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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12) 요셉의 믿음(히11:2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7121 추천수:6 220.120.123.244
2022-08-14 14:16:24

믿음(12) 요셉의 믿음

히11:22

 

오늘는 히브리서 11장에 소개된 믿음의 선조들 12번째로 요셉의 믿음에 대하여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성경은 요셉의 믿음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한 문장으로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한 문장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10살까지 산 요셉의 믿음에 대하여는 소개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 보신 우리 성도님에게 요셉의 믿음을 소개하라면 무엇을 소개하겠습니까? 17살 때까지 가나안에 살면서 꿈꾸을 꾸었던 꿈꾸는 믿음을 소개하는 성도님도 있을 것입니다. 17살부터 30세까지 종살이와 옥살이를 하였는데 이 때 보디발의 아내가 여러차례 집요하게 성적으로 유혹하였는데도 끝까지 지조를 지켰던 신실할 믿음을 소개하시는 성도님도 있을 것입니다. 30살부터 110살로 죽기까지 애굽의 총리로 지냈는데 가뭄을 지혜롭게 대처하여 백성과 자기 가족을 살린 지혜로운 믿음을 소개하는 성도님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요셉의 믿음을 소개하면서 마지막 그가 죽을 때 한 말 유언을 가지고 그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믿음을 통하여 오늘 이 말씀을 읽고 듣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시고 있습니까?

 

