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10) 이삭의 믿음
히11:20
오늘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 10번째로 이삭의 믿음을 통해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이삭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이삭은 젊은 날 아버지의 제물이 되도록 순종했습니다. 40세에 기도하여 리브가를 얻었고 기도하여 60세에 에서와 야곱을 얻었습니다. 아버지와 달리 첩을 얻지 않고 20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는 이삭의 믿음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20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한 절로 단순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믿음으로 축복한 믿음이라고 한 절로 소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우리는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자녀에게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이삭의 믿음을 소개할 때 “믿음으로 이삭은 ...축복하였으며”라고 이삭의 믿음을 한 문장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무려 180살까지 살았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175세(창25:7), 야곱이 147세(창47:28), 요셉이 110세(창50:26)를 살았는데 4대 족장 중에서는 가장 장수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었겠습니까? 책 몇 권을 써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하여 소개할 때 히브리서 기자는 단 한 줄로 자식을 축복한 믿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 기록상 자식을 축복한 최초의 족장입니다.
아브라함은 17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복은 계속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축복은 하나님의 복을 주시도록 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하였을 때 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복수실 것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창세기 22:16-18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후손의 번성과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고 천하 만민이 네 씨로 말이암아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복을 이삭은 젊은 날 제물로 누워있을 때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하나님이 아버지에게 약속한 복이 자신에게 어떻게 흘러 들어왔는지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진정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만 된다는 사실을 삶의 체험을 통해 안 사람입니다. 창26장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복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3) 그 후 어떻게 되는가를 보십시오. 계속해서 복을 받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었습니다.(1차 복, 창 25:11). 12절을 보십시오.(2차복) 우물을 양보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24절에 복을 주시고 이방인들도 복을 받은 사람으로 인정합니다(29)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받은 복이 자신에게 계승되는 것을 확실하게 안 사람입니다.(창26:3-4). 장자권을 아무렇게 생각한 에서와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이삭도 자식에게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축복하는 자신의 조건이나 도적적 상태나 신앙의 정도나 축복을 받는 아들의 조건이나 도적적 상태나 신앙의 정도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하게 믿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 복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입니다. 아브라함의 상태를 보고 주신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와 사랑으로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에 따라 베풀어 주신 복입니다.
이 복은 이미 이삭이 태어나기도 전에 창세기 12장 2-3절을 보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말씀이 네로로부터 박해를 받으며 자식을 순교의 제물로 바치는 성도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말씀이겠습니까? 자신은 순교의 제물이 되어 죽지만 후손들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죽지만 축복은 남아 자식들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1대 2대 3대 계속해서 신앙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 약속과 복은 없어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삭은 제물로 누워 있을 때 분명하게 이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약속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나이들어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죽음을 앞두고 자식에게 이 축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축복이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복을 비는 것을 말합니다. 축복의 전달자,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삭이 자식 에서에게 어떤 믿음의 축복기도를 드렸습니까?
창세기 26장 27-2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사용한 단어만 다르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는 축복입니다. 풍요로운 삶은 땅의 결실이 있어야 하는데 하늘의 이슬은 즉 기후와 땅의 기름짐으로 풍성함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열국 통치와 영적 권위를 얻는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야곱 후손 가운데 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나올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받는 축복은 성도들이 받을 온전한 영생 구원의 축복의 그림자였습니다.
