 우리 가장 가까운 곁에 있었던 성자요, 하나님의 사람이요, 전도자요, 참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믿음은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하지 않고 이웃들은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홀로 주어진 것으로 이 땅에서 낙을 누리기보다는 주어진 것을 통해 고난받는 사람과 함께 고난받기를 좋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사명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명이면 이익도 편리도, 쾌락도 다 내려놓고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택은 고난 받는 가족 외면하고 홀로 즐겁게 살자고 선택하는 길이 아닙니다. 고통받는 교회 외면하고 자신만 기쁘게 살자고 선택하는 길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14절에는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모세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2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는 백성들로부터 수모를 당하였고, 광야에서 많은 수모를 당하고 살았는데 그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수모였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하나님이 주실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더 값진 것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금은보화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애굽의 보화를 다 놓고 떠나는 것을 더 좋아한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세상 보화보다 참된 보화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는 분인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살지만 늘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상급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이 고난의 삶을 용기 있게 선택하는 데는 상급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상급을 받드시 주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세상의 쾌락도 잠깐이고, 고난도 잠깐이지만, 상급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것은 세세토록 즐거워 할 수 있는 불멸의 상급인 것입니다. 이 상급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상급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의 바른 선택은 이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봄에 있었던 것입니다.

반드시 상급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0장 42절에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실 때 그렇게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를 선택할 수 있으셨던 것도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셨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

히브리서를 읽는 1세기 교인들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매일 매순간 믿는다는 이유로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이런 절박한 삶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모세의 선택을 통해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과 상급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유언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받던 시절, 하루는 로마 군인들이 카타콤을 습격했습니다. 그들은 카타콤에 숨어 있던 기독교인들을 끌어내서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그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습니다. 순교자들은 십자가 위에서 서서히 죽어 갔습니다. 그런데 날이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하면 이들을 지키던 로마 군인들은 하나둘 숙소로 돌아가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검은 물체들이 서서히 십자가로 모여듭니다. 바로 십자가에 처형된 성도들의 자녀들이 자기 부모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향하여 엄마! 아빠! 하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는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뭐라고 말을 했을 것 같습니까 보통 사람들 같으면 얘야! 빨리 도망가라. 나처럼 예수 믿다가 붙들려 죽으면 안된다. 빨리 도망가! 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지 마라. 비록 나는 죽지만 천국 간다. 다시 천국에서 만나자.”

부모들이 자신은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면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유언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도 예수를 믿고 또 그 자녀의 자녀들도 신앙을 가지게 되어 기독교는 전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고, 오늘날 우리까지도 그 영향으로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고난은 잠깐입니다. 상급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상급을 주십니다. 주님을 위한 고난은 상급의 도구입니다. 뉴스위크 지에 "기업 망친 경영자의 10대 오판"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대박 계약과 기회를 걷어찬 회사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롤링이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를 들고 수십 개의 회사를 찾아갔지만 그들은 거절하여 시장 규모 27조 4000억에 달하는 가치를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데카 레코드는 비틀즈를 받아들이지 않아 거금을, 엑사이트사는 구글을 거부하여 260조 원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수백조 원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 누구나 한 번 죽고 마지막엔 심판이 있습니다. 그날에 믿는 사람들은 믿음의 선택과 결정으로 말미암아 상급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늘 선택과 결정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선택입니다. 지금 선택이 미래를 결정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어떻게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거절할 것을 아니라고 과감하게 거절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좋은 것이라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면 거절하는 성도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핍박받는 백성을 돌보야 할 소명을 받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죄악의 낙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선택하고 결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믿음 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힘든 것도 선택할 수 있는 성도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이 세상의 재물보다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고 선택과 결정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믿음 생활에 가치 있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투자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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