1.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 죽을 때 믿음으로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죽을 때 믿음으로 죽은 것처럼 요셉도 죽을 때 믿음으로 죽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80년을 이방 나라 애굽에서 제 2인자로 살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권력과 영화를 누렸는가는 그의 아버지 야곱의 장례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50장 3절을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며칠동안 장례를 치렀습니까? 무려 70일입니다. 그때 애굽사람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야곱을 위해 울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중 40일을 야곱의 몸에 향을 바르느라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누가 죽은 것같습니까? 마치 왕이라도 죽었을 때처럼 한 것입니다. 루터는 이 장면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 이처럼 상세하게 또 이처럼 존경스럽게 기록된 장례는 없었다." 야곱이 왜 이런 대접을 받습니까? 단 한 가지 요셉의 아버지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장례식에 어떤 사람이 참석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습니다. 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바로의 모든 신하, 바로 궁의 장로, 애굽 땅의 장로들이 참석했습니다. 바로만 빼고 높은 사람들이 다 참석한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이 장례식에 누가 동원이 됩니까? 군사와 기병입니다. 얼마나 성대했는지 11절 말씀을 보면 이 장례식으로 인해 새로운 지명이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만큼 요셉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가 되면 많은 사람은 믿음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는 신앙생활 열심히 하다가 조금 부자가 되고, 조금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조금 배우면, 조금 인기와 명예를 얻으면 신앙생활을 멀리합니다. 예전에 유명해진 연예인을 대학부 시절 가르쳐 본 적이 있는데 신앙생활 잘 하던 아이가 어느 날 인기 가수가 되니까 교회를 멀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교회에 잘 다니던 아이들이 대학을 들어가 조금 배우고 반기독교적인 책 한 권 읽으면 그것이 전부인 양 교회를 떠나 신앙과 멀어지는 아이들도 봅니다. 그런데 요셉은 어릴 때 험한 꼴을 당하며 살 때도 믿음으로 살았고, 종 생활하며 유혹받을 때도, 억울하게 감옥 생활 할 때도, 국무총리가 되어 온 나라를 통치할 때도 믿음으로 살다, 마지막 죽음의 자리에서도 믿음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분하기 위해 히브리서 기자는 야곱의 죽음과 요셉의 죽음을 표현할 때 죽음이라는 단어를 달리 쓰고 있습니다. 야곱의 죽을 표현할 때는 “아포드네스코”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죽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요셉의 죽음은 “텔류타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끝마치다, 끝내다, 결말을 짓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시간과 사명을 포함시킨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산을 강조한 말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고 쓰는 단어이고 바울이 사도행전 20:24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말할 때 사용한 말입니다. 요셉은 왜 자신이 애굽 땅에 보냄받았는지를 알았고 왜 총리의 자리에 있는 지도 분명히 알고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그 사역을 다 마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시작과 과정과 끝이 모두 믿음으로 마친 사람입니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어쩌면 예수님의 모형으로 흠이 없는 사람처럼 되어있습니다. 요셉은 시작부터 마지만 인생을 마칠 때까지 믿음으로 살다 믿음으로 마친 사람이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에 믿음으로 자랐고, 청년기에도 믿음으로 일관하였고, 장년기에는 믿음으로 삶의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그리고 임종 시에 요셉의 믿음으로 사명을 다 이루고 마감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히브리서를 당시 받는 사람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겠습니까? 유대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기독교인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로마의 박해와 유대인들의 따돌림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을 시작했으니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인생을 마감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기가 점점 힘겨워지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이기겠습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지위에 오르고 어떤 부를 누리고 어떤 명예를 얻는다고 해도 믿음 그것에 믿음 팔아먹지 말라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어떤 고난, 어떤 유혹, 어떤 불이익이 올지라도, 어떤 명예, 어떤 권세, 어떤 지식, 어떤 부귀 영화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믿음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언젠가는 누구나 한 번은 이 땅을 떠납니다. 믿음으로 살다 믿음으로 죽는 것이 가장 복된 인생입니다. 어떤 경우도 믿음 흔들리지 말고 죽을 때까지 믿음으로 살다 믿음으로 죽는 축복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2.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하나님 중심의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임종할 때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라고 요셉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떠나다’라는 말로 번역된 ‘엑소두’의 원형 ‘엑소도스’는 ‘출애굽’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영어 단어 출애굽을 표현하는 ‘exodus’가 여기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애굽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그 근거가 무엇이겠습니까? ‘말하고’라는 단어는 ‘생각나게 하다, 숙고하다, 기억하다, 언급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인가 기억하고 그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무엇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적어도 아브라함에게 6번이나 나타나 하나님께서 약속한 말씀이고 자신의 아버지 야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현현하여 말씀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로부터 들은 것을, 아버지가 유언의 말씀으로 남기신 것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애굽을 떠나라고 한 것입니다. 애굽에 거주할 것은 한시적일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미 말씀해 주셨는데(창15:13,14) 이것을 기억하고 떠날 것을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직접 자신이 들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아버지 이삭이 자신에게 전해 주었고 요셉은 그 말씀을 들음으로 믿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7)”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쉬운 믿음입니까? 쉬운 것이 아닙니다. 3대까지 부귀 영화를 누리고 있을 때입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은 기름진 땅입니다. 문명이 발달된 땅입니다. 미래가 보장된 땅입니다. 대대 손손 권력과 부와 명예를 누리고 살 수 있는 땅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좋은 땅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요셉이 무엇을 믿었기 때문에 그런 유언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말씀의 배경이 되는 창세기 50장 24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죽지만 하나님이 돌보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여 내며, 하나님이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임종시에 하나님의 약속와 하나님의 인도를 전적으로 믿는 하나님 중심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젊을 때도 종살이 할 때도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죽을 때도 여전히 그 믿음을 유언으로 남기고 죽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 힘으로 출세하여 부귀 영화를 누린 사람이 아닙니다. 요셉이 어릴 때 집에서 귀여움만 한 몸에 받고 산 아들입니다. 