이 복은 네로가 아무리 핍박해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역사 속에서 네로보다 더한 사람이 나타난다할지리도 이 축복의 통로는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울 것을 말씀하면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8)”라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믿는 우리 가문에 주신 이 약속의 복을 우리가 계속해서 축복 기도를 하는 한 어떤 세력도 끊지 못할 것입니다. 대대 손손 이 복을 누릴 것입니다. 신앙의 세대 계승, 축복의 세대 계승이 3,4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대로 이어질 것입니다. 1세대 신앙에서 끝나지 말고 아버지의 신앙의 복을 목격한 2세대로 그리고 3세대로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3세대는 기독교 문화만 남다가 4세대 5세대가 되면 촛대가 옮겨져 버리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많이 봅니다. 신앙의 유산을 물려 주려면 단순한 원리 축복기도를 믿음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죽어도 축복 기도는 남아서 자식들에게 역사를 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축복 기도를 통해 자손들이 복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축복기도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복을 비는 것으로 부모는 자식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야 합니다. 축도는 공적인 예배를 드린 후 목사가 예배에 참석한 회중을 향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총(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 성령의 교통)이 성도들의 삶 속에 계속 임하기를 청원하는 일종의 선언적 의미가 있는 의식행위이기 때문에 기도나 축복기도와는 다릅니다. 축도는 목사님들이 하는 것이지만 축복기도는 우리 성도들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저주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후 처음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창1: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에덴 동산에서 끝없는 복, 지복을 누리며 죽음도 질병도 눈물도 갈등도 아픔도 없는 복을 누리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형벌로 하나님과 단절되자 죽음이 찾아오고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어 영적으로 무지하게 되었고 죄의 노예가 되었으며 죄를 좋아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은혜를 주어 구원한 노아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줍니까? 창세기 9장 1절을 보면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고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복, 노아에게 준 복, 아브라함에게 준 복, 이삭에게 준 복, 야곱에게 준 복이 대대로 흐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죄로 가득찬 세상에 살면서 믿음의 가정을 복이 계승되는, 복의 통로가 되는 복받는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축복은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담아 놓기만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 속의 생각을 말로 표현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이삭은 야곱에게, 야곱은 열두 아들과 두 명의 손자에게 말을 통해 축복해 주었습니다. 부모가 축복할 만한 도덕적인 삶을 살아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아내를 누이라고 두 번이나 속였습니다. 이삭도 속였습니다. 야곱도 도덕적으로 볼 때 본받을 만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저 은혜를 받은 자로 하나님의 약속의 복의 전달자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자식의 조건을 보며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의 통로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말은 각인력, 견인력, 성취력이 있습니다.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 자녀를 축복하라>를 쓴 롤프 가복은 "자녀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자녀를 축복하는 부모의 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부터 배에 손을 얹고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소리를 내어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생각은 말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말로 표현할 때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손을 얹고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축복 기도로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3-27)”라고 매일 축복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축복은 이 땅에 행복을 창조하는 고귀한 사역이다. 하나님은 그 축복권을 부모에게 허락하셨다. 축복은 실로 부모의 특권이요, 거룩한 임무다."라고 말합니다. 존 트렌트ㆍ게리 스몰리 <축복의 언어>라는 책을 통해 자녀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축복할 것인가를 다섯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꽃이 자랄 때에 토양, 공기, 물, 햇빛, 그리고 자라기에 적당한 장소가 필요하듯 축복에도 다섯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애정 어린 접촉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입맞춤, 안아주기, 안수 등의 축복을 베풀 때에 수반되는 행위입니다. 신체적인 접촉은 축복을 베풀 때에 수반되는 필수 요소라는 것입니다.
둘째, 마음속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축복은 말로 표현할 때에 효과가 발휘된다는 것입니다. 참된 인정과 칭찬을 선한 말로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축복을 받는 자에게 높은 가치를 심어주라는 것입니다.
넷째, 축복을 받는 자의 특별한 장래를 말해주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름을 부를 때 아이들의 장래의 소망을 담아 부른다고 합니다. '의사 베니, 변호사 르우벤'처럼 부른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축복을 이루기 위한 적극적인 헌신을 하라고 합니다.
축복을 받는 자녀가 성공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예수님께 나아오는 어린아이들은 안고, 안수하고 축복하셨습니다.(막10:16) 부모의 축복은 자기 정체성,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 사랑과 인정을 받고 산다는 의식을 심어주기에 많은 유대인들은 지금도 매주 아버지가 자녀에게 축복을 베풀어 준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은 축복입니다. 좋은 물은 먹고 자란 나무는 건강하게 성장하지만, 오염된 물을 먹고 자란 나무는 결국 고사하고 맙니다. 부모가 매일 자녀를 축복한다면 그 아이들을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의 따스한 손길에 머리를 맡기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해주는 부모의 축복을 듣고 성장한 아이들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손길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죄악이 많고 믿음으로 살기 힘든 세상일지라도 자녀들에게 "네가 자랑스럽구나!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엄마 아빠는 널 믿어. 힘내."라고 격려하며 매일 축복해 준다면 자녀의 재능은 춤을 출 것입니다.
<다니엘 학습법>의 저자 김동환 목사님의 가정이 오늘날처럼 행복하게 사는 것도 어머니의 축복 기도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생은 의사가 되고 누이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는데 자신은 목사가 되었는데 어머니는 불치의 병을 기도를 통해 치료받고 새벽마다 기도하였답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지만 단칸방에 살면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와서 자신들이 자고 있을 때 자식들 앞에서 "큰아들은 영적 생명을 구원하는 지도자가 딸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음악가가 작은아들은 인간의 육신을 살리는 의사가 되게 해 달라"고 축복 기도를 매일 드렸답니다. 그런데 그 기도는 그대로 응답되어 다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축복 기도 하는 부모가 자식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며,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것입니다. 랍비인 예수 벤 시라크는 “아버지의 축복은 아들의 가정을 세워주고 어머니의 축복은 그 가정에 좋은 것들로 채워준다”라고 했습니다.
2. 우리는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믿고 자녀를 위해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이삭의 믿음을 소개할 때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게 구체적으로 무슨 말이겠습니까? 이것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이삭에게 그 약속을 다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창26:2-5) 땅, 자손,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였는데 이 약속을 이삭에게 다시 이삭에게 나타나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믿음으로 보는 영적 축복입니다. 이 축복은 결국 메시야를 통해 주실 믿음의 후손이 받는 영적 복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 3:9)"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갈 3:14)"라고 했습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 3:16)“
이것은 하나님의 계속 속에서 야곱을 통해 이루어질 복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눈이 어두울 때 두 아들 중 장자에게 축복해 주려고 큰아들 에서를 불렀습니다. 가문의 장자권을 이어 갈 아들을 장남이 에서로 생각하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복을 빌어주려고 부른 것입니다.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까 사냥을 해오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음식 먹고 죽기 전에 마음껏 에서에게 복을 빌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그의 아내 리브가가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염소 새끼 두 마리를 가져오게 하여 별미를 만듭니다. 평생 남편에게 밥을 해 주었는데 얼마나 남편의 식성을 잘 알고 있었겠습니까? 어머니의 말에 따라 야곱이 형처럼 위장하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 버린 것입니다. 장남인 에서가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가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축복을 해 달라고 합니다.
이 때 이삭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창세기 27:3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왜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겠습니까? 왜 두려워하고 두려워했겠습니까? 아내와 야곱에게 속을 것이 분해 그렇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국 이루어진다는 것을 통해 경외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 따라, 자신의 감각만 믿고 믿음으로 축복하지 않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아써 핑크는 “이때가 이삭의 육신적 자아가 깨어지고 하나님이 뜻을 수용하는 충격적인 각성의 순간이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것입니다. 리브가에게 언약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리브가가 쌍둥이 아이를 가졌을 때 무엇이라고 약속해 주었습니까? 이삭은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자 아내의 임신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임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성경에 드문일입니다(창25:21).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내에게 쌍둥이를 임신케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었습니까? 창세기 25:2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복을 장래에 야곱이 누리게 될 것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이 야곱에게 계승될 것을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것을 망각하였습니다. 망각하기 보다는 의도적으로 자기 뜻을 관철하려고 한 것입니다. 관습으로 보나, 아이들의 성격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가문을 이을 자는 야곱보다는 큰아들 에서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왜 그렇습니까? 에서는 사냥하는 자로 남자다웠고 자기가 좋아하는 고기를 잡아 자식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신의 식탐을 에서가 채워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식의 장래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싫은 것입니다. 그런데 비록 거짓말을 통해 야곱이 복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시는 현장을 보고 놀란 것입니다. 우리가 나이들면서 배우는 것은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구나’라는 것입니다. 이삭도 결국 믿음으로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축복하는 일의 결국은 이삭이 원한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신 대로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삭은 야곱을 떠나 보낼 때 어떻게 합니까?