무슨 능력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강제로 인신매매되어 형제들이 집을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부모 형제를 떠난다고 죽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 떠나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39장 2절을 찾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절 보십시오. 주인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여 범사에 형통한 것을 보았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갔는데도 죽지 않고 왕의 신하가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이런 삶의 체험을 하고 살았던 요셉이 마지막 유언을 하면서 자손들에게 이곳에서 영원토록 부귀영화를 누리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이 약속한 땅 가나안을 향하여 우상의 땅, 불신앙의 땅, 애굽을 떠나라고 말씀합니다. 떠나면 하나님이 돌보고, 하나님이 인도하고, 하나님이 이르게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당시 히브리서를 받는 사람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시겠습니까? 유대교를 떠나 심각한 고통과 고난을 겪으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믿음 때문에 부모를 떠나야 하고, 자식을 떠나야 하고,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며, 직장과 직업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말고 과감하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 말씀 붙들고 떠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약속의 땅에 이르도록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부모와 직장과 세상을 다 떠나라는 이야기일까요? 아닙니다. 인간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이성중심에서 말씀 중심으로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각종 우상 숭배에서 하나님만 경외하는 삶으로 떠나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그곳에서만 파묻혀 살지 말고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이익과 편리와 쾌락 중심에서 사명 중심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세상 지식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삶의 원칙에서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현세 중심에서 내세 중심으로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 하나님 주신 사명,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저도 목회 과정에서 지난 세월을 생각해 보면 현실과 고난과 난관만 보고 살았다면 이 정도의 은혜를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미장원 옆 자그마한 상가에서 개척하여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며 이곳까지 왔는데 그 때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지 현실만 보고 포기하고 주저 앉았다면 계산만 하고 논리와 이성만 의지했다면 이곳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말씀은 성경에 나온 공허한 말이 아니라 실제 신앙생활에서 체험할 수 있는 실제입니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아무리 척박하게 보이는 땅일지라도 떠나는 것입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그 말씀 붙들고 교회를 이루었고 수많은 선교사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붙들고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각분야에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각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냈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하나님 중심의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3. 우리는 죽을 때까지 가나안 땅에 이를 것을 확신을 가지고 공개적인 믿음을 표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임종을 맞이하여 두 번째 주는 유언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라는 말씀입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배경이 되는 창세기 50장 25절 말씀을 보아야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기켰다는 말은 공적 서약을 한 것입니다. 확실하게 지킬 수 있도록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맹세시킨 것입니다. 애굽의 국무총리이고 이방신을 섬기는 나라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하게 믿고 나는 신앙인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면서 자손들에게 공적 서약을 시킨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움과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는 죽음 앞에서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후손들을 위하여 자자 손손들의 신앙을 위하여 가나안에 가서 살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유언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꾼 것은 애굽의 화려함도, 애굽의 명성도, 애굽의 부귀영화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 속을 평생 붙들고 있는 꿈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비록 요셉이 애굽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지만 이곳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꿈꾸고 살았던 것입니다. 최고의 권좌에 매력을 느끼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꿈꾸었습니다. 살아서 그 땅을 가지 못했는데 죽어서는 반드시 갈 것을 믿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온지 93년이니까 적어도 300년 뒤에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그는 300년 뒤에 일어날 일이었지만 그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그 자신만 이것을 바라보고 살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후손들도 이 일을 바라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의 자손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이 믿음은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출애굽기 13:18-19절을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요셉의 유언은 그가 죽은 지 430년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여호수아 24장 32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사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당시 이 말씀을 읽고 있던 히브리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을까요?

요셉이 사모했던 그 본향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장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예수님이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천국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그곳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그 나라는 흔들이지 않는 나라입니다. 핍박도, 순교도, 질병도, 고통도, 죽음도 없은 영원한 천국입니다.

핍박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요셉이 사모했던 그 영원한 천국에 대한 믿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믿음 생활을 하라는 교훈을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리 이 땅의 문명이 화려하고, 아무리 보장된 삶이고 안락한 삶일지라도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 천국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천국 대망의 신앙을 가지고 살다 마지막 그 신앙을 가지고 죽어야 합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저 천국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오 주님 같은 친구없도다 저 천국 없으면 난 어떻게 하나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히브리서에 기록된 요셉의 믿음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성도님들은 첫째,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믿음으로 살다 죽을 때 믿음으로 죽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믿음으로 살다 마지막에도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죽는 하나님 중심의 믿음의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셋째, 영원한 천국의 사모하며 살다 마지막 영원한 천국에 갈 것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며 천국에 가는 복을 다 누리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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