창세기 28장 3-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첫 번 축복 기도에 말하지 않았던 아브라함에 허락하신 복을 말합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자손의 번성함을 누리고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을 기도한 것입니다. 메시아를 통한 언약의 성취인 영적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의 여정 가운데 끊임없이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 갈등하는 것을 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무엇입니까? 자신의 뜻에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뜻을 ‘예’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이삭이 믿음으로 축복한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멀리 보아야 바르게 갈 수 있습니다. 미래가 안보이지만 확실하게 가르쳐주신 미래의 끝이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믿음이란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내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설령 내 생각과 내 소원과는 다른 고난이 주어질지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 믿음으로 살면서 고난을 받는 성도들에게 어떤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말씀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주권적으로 다 성취하시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왜 나만 이런 고난을 받느냐고 억울해 하지도 낙심하지도 말고 믿음으로 살라는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세상 보고 믿음의 변절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순교를 당해도, 믿음 때문에 유리 방황하여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가는 길이라면 그것이 복받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필요에 따라 다양한 토기를 만들어 쓰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하나님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네로가 아무리 신앙인을 핍박한다 해도 결국 핍박당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로마는 결국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달하는데 한 시대 쓰임받았습니다. 구약의 족장 시대는 족장된 아버지가 가정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제사장이 자손들에게 축복을 베풀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의 주권적 약속 때문입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계획에 의한 일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복을 빌어 주지만 복의 절대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가인은 큰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아벨의 믿음을 보았고, 형인 야벳보다 셈이 우선권을 가졌으며(창10:21)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택했습니다. 이새에게는 많은 아들이 있었지만 그 중 막내인 다윗을 택하여 하나님은 구속사적 언약을 성취하였습니다.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인생이 가장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아서 애쉬라는 분이 있습니다. 1960년대 미국 버지니아 주는 “흑인은 테니스를 칠 수 없다”는 것을 법을 정해 놓았는데 그는 1963년 UCLA에 테니스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답니다. 아버지가 테니스 코트가 있는 공원 관리원이었는데 그는 미국 남자테니스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68년US오픈, 70년 호주오픈, 75년에 윔블던 대회를 우승한 최초의 흑인 선수가 되었습니다. 1968년은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해 흑백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때에 그는 미국 최고 권위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그해 세계 랭킹 1위가 되었습니다. 그후 세계 테니스 대회를 휩쓰는 선수로 활동하다 1979년 심장 질환으로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1983년 심장 수술할 때 수혈받은 피를 통해 감염되어 에이즈 환자가 되었습니다.
아서 애쉬가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에 전 세계의 팬들은 안타까워했답니다. 많은 팬들이 그에게 편지를 보내어 격려했답니다. 그에게 어떤 분이 “하나님은 왜, 하필이면 당신에게 그런 나쁜 병에 걸리게 하셨나요?”라고 편지를 보냈답니다. 아서 애쉬가 에이즈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를 듣고, 그 사람이 보낸 것이라고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 아서는 이렇게 답변했답니다.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의 어린이들이 테니스를 칩니다. 그 중 500만명이 테니스를 정식으로 배웁니다. 그 중 50만명이 직업 선수가 됩니다. 그 중 5만명이 리그전에 참여합니다. 그 중 5천명이 그랜드 슬램 대회에 참여할 자격을 얻습니다. 그 중 50명이 윔블던에 참여할 자격을 얻습니다. 그 중 4명이 준결승에 진출하고, 그 중 2 명만이 결승전에 갑니다. 저 홀로 윔블던 우승컵을 들었을 때, 저는 ‘하나님 왜 접니까?’ 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병들었다고 내가 ‘왜 접니까’ 라고 물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아서 애쉬의 회고록 <은총의 나날들>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왜 접니까?”(Why me?)라는 질문을 나는 한 번도 제기한 적이 없다. 만일 내가 심장마비 혹은 AIDS에 걸린 것을 두고 ‘왜 접니까?’라고 묻는다면, 내가 받은 축복에 대해서도 ‘왜 접니까?’ 라고 물어야 하고, 그것을 즐기는 제 권리에 대해서도 똑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1975년 윔블던 대회에서 우승한 날, 나는 내가 받은 축복에 대해 ‘왜 접니까?’ 라고 묻지 않았다. 동일하게 나의 병듬과 고통에 대해서도 ‘왜 접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러지는 것이 중요하지 내 개인적인 바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진정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어렵고 병이 들었을 때도 여전히 하나님의 전적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복으로 생각하며 하나님께 미래의 모든 일을 맡기고 신앙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입으로는 주를 외치며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자기 뜻대로 세상의 방법과 수단, 자기 지식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신앙인은 자신의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다고 고난과 실패가 다가온다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패라고 생각하지만 믿음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되어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며 우리의 인생도 자손의 인생도 하나님의 손에 있어 결국 로마서 8장 28절에 말씀한 것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믿습니다. 미래의 모든 일을 내 계획과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게 맡기는 것입니다. 인생의 행로에서 통나무를 짤라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짐과 걱정과 근심을 산 아래로 굴러 보내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대 계승이 참으로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순교를 강요하는 핍박은 없습니다. 그러나 축복의 신앙을 떠나게 하는 수많은 유혹들이 있습니다. 고등학교까지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교회에 나오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신앙으로부터 떠나가는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 축복의 반열에서 떠나버려 에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2대 3대 4대 천대에 이르기까지 신앙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하나님의 복의 원리를 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복을 대대 손손 누리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단순한 믿음같지만 믿음으로 자손들을 위해 축복해야 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자녀에게 자손들에게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믿고 자녀를 위해, 후손을 위해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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